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3회 천마문화상] 수상자 인터뷰
[53회 천마문화상] 수상자 인터뷰
  • 영대신문
  • 승인 2022.12.01 16: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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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상] 꽃과 닻- 권승섭(명지대학교 문예창작학과)

 

 53회 천마문화상에서 작품이 대상으로 당선됐습니다. 당선된 소감 한마디 부탁드리겠습니다.
 특별한 마음이 들지는 않았습니다. 안부조차 주고받지 않던 사람에게서 편지가 날아온 것 같은 기분이었습니다. 봉투에 붙은 우표가 예쁘고도 수상해서 한참을 들여다보았습니다. 우표가 예뻐서 편지에는 눈이 가지 않았습니다. 편지는 버리고 우표만 잘라 수첩에 붙였습니다.

 이 작품을 구상하게 된 계기가 무엇입니까?
 하루는 엉뚱한 숙제를 받았습니다. 그것이 무엇인지는 기억이 흐릿합니다. 다만 그날 닻꽃이 활짝 핀 사진을 들고 갔습니다. 늦여름이었습니다. 제법 빠르게 시를 썼습니다. 만족스럽지 않은 기분이었습니다. 그만큼의 기억으로 남은 시입니다. 높은 수위에 버거워하던 여름이었습니다.

 작품을 쓰면서 가장 중점을 둔 부분이 있다면 무엇입니까?
 저는 숲의 요정입니다. 없는 세계를 만드는 일에 공을 들였습니다. 숲을 만들고, 허공을 만들고, 배를 만들었습니다. 비밀도 만들었으나 아득한 일입니다. 공을 들였으나 무엇도 지워집니다. 무엇이든 봉인할 수 있어서 시를 애정합니다. 주문을 외웁니다. 하쉬 에 루디 오 하마르. 아쉬 나 루마 르네 하마르.

 이 작품을 통해 독자에게 주고자 하는 메시지는 무엇입니까?
 쓰다 보니 이 시는 배가 되었습니다. 닻이라고 생각하며 썼으나 그렇게 마무리되지 않았습니다. 시는 휩쓸리고, 시는 잠잠하고, 시는 들썩이고, 시는 부딪칩니다. 쉽지 은 항해입니다. 마음을 잠시 멈추게 하고 짐을 내립니다. 새로운 짐을 싣습니다. 모두의 짐을 실어도 끄떡없는 배가 되면 좋겠습니다.

 이 작품이 본인 스스로에게 어떤 의미가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시 자체가 의미를 지니지는 않습니다. 굳이 생각해보자면 모래알 같아서, 현미경으로 보면 윤곽이 보입니다. 그만큼의 의미입니다. 다만 시를 썼던 과정이 소중할 뿐입니다. 시를 쓰며 어떤 표정을 지었는지, 어떤 마음 가졌는지 모두 흐릿합니다. 그러나 분명 그 시간이 평온했을 것이라 믿습니다.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있으십니까?
 조심스럽게 언어를 쌓아 올려야겠다는 다짐이 듭니다. 배를 모는 입장이 된 것 같아서 조심스러워집니다. 시를 쓰며 위로받는다고 자주 생각했으나, 마음을 다치는 쪽에 가까운 것 같습니다. 많은 것을 잃고, 많은 것이 소실되었으나 여전히 시가 곁에 있습니다. 다쳤으나 온전합니다.

 

>[우수작] 양철 나무꾼과 양철 나무꾼- 박세빈作(영남대학교 철학과)

 

 53회 천마문화상에서 양철 나무꾼과 양철 나무꾼작품이 우수작으로 당선됐습니다. 당선된 소감 한 마디 부탁드리겠습니다.
 스무 살, 막연히 제대로 된 소설 하나를 매듭지어보고 싶다는 생각으로 준비했던 글감이 글 자체로 완성되기까지 조금은 더딘 시간이 흘렀습니다. 그렇게 일 년쯤 묵어버린 이야기를 그대로 죽은 셈 치고 싶진 않아 다시 세상으로 내보인 것인데 그 더딘 시간도 이 자리를 위해 존재했던 것 같네요.

 이 작품을 구상하게 된 계기가 무엇입니까?
 한 전시회를 보고 돌아오는 길이었습니다. 이 작품과 비슷한 주제를 다룬 듯한 전시회였는데, 기계화가 되어가는 사회를 바라보던 시각이 돌아오는 길에 어느새 전이되어 이 작품을 구상한 것 같습니다. 인간의 욕망으로 계속해서 인간을 닮아가는 기계와 그런 기계를 닮아가는 인간의 모순적인 상황을 작품에서 담아보고 싶었습니다.

