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도권과 지방이 함께하는 사회를 만들어야 합니다”
“수도권과 지방이 함께하는 사회를 만들어야 합니다”
  • 임기덕 기자
  • 승인 2009.09.28 16:24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김태일 정치행정대학장

안동 촌놈을 놀라게 한 ‘서울의 교양’

김태일 교수의 고교시절 (출처 : 김태일 교수 홈페이지)
우리대학 김태일 교수(정치외교학과)는 안동에서 태어나 그곳에서 초․중․고를 졸업한 속칭 ‘촌놈’이다. 하지만 대학에 진학하면서 그는 고향을 떠나 서울로 향하게 된다.

중앙선 열차를 내려서 본 서울의 모습은 단숨에 그를 사로잡았다. 차들이 물밀듯이 밀려오는 거리.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바쁘게 움직이는 사람들. 그들 간의 경쟁. 이는 곧 정부 주도로 산업화가 추진되고 대도시가 형성되던 1970년대 중반 대한민국의 모습이었다.

김 교수는 ‘서울 식 유머’를 들으면서 그들의 뛰어난 재치를 선망했지만 한편으로는 서울 문화가 주는 경박함과 개인주의에 경멸을 느끼곤 했다. 하지만 그런 그에게 ‘서울의 교양’을 추구하도록 만든 일대 사건이 발생한다.

“여대 학생들과 고급 음악다방에서 미팅을 하고 있었지.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고 있는데 갑자기 내 파트너가 '앗 푸치니다!'고 소리치더군. 순간 나는 푸치니가 무엇인지 알지 못했기 때문에 그 때의 쇼크는 엄청났어.”

김 교수는 ‘푸치니 쇼크’ 이후 ‘서울의 교양’을 배우는데 전력을 다했다. 그래서 학교 근처 피아노 교습소를 찾아가 피아노를 가르쳐달라고 빌었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교습소에서 제적됐다. 잦은 모임에 따른 음주가 원인이었다.

사회운동에 뛰어들다

피아노 교습소에서 쫓겨날 즈음 그는 자신의 사고방식에 결정적 영향을 끼친 선배들을 많이 만나게 된다. 이들과 공부하고 함께 술잔을 기울이면서 김 교수는 ‘서울의 교양’을 좇는 행위를 그만두게 된다.

본지 기자와 인터뷰를 나누고 있는 김태일 교수
“민중의 개념을 깨닫게 되고 그들의 시각에서 새롭게 세상을 바라볼 수 있게 됐지. ‘서울의 교양’을 익히고 고시에 합격해 출세하겠다는 생각은 사라졌어.”

그는 엄혹한 유신 치하에서 학생운동에 뛰어들었고 이때의 문제의식은 학술운동, 시민사회운동, 지방분권운동 등 이후 그가 참여한 다양한 형태의 사회운동을 통해 나타났다.

1980년대 중반에는 몇몇 학자들을 중심으로 학술 연구를 통해 민주화를 촉진하자는 움직임이 나타났다. 이들은 해외의 관련 이론을 국내에 소개하고 현실을 연구해나갔다. 김 교수도 이 운동에 참여했다. 당시의 학술운동은 대구지역의 시민사회운동으로 발전했고 지방분권운동의 기반이 됐다.

 ‘서울공화국’을 해체하라

“우리나라는 수도권에 권력과 돈과 사람, 기회가 다 모여 있습니다. 수도권은 너무 비대해서 탈이고 지방은 너무 야위어서 걱정입니다. 이런 현실은 단순히 ‘지방’의 문제가 아닙니다. (중략) ‘서울공화국’의 해체, 이것이 저의 정치적 꿈입니다.”

김 교수가 지난 04년 4․15 총선 당시 대구 수성 갑에 열린우리당 후보로 출마하면서 내놓은 ‘출사표’의 일부다.

“국토의 11.8%에 지나지 않는 수도권에 우리나라 인구의 절반이 살고 금융자산의 70%, 상장기업의 80%가 몰려있지. 그래서 국가 권력이 이전되면 다른 자원들의 공간 재배치도 함께 이뤄질 수 있다고 봐.”

김 교수에게 정운찬 총리 내정자의 ‘세종시 발언’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물었다.

“세종시는 지난 정부 당시 여야 간의 국민적 합의로 법제화한 것인데 지금 와서 계획 변경 운운하는 것은 혼란을 가중시킬 수 있어.”

그는 “정 총리 내정자가 한 발언의 진위는 더 지켜봐야겠지만 지역분권운동을 주장한 사람으로서 당황스러웠다”는 소감을 털어놨다.

인터뷰가 끝날 무렵 김 교수는 기자에게 이런 말을 했다.

“우리 지역 학생들이 졸업 후 지역에서 자리 잡지 못하고, 서울 가서는 지방대 출신이라는 이유로 괄시받는 현실이 과연 정의롭다고 할 수 있겠나?”

‘서울공화국’의 해체를 위한 어느 정치학 교수의 실험은 오늘도 계속되고 있다. ‘지방분권 성공’의 축배를 함께 들 날이 오기를 기대해본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