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면 받는 문화재에 손을 내미는 사람들
외면 받는 문화재에 손을 내미는 사람들
  • 김혜진 기자
  • 승인 2009.05.05 03:3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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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문화재와 함께 살아 숨 쉬는 지킴이들'

'궁궐지킴이'가 외국인 관광객들에게 궁을 안내하고 있다.
지난해 2월 10일 한 방화범의 범행으로 우리나라 국보 1호 숭례문의 석축을 제외한 건물이 모두 붕괴되는 사건이 발생했다. 당시 문화재 관리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는 높았지만 1년이 흐른 지금, 실질적인 대안과 제도는 여전히 미비한 상황이다. 하지만 이러한 상황 속에서 우리 문화재에 대한 '사랑'으로 문화재 관리에 자발적으로 참여하는 사람들이 있다. 우리 문화재를 가꾸고 지키며 '역사와 함께 숨 쉬는 그들'을 만나보았다.

 

 우리 문화재는 내가 지킨다 - <문화재지킴이>

'문화재지킴이'가 문화재 주변을 청소하고 있다.
전국에는 많은 문화재가 있지만 재정, 인력의 부족으로 국보나 보물급 지정문화재가 아니면 관리비가 지급되지 않아 홀로 방치되고 있는 경우가 많다. 이러한 문화재를 직접 찾아가 자원봉사개념으로 관리하는 개인들과 비영리민간단체가 늘어나고 있다. 이들이 바로 '문화재지킴이'들이다.

 그 중에서도 전국 최초로 지역의 문화유산을 지키고 가꾸기 위해 1999년 6월 26일에 창립된 '안동문화지킴이'는 03년 문화재담당 공무원을 상대로 '한 문화재 한 지킴이 운동' 워크샵을 열 정도로 활동이 체계적으로 자리 잡혀 있다. 1999년 초 영국 여왕의 안동방문 후 지역문화가 상업적 가치로만 평가받는 현실이 안타까워 '안동문화지킴이'를 창립하게 되었다는 김호태 대표는 "문화재는 가족이나 다름없다. 서로를 알수록 힘이 되는 존재"라며 지역문화를 제대로 알 때 우리의 삶이 더욱 윤택해 질 수 있다고 말했다.

'안동문화지킴이'는 매달 4번째 토요일에 문화재 현장을 찾아 주변청소와 보존활동을 하고 있다. 문화지킴이 활동에 참여할 사람은 미리 홈페이지를 통해 신청을 받는데 평균 70~80명이 참여한다. 정기행사 외에도 문화재를 알리기 위해 '찾아가는 문화유산 학교방문교육', '한 문화재 한 지킴이 활동', '문화재 순찰대 활동', '시민문화유산해설사교육' 등의 활동을 전개하고 있다. 김 대표는 많은 활동 중에서도 군인을 대상으로 하는 '군병장 문화유산 해설사교육'이 가장 재미있다고 했다. "안동으로 발령을 받은 군인들은 2년 동안 복무하지만 안동에 대해 아무것도 모른 채 제대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문화유산해설사 교육을 받으면서 안동 문화재에 대한 뜻깊은 추억을 쌓을 수 있고, 제대를 하고도 추억이 있는 안동을 다시 찾게 된다"며 뿌듯해 했다. 이처럼 "진정한 '문화사업'은 즐거운 추억을 만들어 주어, 다시 문화재를 찾아 되돌아오는 것"이라며 "단순히 문화를 도구로 이용해 돈을 버는 것과 다르다"는 점을 강조했다. 현재 '안동문화지킴이'에서는 지역 문화의 우수성을 전국적으로 알리기 위해 월간지 「사람과 문화」도 발간하고 있다. 이들은 활동에 참여한 청소년들을 '청소년 지킴이단'으로 임명하며 원하는 사람에게는 봉사시간 증명서도 발급해 준다.

