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태안의 섬 가의도로 갑니다
지금 태안의 섬 가의도로 갑니다
  • 김현진 수습기자
  • 승인 2008.05.26 09:5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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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름으로 뒤덮힌 가의도, 사랑으로 치유되길…

 태안의 바다가 검은 기름으로 뒤덮인 지 두 달이 흘렀다. 그동안 백만 명이 넘는 자원봉사자들이 태안을 찾아  바다살리기에 힘을 보탰다.
 TV와 신문에서 연신 쏟아내는 태안의 상황을 매일 접하면서도 바쁘다는 핑계로 태안방문을 차일피일 미뤄오다 더 늦기 전에 태안을 방문하기로 결정했다. 그리고 이왕 가는 김에 자원봉사자들의 손을 이미 많이 거친 곳보다는 아직 자원봉사의 손길이 그다지 미치지 못한 곳으로 가기로 했다. 태안에 위치한 작은 섬 가의도는 면적 2.19㎢에 사는 45명의 주민조차 대부분 70대 이상의 노인들이라 기름 제거 작업에 나설 엄두를 못 내고 있는 형편이라고 했다.


◎ 가의도 가는 길
1월 15일 새벽 2시에 약속 장소에 모여 태안으로 향하는 차에 몸을 실었다. 피곤함에 눈을 감으니 엊그제 TV에서 보았던 태안의 검은 바다와 흰 방제복을 입고 땀을 흘리며 묵묵히 돌을 닦는 자원봉사자들이 떠오른다. 
시원하게 잘 뚫린 서해안 고속도로를 따라 4시간쯤 달려 태안에 도착하니 6시 30분이다. 밖은 아직도 어두컴컴하고 조용하다. 기름유출로 시끌벅적 한 게 언제였냐는 듯 태안은 깊은 잠에 빠져 있었다. 마을로 들어가는 입구 곳곳에 플랜카드가 걸려 있다. ‘사람 죽인 삼성그룹 참회하라 ! 배상하라 !’, ‘자원봉사자 여러분, 감사합니다.’
가의도에 가기 위해 거쳐야 할 관문인 안흥항에 도착하니 어느덧 떠오른 태양이 바다를 환하게 비추고 있었다. 차를 세우고 보니 방제복을 입은 채 바쁜 걸음으로 걸어가는 주민이 보인다. 얼른 다가가 물었다. “가의도로 가려면 어떻게 갑니까?” “가의도? 얼른 따라와요.” 허겁지겁 짐을 챙겨 쫓아갔지만 작은 배는 벌써 출항하고 난 뒤였다. 주위에 종종걸음으로 걸어가는 또 다른 주민이 눈에 들어온다. 다시 한 번 얼른 다가가 가의도 가는 법을 묻는다. “봉사활동 하러 오셨소? 따라 오소.” 그래서 도착한 어느 작은 선착장에는 이미 많은 주민들이 방제복을 입고 가의도로 떠날 준비를 하고 있었다. 우리를 선착장에 인도한 어민이 “여기 봉사활동 하러 온 분들이구만”이라고 소개를 하자 갑자기 여기저기서 반기는 시선이 느껴진다. 방제복을 입은 모습들이 마치 반도체 공정 시 착용하는 ‘방진복’을 입은 것 같았다.
주민들을 따라 얼른 배에 올라탔다. 여기저기 자그마한 섬들이 보인다. 멀리서 봐도 기름에 오염된 부분이 검은 띠가 되어 눈에 확 들어온다. 한 달이나 지났으니 어느 정도 나아졌겠지라는 생각이 무참하게 깨지는 순간이다. 20분쯤 지났을까? 드디어 가의도 해안에 도착했다.

 

