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화에 대한 단상
동화에 대한 단상
  • 최연숙 교수(독어독문학과)
  • 승인 2008.05.16 15: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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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담 또는 동화로 알려진 이야기들은 보통 어린이들을 위한 것이다. 그러나 내가 보기에 민담 또는 동화는 오히려 어른들에게 이해 가능한 이야기로 간주하는 것이다. 어른들은 과거 어린 시절, 거의 대부분 동화 또는 옛이야기를 누군가로부터 듣고 성장했기 때문에 동화는 그들의 삶과 함께 해왔다고 볼 수 있다. 어느 의미에서 볼 때 모든 인간은 첫 언어적 인지적 경험을 동화에서부터 시작한다고 봐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어린 시절 각인된 동화적 세계는 무척 단순하고 평면적이고 일차원적이어서 쉽게 다가오는 듯하다. 그러나 오히려 그러하기 때문에 이해하는 것이 간단하지 않다. 동화 이해는 동화 속에 묘사된 비유 또는 상징적 표현 속에서 좀 더 폭넓은 인간의 상상이 가능할 때에야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동화를 접하는 순간부터 우리는 어떤 의미에서든 동화와 대화를 나누고 살아 왔다 할 것이다.
동화 속에서는 분명 인간의 삶의 문제들이 밀도 있게 집약되어 드러나고 있다. 우리가 알타미라 동굴에서 구석기 시대로 추정되는 적색의 들소 그림을 보고 그 생동감에 감동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오늘날까지 전해져 내려오는 옛이야기 속에는 인류의 정신적·물질적 상황들이, 그리고그 흔적들이 내장되어 있다. 어떤 학자들은 동화의 나이를 신화 이전의 신석기 시대로 보고 있다. 말하자면 동화는 오랜 세월 인류와 함께 하면서 결정된 인류의 이야기 집합체다. 그리고 이야기 속에 나타나는 동화상이나 모티브, 주제들은 서로 유사성을 띠면서도 자율적 활동을 벌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예를 들어 오늘날 가장 널리 알려져 있는 신데렐라 이야기는 전 세계에서 가장 사랑을 받고 있는 이야기이다. 그 대표적인 신데렐라본으로 이태리본, 프랑스본, 독일 그림본을 들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우리나라에도 콩쥐 팥쥐본을 들 수 있을 것이다. 전 세계적으로 천 편에 가까운 신데렐라본이 있다고 밝혀져 있다. 어느 신데렐라본에는 부엌 아래 계단 밑 뚜껑 달린 문을 열자 땅 속 할머니가 선물하는 세 벌의 옷 이야기가 나온다. 그런데 이러한 세 벌의 옷 이야기는 그림 민담의 「털북숭이 공주」이야기 속에 나온다. 그리고 프랑스본 「샹드리옹」에서는 쥐가 마부가 되고 호박이 마차가 된다.이 이야기는 그림 민담 「세 깃털」속에서 이와 유사하게 제시되어 있다. 이렇게 동화 속에 나타나는 동화상이나 모티브들은 서로 융합 또는 배제되는 가운데 아주 다른 이야기로 짜여진다. 또한 그러한 가운데 이야기들은 매우 유기적이고 내적인 연관성을 띠면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융의 심층심리학적 관점에서 볼 때 그것은 원형의 활동성으로 설명된다. 융학파에서 볼 때 모든 원형은 폐쇄적 에너지 체계를 띠고 있다. 그리고 그 에너지들은 집단 무의식의 모든 관점들을 통과해 강처럼 물살을 타고 흘러간다고 본다. 원형상들이 어떤 특수한 방식으로, 다시 말해 방사선처럼 그 효과를 드러내는 동시에 자장을 형성해 사방으로 확대시킨다고 본다. 말하자면 동화 속 동화상이나 모티브, 또는 주제들은 스스로의 자율성에 따라 방향을 틀면서 서로 접맥되는 과정에서 또 다른 이야기 안에서 재구성 또는 변형 과정을 거치면서 결정된다고 볼 수 있다.
