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업 후 상환 학자금 대출의 명암
취업 후 상환 학자금 대출의 명암
  • 임기덕 기자
  • 승인 2009.09.14 18:4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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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금 상승을 억제할 수 있는 보완책 있어야

ICL을 알고 싶다

여름방학 중이던 지난 7월 말 교육과학기술부(이하 교과부)는 '취업 후 상환 학자금 대출 제도(Income Contingent Loan, 이하 ICL)'를 내년도부터 도입하겠다고 밝혔다.

'소득 연계 학자금 대출제도'라고도 불리는 이 제도는 졸업 이후 취업이나 상속 등으로 일정 이상의 소득이 발생한 시점부터 최장 25년 동안 원리금을 갚을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요지다. 대상은 기초생활수급자(이하 기초수급자)와 차상위 계층을 비롯한 소득 1~7분위 가정의 대학생으로 등록금 전액과 최대 2백만 원의 생활비를 대출받을 수 있다. 채무자가 전체 소득에서 원리금을 뺀 나머지를 가져가는 방식으로 원리금을 상환한다.

재학 중 또는 졸업 이후 소득이 없거나 일정 기준 이하면 상환이 자동으로 유예되지만 채무자 본인이 원할 때는 소득 수준에 관계없이 상환가능하다. 하지만 오랫동안 원리금을 갚지 않을 경우 세무 당국의 재산 조사를 통해 산출한 소득 인정 금액으로 상환 여부를 가린다.

09년 말을 기준으로 재학생(휴학생 포함)은 졸업까지 현행 학자금 대출 제도와 ICL 중 한 가지를 선택할 수 있고 내년도 신입생부터는 기본적으로 ICL만 적용된다.

 

현행 학자금 대출 제도와 ICL

그렇다면 현행 학자금 대출 제도와 ICL은 크게 어떤 차이점을 갖고 있을까?

첫째, 현행 학자금 대출은 1인당 4천만 원으로 대출한도가 있는 반면 ICL은 대출한도가 설정돼 있지 않다.

둘째, ICL은 거치기간이 대출 시점에서부터 개인의 소득 발생 시점까지다. 학자금을 대출할 때 거치기간과 상환기간을 설정하는데 현행 제도는 '10년 거치, 10년 상환'이 법으로 규정된 가운데 시장에서는 '5~6년 거치, 5~6년 상환'이 일반적이다. 하지만 ICL에서는 소득이 발생하는 시점까지가 거치기간이기 때문에 유동적이고 개인 차이가 있다. 상환기간은 소득 발생 시점을 기준으로 해서 최장 25년까지로 할 수 있다.

거치기간은 이자만 부담하는 기간이다. 현행 학자금 대출 제도에서는 거치기간 중 매월 일정 금액의 이자를 부담해야 되지만 새 제도가 적용되면 재학 중에는 대출이자를 내지 않고 상환 의무도 졸업 이후 일정한 소득이 생길 때까지 미뤄진다. 소득이 생긴 이후 원리금을 상환하는 방식이기 때문이다.

셋째, 기존 제도에서는 거치기간이 끝나면 소득의 유무와 상관없이 대출금을 갚아야 하고 6개월간 이를 상환하지 못할 경우 금융채무 불이행자(이하 신용불량자)가 된다. 이 때문에 06년 6백70명, 07년 3천7백 여 명, 09년 1만 3천 여 명 등 해마다 신용불량자가 급증했다.

ICL은 소득이 없거나 정부가 제시한 소득 수준 아래일 때 상환 의무가 소득 발생 시까지 일시적으로 유예된다. 이 제도의 시행으로 학자금 대출에 의한 신용불량자의 발생이 줄 것으로 교과부는 기대하고 있다.

넷째, 현행 학자금 대출 제도는 자격 제한을 두지만 ICL은 그렇지 않다. 현재 제도에서는 신용이 9~10등급인 학생은 대출받을 수 없지만 ICL은 신용등급에 상관없이 누구나 신청할 수 있다.

 

ICL, 과연 최상의 대책인가?

