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과 소음 : 한국 대학과 큰 차이
빛과 소음 : 한국 대학과 큰 차이
  • 편집국
  • 승인 2007.04.06 14: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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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의 대학-미국편

 나에게 미국 대학 교육의 전체적인 모습을 조감할 수 있는 전문적인 지식이 있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방문해본 대학의 숫자가 많은 것도 아니다. 따라서 여기에 내가 소개할 수 있는 것은 나의 미국 대학 경험에 근거해서 몇 마디 해보는 것이 전부임으로, 지극히 한정된 경험을 토대로 해서 이 글을 쓸 수밖에 없다. 먼저 독자의 양해를 구하는 바이다.

미국 캘리포니아주 스탠포트대학의 모습

 내가 방문해본 몇몇 미국 대학의 경우, 한국의 대학들과 비교해볼 때, 누구나 아주 중요한 차이를 한 가지 느끼게 마련일 것이다. 캠퍼스의 중심부(main academic area)에는 자동차가 눈에 띠지 않는다는 점이 그것이다. 미국의 상당수 대학들은 캠퍼스의 중심부에서는 일반 승용차의 운행을 금지시키고 있다. 자동차라고 하는 ‘유목 기계’가 사라진 대학의 캠퍼스에서는 그저 정적만이 흐른다. 그러나 그 조용함이란 죽음 같은 침묵이 아니라 지적인 활동의 뜨거움이 담겨있는 정적이다. 도서관과 실험실은 24시간 조용히 뜨겁다.
 자동차 한 대 없는 캠퍼스에는 말없이 산책하는 사람들이 보일 뿐이다. 그리고 밤이 되면 대학은 군데군데 켜져 있는 네온 불빛을 제외하면 어둠과 적막함이 흐를 뿐이다. 그러나 진정 대학의 빛은 도서관과 실험실을 비추고 있다.
 우리의 천마로는 어떤가? 우선 빛의 과잉이 조용한 사색을 방해한다. 대학의 정문이 없는 경우가 허다한 미국의 명문대와는 달리 우리는 거액을 들여 최근 거대한 정문을 세웠다. 정문에 설치된 유리문 안쪽으로 휘황한 전등이 밤을 낮처럼 밝힌다. 거기서 조금 들어오면 또 하나의 거대한 기계를 만난다. 형형색색의 빛을 발하는 전광판. 그 빛 속에 우리의 이성은 잠식당한다.
 기껏해야 영화 광고판 구실이나 하는 그 엄청난 기계가 우리에게 왜 필요한 것일까? 듣기로는 그 전광판을 유지하는 데 드는 비용만도 일 년이면 몇 천 만원이라 하던데…. 그 자리에 품 넉넉한 느티나무 한 그루 서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해보는 것은 물정 모르는 한 인문학자의 꿈에 지나지 않는 것일까?
 다시 고개를 들어 천마로를 돌아보면, 우리의 교정은 전체가 드넓은 중고차 시장 주차장과 같다. 그 사이사이로 오가는 오토바이의 질주는 아찔하기만 하다.
 미국의 거의 모든 대학들은 학부생들이 자동차를 학교 안으로 갖고 들어올 수 없게 되어있다. 대학원생들도 조교 업무를 수행하는 경우에만 자동차를 학교 안에 주차시킬 수 있을 따름이다. 미국 대학의 교정의 넓이는 대다수가 우리 천마로를 능가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쯤은 충분히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거기에다 부시 대통령까지 공식적으로 인정했듯이 미국은 자동차에 ‘중독’되었다고 할 정도로 자동차의 왕국이라고 불릴만한 나라이다. 그래도 대학 내에서 자동차는 이토록 엄격하게 규제되는 것이다. 미국 대학들의 자동차 규제 정책에 깔려있는 철학은 대학은 무엇보다도 조용히 생각하고 사색하는 곳이라는 점을 인정한다는 것이다.
 우리의 대학들은 소음에 얼마나 관대한가. 내지르는 소리들은 도처에 떠다닌다. 천마로를 휘젓고 다니는 자동차와 오토바이의 굉음은 내게 일상적인 성고문(聲拷問)이다.
 캠퍼스의 소음은 그것뿐만이 아니다. 학생들의 노래자랑 프로그램은 어떻게도 그리 많은지. 일 년이면 몇 차례 씩 천마로 여기저기 차려지는 가설무대 위에서 학생들은 저마다 기성 가수들 흉내내기에 여념이 없다.대중문화의 소비는 내지르는 소리와 환호성으로 버무려져 온 캠퍼스를 울려댄다. 바로 옆 건물에서 진행되고 있는 야간부 학생들의 수업은 안중에 없는 모양이다. 고막을 찢을 듯 질러대는 소음의 폭력성은 놀고 마시는 현장에서만 드러나는 것은 아니다.
 대학 내에서 벌어지는 각종 시위 현장에서도 어김없이 등장하는 것이 고성능 마이크 선을 타고 들려오는 절규와 호소이다. 그러나 막상 시위 현장을 찾아가 보면 모여 있는 학생들은 막상 10여명인 뿐일 경우가 많다. 어처구니가 없다 못해 허탈해진다.
 알다시피 미국의 파티 문화는 대단히 발달해있지만, 파티가 열리는 시간은 주말이고 개별적으로 학교 내 기숙사 등지에서 열릴 뿐이다.
 우리의 대학 축제는 이미 대동제의 의미를 상실하고 다분히 파티의 성격을 띠고 있을 뿐인데도 학교의 대로를 점령하고 구성원 모두에게 관객이 되기를 강요하는 우리의 축제 문화에는 분명히 문제가 있다.
 내가 공부했던 대학 캠퍼스에 밴드가 등장하는 큰 규모의 팡파레는 학기가 시작하는 첫 날, 말하자면, 개강 을 축하하는 음악 연주 소리뿐이다. 미국 대학에도, 물론, 우리처럼 시위가 벌어지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우리처럼 마이크와 스피커로 무장하여 대학의 다른 모든 기능을 일시에 마비시키는 일은 보지 못했다.
 미국 대학에서 시위를 진행할 때에는 대개 피켓 시위를 한다. 각종 피켓을 든 사람들 주변에 모여든 학생들의 침묵시위는 차라리 위엄이 있고 호소력이 있다.
 미국 대학에도 시끄러운 순간이 있다. 그건 수업이 진행되고 있는 강의실 내에서이다.
 교수가 특별히 토론식 강의를 진행하려 별다른 노력을 기울이지 않아도 여기저기서 쏟아지는 질문들은 자연스럽게 토론으로 이어진다. 우리의 대학 풍경은 정반대이지 않은가? 강의실 밖은 늘 시끄러워도 강의실 내부는 교수만 쳐다보는 멀뚱멀뚱한 눈길만 나른하지 않은가? 물론 강의 조건도 다르다.
 우리 대학들은 대형 강의가 수두룩하지만 미국의 대학들은 20~30명 내에서 강의가 이루어지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학생 수가 많아도, 대학생 여러분들 이제 우리도 강의실에서 입 좀 열고 강의 준비도 하고 독서 좀 합시다.

이승렬 교수 (영어영문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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