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격(國格)을 높이려면 한글의 격도 높여야
국격(國格)을 높이려면 한글의 격도 높여야
  • 편집국
  • 승인 2010.05.10 14: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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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국제사회에서 우리나라의 위상이 높아지면서 국격을 높이자는 말을 많이 하고, 국격을 높이기 위해서는 이러저러하게 행동해야 한다고 힘주어 말하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그러면서 “글로벌(global) 경제”, “그랜드 바겐”(grand bargain), “미 퍼스트”(Me First)와 같은 외국어를 함부로 쓰면서, “세계경제”, “일괄타결안”, “내가 먼저”라고 말하면 마치 격이라도 떨어지는 것처럼 나랏말인 한글의 격을 짓밟고 있다. 국가 지도자가 국제회의에서 외국 정치인을 상대로 한 표현을 사람들이 생각 없이 우리 국민을 상대로 “미 퍼스트” 운동을 펼쳐야 한다고 목청을 높이고 있는 것을 보면 무언가 잘못돼도 한참 잘못됐다는 생각이 든다.
이런 ‘한글 격 낮추기 운동’은 공공분야뿐만 아니라 민간분야에서도 결코 만만치 않게 펼쳐진다. “기초”를 “펀드멘털”(fundamental)이라 하고, “출시”나 “개업”을 “론칭”(launching; ‘런칭’이 아니라 ‘론칭’에 더 가까운 발음임)이라 하고, 각종 기업명을 영어 약자로 표기해야 격이 있는 듯 이야기하고 있다.
이런 식으로 대책 없이 가다 보면 어느 땐가 한글의 명사는 모두 영어로 대체되고 조사만 남아, “아이(I)가 유(you)를 러브(love)해”식의 한글과 영어가 뒤섞인 콩글리시가 횡행하게 될 것 같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다. 싱가포르에서 최근 중국어 사용을 권장하면서 영어와 중국어가 뒤섞인 싱글리시가 통용되고, 인도에서 영어와 힌두어가 뒤섞인 힌글리시가 사용되듯이. 그런데 최근 이런 우려가 점차 현실에 가까워지고 있음을 보여주는 라디오 광고 문구를 들었다. “스위트(sweet)하고 시크(chik)하고 모던(modern)한, 바로 oooo 가구처럼”이라는 문구의 광고다. 그 가구명이 외국어임은 말할 것도 없다.
이렇듯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우리 “한글”의 우수성을 우리 스스로 열심히 모독하면서, 다른 한편으로 우리의 한글 자모를 동티모르의 찌아찌아족에게 전해준 일을 자랑스럽게 이야기한다. 이런 우리의 이율배반적인 모습을 과연 어떻게 해석해야 하나? 공기의 고마움을 모르고, 가까이 있는 사람의 고마움을 모르듯 일제시대에도 민족의 얼을 지켜낸 우리가 왜 다른 나라 사람들의 강요도 없는데 우리 스스로 우리글을 이렇듯 홀대할까? 이런 우리의 모습을 보고 한글 자모를 사용하기 시작한 찌아찌아 사람들은 무어라고 할까? 이런 모습을 보면서 필자는 때로는 정말 우리가 한국인으로서의 우리 자신에 대해서 어떤 생각을 하면서 사는지 의아할 때가 있다. 이렇게 가다가는 훗날 남과 북이 하나가 될 때, 우리가 사용하는 말과 북한사람이 사용하는 말이 더욱 달라져 같은 민족끼리 소통이 정말 어려워질 수도 있다.(이미 상당부분 어려워지고 있지만)
프랑스에서는 아름다운 프랑스어를 세계를 지배하고 있는 영어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해당 단어의 프랑스어가 있음에도 외국어를 광고에 사용하는 경우 제재를 가하고 있다. 이렇듯 이미 국가 이미지가 상당한 수준에 있어 국격이 높은 나라도 자국 언어를 보호하기 위해 엄격한 법까지 만들면서까지 노력하고 있는데 우리는 이율배반적인 행동으로 우리 한글의 격을 서로 앞다투어 떨어뜨리지 못해 안달인 듯하다. 필자는 이런 우리의 한글 홀대는 최근 보도된 교사와 공무원의 국어 성취도가 55~65%에 불과할 정도로 우리 국민의 언어생활이 체계 없이 이뤄진다는 조사 결과가 상징적으로 웅변해주고 있다고 생각한다.
이런 우리말과 글의 학대는 외국어 남용에 그치지 않는다. 부드럽고 아름다운 우리의 말과 글이 험하고 거친 막말로 대체되어가고 있다. 누가 그랬던가? 말은 얼이라고 했다. 좋고 아름다운 말을 쓰면 좋고 아름다운 얼을 가지게 되겠지만, 거칠고 험하고 남에게 상처 주는 말은 자신의 얼뿐 아니라 다른 사람의 얼 또한 그렇게 만들 것이고 그 폐해는 다시 자신에게 돌아와 자신의 얼도 몸도 망가뜨릴 것이다. 얼은 곧 우리의 몸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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