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자게를 사랑하는 이유
우리가 자게를 사랑하는 이유
  • 이연지 기자
  • 승인 2008.05.23 10:3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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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대학 홈페이지 천마광장의 자유게시판(이하 자게)은 익명성이라는 제법 학우들의 구미가 당기는 조건을 등에 업고 있어 타 대학 자게에 비해 이용률이 높다. 하루에도 수 백 개의 글이 올라오며, 각 글마다 댓글도 많이 달린다. 그 재미에 빠져 자게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는 이른바 ‘자게폐인’을 자청하는 사람들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자게에 올라오는 글들을 살펴보면 그 종류가 매우 다양하다. 학점·취업에 대한 고민에서부터 연애상담, 또 분야를 막론한 질문공세까지. 익명성을 악용하여 간혹 불미스러운 사건이 생기기도 하지만 점점 개인화되어가는 오늘날의 현실에서, 온라인에서나마 각자의 고민을 속 시원히 털어놓을 수 있는 공간이 있다는 것은 불행 중 다행인 듯하다.
24시간 학우들을 향해 대화의 장을 열어 놓고 있는 자게. 천마인과 불가분의 관계로서 우리대학의 새로운 문화가 된 자게를 분석해 보았다.
(다음 자료는 이달 17~20일 사이에 자게에 등록된 1천9백2십1개의 글을 바탕으로 분석한 내용이다.)

질의응답형   27.4%  지식in을 능가한다!
우리대학 자게는 포털사이트 지식검색 보다 빠른 답변 속도를 자랑한다. 그래서인지 온갖  분야를 막론한 질문들이 하루에도 수십 건씩 쏟아진다. ‘학교 앞 맛있는 식당 좀 알려 주세요’. ‘컴퓨터에 ○○프로그램 실행이 안 되는데 어떡하죠?’, ‘여자친구와 봄 소풍가기 좋은 장소 추천 부탁해요’와 같은 질문에서부터 ‘자뻑(자아도취) 증상이 심한데 치료방법 없을까요’, ‘탈모에 좋은 치료제 구해요’까지... 주목할 점은 웬만한 질문에는 즉시 답변이 올라온다는 것이다.
 하지만 본인이 어렵지 않게 알아낼 수 있는 문제까지도 노력해 보지 않고 자게에 올리는 것은 삼갈 필요가 있지 않을까 한다.

학구파형  13.3%  오고가는 정보 속에 싹트는 동문애
취업전쟁은 정보와의 싸움이라고 할 수 있다. 승리의 무기인 <스펙>(직장을 구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학력·학점·토익 점수 따위를 합한 것을 이르는 말)을 키우기 위한 학우들의 노력은 대단했다. 강의에서 점수 잘 받는 법, 리포트 관련 질문, 좋은 토익교재 추천, 또 요즘엔 스터디 그룹 관련 내용도 많이 찾아볼 수 있다. 영어 스터디는 기본이고 일본어, 러시아어, 스페인어까지 스터디의 종류도 다양해졌다. ‘밥터디’도 이루어지고 있는데, 이는 밥을 먹으면서 그날 공부한 내용을 점검하고 정보를 나누는 모임을 가리키는 것이다. 개인화가 심각해지고 경쟁이 날로 거세지는 시대라고 하지만 우리대학 자게에서는 서로에게 취업에 대한 좋은 정보와 조언을 아끼지 않는 모습들을 볼 수 있다.

청춘 스케치형  5.8%  커플 천국·솔로 지옥
‘사랑이란 젊은 마음에는 너무나도 강력한 즐거움이다. 다른 어떤 신앙이 연애와 양립될 수 있을 것인가?’라는 명언이 있다. 지금 우리 학우들도 그 강력한 즐거움에 빠져있는 듯하다. 자게에서는 설레고, 아름답고, 때로는 가슴 아픈 사랑이야기들을 많이 볼 수 있다. 불어오는 봄바람에 솔로부대들은 탈출을 외치기도 하고, 어떤 이들은 이별의 아픔이나 짝사랑의 괴로움을 토로하기도 한다. 이런 글에는 진심어린 위로 댓글과 함께 냉정한 충고의 댓글도 이어진다.
어찌 한 줄의 댓글로 상처받은 마음이 아물 수 있겠냐마는 이렇게 털어놓고 이야기함으로서 가슴앓이의 고통이 한 줌은 덜어지는 듯 보였다.

주제 토크형  53.5%  관심사가 같은 사람들 모여라!
자게를 유심히 살피면 하나의 글이 관심을 모아 그 글과 관련된 주제의 이야기가 이어지는 모습을 볼 수 있다. 가장 자주 등장하는 주제는 바로 남자 학우들의 군대이야기. 이미 전역한 학우에서부터 입대를 일주일 앞둔 학우들까지. 선임은 후임에게 군대생활 잘 하는 노하우를 알려주거나 현역시절 추억들을 되새겨 보기도 한다. 어떤 이들은 어려운 집안 사정을 이야기하며 서로에게 힘을 주기도 하고, 학교 건물 내에서 담배를 피거나 도서관에서 시끄럽게 떠드는 학우들을 향해 쓴 소리를 날리기도 한다.
자게를 이용하는 한 학우(이하 자게인)는 자게에서 이슈가 되었던 주제를 ‘자게뉴스’로 정리해 그날 올라온 글을 한눈에 파악해 주기도 한다.

