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 ,그리고 섹슈얼리티
술 ,그리고 섹슈얼리티
  • 이연지 기자
  • 승인 2008.05.23 15:5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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섹슈얼리티(sexuality) : 성행위에 대한 인간의 성적 욕망과 성적 행위, 그리고 이와 관련된 사회제도와 규범들을 뜻함.

새 학기의 시작으로 들뜬 하루하루를 보내던 3월의 어느 날, 김 양은 새터를 통해 알게 된 같은 과 후배 박 군과 함께 술자리를 하게 되었다. 서로 관심사도 비슷해 재미있게 이야기를 나누며 한 잔 두 잔 마시다 보니 어느 새 소주를 두 병이나 비웠다. 둘은 술도 깰 겸 근처 노래방으로 갔고, 술기운을 못이긴 김 양은 잠이 들어버렸다. 이상한 낌새에 잠이 깬 김 양, 그녀의 몸을 더듬고 있는 박 군을 보고 경악하며 일어났다. 정신이 번뜩 든 박 군도 분위기에 이끌려 한 실수라고 자책하며 김 양에게 무릎 꿇고 사과했지만 그 날의 일은 둘 모두에게 씻을 수 없는 상처가 되고 말았다.

매서운 겨울 추위가 한 걸음 물러나고 봄이 시작되는 3월. 만물이 생동하는 이때에 대학가도 긴 겨울방학을 끝내고 개강·복학·입학 하는 학우들로 활기가 넘친다. 저마다 새 학기를 시작하는 각오를 다지며 다이어리에 계획을 세우기도 하지만 정작 3월의 달력은 신입생 환영회나 개강파티와 같은 술자리로 채워진다.
술은 긴장감을 완화시켜 낯선 사람과 좀 더 쉽게 대화를 하게 해준다. 또 서로간의 마음의 문을 열어주어 사랑과 우정이 싹트게도 해 준다. 그래서 새 학기 새 학우들과의 가벼운 친목 도모를 위한 자리에는 항상 술이 빠지지 않는데 이것이 도를 지나치면 문제가 된다. 적정선을 넘어선 막무가내 술자리로 인해 가벼운 시비에서부터 과음으로 인해 사망하는 사고가 일어나기도 한다. 특히 약간의 알코올은 성욕을 자극하는 일종의 최음제가 되기도 해 많은 성희롱·성폭력 사건의 원인이 되고 있다.

  • 새내기 술 배움터

누구보다 이 봄이 가장 설레는 사람은 대학입시라는 길고 험난했던 터널을 통과한 새내기들이 아닐까. 이런 신입생들을 처음 반기는 행사는 바로 새내기 새로 배움터(이하 새터)이다. 처음 만나는 선배, 동기와의 유대감을 키우고 과에 대한 애착심을 가지게 하는 것이 새터의 본래 목적이지만, 그 목적 달성의 수단으로 술이 빠지지 않는다.
 대학가 풍토가 이렇다 보니 전라남도의 한 양조회사는 학교 친목 도모 사이트에 회사를 홍보하는 조건으로 술을 저렴하게 혹은 무상으로 공급하는 행사를 열기도 했다. 학생들은 새터 비용에서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술값을 아껴서 좋고, 양조회사는 술을 많이 이용하는 대학생들을 통하여 자신들의 상품을 홍보할 수 있으니 누이 좋고 매부 좋은 행사인 것이다.
대부분의 새내기들은 술 마시는 것이 아직 서툴지만 과 학우들과의 첫 대면인 만큼 좋은 인상을 주고 함께 어울리기 위해 술을 마다하지 않는다. 요즘엔 억지로 술을 권하지는 않지만 술을 잘 마시는 것이 선배에게 사랑받는 후배의 지름길인 것처럼 여겨지기 때문이다.
남녀가 섞여 술을 마시며 놀다 보니 종종 불미스런 일이 생기기도 한다. 우리대학 상경대의 한 여학우는 “잠을 자다 느낌이 이상해 깨어보니 옆에 술에 취한 남학우가 자고 있었다. 몸부림을 치다가 나에게 다리를 올리고 내 엉덩이에 손이 닿기도 했다. 남학우는 잠결에 모르고 한 일이겠지만 기분이 매우 불쾌했다”며 새터의 악몽을 회상했다.

