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은 작가의 경험을 기본으로 한다.
문학은 작가의 경험을 기본으로 한다.
  • 박진영 학술전문기자
  • 승인 2007.07.26 1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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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연초록>소설가 이순원 초청강연회
지난 10월 30일(수) 인문관 강당에서는 영대문화편집위원회가 주최하는 소설가 ‘이순원 초청강연회’가 있었다. ‘사람내음 나는 소설에서 현실을 초월한 상상력까지-다채로운 시각의 소설가’로 소개받은 이순원씨는 자신의 성장기를 회상하면서 강연을 시작했다. 본 란에서는 소설가 이순원씨의 강연 내용을 요약하고 문단의 일반적인 평가를 덧붙이고자 한다. 엮은이 말

한산한 강연장
이순원씨는 1988년 「문학사상」에 단편 ‘낮달’로 등단하였다. 이순원씨는 문학 강연이 인기있었던 당시와 비교하면서 문학에 관심이 떨어진 오늘날을 나지막하게 비판하며 강연을 시작했다. 자신의 소설이 중학교 2학년 교과서에 나올 정도로 유명하지만, 한창 책을 많이 읽어야 할 고등학생들이나 대학생들은 자신의 이름조차 생소하게 생각한다며 문학을 외면하는 요즘의 세태를 비판했다. 이순원씨는 이러한 세태의 원인으로 활자를 외면하게 만드는 시대적 특성과 청소년기에 문학을 접하기 어렵게 만드는 우리의 교육현실을 꼽았다. 이러한 비판은 다수의 문학평론가들도 제기하는 비판이다. 영화나 텔레비전, 그리고 최근에는 인터넷과 같은 멀티미디어가 발달하면서 기승전결의 논리구조와 활자의 한계를 가지는 문학이 외면당하는 실정이다. 이순원씨의 이러한 걱정은 대학문학상에 응모하는 대학생의 수가 줄어들고 있다는 점에서도 현실로 드러난다.

성장기는 소설의 주요재료이다
이순원씨는 작가의 살아온 삶이 작가의 시각을 결정하고 창작의 재료를 제공한다고 보고 있다. 이순원씨는 자신이 나고 자란 대관령(동쪽 산골)의 풍광과 자신의 어린 시절 추억을 풍경화처럼 펼쳐 놓았다. 이순원씨의 고향은 대관령 아래 산골 마을로 400년을 이어온 대동계가 존재하고 아직도 촌장제도가 있는 외부와 유리된 딴 세상이었다. 작가가 문명사회에 발을 들여놓게 된 것은 학교에 진학하면서부터이다. 강릉이라는 도회지로 통학을 하면서 작가는 매일 전통사회와 현대 문명사회를 번갈아 경험하게 된다. 매일매일 느끼는 문화적 변화속에서 작가는 무한한 상상력을 키울 수 있었다고 회고한다. 작가의 마을이 문명사회로 진입하게 된 것은 70년대 중반 전기가 들어오면서부터이다. 70년대 산업화의 바람을 작가는 집단문화에서 개인문화로 바뀌는 문화적 충격으로 해석하고 있다. 이러한 충격 역시 작가의 중요한 소재이다. 작가는 자신이 동인문학상을 받았을 때 어머니가 “서인이 왜 동인상을 받느냐?”는 호통을 치셨다며 아직도 전통적 세계관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자신의 고향을 소개했다. 작가가 동인문학상을 받은 것도 성장기의 가족상을 다룬 ‘수색, 어머니 가슴속으로 흐르는 무늬’라는 소설이다.

경험과 상상력의 관계
이순원씨는 자신이 경험을 토대로 글을 쓰지만 그것이 상상력이 결여된 단순한 사실주의는 아니라고 주장한다. 그 예로 영화화 되기까지 한 자신의 대표작 ‘압구정동에는 비상구가 없다’를 들고 있다. 압구정동은 오렌지족과 명품으로 치장한 졸부들이 나다니는 부러움의 거리이며 비난의 대상이기도 하다. 작가는 이러한 압구정동을 단 한번도 직접 가보지 않고 작품을 썼다. 단지 지도책을 펴고 골목골목을 일일이 확인하였다. 이러한 방법은 현실을 피상적으로 경험하면서 상상력을 높이기 위한 작가만의 독특한 방법이다.
부자를 상대로 한 연쇄테러 사건을 다룬 이 소설은 이후 지존파사건이 생기면서 화재가 되기도 하였다. 신문에서 지존파사건을 예견한 소설로 재평가되면서 재판을 찍는 사태까지 일어났다. 작가의 문제의식까지도 상품화시키는 자본의 영악한 법칙이 작용한 것이다.
대관령 서쪽 산골 마을을 다룬 ‘은비령’도 작가는 지도로만 보았을 뿐 실제로 방문한 적이 없다. 1999년 작 ‘그대 정동진에 가면’에 이르면 이러한 경향은 점쟁이처럼 현실을 상상력으로 알아 맞추는 힘을 발휘한다. 이 작품의 주요 내용은 정동진에 있었던 광업소 사장의 딸과 광부의 사랑이야기이다. 이 스토리는 순전히 작가의 상상력에 의해서 창작된 것이다. 그런데 이 작품이 발표된 후 광업소 사장의 딸이었다는 사람으로부터 연락이 왔는데 작품의 내용과 일치하더라는 것이다.
이러한 이유로 이순원씨는 사람내음과 상상력을 함께 갖추었다는 평가를 받게 되는 듯하다.

잠수함 속의 토끼
이순원씨는 작가가 시대정신을 가져야 함을 강조했다. 게오르그의 소설 ‘25시’에서 잠수함이 깊이 내려갈 때 산소 부족을 가르쳐 주는 기준으로 토끼가 사용되었던 것처럼 작가는 시대상을 반영하는 척도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작가들은 정치와 경제, 사회와 문화 따위 속에 내재하는 산소결핍 증세와 위기상황에 누구보다도 먼저 민감하게 반응을 해야하며 역으로 산소가 부족한 잠수함(현실) 속에 다시 산소를 집어넣는 역할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이순원씨가 올 5월에 ‘안티조선 선언’을 한지도 모른다. 많은 평론가들은 이순원씨의 작품세계가 다양함에 빗대어 전방위작가라고 하면서 그의 작품세계를 욕망의 거품과 비판적 소설사회학 이라고 평가하기도 한다. 또한 그의 작품이 도덕적·사회학적 상상력의 승화를 꿈꾸고 있다고 평가한다.
사실 ‘안티조선 선언’ 이후 이순원씨 자신이 밝혔듯이 그의 작품이 가족주의적이고 전통적인 면이 강하기 때문에 여성이나 가족문제에 있어서는 보수적이지만 사회적으로는 상당히 비판적이며 개혁지향적인 면이 있다.

작가연보
▶약  력
·1957년 강원도 강릉 출생
·1985년 강원대학교 졸업
·1988년 「문학사상」 신인문학상에
단편 ‘낮달’ 당선
·1996년 제 27회 동인문학상 수상
·1997년 제 42회 현대문학상 수상
·2000년 제 42회 한무숙 문학상 수상

▶장편소설
·압구정동에는 비상구가 없다
·압구정동에는 무지개가 뜨지 않는다
·에덴에 그를 보낸다
·아들과 함께 걷는 길
·19세
·그대 정동진에 가면
·순수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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