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명기 동문에게 특별한 것이 있다>'할 수 있는 일에 인색하지 말자'
<천명기 동문에게 특별한 것이 있다>'할 수 있는 일에 인색하지 말자'
  • 주혜리 기자
  • 승인 2007.07.26 11:43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부산일보에서 시사만화가로 활동하다 현재 기성세대들이 유년기 시절 즐겼던 각종 놀이문화를 고증, 만화화하는 작업을 추진 중인 천명기 동문(국어국문90)을 만나 이런 저런 얘기들을 나눠보았다.
술 좋아하고 놀기 좋아했다는 천명기 동문은 대학시절 학과 공부보다는 그림 그리는 재미에 푹 빠져 지냈다고 한다. 미대 수업을 도강하기 일쑤였고 학생회나 신문사 등 교내단체의 그림들을 도맡았다는 천 동문은 “툭하면 서울에 만화 배우러 간다고 학기 중에 사라지는 등 작가들 밑에서 심부름하면서 보낸 세월이 대학 생활의 거의 절반이었다”며 당시를 회상했다. 졸업하기 전부터 몇몇 사보와 정기간행물에 만화를 연재하는 등 다양한 경력을 지닌 천 동문은 졸업 후에도 만화 그리는 일을 자연스럽게 업으로 삼게됐다고 말했다.
시사만화가로 활동하면서 가장 기억에 남는 일화를 소개해달라고 하자 올해 6월경에 있은 ‘전국시사만화작가회의의 모임’에 대한 얘기를 풀어놓았다. 이 모임(?)은‘미군장갑차에 의한 여중생 압사사건’ 이후 ‘신문만평으로만 이를 비판할 것이 아니다’라는 시사만화작가들의 의견이 모아지면서 시작됐다고 한다. 시사만화작가들이 직접 만든 피켓을 들고 서울 광화문 프레스 센터 앞에서 반나절 동안 시위를 했었다고. 천 동문은‘전국의 유일무이한 언론사 재직인사들의 시위’였다며 땀 흘리고, 눈물 흘렸던 그 때를 다시 한번 떠올리고는 흐뭇해했다.
천 동문의 이러한 삶에 가장 큰 영향을 준 인물이 있었냐는 질문을 던져보았다. “대학교를 졸업하던 해에 우연히 경산에서 수년 째 야학(우리학교)을 운영하던 최승호 교장을 만난 것이 내 인생 최대의 사건이었다”며 “그 동안 만났던 어떤 사람에게서도 느끼지 못한 감동을 그 분에게서 처음 느꼈다”고 힘주어 말했다. 그 분을 보며 ‘아, 이게 바로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는 삶이구나’라는 생각을 했다고 한다. 천 동문은 “낮은 곳에서 없는 이와 힘없는 이를 위해 평생을 받친 최승호 교장으로 인해 그 동안 내 자신이 옳다고 믿었던 가치관의 많은 부분이 수정되기도 했다”며 “그 덕분에 야학교사로도 활동했었는데 그 당시 느꼈던 감흥들을 만화에 담아낼 생각”이라고 덧붙였다.
마지막으로 천 동문은 후배들에게 “학교 다니는 동안 꼭 무전여행을 떠나보라”라는 말을 빼놓지 않았다. 무전 여행을 통해 세상을 바라보는 여유를 배웠으면 한다고. ‘할 수 있는 일에 인색하지 말자’를 좌우명으로 삼고 있다는 천 동문, 그에게서 사람의 정이 물씬 느껴진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