  • 술자리의 저질 게임

단체 술자리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바로 각종 게임이다. 게임은 어색한 분위기를 한층 띄워주고 추억이 되기도 해서 모임에서 윤활유와 같은 역할을 한다. 하지만 요즘 캠퍼스에선 다소 저질적인 게임 문화를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한 일간지 기사에 따르면 옆 사람의 미간을 핥거나 과자를 씹어 입에 넣어주는 벌칙, 또 여자가 누워있고 남자가 그 위에서 팔굽혀펴기를 하면서 성행위를 연상시키는 벌칙 등이 대학가 술자리에서 자행되고 있다고 보도했다. 피해자들은 이런 게임을 통해 성적 수치심과 불쾌감을 느끼지만 저질적인 벌칙을 강요하는 가해자들은 친목 도모와 분위기 띄우기라는 명분을 내세우고 있다.
모든 대학생이 술자리에서 저질스런 게임을 한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저질 게임에 관련된 많은 사례들이 있었다.
이런 저질게임 문화 속에서 우리대학은 안전할까? 2백명의 학우들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 결과 80% 이상의 학우들이 성적 수치심과 불쾌감을 유발하거나 성행위를 연상시키는 게임을 해 본 적이 없다고 답했다. ‘술자리에서의 저질게임을 어떻게 생각하십니까’라는 물음에는 88%가 ‘해선 안 된다’고 응답했고, ‘해도 된다’라고 응답한 학우 중에서는 ‘그런 게임들이 친목을 도모하고 분위기를 띄워주므로’를 가장 큰 이유로 꼽았다.

응답자가 해 봤거나 알고 있는 저질게임을 주관식으로 적는 문항에는 다양한 사례들이 있었다. 가볍게는 남녀가 막대모양 과자를 가운데 놓고 짧게 먹는 게임에서부터 옷 하나씩 벗기, 카드 또는 휴지를 입술로 옮기기, 입으로 술 전하기, 쇄골에 술 따르고 받아 마시게 하기 등 게임으로 치부하기에는 정도가 심한 예들도 많았다. 그 중 가장 많은 학우들이 ‘왕게임’을 저질게임으로 꼽았다. 게임에서 왕을 뽑고 왕이 시키는 것을 나머지 사람들이 해야 하는 이 게임은 규칙이 간단해 많은 학우들이 즐겨 한다. 그러나 벌칙에 제한이 없어 때로는 가벼운 벌칙에서 그치지 않고 성적 수치심을 유발하기도 한다.
우리대학 김정모 교수(심리학과)는 이런 저질게임 문화에 대해 “게임의 가해자들은 상대적으로 약자인 여자 후배에게 선배의 권위를 이용해 저질스런 행동을 시킴으로써 간접적으로 성적인 욕구를 충족하는 것 같다. 게임이라는 사회적으로 통용되는 수단을 이용함으로써 당하는 사람이 쉽게 거부하지 못하게 한다”며, “피해자들은 성적 수치심을 느낌과 동시에 게임을 거부하면 분위기를 망치게 된다는 이중적인 압박을 받게 되어 이런 현상이 지속될 경우 심한 스트레스나 자아개념 손상 등 심리적 장애를 겪을 수도 있다”고 저질게임의 심각성을 지적했다.

  • 고통을 덜어드립니다

위 설문조사에서 알 수 있듯이 다행히 성적 수치심을 유발하는 저질게임을 해보지 않은 학우들의 수가 월등히 많았다. 하지만 성희롱·성폭력 피해자에게 그 고통은 평생의 상처가 되므로 그 수가 적다고 해도 간과할 수 없는 문제이다.
이에 우리대학은 성희롱·성폭력의 예방과 문제가 발생했을 때 피해자의 고통을 덜어주기 위한 여러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총여학생회에서는 호신스쿨 개최, 성평등 연애·성폭력 관련 강연도 준비하고 있다. 총여학생회장 현주희 양(식품영양3)은 성관련 범죄는 은밀하게 이루어지는 부분이라 피해자가 도움을 요청하지 않으면 알아낼 수 없다며 총여학생회는 언제든지 열려 있으니 부담 갖지 말고 도움을 요청하라고 말했다.
또 우리대학은 성희롱·성폭력 상담소를 운영하고 있다. 여학우 뿐 아니라 남학우, 교직원 등 천마인은 누구나 이 상담소를 이용할 수 있고 학교 밖에서 일어난 일도 도움을 요청할 수 있다. 상담소의 김미경 연구원은 성희롱의 명확한 기준은 없다며 “신체적인 폭력 뿐 아니라 여성이 굴욕감과 수치심, 모욕감을 느꼈다면 그 모든 성적 언동이 성희롱에 포함 될 수 있다”고 정의했다. “학생들이 신고가 번거롭고 남에게 알려지는 것을 꺼려해 문제를 덮어두려 하는데, 상담에서의 개인 정보는 철저히 비밀보장이 되고 피해자 보호를 위해서도 최대한 노력한다”며 당사자의 적극적인 문제해결 의사가 중요하다고 말했다.
술을 적당량 마시는 것은 심장병 예방에 좋고, 소화제 역할을 하기도 한다. 그러나 과음은 판단의 장애를 일으키고, 사람을 난폭하게 만들기도 하며, 기억의 장애를 가져오기도 한다.
그리스의 철학자 피타고라스는 “만취는 자신과 가정과 사업 등 모든 일을 망쳐 버린다”고 경고했다. 대학인에게 주어진 자유를 절제하지 못해 아름다운 청춘을 술로 인한 상처로 망처 버리는 일은 더 이상 없어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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