 작품을 쓰면서 가장 중점을 둔 부분이 있다면 무엇입니까?
 작품 초입, ‘파란유진이 상반되는 처지를 지닌 인물임과 동시에 각각 고유한 사상과 가치관을 대표하는 인물로서 등장시키는 게 가장 중요했다고 생각합니다. 발전하는 기술과 기계에 경쟁의식을 느껴 열등감을 품은 채 기계를 등한시하면서도 완벽한 기계처럼 인간의 한계 없이 무결점한 존재가 되고 싶은 파란. 자유로운 성향의 파란이 점차 가속화된 기계화 사회 속에서 변질한 것과 비례해 여전히 나름의 순수를 유지하고 이 삭막한 세상에서 어떻게든 탈출구를 찾아내려 자유와 공존을 갈망하던 유진. 이 두 인물이 대립하는 지점이 잘 드러나길 바랐고, 후반부 지원이 등장하며 파란과 나누는 대화에 따라 점차 독자에게 전하고자 하는 물음이 명확해지길 원했습니다. 그렇게 복합적인 생각과 깨달음으로 망가져 가는 파란의 심리에 중점을 두며 작품을 썼던 것 같습니다.

 이 작품을 통해 독자에게 주고자 하는 메시지는 무엇입니까?
 파란은 어찌 보면 현대 사회에서 가장 인간적이라 할 수 있는 표상이자, 체념과 순응에 익숙한 사람입니다. 주인공이 극단적인 상황으로 이끌려가는 처절하고 비참한 과정을 통해 획일화와 기계화에 물들어가는 시대 속에서 과연 우리 인간은 어떤 방향성을 갖추어야 하는지, 어떤 지향점을 지니고 살아야 할지에 대한 물음을 던지고 싶었습니다. 독자들로 하여금 그 물음에 대한 고찰, 해결을 궁리할 수 있도록 하는 과정을 열어주었다면 이 작품도 그 나름의 소명을 다한 게 아닐까요.

 이 작품이 본인 스스로에게 어떤 의미가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하나의 가능성이라고 생각합니다. 특히 상을 받으면서는 희구하는 것을 쭉 좇아가도 된다는 응원처럼, 내지는 인정처럼 다가와서 그런 것 같습니다. 작품 속 대화와 말은 독자에게 하고 싶은 말이기도 했지만 동시에 저 자신에게도 건네고 싶던 말이었기에. 제게 여전히 파랑새가 되어줄 글을 사랑하라는 무언의 긍정을 느끼게 하는 작품으로 여기려 합니다.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있으십니까?
 제 인생의 절반 남짓한 시간은 글자와 책을 향유하는 삶이었습니다. 한결같이 그런 삶을 바라보고 싶다는 마음을 선언인 양 뱉고 싶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의미 있는 곳에, 말이 닿을 수 있는 곳이라면 언제든 전하고 싶던 말을 이 지면에 남겨볼까 합니다. 욕심이 주는 삶의 이기는 끝이 없고, 우리는 매 순간 말라갑니다. 위로와 소통이 필요한 시대에 공존하는 여러분. 자유와 희망이 남아 있는 한 행복은 머지않았음을. 영원은 없다지만 영원 같은 평화를 바랍니다. 행복하세요. 감사합니다.

 

>[가작] 돌의 기원- 이형초(단국대학교 문예창작과)

 

 53회 천마문화상에서 돌의 기원작품이 가작으로 당선됐습니다. 당선된 소감 한 마디 부탁드리겠습니다.
 노트북 화면을 보면서 멍을 때리고 있을 때 연락을 받았습니다. 시가 써지지 않았어요. 할 말이 없다고 해야 될까요. 무엇을 쓰든 제 언어는 힘이 없어 보였습니다. 매일 삶에 불편함과 긴장을 느끼고 살아갔어요. 이러다가 영영 할 말이 사라져가는 사람이 되면 어쩌나, 걱정도 들었습니다. 그런데 사실 저는 참 단순한 사람이에요. 제가 가진 불안의 중량이 어떻던, 무심코 찾아온 문자 하나에 쉽게 행복해집니다. 당선 문자를 보고 서프라이즈를 당한 사람처럼 깜짝 놀라다가, 재밌어서 웃다가, 담담해지다가, 갑자기 울었습니다. 기회는 항상 생경한 얼굴로 찾아오는 것 같아요. 일어설 기회를 주셔서 감사합니다.

