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5회 천마문화상 문학강연회-좋은 소설은 경험의 바탕위에 창조적 상상력이 가미되어야···
제35회 천마문화상 문학강연회-좋은 소설은 경험의 바탕위에 창조적 상상력이 가미되어야···
  • 박진영 학술전문기자
  • 승인 2007.08.02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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똑같은 시대를 살아도 똑같이 살지는 않는다.
 

지난 11월 26일 우리대학 인문관 강당에서 창간 48주년을 기념하여 본사 주최로 제35회 천마문화상 시상식 및 제30회 문학강연회가 있었다.
“공선옥의 삶과 문학”이라는 주제로 열린 이날 강연회에는 문학강연회로는 근래에 보기 드물게 많은 청중이 모였다.
본 란에서는 이 날 있었던 공선옥씨의 강연과 이후 전화 인터뷰를 통해서 정리한 내용을 소개하고자 한다.


유소년기의 어두운 체험이 내면의식으로

 

강연은 오히려 공선옥씨가 청중들에게 질문을 던짐으로써 시작되었다. “요즘 대학생들의 관심사는 무엇이죠?”라는 공선옥씨의 질문은 가벼운 시선으로 모인 요즘의 대학생들에게 자신의 묵직하고 경건했던 청소년 시절의 회상을 풀어나가기 위한 화두처럼 들렸다. 인터넷과 엔터테인먼트의 가벼움에 익숙한 20대 초반의 학생들에게 ‘광주’나 ‘민중’이라는 의미심장한 어휘를 던지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닌 듯 보였지만, 다행히 전원주 아줌마톤의 목소리가 묵직한 시절의 부담스러움을 덜어주는 것처럼 느껴졌다.
공선옥씨의 유소년기와 청년기는 새마을 운동과 광주가 주요 테마이다. 공선옥씨에게 새마을운동은 ‘산아제한’과 ‘반공구호’가 붙은 흙집이 시멘트 담과 슬레트 지붕으로 바뀌는 과정이다. 이른바 박정희의 권위주의 시대의 한가운데를 유소년기로 보낸 공선옥씨는 조국근대화가 한편으로는 농촌공동체의 파괴라는 점을 말하고 있다. 노무자인 아버지와 새마을 운동에 동원된 어머니의 모습에서 화목한 가족공동체보다는 경제논리에 의해서 노동력 제공집단으로 변하는 당시 가정의 모습을 회상하고 있다. 공선옥씨는 이러한 근대화 과정을 ‘고향의 상실’이라고 표현했다.
공선옥씨는 그 자리에서 박정희식 근대화의 공과를 평가하지는 않았지만 “근대화의 혜택을 받은 사람과 근대화를 통해서 희생당한 사람이 있다”라는 표현으로 근대화의 어두운 그늘을 꼬집어 주었다. 역시 비슷한 의미를 지닌 “사람은 똑같은 시대를 살아도 똑같이 살지는 않는다”라는 얘기는 공선옥씨 자신의 굴곡이 심했던 청년시절과도 일맥상통한다. 고향을 도망쳐서 광주의 고등학교로 진학하고 80년 광주를 직접 체험하면서 공선옥씨의 삶은 80년대의 한복판으로 들어간다. 공선옥씨는 80년대 초반의 분위기를 문학조차도 사치스러운 것으로 간주하는, 어려웠던 시절이라고 표현했다. 문학이라고 하는 최소한의 낭만도 광주가 주는 엄숙함 앞에서는 즐기기 어려운 시대였던 것이다. 공선옥씨는 결국 대학을 중단하고 구로공단에 취직함으로써 짧은 대학생활을 마치고 만다.

