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대학은 어디로 가고 있는가?
[사설]대학은 어디로 가고 있는가?
  • 편집국
  • 승인 2007.07.19 11: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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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의 주요 기능은 학문의 전당으로서 교육과 연구를 담당하는 것이지만, 실용적 지식을 전수하는 기능 또한 무시할 수 없다. 그러나 실용적 지식이 주가 되고 올바른 사회적 가치관 함양 및 사회비판기능이 부차적으로 밀려나게 되면 대학은 특정 기능을 연수하는 기술학원 이상의 위상을 부여받기 힘들다.
대학이 제기능을 다하지 못하고 있고, 심지어는 취업훈련소로 전락하고 있다는 최근의 우려는 이와 무관하지 않다. 한국사회에서 대학의 과거 모습이 지금보다 더 건강한 상태였다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20여년간 대학에서 머물면서, 최근 2-3년동안 현재처럼 끔찍한 대학의 상태를 경험한 적은 없었다. 이 끔찍한 상황은 과거 대학이 안고 있는 제반 모순을 채 극복하지 못한 상태에서 신자유주의라는 제국주의 식민지 정책이 대학의 제반 측면에 침투한 결과이기도 하다.
사실 한국사회에서 대학은 교육주체, 대학경영자, 학문의 형식과 내용 그리고 이들의 재생산 구조에서 식민지적 성격을 벗어나지 못한 채 성립되었고, 운영되어왔다. 식민지 지배 도구였던 경성제국대학이 서울대학으로 간판을 바꿔 달면서 '제일'대학이 되었던 사실 또한 짚어보아야 할 점이지만, 유수의 사립대학 설립자들이 친일지주들이었던 바, 이들의 대학 창립관 자체도 재고해 보아야 할 것이다. 빈곤한 교육 관점에 입각한 저비용 고효율 기치 아래서 학생들의 수업권, 교육연구자들의 강의·연구권은 곧잘 뒷전으로 밀려났고, 그릇된 대학경영관에서 비롯된 부적절한 교육관행, 무책임한 처방, 그리고 어거지 주장들이 만연해 있는 실정이다.
대학교수의 자질과 이들의 재생산 구조 또한 대학을 저질화시켜왔던 주요 요인이다. 읽혀지지 않는 논문, 논문을 위한 논문이나마 집필하는 학자는 그나마 자생적 학문 기반 확립과 같은 고상한 잣대만 아니라면 비판을 빗겨간다 해도 묵인해 줄 수 있다.
논문은 고사하고 심지어는 학생들의 창의성마저 저해시키는 케케묵은 강의 노트로 평생을 우려먹는 교수들도 적지 않은 현실이며, 강의. 연구주체의 재생산 통로인 교수채용에 있어서도 지적 능력과 지적 양심이 기준이 되지 못하고, 학연과 친분 금권이 평가의 핵심 기준이라는 사실은 널리 알려져 있다. 심지어는 진보적인 사상관련 문제만 아니라면, 모든 범법행위로부터 보호되고 있는 소위 '철 밥그릇 교수지위'를 생각해 본다면 교권 신장보다는 오히려 교권 제한을 고려해보야야 할 판이다.
그러함에도 한국사회에서 대학은 그 누구도 간단하게 재단할 수 없는 역할을 해왔다. 암울한 역사적 현실에서 그나마 대학이 지켜야할 최소한의 윤리와 도덕을 지켜낼 수 있었던 것은, 최근 까지 한국사회의 민주화와 자주적인 역사를 일궈가는데 있어서 가장 막중한 역할을 담당해왔기 때문이다. 대학이 사회의 퇴폐성을 감시하고 비판하는 역할을 하고 있을 때 대학은 자유와 정의가 넘쳐났다. 그리고 대학이 진리를 사수하기 위한 공동체로서, 반민중적, 반민족적 행태에 대한 투쟁 기지로서의 사명을 다하고자 했을 때 아무도 대학을 위태롭다고 말하지 못했다.
'학문을 위한 학문' '대학을 위한 대학' '사회와 괴리된 대학'의 지향은 우리 대학들을 직업훈련소와 같은 사회의 평범한 생존법칙을 전수하는 장으로 변질시킨다. 대학과 사회가 서로 통풍이 될 수 있을 때, 그리고 대학이 사회 역사적 과제를 자신의 실천적 과제로 받아 안을 때, 대학은 대학으로 거듭 날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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