 이 작품을 구상하게 된 계기가 무엇입니까?
 점점 사라져가는 마을의 정겨운 모습을 붙잡고 싶었습니다. 요즘은 건물도 담도 너무 높게 쌓아 올려져 있는 것 같아요. 더불어 서로에 대한 연대도요. 우리는 지나치게 자신의 얼굴에 담을 세우고, 서로의 얼굴에 돌을 쌓아 올리고 사는 것 같습니다. 사실 우리는 모두 같은 크기의 집을 가지고 있을 뿐이잖아요. ‘평균을 위해 자신의 본래 모습을 감추고, 서로를 경계하고, 담을 쌓고 살아가는 것들에 대해 다뤄보고 싶었습니다. 세상에 완벽한 타인은 없다는 것도요.

 작품을 쓰면서 가장 중점을 둔 부분이 있다면 무엇입니까?
 가장 일상의 이야기를 가져오고자 노력했던 것 같습니다. 부드럽게 훌훌 읽히는 문장 간의 연결을 두고자 퇴고를 여러 번 했어요. 쉽게 쓰인 문장 같으면서도 그 속에 탄탄한 짜임새가 느껴지기를 바랐던 것 같습니다.

 이 작품을 통해 독자에게 주고자 하는 메시지는 무엇입니까?
 타인에게 담을 쌓고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말해주고 싶었습니다. 가장 중요한 건 돌의 크기와 담의 높이가 아닌, 그 사이의 틈새를 들여다보는 일이란 것을요. 기껏 세운 벽을 굳이 허물지 않아도 됩니다. 다만 그 단단한 돌 틈 속에서 보이는 서로의 모습에 대해 한 번이라도 깊이 들여다보는 시간을 가졌으면 좋겠어요. 우리는 생각보다 틈을 내어주면서 돌을 쌓아 올립니다. 적어도 저는 그랬어요. 타인에게 제 모습을 보여주지 않으려고 필사적으로 담을 세우면서도 일부러 돌을 어설프게 쌓아 올리는 제 자신을 보았습니다. 사실 우리 모두가 다 그렇게 살아가고 있다고 생각해요.

 이 작품이 본인 스스로에게 어떤 의미가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처음으로 해방된다.’라는 감정을 안겨줬던 작품이었습니다. 사실 저는 시를 쓰면서 불편한 감정만 느끼지 단 한 번도 편안함을 느낀 적이 없습니다. 내가 쓰고 싶은 시가 아니라 사람들이 요구하는 시를 써야 할 것만 같았어요. 제가 만들어낸 언어에 진심으로 사랑을 느낀 적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이 작품은 오로지 나 자체를 보여줄 수 있는 시였습니다. 나 자체를 보여줬던 시라서, 맘 놓고 쉽게 사랑할 수 있었어요. 밤을 지새우며 몇 번을 퇴고한 작품인데도 그 시간이 마냥 행복했습니다.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있으십니까?
 9
월 중순, 천안의 한 지하 카페에서 선배 두 분과 같이 글을 쓰고 있었습니다. 그때 선배들에게 처음으로 <돌의 기원>을 보여줬어요. 제 글을 보면서 이런 시 오랜만에 읽어본다.”라고 말해줬던 게 아직도 생각이 납니다. 그때는 아무렇지 않은 척 하하, 진짜? 하고 웃어넘겼는데 사실 그 말에 많은 생각들이 스쳐 지나갔어요. 오랜만에 읽는 시란 게 대체 무엇인지요. 아직도 잘 모르겠지만 누군가에게 제 글이 참 반가운 존재였으면 좋겠습니다. 오래된 연인처럼 편안하면서도 여전히 서로에 대해 알아갈 것이 많은, 그런 얼굴이고 싶어요.

 선배님들의 말에 용기를 얻어 천마문화상에 작품을 투고했는데 감사하다고 전하고 싶습니다. 정말 고마워요

 

>[가작] 「某神의 생- 이여진(충남대학교 일어일문학과)

 

 53회 천마문화상에서 某神의 생작품이 가작으로 당선됐습니다. 당선된 소감 한 마디 부탁드리겠습니다.
 진부한 표현이지만 말 그대로 깜짝 놀랐습니다. ‘가작으로 당선됐다는 게 믿기지 않아서 국어사전에 가작을 검색하여 정의를 몇 번이고 읽었습니다. 글을 쓰며 한 번도 생각해 본 적 없는, 멀게만 느껴지던 단어가 부족하기만 한 제 소설에 수식어로 칭해지게 돼서 더없이 기쁩니다. 정말 감사드립니다.