최근 들어 문학치료에 대한 관심이 주목을 받으면서 여러 방법이 개발되고 있는 가운데 동화와 연관성을 둔 동화치료나 미술치료에 대한 논의가 활발히 전개되고 있다. 동화는 인류의 삶의 주제들이 저장된 용기라 할 수 있다. 동화 속에는 여러 유형의 인간들과 그들이 경험하는 가족 갈등, 이성 갈등, 공생, 모성콤플렉스, 부성콤플렉스, 사회화과정 등이 제시되고 있는데, 사랑과 전체성, 동경 등의 방향성을 띠면서 삶의 문제들이 다루어지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이러한 문제들은 융이 말하는 개성화(Individuation)과정을 통해 구체화되면서 전환점에 이르게 된다. 그것은 바로 인간 스스로 그 고유한 형상을 찾아가고, 그 가능성을 채워나가는 데 있다 할 수 있다. 동화치료는 이러한 방향선상에서 가능한 것인데, 가장 중요한 근간이 되는 것은 다양한 형상의 판타지를 요구하고 우선시하는 데 있다. 동화치료는 동화를 암기하거나 분석하기보다 읽는 과정에서 떠오르는 창의성, 자발성, 상상력을 표현하게 하는 데 그 역점을 두고 있다. 이러한 방법은 감각적이고 실재적인 것으로, 어떤 이론이나 체계적 논리보다는 오히려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자발적으로 환기되는 무의식과 풍부한 상과 판타지 수용에서 가능하다. 동화치료에서 보다 중요한 점은 자발적이고 즉흥적으로 떠오르는 동화의 장면들을 창조적인 형상화 작업에 적용시키는 데 있다. 이때에 오랫동안 잊고 있었던 사실들이 동화상이나 동화 모티브를 통해 의식화되면서 삶의 문제 또는 주제들이 고찰되고, 그 문제 해결 방향이 제시되는 것이다.
동화연구가들에 따르면 동화가 신화보다 인간에 보다 유사성을 띠고 있으며, 인간의 문제를 보다 구체적으로 제시한다고 본다. 알레고리 또는 상징적 표현을 통해 우주와 신 그리고 인간의 세계를 제시하는 신화에서보다 동화 속에서는 신화와 유사하면서도 인간의 문제들이 구조적 틀을 짜면서 전개되고 있다고 보는 것이다. 동화 속에서 인간의 개인적 삶은 끊임없이 다루어지고 있는데, 그러한 개인적 삶은 프로프가 말하는 어느 기능, 즉 구조적 상황으로 제시되어 있으며, 그것은 인간 누구에게나 적용될 수 있는 보편적 인간의 삶으로 제시된다. 동화가 인간의 삶의 의미가 개인적이면서도 보편적 삶의 의미로 매개될 수 있다는 것, 즉 개인적 실존이 동시에 인류의 집단적 문제로 매개되는 것은 상징의 매개적 기능에서 가능하다. 다시 말해 상징은 우리 인간에게 아직 잘 알려지지 않은 배후적 세계나 그 근원을 제시한다. 이러한 매개지점에서 상징은 판타지와 창조성을 환기시킬 수가 있다. 신화와 달리 동화 속 인물들은 부모나 형제자매·파트너·아이들이며, 실지로 이들은 우리 인간의 삶 속에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는 인물들이다. 그들은 인간의 동경, 소망상, 인간적 태도들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인간이 선호하는 가치와 태도 또한 이야기하고 있다. 심층심리학자인 베레나 카스트에 따르면 동화가 “바로 우리들의 문제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으며”, “이야기들이 인간의 삶을 동반하고 있으며”, “인간의 실재 삶보다도 더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내용을 담고 있다”고 한다. 또한 동화 속에는 경이로운 일들이 벌어지는데, 그러한 과정 끝에 어떤 전환점에 다다른다. 이것을 카스트는 “동화”, “동화적인 것”으로 규정한다. 카스트는 동화적 해결은 우리가 “예기치 못했던 해결”이며, “창조적 해결”로 본다.
상징과 동화는 다의적이다. 따라서 그 해석의 정확성은 명백한 체험에서 기인할 수밖에 없다. 해석 또한 단일한 의미를 띠지 않는다. 심층심리학적 동화해석에서는 동화의 과정이 인류의 전형적인 발전과정과 연관된다고 본다. 동화는 동화상을 통해 인간에게 인류의 상상적 이야기를 건네고 있기 때문에 인간의 판타지나 감정적 과정에 강한 영향을 미친다. 동화 속에는 인류가 경험한 내용들, 즉 심리적 내용들, 무엇보다도 감정들이 제시되어 있고, 상징 속에 농축되어 있다. 동화 속 동화상들은 난관 극복을 지향하는 희망적 활동성을 띤다. 동화치료의 주된 관심은 이러한 희망을 체험하고 난관을 극복하고 해방감을 맛보는 데 있다. 그것은 동화가 제시하는 바와 일치한다. 동화의 의미는 결말에 있는 것이 아니다. 동화가 제시하는 상징의 과정적 의미와 활동 여부에 달린 것이다. 우리가 동화를 폄하할 수 없고,  그림 민담을 읽는 까닭은 동화 속 상징적 의미체계의 활동성을 경험하고 그러한 경험 속에서 해방감을 맛보는 데 있는 것이 아닐까? 사회철학자인 브로흐는 상징을 “농축 카테고리”라고 명명한 바 있다. 동화 속 상징이 우리 인간 이해의 노력 여하에 따라 달라질 수 있고, 또한 점차적 이해가 가능해질 수 있다는 것은 바로 인간의 인간에 대한 이해의 폭이 확장, 심화되어 그 농축 카테고리를 풀어낼 수 있다는 것이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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