휠체어를 탄 장애인 관광객들에게 '궁궐지킴이'가 궁을 안내하고 있다.
5년째 '안동문화지킴이' 활동을 했다는 동양대학교 권순규 군(문화재 발굴보존학과2)은 자신의 블로그에 활동 모습을 소개하는 글과 사진을 올렸다가 우연찮게 문화재청에서 주최한 '블로그 경진대회'에서 대상까지 받았다고 한다. 친척들이 안동을 방문했을 때, 직접 문화재에 대한 설명까지 한다는 권 군은 "프랑스는 문화재에 대한 관리가 철저하다. 그에 비해 우리나라는 관리가 잘 되지 않고 있다. 숭례문 화재사건 때도 불은 안쪽에서 났는데 소방관이 지붕에 물을 뿌린 것만 보아도 국민들의 문화재에 대한 지식이 부족함을 알 수 있다"며 문화재에 대한 관심과 관리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문화재지킴이 운동은 대학동아리에서도 전개되고 있다. 인제대학교 역사고고학과 동아리 '문사랑'은 원래는 학술동아리이지만 문화재청의 승인을 받아 문화재지킴이 활동도 함께 하고 있다. 매달 마지막 토요일에 동아리회원들끼리 모여 문화재 청소를 하고 지역 문화재에 대한 홍보도 한다. 작년에 문화재청에서 우수단체로 선정되었다는 '문사랑'의 심봉기 회장(역사고고학과2)은 "주로 학교 주변 문화재를 대상으로 활동하는데 쓰레기가 많다. 청소를 하고 깨끗해진 모습을 보면 뿌듯하고 지킴이 활동을 하면서 모르고 있었던 우리 주변의 많은 문화재를 알 수 있어서 좋다"고 말했다. 또한 "문화재에 대한 관심을 유도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활동인 것 같다"며 작년에는 홍보전단지를 제작하여 김해시민들에게 배부하였는데 올해는 문화재 관련영상을 제작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사람들과 함께 살아 숨 쉬는 궁궐을 위해 - <궁궐지킴이>

'궁궐지킴이'가 외국인 관광객들에게 궁을 안내하고 있다.
일반 문화재를 관리하는 지킴이와는 달리 궁궐만을 관리하고 홍보하는 자원봉사인 '궁궐지킴이'도 있다. '궁궐지킴이'는 궁궐이 많이 보존된 서울지역에서 활발한 활동이 이루어지고 있다. '(사)한국의 재발견'은 1998년 7월 24일 창립하여 다양한 문화유산 시민활동을 펼치고 있다. 그 중에서도 궁궐 무료안내 활동과 궁궐 모니터링 활동을 하는 '궁궐지킴이'는 정기적으로 매주 금요일과 토요일에 경복궁, 창경궁, 덕수궁, 창덕궁, 종묘를 무료로 안내하고 있다. 이들은 주로 대학생과 직장인, 주부, 은퇴자 등의 자원봉사자들로 구성돼있으며 외국인 관광객을 고려하여 일본어와 영어로도 안내하고 있다. '궁궐지킴이' 경우, 매년 12월에 자원봉사자 모집공고를 내는데 안내활동을 위한 해설자교육이 필요하므로 이론수업, 수습활동 등 일정기간 교육과정을 거친 후 정식 수료증이 발급된다. 또한 봉사시간에 대한 봉사증도 발급된다.

 지역문화도 알리고 노인 일자리도 만들고 - 일석이조의 <골목문화 해설사>

'대구 중구시니어클럽'(이하 시니어클럽)에서도 노인 일자리창출을 위한 방안으로 골목문화 해설사를 양성할 계획 아래에 교육이 한창이다. 이러한 시니어클럽의 활동은 대구지역 내 숨어있는 골목문화를 알려줌으로써 지역 골목문화에 대한 이해와 애호정신을 고취하고자 시작되었다. 또한 '문화재지킴이', '궁궐지킴이'와는 달리 노인일자리 창출을 목표로 하기 때문에 시니어클럽에서 해설사 역할을 해주는 노인들에게 일정한 임금을 지급한다. 하지만 골목문화안내를 받고자 하는 신청자는 무료로 안내를 받을 수 있다.

 

'우리의 것'에 대한 자부심과 애정은 우리나라의 국민이라면 누구나 가지고 있다. 문화재는 우리의 정체성이자 자긍심이기 때문이다. 우리의 자존심 1호가 무너져 내린 지금, 단순히 숭례문의 외형을 복원한다고 해서 우리의 정체성과 자존심도 복원되는 것은 아니다.

이제 '만지지 마시오'라는 글귀가 적힌 유리창 너머에 문화재를 관람만 할 것이 아니라 방치된 문화재를 직접 지키고 가꾸어야 한다. "단순히 문화재 관리가 허술하다고 지적만 할 것이 아니다. 우리들이 문화재를 위해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 알고 미흡한 점을 보완하는 역할을 해야한다"는 '안동문화지킴이' 김 대표의 말처럼 먼 발치서 바라만 볼 것이 아니라 '우리의 것'에 한걸음 다가가 손을 내밀어야 할 때다. 그리하여 모든 문화재가 잘 보존되고 관리될 때, 진정으로 우리의 정체성과 자긍심도 복원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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