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시간 연중무휴 건강 팔아 돈 버는 가난한 20대
24시간 연중무휴 건강 팔아 돈 버는 가난한 20대
  • 박슬기 기자
  • 승인 2009.11.18 19:5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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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의점 야간 아르바이트생 A군의 하루

도시 어느 구석은 항상 깨어있다. 시간을 거스르는 도시인들에게 24시간 점포는 생활의 필수다. 해가 뜨면 일하고 해가 지면 잠을 자던 농경사회를 겪지 않은 젊은 세대들은 24시간 점포의 진정한 고객이다. 그들은 고용주를 대신해 24시간 점포를 지키기도 한다. 가진 것이라곤 젊음과 체력밖에 없는 낮 시간 아르바이트보다 시급이 높은 심야 아르바이트에 뛰어들고 있는 것이다. 1천만 원을 넘나드는 등록금과 어려워진 경제사정이 대학생들로 하여금 시간제 노동을 할 수 밖에 없도록 하는 셈이다.

오렌지 타운 인근 편의점에서 심야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는 A씨(25)를 찾은 때는 지난 6일 밤 11시경. 갑자기 추워진 날씨 탓에 손님이 줄어 밀려드는 피곤이 버겁다는 A씨는 무척 고단한 모습이었다. 새벽에 들어오는 당일 상품들을 진열하고 쉴 새도 없이 바닥을 닦는 A씨의 손길이 바빠 보였다.

등록금을 위해 심야 아르바이트를 시작 한 지 두 달. ‘제 집 아니면 잠 못자던’ A씨는 이제 요령이 생겨서 손님 없는 시간에 틈틈이 졸기도 한다. 하지만 이런 그에게도 밤을 꼬박 새우는 일은 여전히 힘들다. “처음에는 그다지 개의치 않았죠. 시험기간 등에도 밤을 자주 새는 편이었고, 편의점 아르바이트가 다른 아르바이트보다는 비교적 수월한 편이었거든요.”

하지만 오랜 시간에 걸친 심야 노동은 체력 좋은 A씨에게도 무리가 될 수 밖에 없었다. 오전 8시 쯤 아르바이트를 끝내고 집으로 돌아가 점심때까지 4시간 정도 잠을 자지만 인간의 생체리듬을 거스르는 노동은 몸에 무리를 줄 수 밖에 없었다.

“야간 아르바이트를 시작하고 나서부터 주변에서 피곤해 보인다는 말을 자주 들어요. 전에 없던 다크서클도 생기고 조금만 피곤해도 눈이 충혈 되거든요. 잠을 불규칙적으로 자고, 자더라도 편한 잠을 못자서 그런지 요즘은 소화도 안되고 몸이 예민해졌어요.”

A씨가 잠까지 줄여가며 야간 아르바이트를 하는 이유는 단순하다. 낮에는 도저히 시간이 없기 때문이다. “요즘 같은 취업난에 하루 종일 취업준비만 해도 시간이 모자라요. 학점이 그리 높은 편이 아니라 자격증을 몇 개라도 따놓아야 마음이 놓이는데 여기에 스터디모임에 토익 공부까지 더해지면 고3 수험생 못지않죠.” 하지만 시간이 없다고 해서 아르바이트를 하지 않을 수는 없다. 점점 오르는 등록금에 한숨을 쉬는 부모님 보기가 민망해 용돈이라도 직접 벌어야 마음이 편해지기 때문이다.

“오전에라도 잠자는 시간을 좀 더 늘리는 것이 어떠냐”는 물음에 ‘야간 아르바이트 때문에 남들보다 취업준비에 뒤처지는 것은 싫다’며 손사래를 친다.

편리하지만 일하는 이들은 고달프다

“저같이 내세울 것이 체력밖에 없는 젊은 사람들은 돈이 궁하면 잠을 줄일 수밖에 없어요. 저야 아르바이트생이니까 그저 고생한 만큼 돈만 받으면 그만이라고 생각하죠. 하지만 24시간 가게를 지키는 사람들이 ‘돈 궁한 젊은 사람들’에 집중되어 있는 것을 보면 가끔은 이런 가게들이 이상하게 보이기도 해요. 야간 아르바이트가 경제적으로 어려운 젊은 사람들만을 위한 일터로 느껴져 씁쓸한 느낌이 들죠.”

찜질방, PC방, 김밥전문 분식집은 물론 최근에는 유명 패스트 푸드점과 대형마트까지 24시간 점포는 점점 늘고 있는 추세다. 시간에 상관없이 이용할 수 있다는 24시간 점포만의 특징이 고객들을 끌어 모으는 데 적극 활용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심야 시간대에 직접 영업에 나서는 점포주는 거의 없다. 체력적으로 힘들기 때문에 고용인들은 A씨처럼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겪는 젊은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최근 휴학생이나 대학에 다니고 있는 20대들의 비중이 더 늘었다. 점장 김석훈 씨는 “약 10년 전에는 투잡(two job)을 하려는 직장인들이나 실직자 등 중년 남성들이 지원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그 때만 해도 지금처럼 24시간 점포가 많지 않아 새벽의 범죄위험도 높았고 밤을 새며 일한다는 것에 대해 부정적인 인식이 많아 젊은 사람들은 잘 지원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반면 “요즘에는 경기침체로 취업난이 지속되면서 휴학생은 물론 대학생 등 젊은 사람들이 생계형으로 아르바이트를 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도시의 불을 밝히는 24시간 점포. 그 부조리한 편리함을 위해 오늘도 20대의 건강을 담보로 한 노동은 계속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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