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달래 넓은터]'인혁당 재건위' 사건 진상규명 그후
[진달래 넓은터]'인혁당 재건위' 사건 진상규명 그후
  • 편집국
  • 승인 2007.07.24 1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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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은 사람은 명계(冥界)로 내려가 레테(Lethe)의 강물을 마시고 이 세상의 기억을 잊는다고 한다.
이런 망각(忘却)의 강(江)이 비단 먼나라 유럽의 신화속에서만이 아니라 우리 사회에서도 잊어야 할 것과 잊지 말아야 할 것의 구별도 없이 극심한 탁류를 이루며 유유히 흐르고 있다. 이제는 한번쯤 므네모시네(기억)의 샘물을 마시면 어떨까?
지난 12일 ‘인민혁명당(인혁당) 재건위’ 사건은 당시 중앙정보부에 의해 조작된 것이라고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가 밝혔다. 30년이라는 세월이 흐르고서야 군부독재정권의 몰상식이 상식으로 통용되어 자행된 ‘인혁당 재건위’ 사건의 진실과 역사성이 명백히 밝혀진 것이다.
노벨인권상 수상자를 국가원수로 둔 한 나라의 현대사가 이토록 지독한 공안정국이었다는 사실이 아이러니할 뿐이다. 이제라도 그 진실을 밖혀 냈으니 다행스러울 따름이고, 씻김굿판이라도 벌여 그 원혼들을 달래야 할 것이다.
인민혁명당 재건위 사건은 ‘1차 인혁당 사건’부터 시작된다. 1964년 박정희 정권이 일본으로부터 차관을 들이는 조건으로 일제치하에서 국가와 민족이 받아온 치욕과 고통을 무마해주고 마는 한일회담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6.3사태 등의 국민적 저항이 일자, 위기의식을 느끼고 몰염치한 인권탄압극을 저지른 사건이다.
그러나 소기의 목적을 달성치 못한 군부독재정권은 1974년 2차 인혁당 사건을 조작하게 된다. 즉 71년 위수령, 72년 계엄령, 그 해 11월 유신헌법 탄생으로 이어지는 유신정권이 공고화되면서 반공이데올로기로 무장한 채 거대한 조작사건을 벌이게 되는데, 이것이 바로 1974년 북한의 지령을 받아 유신체제에 반대하던 ‘민청학련’을 배후 조종해 국가를 전복하고 공산국가를 건설하려했다는 혐의로 23명이 구속되고 이중 8명이 역사상 유례없이 형판결 후 20여 시간만에 형이 집행되어 사형된 ‘인혁당 재건위’ 사건이다.
국가권력의 무자비한 폭력 앞에 인간이 지녀야할 최소한의 인권과 자유를 박탈당하고 억울하게 죽어간 이들의 원통을 새삼 말해 무얼 하겠는가?
그러나 우리 현대사의 질곡과 거대한 국가권력 앞에 한없이 나약하기만 한 개인의 행복할 권리가 단순히 30년 전의 얘기일 뿐인지 반문해 보아야 할 것이다.
암울했던 군부독재정권을 거처 문민정부와 국민의 정부가 들어선 지금, 아직도 우리 사회의 정의(正義)가 제대로 세워지기는 요원해 보인다.
부평공장 노동자들의 생존권 투쟁이 고통분담(?)이라는 미명하에 신자유주의 경제정책에 춤추는 정부에게는 불법파업정도로만 비춰지고, 해맑은 두 여중생의 죽음은 미사대주의 위정자들에게 외교적 마찰을 피해야 할 사소한 사건쯤으로 여겨지는 우리 사회에서 30년 전의 사건정도야 가벼운 가십거리로 전락하는 것이 어쩌면 당연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우리는 시간이 조금만 흘러도 줄곧 레테의 강물을 마시기에 익숙해져 왔다. 이는 국가권력이 지녀야 할 최소한의 양심이라는 윤리체계의 부재로 인해 저지른 만행 못지 않은 우리의 부차적 잘못이다. 이제는 진정 므네모시네의 샘물을 마셔야 할 때이다.
강주호 <정치외교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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