열심히 돌을닦는 동행한 기자

흡착포들 뒤로 보이는 주민들

◎ 무지개처럼 빛나는 바위들
기름에 절어 시커먼 바위와 사용한 흡착포를 모아둔 포대들 뒤로 아름다운 가의도의 모습이 보인다. 난생 처음 방문한 가의도를 이런 식으로 마주하게 될 줄이야….
주민들이 그나마 깨끗한 흡착포와 옷가지 등으로 바위를 닦기 시작했다. 흡착포 몇 장을 얼른 챙겨 한 아주머니 옆에 자리를 잡고 앉아 바위를 닦기 시작했다. 닦아도 닦아도 끝이 없다. 잘 닦이지도 않는다. 마음 같아서는 스펀지에 세제를 듬뿍 묻혀 닦아내고 싶었다.
날씨가 추워서 엉덩이가 시릴 즈음, 옆 아주머니가 흡착포 몇 장을 건네주시며 “엉덩이 시렵겠네, 이거 깔고 앉아요” 하시더니, 내가 고맙다는 인사를 할 틈도 없이 이내 다시 돌을 닦으시면서 다른 아주머니들과 시시콜콜한 일상 이야기를 나누신다.
잠시 쉬던 내 눈에 내 또래로 보이는 학생들 몇 명이 들어온다. 자원봉사자들이라 생각했는데 아니란다. 모두 근교 지역 주민들의 아들들이고 딸들이었다. 그들도 저마다 바다살리기에 힘을 보태고 있었다. 뒤에서 “학생, 이거 먹으면서 해” 하는 소리가 들린다. 뒤돌아보니 알사탕이다. 장갑 때문에 사탕 먹기가 곤란한 걸 아셨던지 아주머니가 직접 사탕을 까서 내 입에 넣어주신다. 알사탕 하나에 갑자기 힘이 솟는다.
자갈인 줄 알고 열심히 닦았는데 다시 보니 조개다. 땅을 조금 더 파보니 죽은 조개들이 계속 나왔다. 사람들도 경제적겵ㅍ탔岵막?피해를 많이 봤지만 이 조개들은 하나뿐인 생명을 빼앗긴 것이다. 사람들이 저지른 한 순간의 실수에 태안의 해변과 바다는 끙끙 앓고 있었다.

◎ 다음엔 살아있는 조개를 볼 수 있기를…

모래사장의 타르 덩어리들

 오후 1시. 멀리서 배 한 척이 오고 있다. 점심을 실은 배다. 오늘은 방제 작업하는 사람들을 위해 서울 적십자에서 특별히 제공한 음식이라고 한다. 사람들이 잠시 일손을 놓고 점심을 먹는다. 반찬은 멸치볶음에 김치 조금, 땅콩조림으로 조촐하다. 평소같으면 반찬투정이 나올 법 했지만, 묵묵히 먹었다.
그렇게 짧은 점심식사가 끝나고, 다시 돌을 닦기 시작했다. 갑자기 한 아저씨가 커피를 권하신다. “어디에서 오셨소?” “대구에서 왔습니다.” “멀리서들 오셨네, 커피 한 잔씩들 하시오.” 따뜻한 커피 한 잔에 얼어있던 몸이 조금씩 녹는다.
커피 한 잔으로 몸을 추스린 후 잠시 일손을 놓고 해변가를 거닐었다. 조그맣고 까만 것들이 모래사장에 점처럼 박혀 있다. 타르덩어리다. 비행기를 타고 가다가 가의도의 모래사장을 본다면 흡사 점박이로 보일 것 같았다.  3시가 되자 주민들을 실어 나르기 위해 유람선 두 척이 해안가에 도착했다. 곧 밀물이기 때문이다. 그제서야 주민들은 깔고 앉던 흡착포에서 엉덩이를 뗀다. 내일을 기약하며 모두들 무거운 발걸음을 옮긴다. 결국 오늘의 방제작업이 끝나도록 취재는 하지 못했다. 주민들은 카메라만 보면 질색을 했다.
신나게 관광객들을 실어 날아야 할 유람선엔 기름때 묻은 방제복을 입은 사람들로 금새 넘쳐났다. 기름 묻은 돌들과 모래사장의 타르덩어리를 뒤로 한 채 배는 다시 육지로 향한다. 뒤를 돌아보니 홀로 남겨진 가의도는 그렇게 닦아냈건만 여전히 시커멓다. 가의도에는 아직 사람의 손을 거친 바위보다 사람의 손을 기다리는 바위들이 훨씬 더 많다. 하지만 오늘 가의도에서 보낸 나의 하루는 헛되지 않을 것이고, 앞으로 많은 사람들이 손을 보탠다면 가의도는 반드시 원래의 건강한 모습으로 다시 돌아갈 수 있을 것이다.
넘실대는 가의도의 파도를 보고 있노라면 두 가지 생각이 동시에 든다. 고맙다는 뜻일까? 아니면 다시 와달라는 뜻일까?

