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대인이 쌓아올린 막.추.피.추
영대인이 쌓아올린 막.추.피.추
  • 조규정 기자, 염수진 준기자
  • 승인 2009.11.18 16:1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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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걸리의 추억 속에 피어나는 또 하나의 추억

"막걸리는 술이 아니고 / 밥이나 마찬가지다 / 밥일 뿐만 아니라 / 즐거움을 더해주는 / 하나님의 은총인 것이다"

故천상병 시인의 「막걸리」라는 시에 나오는 구절이다. 90년대 이전을 살아온 세대들에게 막걸리란 술이 아니라 밥이자, 인생의 즐거움이었다.

일러스트 조장은(시각디자인1)
최근 들어 소주와 맥주에 밀려 명맥만 유지하던 막걸리가 일본에서 유행하면서 다시 각광받고 있다. 덩달아 우리나라에서도 막걸리의 효능을 주목하며 막걸리 시대를 새롭게 열고 있다. 막걸리의 재등장에 즈음하여 우리대학 교수님과 학우들에게 막걸리에 관한 추억과 재미난 이야기를 들어봤다.

"걸리는 정신적 자양분이었다"   -김태일 교수

막걸리를 사랑하는 대학으로 널리 알려진 고려대 74학번 김태일 교수(정치외교학과)는 당시의 추억을 생생히 기억했다. 신입생 환영회 때 막걸리는 빠지지 않았고, 축제 때는 막걸리를 큰 드럼통에다가 부어넣고 마셨다고 한다. 드럼통 막걸리를 다 마시고 나면 주인 잃은 신발이며 핸드백, 손목시계 등이 수두룩했다고 증언한다.

70년대 독재시절이라는 시대적 상황 때문에 김 교수는 기쁨과 슬픔, 아픔을 막걸리와 함께 했다. 한 번은 등교를 하니 학교가 폐쇄되어 수업을 들을 수 없었다. 그때 학교 밖의 이름도 친근한 '할매집', '고모집' 같은 술집에서 눈물과 함께 막걸리를 통음하며 송창식의 '고래사냥'을 목청껏 불렀다고 한다.

"술 마시고 노래하고 춤을 춰봐도 / 가슴에는 하나 가득 슬픔뿐이네…. 가사를 보면 술을 마시고 춤을 춰도 풀리지 않는 응어리와 낭만, 젊음의 현실을 얘기하고 있지. 지금 학생들이 들으면 감흥이 없겠지만 우리 세대는 이 노래를 들으면 전율이 느껴져" 김 교수의 눈은 촉촉해져 있었다.

"어릴 때 우유를 마시고 컸다면 대학시절에는 막걸리를 마시고 정신적으로 성숙해졌어. 막걸리는 정서적 유대를 풍부하게 했던 자양분인 셈이지" 라며 막걸리 예찬론을 펼쳤다.

"리 것의 우수성을 우리가 먼저 알아야"   -김기호 교수

"시계탑 근처에서 신입생 환영회를 하면 막걸리를 마셨는데 아침에 청소하시는 아주머니들이 곳곳에 널린 빈 막걸리병을 치우는 모습이 생각나네" 우리대학 85학번인 김기호 교수(국어국문학과)가 떠올린 막걸리에 대한 20년 전의 추억은 낯설지 않다. 지금은 정문 시계탑 근처에서 술을 마시는 모습을 보기 힘들지만 20년 전 그때는 낭만의 광장이었다. 변함없는 시계탑 주변 풍경이 20년 전의 기억을 공유할 수 있게 한다.

김 교수는 최근 막걸리가 유행하고 있어서 기쁘지만 한편으로는 씁쓸하다고 했다.

"요즘 막걸리의 가치가 재조명 받고 있지만, 따져보면 일본에서 각광을 받자 역으로 우리나라에서 유행이 되고 있는 상황이야. 우리나라의 좋은 것을 먼저 알지 못하고 외국에서 인정받아 그제야 우리 것의 우수성을 알아보는 현실이 안타까워" 김 교수의 말에서 아쉬움이 묻어났다. 불고기, 김치 등 한식의 세계화를 부르짖고 있는 상황에서 막걸리 또한 진정한 세계화를 원한다면 먼저 우리 것을 사랑하는 미덕을 갖춰야 할 것이다.

