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결같은 마음으로 지역의 목소리를 담겠습니다."/경산신문 최승호 대표
"한결같은 마음으로 지역의 목소리를 담겠습니다."/경산신문 최승호 대표
  • 임기덕 기자
  • 승인 2009.11.30 19:3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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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산신문 최승호 대표

 

경산신문 최승호 대표
평범한 대학시절

 

최승호 경산신문 대표는 평범한 국문학도였다. 글쓰기가 좋아서 글을 잘 쓴다는 친구들을 모아 학과 내에 글쓰기 동아리를 만들어 이들과 함께 글을 쓰기도 하고 술도 마셨다.

최 대표가 2학년이 되자 학내에서는 ‘교련 반대 운동’이 일어났다. 교련과목을 이수하면 군 복무 기간을 1개월가량 줄일 수 있었지만 군사정권이 학생들에게 강제로 군 문화를 주입하려 한다는 생각에 그도 함께 교련 반대를 주장했다. 하지만 그는 개인적인 문제로 사회 운동에는 참여하지 않았다. “당시 제 자신의 의식이 덜 깨우쳐진 탓에 학내 운동에는 참여하지 못했습니다. 지금은 부채의식을 가지고 있습니다.”

군 입대 전까지 간선 학회장을 하던 최 대표는 제대 후 졸업과 함께 대학원 입학을 준비하면서 경산 지역의 한 야학에서 국어를 가르치게 된다.

 


야학 교사에서 지역신문 기자로

지역신문과의 인연은 우연히 찾아왔다. 최 대표가 처음 속한 야학은 운영자와 교사들 간의 갈등이 잦았다. 교사들은 야학 운영비를 공개하고 중학교 과정을 마친 학생들이 일반고교로 편입할 수 있도록 해줄 것을 주장했다. 하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교사들은 모두 사표를 제출했다. 야학에 다니던 30명의 학생들도 선생님을 따라 나왔다.

결국 최 대표의 주도로 새 야학을 만들고 표구사의 빈 공간을 빌려 수업을 시작했지만 며칠 뒤 난로 과열에 의한 화재로 수업을 할 수 없게 됐다.

다행히 지역 인사들의 도움으로 새마을금고 2층 회의실에 수업공간을 마련할 수 있게 됐다. 그들 중 한 명이 새마을금고 전무로 경산신문의 전신인 성암신문의 대표였다.

“전무님께서 제게 신문사의 객원기자로 일해 줄 것을 부탁했습니다. 글도 그럭저럭 쓸 수 있는데다 저도 이미 도움을 받았기 때문에 수락했습니다.”

최 대표는 객원기자 생활 3년간 ‘경산향토기행(이하 향토기행)’이라는 이름으로 경산 내 곳곳에 산재한 자연마을을 찾아다니며 그곳의 모습들을 지면에 담았다. ‘향토기행’ 취재 도중 그는 한국전쟁 당시 경산 코발트광산에서 민간인 학살이 대규모로 이뤄졌음을 알게 됐다. 이후 ‘경산지역사연구회’와 ‘경산시민모임’ 등을 조직해 시민운동을 했다. 이와 동시에 지속적인 후속 보도를 통해 ‘경산 코발트광산 학살사건’의 진실을 알리는 데 주력했다.

한편 그는 함께 일할 정규직 기자들을 스카우트하는 역할을 맡았다. 그가 스카우트한 동료 기자가 2년 여 뒤 사직하면서 신문사 대표로부터 한 가지 제안을 듣게 된다. 대표는 “1년 이내에 사람을 새로 뽑을 테니 그때까지만 정규직 기자가 돼 달라”고 말했다. “그러나 초봉 50만 원으로 일 해줄 사람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1년이 지나고 2년이 지나도 사람을 구하지 못해 결국 제가 남게 됐습니다.”

그는 객원기자와 정규직 기자, 1999년 편집국장을 거쳐 지난 06년 11월 경산신문 대표이사의 자리에 올랐다.

“야학 공간을 빌려준 데 대한 고마움으로 지역신문에 입문한 것이 벌써 17년이나 지났습니다.”

 

지역신문의 위기와 역할에 대한 고민

최 대표는 지역신문이 위기에 처해있다고 보았다. "지역신문은 광고 시장이 협소할 뿐 아니라 메이저 신문들의 광고 독식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대구 지역 일간지들의 영향력도 커서 지역신문에 대한 관심이 낮습니다."

경산신문은 지금 고민에 빠져 있다. 지난 2년 동안 지역신문발전지원특별법에 의해 지원받아온 지역신문발전기금 혜택이 곧 끊길 형편이기 때문이다.

특별법의 효력이 내년 9월 22일자로 상실되면 경산신문을 비롯한 대부분의 지역신문사들이 어려움을 겪게 될 것으로 보인다. 그런 상황에도 불구하고 그는 "지방권력에 대한 감시자 역할을 수행하고 지역민의 억울함을 풀어주며 지역공동체에 헌신할 수 있는 사람을 발굴․육성하는 등 지역신문이 할 수 있는 역할은 무궁무진하다"고 말한다.

"건강한 신문이 있다는 것은 지역에 큰 힘이 된다고 믿기 때문에 힘들어도 신문사를 계속 운영하게 된다"고 힘주어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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