자신의 삶이 소설의 바탕이다
공장에 취직한 공선옥씨는 위장 취업자가 아닌, 대학생 출신 생계 취업자였고, 나중에는 고속버스 관광버스 직행버스를 전전하며 안내양을 했다. 당시 아버지와 어머니의 병간호, 집안 생계의 책임 등이 공선옥씨에게 주어진 삶의 조건이었다. 이후 공선옥씨는 노동운동을 하면서 결혼을 했고 두 아이의 엄마가 되었지만 이혼을 하고 만다. 나중에는 생계를 위해서 두 아이를 광주시립아동보호소에 맡기고 절에서 식모살이를 하기도 했다. 아이들을 데리고 서울로 올라와 재봉일로 생계를 유지하면서 글을 쓰던 공선옥씨는 91년 『창작과 비평』에 중편 「씨앗불」을 발표하면서 등단했다.(1999. 조선일보 인터뷰 요약)
이러한 공선옥씨의 빈민여성으로서의 삶은 그의 소설 속에 그대로 담긴다. 공선옥씨는 우리 신문과의 인터뷰에서도 자신의 소설이 서민들의 삶을 깊이 천착하고 있다고 밝혔다. 농촌출신의 경험과 도시의 빈민여성으로 자신이 경험한 익숙한 것들을 소설로 담아냈다는 것이다.
공선옥씨는 일부 평론가들이 자신의 소설이 지나치게 자전적이라고 평가하는 데 대해서 반론을 제기한다. 공선옥씨는 “자전적이라고 하지만 소설은 소설이다. 소설은 순수한 작가의 상상력일 수도 있고 경험한 것을 바탕으로 할 수도 있다. 경험해 보지 못한 것을 쓰는 것 만큼 어려운 것은 없다. 하지만 작가의 상상력이라고 하는 것도 일련의 경험의 토대가 없이는 불가능한 것이다. 가장 좋은 소설은 자전적 경험의 바탕 위에 창조적 상상력이 가미된 소설이다”
아마도 이러한 공선옥씨의 소설에 대한 견해와 곡절 많았던 삶이 공선옥씨에 대해 “기구했던 삶을 옮겨놓으니 그대로 소설”이라는 평가를 받게 한 모양이다.

문학의 사회성에 대하여
“문학은 다시 시대에 답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을 던져 보았다. 80년대 도구주의적 민중문학을 염두에 둔 질문이었다. 공선옥씨의 답변은 의외로 문학이 당시 사회상을 바로 따라갈 필요는 없다는 쪽이었다. 하지만 문학의 기본성격이 문명사회의 근간을 흐르는 거대한 정신적 힘으로 작용해야 한다는 점을 강하게 주장했다. 공선옥씨의 답변을 정리하면 “사회운동과 문학이 일치하는 것은 아니다. 문학은 문학일 뿐이다. 문학은 즉각적인 당대의 이슈에 충실하기보다는 근본적으로 흐르는 도도한 사회의 정신적 힘이 될 수 있는 내용을 담아야 한다”는 것이었다.
문학의 사회성에 이어 문학인의 사회성이라고 할까, 덧붙여 지난해 ‘노무현을 사랑하는 문화예술인 모임’에 이름을 올린 것에 대해서 질문해 보았다. 공선옥씨의 답변은 상당히 적극적이었다. “작년 민주당 경선 때 노무현 후보 지지선언에 참여한 적이 있다. 당시 노무현이 지역감정 타파와 개혁을 위해서 자신을 희생해 가면서 꾸준히 노력하는 모습에 끌려 지지선언을 하게 되었다. 그리고 조선일보에 대한 안티운동에도 적극적으로 지지한 적이 있다”라고 밝혔다.
하지만 이번 대통령선거에서는 아직 지지후보를 정하지 못하고 있다고 했다. 최근에 와서 정책적으로는 민주노동당에 더 끌리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노무현 후보도 괜찮지만, 이제 진보정당이 하나쯤은 있어야 되는 거 아닌가요?”라는 말속에는 80년대를 관통한 자신의 삶과 현실적인 선택 사이의 갈등이 내비치는 듯 했다.
짧은 전화인터뷰였지만 이처럼 공선옥씨는 남들이 밝히기 꺼려하는 부분에 대해서도 자신의 견해를 분명하게 밝혀주었고 “다시 대구에 가면 소주 한 잔 해요”라는 정겨운 목소리로 인터뷰의 끝을 맺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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