자게  人터뷰   - 중도자객·마른멸치

3월의 어느 화창한 날. ‘만나고 싶은 자게인’ 깜짝 투표에서 각각 1, 2위를 차지한 ‘중도자객’과 ‘마른멸치’를 만났다. 자게에서의 꾸준하고 활발한 활동으로 많은 학우들의 궁금증과 고민해결을 돕는 이른바 ‘자게 유명인’인 두 사람과의 인터뷰를 통해 자게에 대한 좀 더 은밀한 이야기를 나누어 보았다.

두 분이 친분이 두터워 보인다.
중도자객 : 자게에서 만나서 알고 지내게 되었다. 정식으로 만난 건 이번이 두 번째이다.

자게활동은 언제부터 시작했는가?
마른멸치 : 2002년쯤부터 시작했었다. 우연히 자게에 들어왔다가 컴퓨터 관련 질문이 있어 답변을 했었는데, 그 뒤부터 사람들이 컴퓨터 관련 질문이 있을 때는 나를 찾더라. 그때까지만 해도 자게가 지금만큼 알려지지 않아 일부 매니아들만 이용했었다. 지금은 졸업하고 취직했지만 틈틈이 자게에 들어오곤 한다.

두 분 닉네임이 특이하다. 어떤 의미가 있을 것 같은데?
중도자객 : 주로 중앙도서관에서 공부를 한다. 또 평소 칼 ·창 ·권법 등으로 적과 싸우는 군인을 뜻하는 ‘살수’나 다른 사람의 눈에 띄지 않게 활동하는 ‘자객’같은 캐릭터를 좋아했다. 그래서 처음엔 닉네임을 ‘중도살수’로 할까 하다가 이상해서 ‘중도자객’으로 짓게 됐다.
마른멸치 : 기존 활동했던 다른 사이트에서는 ‘mire H’로 활동했었다. ‘mire H’를 빠르게 읽으면 ‘미르에이치, 미르치이, 멸치’처럼 들린다. 그런데 같은 닉네임을 쓰는 사람이 있어 구분을 위해 ’마른‘을 붙이게 되었고, 그렇게 해서 ’마른멸치‘라는 닉네임을 만들게 됐다.

재미있는 닉네임과 유명세 탓인지 비슷한 닉네임도 많이 보이더라.
중도자객 : 그렇다. ‘본관자객’, ‘상대자객’에서부터 ‘중도취객’ 등 재미있는 닉네임들이 있더라.

간혹 닉네임을 그대로 사용해서 사칭하는 사람들도 있던데, 피해를 본 적은 없나 ?
마른멸치 : 사칭하는 사람들이 종종 있는데, 그때마다 다른 자게인들이 먼저 가짜를 알아보더라. 아마 평소의 내 글 스타일과 성격을 어느 정도 파악하고 있어서 인가보다.

활발히 활동하는 만큼 잊지 못할 에피소드도 있을 것 같다.
마른멸치 : 중앙도서관 3층 열람실에서 노트북으로 자게를 보다 잠깐 화장실에 다녀왔는데 책상에 커피와 쪽지가 놓여 있었다. ‘마른멸치님, 컴퓨터 고쳐줘서 고마워요.’ 그 때 감동도 받았고 보람도 느꼈다.

참 훈훈한 모습이다. 그런 모습과는 달리 자게에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글들도 적지 않게 있던데.
중도자객 : 예전에 비해 많이 늘어난 것 같다. 특히 타인을 근거 없이 비방하는 글들은 자게인들 서로가 지양해야 할 것 같다. 일명 ‘낚시글’이라고 해서 말장난을 치는 경우도 많다.

익명이라 그런 글들이 더 난무하는 것 같다. 실명제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는가 ?
마른멸치 : 실제로 예전 총학생회에 의해 실명제가 거론되기도 했었다. 하지만 자게는 학생들의 자유를 어느 정도 보장해야 하므로 완전 실명제에는 반대한다. 하지만 사용자 간에 지켜야 할 최소한의 선을 넘어서는 사항은 부분실명제나 사용자 IP공개를 통해 적당한 제재를 가할 필요도 있는 것 같다.

앞으로 자게가 어떤 방향으로 나아갔으면 하는가 ?
중도자객 : ‘자유’라는 단어의 의미를 한 번 더 되새겨 보았으면 한다. 간혹 ‘자유’가 아무 거리낌 없이 함부로 행동하는 ‘방종’으로 변질되는 것 같다. ‘책임’을 바탕으로 ‘자유’와 ‘방종’이 구분되는 자게가 되었으면 한다.
마른멸치 : 상투적인 말이지만 대학생, 지성인답게 근거 있는 비판이 이루어졌으면 한다. 또 우리가 속해 있는 곳이니 만큼 학교에 대해 비방하는 글은 지양하면서 문제점을 극복하려고 노력했으면 한다.

 모닝커피 한 잔과 함께 했던 인터뷰를 마치며 ‘마른멸치’로 부터 책 한 권을 선물받았다. ‘배려’라는 제목이었다. ‘진정한 배려’란 타인과 자신 모두를 위한 것이라고 한다. 우리들의 ‘진정한 자유’ 역시 나 자신을 비롯해 타인까지 아우를 수 있는 것이어야 하지 않을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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