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론의 장(場)이 필요한 사회
공론의 장(場)이 필요한 사회
  • 라경인 편집국장
  • 승인 2009.06.22 1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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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9일 노무현 전 대통령의 영결식이 치러졌다. 국민장으로 이뤄진 이번 영결식은 국민들의 추모물결 속에서 진행됐다. 전국각지의 분향소에는 많은 이들이 ‘바보 노무현’ 이라는 말로 그를 회고하며 모여들었다. 비록 국민들의 추모행렬을 반정부 촛불시위로 착각한 ‘제 발 저린 정부’ 탓에 추모제를 비좁은 덕수궁 돌담길 옆에서 열게 됐지만 말이다. 이렇듯 순수한 마음으로 추모하러 온 ‘국민’들을 한 순간에 ‘국정혼란의 원흉’으로 치부한 정부의 처사는 과연 올바른 판단이었을까.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이라는 헌법조항이 무색하리만큼 우리나라 정치사에서 국민은 최고 의사결정권자이기 보다 권력자에 짓밟히는 약자일 뿐이었다. 지난해 ‘촛불집회’만 보아도 쉽게 알 수 있다. 자신들의 먹거리에 대해 최소한의 권리를 주장하고자 촛불을 들고 거리로 나온 국민들을 향해 정부는 ‘배후세력들에 의한 조종’이라는 주장을 일관하며 국민들의 목소리를 무시해 버렸다. 우리나라가 진정한 민주공화국이라면 국민의 뜻을 무시하기보다는 그들의 의견을 모아나가는 ‘공론의 과정’이 더욱더 중요한 것은 아닐까.

하지만 우리나라 정치현실은 파벌로 인한 세력화로 변질되어 ‘공론의 정치’는 찾아보기가 어렵다. 즉 국민은 없고, 국가의 권력만이 있을 뿐이다. 한낱 국민이 국가권력에 대한 비판적인 목소리만 내도 ‘시원한 물대포’를 맛보거나, ‘정의로운 집시법’ 덕택에 연행될지 모를 일이다. 허나 민주공화국은 모든 국민이 스스로 자기 의견과 더불어 남의 의견을 절대적으로 존중할 때 비로소 만들어지기 시작한다. 그러한 관점에서 보면 정부는 국민을 향해 “논쟁하지 말고 조용히 있어”라고 말하기 보다는 “논쟁을 통해 대안을 모색하자”라고 말해야 하지 않을까.

이러한 행태는 우리나라 정치계에서만 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민주교육의 근본이념에 근거해, 학술적 이론과 그 응용방법을 연구하는 곳이며 협동정신이 풍부한 지도적 인격을 도야하는 곳인 대학 내에서도 빈번하게 발생한다. 정치적 권력으로 국민들의 입을 틀어막고 “논쟁하지 말고 조용히 있어”라고 말하는 정부와 대학의 정치적 권력은 닮아있다.

대학의 정치적 권력으로부터 학내 구성원들의 알권리를 보장해야 하는 대학언론은 그들의 희생양이 되기도 한다. 때로 대학언론은 보도내용에 대한 직·간접적인 협박과 압력을 받기도 하고, 권력을 이용하여 기사의 왜곡을 강요하기도 한다. 학문의 전당이라고 하는 신성한 대학의 공간에서 결코 일어나서는 안 될 일들이다. 일반 언론도 물론이겠지만, 대학언론의 자유는 반드시 보장되어야 하고, 반드시 지켜져야만 한다. ‘대학’이라면 그 무엇보다 질곡에 가득찬 사회로부터 ‘정직하고 순수한 공간’이어야 하기 때문이다.

사회에 만연한 부정적 만행을 뿌리 뽑고 고쳐나가야 할 대학의 모습마저도 권위적인 정부의 그것과 너무나 흡사한 현실이 안타깝다. 자신과 생각이 다른 사람을 무조건 ‘적’으로 규정하고 배제하려는 뿌리 깊은 사회의 정치적 행태가 대학 내에도 도사리고 있다. 어쩌면 사회에 대한 순수한 비판과 논쟁에 자유로워야 할 대학에서조차 ‘시원한 물대포’를 맛볼는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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