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와 가정을 지켜온 모성>운명을 바꾼 전쟁과 폭력 어머니는 자녀에 대한 사랑으로 저항을...
<사회와 가정을 지켜온 모성>운명을 바꾼 전쟁과 폭력 어머니는 자녀에 대한 사랑으로 저항을...
  • 편집국
  • 승인 2007.06.22 14: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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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어머니를 생각하면 전쟁에 나간 남편을 살아 돌아오게 해달라고 온갖 신령에게 치성을 드리던 젊은 아낙의 모습이 떠오른다. 어머니는 그렇게 6백일 넘게 새벽마다 일어나 기도하셨고 남편의 소식은 시신도 없는 한 장의 전사통지서로 날아 들어왔다. 그 전사통지서와 함께 어머니의 새벽 기도도 끝났고 2년간 보냈던 행복한 신혼의 추억은 매일 밤잠자리의 베갯머리를 적셨다.
어머니의 삶과 운명은 일곱 살이던 일제시대에 외할머니가 죽으면서 바로 우리나라 힘없는 민초들의 고난과 아픔의 역사를 대변하기 시작했다. 국가와 민족은 힘없고 의지할 데 없는 한 여성의 삶에 상처를 내고 그
젊은 시절의 어머니
상처가 아물기도 전에 다시 또 같은 자리에 상처를 입히는 잔인한 폭력을 되풀이 했다. 폭력과 무기와 피로 문제를 해결하려는 그리고 권력으로 타인을 지배하고 착취하려는 모든 남성적 논리와 남성적 세계 인식이 첨예하게 구체화되었던 최근 한반도 역사는 사소해보이지만 소중했던 한 여성의 삶을 송두리째 바꾸어 놓았다.
어머니의 삶이 나에게 큰 의미로 다가오는 것은 어머니와 같은 시대를 살았던 많은 다른 여성들의 삶이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비슷한 상처와 아픔을 경험하고 있기 때문이다. 어머니의 삶이 나에게 더욱더 중요하고 커다란 의미로 다가오는 것은 그 상처와 아픔을 치유하고 극복하는 방법이 동시대를 살았던 다른 많은 어머니들의 삶과 크게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그 치유와 극복의 방법은 자식을 낳고 키우고 보살펴서 하나의 굳건한 생명으로 자라게 하는 사랑이었다.
어머니는 자신의 운명을 뒤바꾼 전쟁과 폭력 그리고 남성적 지배 구도에 복수를 시도했다. 그 복수는 나를 낳고 나를 키우고 보살피는 것이었다. 어머니는 폭력과 피에 폭력과 피로 복수한 것이 아니라, 상처와 아픔에 상처와 아픔으로 복수한 것이 아니라, 나를 잉태하고 나의 생명을 보듬어 안고 내 생명을 아끼고 자라나게 함으로써 그 거대한 남성적 논리에 저항하고 항거했다. 어머니와 나 둘만 앉아있던 그 수많은 외로운 저녁 밥상에 어머니는 내가 먹고 자랄 영양가 높은 자양분을 마련하느라 끊임없이 분주하셨다.
오늘도 어머니가 정성스럽게 끓여주신 된장국을 먹으면서 나는 어머니의 변하지 않는 생명에 대한 사랑의 정신을 확인한다. 폭력과 전쟁과 죽음의 논리에 대한 어머니의 투철한 저항정신을 확인한다. 어머니가 큰 상처와 아픔을 겪으면서 실천했던 그 생명과 사랑의 정신, 나도 내 자식에게 전해줄 수 있기를 바란다. 내 자식이 또 그 자식에게 전해서 그리고 그 자식이 다시 또 자기 자식에게 전해서 이 세상이 우리 어머니들로 가득 차길 소망한다.
김경식(영어영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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