"걸리는 내 아버지의 향기다"   -허창덕 교수

허창덕 교수(사회학과)는 어렸을 때 막걸리 심부름을 도맡아 했다. 주로 점심과 저녁 사이에 새참으로 막걸리 심부름을 갔다. "막걸리가 맛있었다기보다 홀짝홀짝 마시는 재미가 있어서 자꾸 먹었지. 그렇게 마시다 어느 날에는 막걸리 양이 많이 줄 때도 있었어. 그런데도 아버지는 한 번도 꾸짖지 않으셨지"라고 말했다. 그래서 허 교수는 종종 막걸리를 마실 때 잘못을 눈 감아 주신 아버지의 너른 가슴이 떠오른다고 한다.

막걸리 심부름을 갔다 오면서 포도밭을 지나던 한 아이는 싱그러운 포도향기에 코를 킁킁거리며 달콤한 막걸리를 홀짝거렸을지도 모른다. 그 모습에 아버지는 차마 혼내지 못했으리라. 그리고 아이는 포도향과 막걸리 냄새를 헷갈려하며 아버지의 향기를 생각했을 것이다.

허 교수가 대학을 다닐 때 막걸리는 싱거운 술, 아니 음료였다. 도수가 낮은 막걸리에 소주를 섞어 마시거나 사이다를 넣어 마셨다. 꿀막걸리는 언감생심이었다. 그 당시에는 꿀이 엄청 비쌌기 때문에 먹을 엄두를 내지 못했다고 한다. "자장면을 먹을 때 탕수육까지 먹는 느낌이지"라는 비유가 적절하다. 안주는 두부김치가 최고로 잘 어울린다고 한다. 소금과 멸치만으로도 안주가 되는 술은 막걸리뿐이라고 하니 진정 서민들의 술이다.

"대로 된 꿀막을 위해선 정성이 중요하다"   -김태익 씨

우리대학의 학우 2백 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한 결과 54%가 막걸리를 좋아한다고 응답했다. 그 중 자타공인 꿀막걸리(이하 꿀막) 매니아인 김태익 씨(심리2)는 자신만의 꿀막 제조 비법을 알려주겠다고 나섰다. "꿀과 막걸리를 아무렇게나 섞으면 안 되고 고루 섞어야 그 맛을 제대로 느낄 수 있어요". 그가 말하는 비법의 첫 번째는 꿀을 한 번에 다 넣지 않는 것이다. 꿀의 양을 적당히 분배해서 7~8번 나누어 넣어야 한다. 마치 모래시계의 모래가 조금씩 밑으로 빠지는 것처럼 말이다.

두 번째 비법은 한 방향으로 꿀을 천천히 녹여가면서 젓는 것이다. 막걸리가 차가울수록 꿀이 잘 녹지 않으니 보다 오래 저어야 한다는 것이 그의 지론. 마지막 비법은 꿀단지에 막걸리를 넣어서 남은 꿀까지 사수하는 것이다. 꿀막만의 색다른 주도(酒道)로 그날 술자리의 VIP에게 꿀막의 맛을 제대로 느낄 수 있도록 '꿀이 남아 있는 꿀단지 잔'을 주는 것이라고 소개했다.

그가 막걸리를 좋아하는 만큼 에피소드도 많다. 그 많은 에피소드 중에서 하나를 꼽자면 막걸리를 먹으면서 시조를 지었던 일이다. "평소 생각이 잘 통하는 친구와 종종 막걸리를 마시러 갔는데, 막걸리를 마시다 분위기에 취해 시조를 지어보았어요"라며 기억의 저편에 묻혀있던 얘기를 꺼냈다. 그 중 지금까지 기억에 남는 시조를 읊어 주었다. "그 때 제가 먼저 운을 띄었죠"

"흩어진 낙엽또한 한때푸른 잎이었고

저무는 태양또한 한때솟아 있었으며

처연한 옛성또한 찬연했다 하더라"

 

일러스트 조장은(시각디자인1)

친구의 답시:

"흩어진 낙엽에서 푸른싹은 피어나고

어둠이 깔린뒤에 저달또한 아름답다

앞일은 모르는법 막걸리나 마시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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