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가지 ‘포기’ 보다 두 가지 ‘타협’/고건혁
한 가지 ‘포기’ 보다 두 가지 ‘타협’/고건혁
  • 염수진 기자
  • 승인 2010.03.18 15:15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인디음악레이블 '붕가붕가 레코드' 고건혁 대표

 

 "대학 다닐 때 장사를 
해봤으면 좋겠어요.

 

물건을 파는 장사를
해보라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에게
내가 하는 일을 납득시키는 일을 해봤으면 해요.

자신과 교감 할 수 있는
사람을 두는데
필요하기 때문이죠."

자신의 꿈과 경제적인 안정 사이에서 전자를 선택하는 사람이 있다면 과연 얼마나 될까? 아마 소수에 지

▲ 고견혁 대표를 비롯한 붕가붕가레코드(붕가붕가)의 사람들이 함께 쓴 책으로 붕가붕가에 관한 모든 것들이 담겨있다. 붕가붕가의 탄생과 성장, 소속 뮤지션 등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다. 진지함과 시시껄렁함, 상호 모순되는 두 컨셉이 오묘한 조화를 이루고 있는 책이다.
나지 않을 것이다. 기자가 만난 인디음악 레이블 ‘붕가붕가 레코드’의 고건혁 대표도 그들 중 한 사람이었다.
고건혁 씨는 ‘장기하의 얼굴들’, ‘아마도 이자람 밴드’, ‘술탄 오브 더 디스코’등의 밴드가 소속 돼 있는 회사의 대표이다. 이 소속사의 이름은 ‘붕가붕가 레코드’, 소규모 레이블이지만 창의성과 대중성을 겸비한 인디밴드계를 대표하는 기획사이다. ‘붕가붕가 레코드’는 거대 자본의 대안으로 직접 CD를 구워 제작하는 ‘가내 수공업’ 방식으로, 일반 음반보다 좀 더 저렴하게 판매한다. 장기하의 첫 싱글 앨범인 <싸구려 커피>도 이 방식으로 만들어 1만 3천 장이 팔렸다. 공장제 대형 음반 <별일 없이 산다>는 4만 3천 장이 나갔다.
고 대표를 만나기로 약속한 곳은 대전의 카이스트. 그는 평일엔 이곳에서 공부한다. 그를 기다리는 동안 도서관에서 ‘붕가붕가 레코드의 지속가능한 딴따라질’을 읽어 내려갔다. 이 책은 그를 포함한 레코드사의 젊은이들이 ‘붕가붕가 레코드’를 만들어 온 과정을 쓴 것이다.
그러던 중 멀리서 카키색 코트를 걸친 덩치 큰 남자가 눈에 들어왔다. 고 대표였다. 그의 별명인 ‘곰사장’에 걸맞는 모습이었다.
음악과의 인연은 그가 중학생일 때부터 시작됐다. 그 당시 미국의 얼터너티브 록그룹인 ‘너바나’의 노래가 인기를 끄는 것
▲ 고건혁 대표가 공연하고 있는 모습. 고 대표는 자사 소속 뮤지션인 '술탄 오브 더 디스코'의 객원멤버로 종종 무대에 선다.
을 본 후 음악을 ‘듣는 것’에서 ‘하는 것’으로 인식하게 된 것이 계기가 됐다. 그는 이후 고교 밴드부 활동과 대학 시절의 여러 경험을 통해 자신의 꿈을 더 키워나갔다.
“음악과 늘 접촉하고 있어서 그 존재에 대해 깊이 생각 해본 적은 없어요. 그렇지만 많은 관심사 중에서도 음악에 대한 관심은 일관적으로 유지하고 있으니 제가 하고 싶은 일인 것 같아요.”
과거 고 대표는 서울대학 내부용 인터넷 언론 사이트 <스누나우>의 문화면을 담당했다. 학교의 모든 공연을 보고 비평했었다. 하지만 기존의 밴드에서 만족하지 못한 고 대표는 제대로 된 밴드를 만들고 싶었다. 그는 주위 동료, 선·후배들과 함께 ‘붕가붕가 중창단’을 결성했다. 이후 ‘뺀드 뺀드 짠짠’ 프로잭트에 참여해 대학 내의 자작곡을 모은 음반을 내기도 했다. 그는 프로젝트 음반에서 얻은 결과물을 계속 이어가길 원했고 그것이 곧 ‘붕가붕가 레코드’의 밑바탕이 된 것이다. 자신의 꿈에 한 발짝 가까이 간 것이다.
“꿈을 향해 가기 위해서는 소꿉장난 식으로라도 조금씩 계속해 보는 것이 중요해요. 그러다가 잘 되면 조금씩 더 하는 거예요.”
밥그릇보다 숟가락이 크면 밥을 먹지 못하듯이 거창하게 ‘도전’이라는 단어 사용으로 자신이 할 수 있는 것도 못할 수 있다. 다시 말해 자신이 할 수 있는 작은 것부터 시작해야 큰 것까지 할 수 있다. 또 무리한 목표를 잡는 것이 아닌 자주 목표를 수정해 점차 높여가는 것이다.
“‘타협’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무언가 한 가지를 포기하는 것보다 현실에 맞춰 두 가지 모두 하는 것이 중요해요.”
포기는 하려던 일을 도중에 그만둬 버리는 것이고 타협은 어떤 일을 서로 양보하여 협의한다는 점에서 다르다. 타협이라는 돌멩이 하나로 두 마리 토끼를 동시에 잡는 격이다. 결과적으로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한도 내에서 자신의 두 가지 욕구를 충족시킬 수 있는 것이다.
요즘 고등학생의 80% 이상이 대학에 진학하는 상황에서 대다수는 취업에 필요한 스펙을 쌓는 데 여념이 없다. 이런 현실로 인해 꿈보다는 취업만을 생각한다. 하지만 설령 취업이 된다고 하더라도 그 삶은 과연 행복한 삶이라고 할 수 있을까?
자신이 하고 싶은 음악을 한다는 고 대표. 그렇지만 지금 가고 있는 길에 대해 후회한 적은 없을까? 그는 “어려운 상황이 종종 있었지만 후회한 적은 없었다”고 단호하게 말한다.