 

인터뷰  <<태안의 사람들을 만나다>>

주용산  (근흥면 이장)
▲서해안 기름유출사고가 일어난 지 벌써 한 달이 됐습니다. 상황은 좀 어떻습니까?
 -그나마 많이 나아진 편이다. 한 달 전엔 더 심했다. 자갈은 기름이 많이 묻어 삶았을 정도였다. 태풍이라도 오면 바닷물이 뒤집어져 자정활동의 수습에 도움이 될 텐데 그것도 기대하기 힘든 상황이다.    
▲이번 사태에 봉사자들이 많은 힘을 보태고 있는데, 봉사활동은 어떻게 이루어지고 있습니까?
 -봉사자들이 많은 힘이 되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차량통행이 불편하거나, 섬 같은 경우는 상황이 심각함에도 불구하고 봉사자들의 손길이 미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군에서 자원봉사자들을 잘 활용할 수 있게 지원을 하지 못하고 있다.  
▲정부나 시민단체에 바라는 점은 무엇입니까?
 -사태가 발생한 지 여러 날이 지났지만, 아직 가의도처럼 상황이 심한 곳이 많다. 더 이상의 피해를 막기 위해서라도 정부의 빠른 복구조치가 필요하다. 정부는 하루아침에 기름유출로 인해 생계수단을 잃어버린 어민들에게 빨리 피해보상을 해 주어야 한다.

조광상  (근흥면 부면장)
▲‘군에서 지원을 제대로 하지 못해 봉사활동 인력을 효율적으로 활용하지 못하고 있다’고 이장님께서 말씀하셨는데 이 부분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방제에 관련된 일들은 komos라는 보험회사가 맡고 있다. 지금은 1차적인 방제가 대충 마무리된 상태라서, 전문인력을 활용한 방제가 필요한 시점이다. 하지만 봉사활동 인력은 여전히 필요하고, 우리도 계속 komos에 봉사활동 인력의 활용에 대해 건의하고 있다.
▲기름유출로 인해 태안지역의 경제가 상당히 침체되었는데, 태안지역 경제에 대해서 어떻게 전망하십니까?
-태안의 경제가 상당히 위축되어 있는 것이 사실이다. 태안지역 주민의 주된 생계수단은 어업과 관광이다. 그런데 기름유출로 바닷물이 오염되어, 올 여름 해수욕장 개장 때에는 관광객의 발길이 끊길 것으로 예상된다. 그러므로 당분간은 태안경기의 회복이 힘들 것이라고 본다. 하지만 계속 복구작업을 벌이고 있고, 바닷물도 자정활동을 하고 있으니 내년부터는 예전으로 돌아갈 수 있을것이라 생각한다.
▲주민들이 방제활동을 벌이고 있던데, 실제 방제인원과 임금은 어느 정도 입니까?
-신진도에서만 약 삼백 명 정도 된다. 남자는 일당 7만원, 여자는 6만원을 받고 방제작업을 벌이고 있다.
▲취재 시 주민들이 언론노출에 굉장히 부정적인 것 같던데,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일반사람들은 기름유출 전에는 안면도는 알아도 안면도가 위치한 태안은 잘 몰랐다. 예전부터 태안이 관광도시 이미지로 부각됐으면 하는 바람이 있었는데, 이번 기름유출사고로 인해 태안의 부정적인 면들이 언론에 많이 노출되어 안타깝다.

정효정 (식품영양 3)
▲태안으로 봉사활동을 가게 된 계기가 무엇입니까?
-TV나 신문에서 태안의 상황을 접하자, 왠지 모르게 나도 가서 힘을 보태야겠다는 의무감이 들었다.
▲태안으로 봉사활동을 여러 번 가셨다고 들었는데 이유가 무엇입니까?
-처음에 갔을 때는 태안이 워낙 먼 곳이라 봉사활동을 몇 시간 밖에 하지 못해 너무 안타까웠다. 그래서 한 번 더 다녀왔다. 두 번째는 감기에 걸려 가지 말까 고민하던 찰나에 TV에서 태안주민이 자살한 뉴스가 나왔다. 가만히 있을 수 없어서 또 다녀왔다.  앞으로도 기회가 된다면 한 번 더 방문할 생각이다.
▲가서 어떤 일을 하셨습니까?   
-대부분 기름범벅이 된 돌을 닦는 활동을 했다. 두 번째 갔을 때는 처음보다 돌들이 많이 깨끗해져 있었다. 이 돌들이 다른 봉사자들의 손을 거쳤구나라는 생각이 들어 왠지 뿌듯했다.
▲봉사활동을 다녀온 소감과 바라는 점은 무엇입니까?
-태안이 워낙 먼 곳이라 개인적으로 봉사활동을 다녀오기는 힘든 것 같다. 학교나 다른 단체에서 자원봉사자들에 대한 지원을 늘려줬으면 좋겠다. 또한 어민들에게 한시라도 빨리 피해보상을 해 주었으면 한다. 봉사활동을 다녀와 보니 나라를 위해서 내가 뭔가 했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 뿌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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