이른바 '한국형 ICL'도 최상의 대책은 아니다. 특히 저소득층 대학생들의 복지를 심각하게 위협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우선 ICL의 재원 마련으로 인해 기초수급자와 차상위층과 같은 저소득층의 학자금 지원 정책이 대폭 축소되거나 폐지됐다.

국회 교육과학기술위원회 소속 민주노동당 권영길 의원실에 따르면 현재까지 저소득층 학생들이 받던 수급자 장학금, 차상위층 장학금의 지원이 내년 ICL 제도가 시행됨에 따라 중단된다고 한다. 그리고 이들에게 지원되던 이자율 감면 혜택 역시 ICL의 시행으로 사라지게 된다고 한다.

현행 학자금 대출 제도 하에서 올해 2학기에 소득 1~3분위는 무이자, 4~5분위는 1.8%, 6~7분위는 4.3%, 8~10분위 5.8%의 대출 이자를 부담하면서 해당 소득 분위별로 각각 5.8%, 4%, 1.5%, 0%를 감면받았다. 앞으로는 올해와 같은 이자 지원을 받을 수 없게 된다. 현행 제도 하에서 내지 않거나 상대적으로 덜 내던 이자를 다른 소득 계층과 동일하게 냄으로써 실질적인 부담이 늘어나게 됐다.

가령 수급자인 대학생 A가 5년 거치 5년 상환에 연 금리 5.8%(09년 2학기 기준)로 학기 당 5백만 원 씩 8학기 동안 총 4천만 원을 빌린다고 할 때 현행 제도에서는 거치기간 중 이자를 부담하지 않기 때문에 4천5백89만 원을 갚아야 한다. 반면 ICL이 도입된 후에는 다른 소득 계층과 동일하게 5천7백77만 원을 갚아야 하는 것으로 나타나 1천1백87만 원을 더 부담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로 인해 실질적 평등의 문제가 제기되고 있는 상황이다. 하지만 우리보다 앞서 ICL을 도입한 호주의 경우 동일한 돈을 대출받는다 할지라도 채무자의 소득이 속하는 그룹에 따라 상환액에서 차이를 두고 있다.

우리대학 부총학생회장 박세태(경제금융4․야) 씨는 "'한국형 ICL'의 도입과 저소득층에 대한 지속적인 장학금 지원은 별개로 이뤄져야 한다"면서 "ICL 도입을 위해 저소득층의 지원을 줄이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말했다.

 

등록금 인상 억제책 동반해야 '성공'

ICL 도입의 근본 취지는 대학생들의 등록금 부담을 줄이고자 하는 데 있다. '한국형 ICL'의 가장 큰 문제점은 등록금 상한제와 같이 등록금의 인상을 제재할 수단이 없는 상태에서 제도 도입이 이뤄질 것이라는 점이다. 등록금 상한제는 등록금의 인상폭을 법률로 정해 등록금이 일정 비율 이상 상승하는 것을 막는 제도다. 먼저 ICL을 도입한 영국, 호주 등의 국가들은 등록금 상한제와 ICL을 병용하고 있다. 그리고 우리대학을 포함한 사립대학의 경우, 학교 회계의 투명성 확보와 이월적립금의 사용에 대한 조치가 선결과제로 대두되고 있다.

민주노동당 대구시당 황순규 기획국장은 "등록금 상한제를 비롯한 보완 대책이 수반되지 않는 ICL은 현재의 고통을 잠깐 잊게 해주는 '마약'과 같다"고 했다. 실질적인 등록금 상승 억제책을 동반하지 않은 ICL이 대학생들의 고통을 분담하고 경감해주는 것이 아니라 그 고통을 유예하는 데 불과하다는 것이다.

또한 그는 "등록금이 한 해 물가 상승률보다 2배 이상 오르는 현 시점에서 이를 잡지 않고 정부가 ICL을 추진하려고만 한다면 천문학적인 재정 투입으로 인해 정부의 재정 건전성 확보에도 도움 되지 않을 것"이라며 등록금 상한제가 정부 재정에도 기여할 것임을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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