 

대학시절 총학생회 문화국장을 지냈던 고 대표는 대학문화를 선도하려고 했다. 그는 대학에서 생산한 문화를 그곳에서 직접 소비하는 유통구조를 모색했다. 하지만 대학생들은 대학이라는 울타리 안에만 있지 않고 끊임없이 외부와 소통했다. 대학문화를 대학 내로 한정 짓는 것은 소용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제가 있는 공간에서 제어가 가능한 문화를 형성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그것이 대학이 아니라도 괜찮았고요. 일종의 ‘지역(Local)문화’를 추구한 셈이죠.”
지역문화는 지역색이 강하다. 일례로 미국은 국토도 넓고 인구도 많아서 특정지역의 문화가 대중문화로 성장한다. 하지만 우리나라에는 없다. ‘인디문화’라고 하면 다들 흔히 ‘홍대’를 떠올리게 되는데 이것 역시 중앙 집중화 현상의 연장선상에 있다.
“지역문화가 발달되면 지역의 특색이 담긴 다양하면서도 재밌는 문화가 많이 생겨날 것입니다. 4대강 공사 대신 정부에서 각 지역 거점마다 탄탄한 문화적 기반을 마련해 준다면 지역경제도 살 수 있을 텐데 말이죠.”
고건혁 대표는 하고 싶은 일만 하면서 살기에도 삶이 부족하다는 것을 아는 사람이었다. 또한 선택의 길에 놓여 있을 때 포기보다는 좀 더 현실적인 방법으로 행동해야 한다는 것도 잘 알고 있었다. 그러한 타협으로 현실성과 적절한 선택이 동반될 때 붕가붕가 레코드의 모토인 지속가능한 딴따라질을 앞으로도 계속 이어갈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