‘작은 연못’의 파문
‘작은 연못’의 파문
  • 편집국
  • 승인 2010.05.10 14: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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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중한이라 했던가. 4월 어느 날 영화 ‘작은 연못’을 볼 수 있었다. 1950년 7월 충청북도 영동군 황간면 노근리 경부선 철로와 굴다리에서, 미군의 무스탕 전투기와 기관단총에 의해 자행된 양민학살사건을 소재로 한 내용이다. ‘노근리 양민학살사건’은 1999년 AP 통신에 의해 처음 보도된 후, 2002년 영국의 BBC 방송에서 다큐멘터리로 방영되기도 하였다.
노근리 사건을 접하였을 때 양민학살 ‘사건’에 관심을 가졌었던 나는, 오히려 영화를 통해 오순도순 살아가던 사람들의 ‘일상’에 눈길이 갔다. 전국 노래자랑을 준비하는 짱이와 그 친구들, 인정 넘치는 우리네 이웃이 마음에 와 닿았다. 순박하고 인정 넘치는 ‘사람’을 보았고 그들이 난도질당하는 광경을 지켜봤다. 역사의 무게에 짓뭉개지는 ‘양민’을 보았다.
5월을 맞아, 신록이 자태를 뽐내는 거리에 자신만이 뛰어난 인물임을 내세운 현수막이 염치없이 펄럭인다. 경제를 살릴 적격자, 지역 문제 해결의 주체, 교육 전문가…. 생뚱맞은 현수막이 존재하기까지의 역사를 돌아본다. 그리고 그것이 목숨을 걸고 쟁취한 소중한 결과물임을 새삼 깨닫는다. 소수에 의한 권력은 ‘자기 성찰 결여’와 ‘비판의 금기’라는 태생적 한계를 지닌다. 어떠한 대화나 타협도 거부하며, 자신에게 저항하는 모든 대상에게 무소불위의 폭력과 만행을 자행했을 뿐이다. ‘4·13호헌조치’라는 숨넘어가는 허장성세는 ‘이장에서 대통령까지 우리 손으로’의 함성에 무너졌다.
지금 우리가 누리고 있는 민주적인 제도와 장치의 소중함을 강조하는 것은 별의미가 없다. 직접선거에 의한 자치제는 역사의 소산이요 다중의 염원이 담긴 실존이며 당위이다. 그러나 지금 우리는 저들만의 리그, 하나의 ‘제도’로 선거를 바라보며 외면하고 있지 않은가.  우리나라의 투표율은 직선제의 취지가 무색할 정도로 급강하했다. 제1회 지방선거 68.4%(1995)→2회 52.7%(1998년)→3회 48.9%(2002년)→4회 51.6%(2006년)였다(한겨레신문, 2010년4월 27일자). 지방자치단체장의 대부분은 비리 혐의 등으로 임기를 채우지 못한 바, 곳곳에서 보궐선거가 진행되는 모습은 차라리 하나의 일상이 되었다.
그러나 금품과 별장을 삥 뜯고 여권을 위조해 해외로 달아나려는 파렴치한이 들끓더라도, 작금의 정치 현실을 외면해서는 안 된다. 나 자신 무관심과 패배주의에 빠져있을 때, 누군가는 집요한 악귀처럼 자신의 이익을 위해 밤을 새운다. 그 결과가 준엄하게 우리의 일상으로 돌아옴을 수없이 경험하지 않았던가. 신음하는 산하, 88만원 세대의 한숨, 갈수록 심해지는 양극화, 점점 서슬 퍼래지는 남북관계, 아무리 노력해도 달라지지 않는 삶 그리고 불안정한 미래…. 강의실에서, 도서관에서, 각자의 공간에서 미래를 착실히 준비하면서도 현실과 부단히 대화하고 고민해야 하는 이유이다.
제대로 된 사회일수록 미래에 대한 예측이 가능해야 하며, 구성원의 인간적인 삶을 보장할 수 있는 조건이 구비되어야 한다. 개인의 삶은 어떤 미명으로도 침해받아서는 안 된다. 우리의 일상을 온전히 지켜내기 위해, 우리와 상관없어 보이지만 무섭게 밀착되어 있는 역사, 정치, 사회와 부단히 관계를 맺어야 한다. 그 속에서 인간다운 삶을 향유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 그리고 멀리 내다보며, 희망의 끈을 동여매어야 한다. 그래야 ‘작은 연못’에서처럼 ‘양민’들이 ‘역사’의 무게에 짓뭉개지지 않을 수 있으며, 나아가 우리가 원하는 ‘일상’을 만들어갈 수 있다. 
6·2지방선거가 한 달 앞으로 다가왔다. 광역자치단체장, 시군구의회의원, 교육감 등 8명의 일꾼을 고르는 일이다. 누가 참된 일꾼인지 열심히 따져보고 선택해야 한다. 사대강, 세종시, 남북관계, 무상급식, 언론사 문제 등은 이 국면에서 가장 중요한 쟁점이다. 지방선거의 결과는 이 중차대한 쟁점들의 향방에 큰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6·2지방선거는 나라의 미래를 좌우하는 분기점으로서의 의미를 지닌다.
당면한 문제에 대해 토론하고 분석하며, 우리의 역사를 만들어가야 한다. 패배감, 개인주의, 안일함에서 벗어나, ‘역사’와 ‘개인’의 발전적인 관계를 구축하기 위한 발걸음을 내딛어야 한다. ‘작은 연못’으로부터 나에게 전해진 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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