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학의 위기의 진단과 인문학적 가치의 재고
인문학의 위기의 진단과 인문학적 가치의 재고
  • 편집국
  • 승인 2007.04.05 15: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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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세계는 전지구적 자본주의화가 계속되고 있다. 20세기 후반 냉전체제가 종식된 이래 전지구적 자본주의화는 경주용 자동차처럼 무한질주를 계속하고 있다. 19세기 제국주의열강의 침략이론의 근거였던 적자생존의 자유주의적 패권주의원리가 다시 ‘신자유주의’라는 옷으로 갈아입고 21세기 ‘세계화’(Globalization)를 선도하고 있다. 신자유주의는 국가(궁극적으로는 개인)간의 극단적인 이익추구를 목표로 하는 무한경쟁체제의 원리이다. 작금의 상황은 종목과 체급을 무시한 체 상대가 바닥에 완전히 쓰러질 때까지 사생결단으로 싸우는 이종격투기와 같다. 우승열패 ! 오직 강한 자만이 살아남는다.
신자유주의의 무한질주는 ‘빈익빈 부익부’ 현상을 더욱 심화시켜 장차는 ‘20대 80의 사회’로 갈 것이라는 어두운 전망이 드리우고 있다. 완전한 승리와 처절한 패배를 목표로 하는 승자독식의 무한경쟁론은 부메랑이 되어 다시 자국에게 (테러나 전쟁으로) 되돌아오고 있다. 적자생존에 따른 폭력의 악순환은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다.
소위 학문과 진리의 전당인 대학도 이러한 무한경쟁의 세계화 흐름에서 예외일 수는 없다. 특히 자본과 학문적 기초에 있어서 일천한 대학체질의 역사를 갖고 있는 우리의 경우에는 더욱 그러하다. 선진국 문턱에 다가선 우리가 선진국으로 도약하는 길은 오직 신자유주의적 세계화로 들어서는 길밖에 없다.
대학의 목표는 오직 국가경쟁력향상에 모아져 모든 학문의 경제적 실용화가 급속히 진행되고 있다. 대학기능의 효율성을 극대화할 수 있는 방안으로써 구조조정은 불가피하게 되었다. 이러한 대학의 구조조정과 학문의 실용화(계량화)가 인간정신(순수이론) 탐구의 요체인 인문학을 대학의 변두리(일부학과는 바깥으로)로 밀어내고 있다.
인문학의 목표는 현실을 기초로 하되 현실사회의 당위성 여부를 겨냥한다. 현실은 실제로 당면한 일이요, 당위는 미래에 마땅히 있어야 할 가치이다. 탐탁치 않는 현실은 지금 진행 중에 있으며, 바람직한 당위는 미래의 가능성이다. 현실의 미진함을 만회할 수 있다는 신념으로서의 당위는 인간만이 가질 수 있는 유일한 가치이다.
지금 전 세계적으로 진행되고 있는 무한경쟁의 전지구적 자본주의화가 과연 인류의 보편적 당위성(타당성)을 갖고 있는지를 물어야한다. 이것은 인류의 보편적 가치추구를 그 본령으로 하는 인문학이 해야할 역할이다. 인문학은 미래의 당위를 겨냥하면서 현실적 모순을 근원적으로 추적하는데 우선적 가치를 두고 있다. 인문학은 지금 당장 필요한 실용적 대안을 제시하기보다는 먼 미래를 두고 인류가 共存共榮할 수 있는 당위로서의 보편적인 가치와 정신을 모색한다.
지금 대학은 실용성과 경제성을 가진 일부 분과학문만을 대거 지원함으로써 대학 본래의 기능인 거시적 대안의 이론탐구를 소홀히 하고 있다. 여기서 인문학이 맡아야 할 주요한 임무는 개별학문에 대한 구체적인 논의와 총괄적 검토를 통해 미래의 희망을 제시할 수 있는 보다 깊고 널은 보편적 학문이론의 틀을 이룩하는 일이다.
대학의 역할은 근본적으로 학문과 교육을 통해 미래의 인재를 양성하는 일이다. 이러한 대학의 역할은 모든 학문의 이론적 기초인 인문학적 바탕 위에서 마련되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거시적이고 일관된 자신의 이론적 틀을 가능케 하는 文史哲의 이론적 기초를 통해서 가능하다고 본다. 그러나 여기서 말하는 인문학의 이론적 틀은 고정 불변된 것이 아니라, 인류 보편적 가치와 시대적 특수성을 공유하면서 부단한 자기성찰을 통해 자기변혁을 수반하는 창조적인 이론의 틀로 거듭 나야 한다.

허 증 (사학과 객원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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