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읽기의 즐거움 그리고 역사소설의 향연
책읽기의 즐거움 그리고 역사소설의 향연
  • 조규정 기자
  • 승인 2009.05.04 21:0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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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를 위해 찾은 최인호 교수(생명공학부)의 연구실은 정갈했다. 으레 탁자 위에 어지럽게 널려 있을 만한 서류뭉치나 책들이 없었다. 깔끔한 성격이 엿보였다.

최 교수는 "책을 자주 보는 편이 아닌데"라며 말끝을 흐리다 "잡다하게 책을 봐서 이 인터뷰에 어울릴지 모르겠다"고 손사래를 치며 겸손해했다. 그러나 인터뷰하는 동안 책을 대하는 최 교수의 자세에는 진심이 엿보였다. 최 교수와 함께 책과 독서습관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어보았다.

 읽으려고 보는 것이 아니라 즐기고자 본다

독서를 위해 시간을 따로 낸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 나는 화장실에 가거나 자기 전에 짬을 내어 책을 읽는다. '낙숫물에 물이 고인다'는 말이 있듯 거창하게 시간을 내서 책을 보지 않더라도 틈틈이 독서를 하면 일 년에 수십 권을 볼 수 있다. 지식을 쌓으려고 혹은 어떤 이유로 말미암아 책을 보는 경우가 많은데, 나는 독서 자체를 즐기려고 책을 읽는다. 여행을 갈 때는 책을 10권쯤 사들고 여행하는 동안 읽으며, 해외 출장을 갈 때는 비행기 내에서 독서를 한다. 해외 출장 중에 책을 다 읽으면 주변 교포들에게 나눠준다. 그러면 그들은 책을 읽고 서로 돌려보기도 하는데, 외국에 오래 살다보니 우리글로 된 책을 즐기며 읽는다. 이처럼 독서는 다른 목적이 필요하지 않고, 단지 즐기면 된다.

 한국 근·현대사를 가로지르다 「태백산맥」, 「아리랑」, 「한강」

태백산맥/조정래/해냄
내가 즐겁게 읽었던 책 중의 하나는 대학시절 보았던 조정래의 「태백산맥」이다. 작가에 따라 고유의 필체나 글의 특징이 있는 것처럼 그 책에서만 느낄 수 있는 '맛'이 있다. 생텍쥐베리의 「어린 왕자」는 순수한 감정으로 읽었을 때, 그 책의 '제 맛'을 느낄 수 있다. 순수함이 남아있던 어린 시절에 「어린 왕자」를 읽으며 느꼈던 책의 '맛'을 어른이 된 지금은 다시 느낄 수 없다. 책이 변한 것이 아니라 내가 변했기 때문이리라. 이처럼 「태백산맥」또한 '그 맛'을 느낄 수 있는 시기가 있다.

나는 대학시절 「태백산맥」을 읽으며, 그 '참맛'을 느꼈기 때문에 학생들에게도 권하고 싶다. 특히 조정래가 쓴 「태백산맥」, 「아리랑」, 「한강」등 세 권은 한국 근․현대사를 잘 모르는 대학생들에게 추천해주고 싶은 책이다. 이 세 작품은 구한말부터 일제 강점기를 거쳐 6.25전쟁, 4.19혁명에 이르기까지 한국 근․현대사를 소설로 승화시켰다. 소설이지만 그 맥락이나 내용은 사실을 바탕으로 하고 있기 때문에 근․현대사를 이해하는데 많은 도움을 준다.

 역사교과서에서 느낄 수 없는 생생함 「남한산성」

남한산성/김훈/학고재
최근 소설가 김훈의 작품을 즐겨보고 있다. 김훈의 글을 보면 객관적인 묘사가 돋보이며, 힘 있고 간결한 문장이 남성적인 인상을 준다.

그의 소설은 병자호란 당시의 참상을 담고 있다. 청나라의 침입에 조선의 16대 왕 인조가 피신을 가지 못한 채, 남한산성에 갇혀 결국에는 항복하고 마는 역사적 사실을 보여준다. 이 소설은 청나라의 무시무시한 힘과 남한산성에서 버티고 버티다가 항복하고 오랑캐 앞에 무릎을 꿇는 조선의 치욕스런 모습을 잘 묘사하고 있다. 역사교과서에서 단 몇 줄의 설명에 그친 병자호란의 참상을 생생하게 표현한 뛰어난 소설이었다. 이 작품을 계기로 소설가 김훈을 달리 보게 됐다.

  

최 교수는 오랫동안 미국에서 유학생활을 했다. 그만큼 우리글이 그리웠고, 저절로 애국심이 우러난다고 한다. 그에게 소설은, 아니 책은 우리글의 '맛'을 느낄 수 있는 맛있는 한식이 아닐는지. 그가 한 말 중 '책을 볼 때, 즐기면서 읽어라'는 말을 다시 한 번 강조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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