 이 작품을 구상하게 된 계기가 무엇입니까?
 ‘
혼자인 게 익숙해진 두 사람이 만나 변화를 겪는 이야기를 쓰고자 했습니다. 고백하자면 이는 제가 즐겨 쓰는 틀이라 특별한 계기는 없습니다. 다만 추가 키워드로 머나먼 친족, 선택된 죽음, 한 개인의 일생 등을 넣었습니다.

 민망하니 사설을 덧붙여보자면, 천영(이모)은 어릴 때부터 혼자라는 생각에 강하게 사로잡혔습니다. 천영을 살리기 위해선 약이 필요했고 그 때문에 부모님은 돈을 버는 데 힘을 쏟느라 천영과 시간을 보내지 못했습니다. 약 부작용으로 사람들과 어울리지도 못했고요. 현비(‘’)도 부모님의 사망 이후 자신을 꺼리는 친척들의 대화를 듣고, 반기지 않는 친척 집에 머물며 혼자임을 절실히 실감했습니다. 현비는 표면상으로 다시 혼자가 됐지만 9살 때 느꼈던 혼자와는 전혀 다른 혼자의 시간을 겪을 겁니다. 내면으로는 혼자가 아니게 됐으니까요.

 작품을 쓰면서 가장 중점을 둔 부분이 있다면 무엇입니까?
 천영의 심경 변화를 어떻게 풀어내면 좋을지 고민을 많이 하였습니다. 천영은 현비를 맡기 위해 약을 끊었다가 현비의 곁에 더 있고자 다시 약에 손을 댔습니다. 현비와 더 오랜 시간을 보내고 싶으면서도 현비에게 부작용을 보여주고 싶지 않아, 달리 말해 현비를 힘들게 하고 싶지 않아 약을 끊음으로써 생을 마감하려는 천영의 복잡한 심정이 현비와 글을 읽는 분들에게 잘 전해질지 걱정이 됐습니다. (그 걱정은 지금도 풀리지 않았습니다...)

 이 작품을 통해 독자에게 주고자 하는 메시지는 무엇입니까?
 천영에게 약을 먹인 건 가족들이었습니다. 천영을 살리기 위한 목적이었다고 해도 그로 인한 부작용으로 천영은 세상과 사람들로부터 단절되어야 했습니다. 강제로 약을 먹었던 천영은 현비를 위해 약을 끊기도, 먹기도 하였습니다. 현비는 천영의 죽음을 말리고 싶었지만, 천영을 위해 이별을 받아들였고 신도가 되었습니다.

 천영이 한 말들이 제가 전하고 싶은 메시지들이라 생각합니다. 자신보다도 곁에 있는 소중한 이를 생각하는 마음, 죽음은 소멸이 아닌 이어짐이란 것, 단단한 관계는 죽음조차 끊지 못한다는 걸 전하고 싶었습니다.

 추가로, (사람 인)은 두 사람이 기대고 있는 모양새라 합니다. 한문에서 은 보통 이나 타인이란 의미로 쓰입니다. 자기 자신을 가리킬 때는 (몸 기)가 주로 쓰입니다. 나도 개인, 남도 개인인데 은 왜 두 사람의 모양새일까요? 이야기를 읽으시며 의 모양새를 떠올려주시면 좋겠습니다.

 이 작품이 본인 스스로에게 어떤 의미가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이야기를 쓸 때면 인물들에게 제 모습을 조금씩 투영하게 됩니다. 이 이야기에선 현비보다도 천영이 저와 더 닮아 보입니다. 저도 천영처럼 오래도록 외로움에 시달렸고 자신의 존재 이유에 대해 생각하며 죽음이 무엇인지 고민하였습니다. 스스로를 세상으로부터 빗겨나간 존재라 느꼈던 천영은 세상의 일원이 되었고, 자신처럼 혼자였던 현비를 어엿한 어른으로 성장시켰습니다. 저는 그 지경까지 미치진 못했기에 천영을 닮고 싶기도 합니다. 천영과 현비가 배운 여러 추상들도 계속해서 풀어나가고 싶은 과제입니다. 더 나아가고 싶게 만드는 힘을 줘서 아끼는 이야기였는데 이런 소식을 물고 왔으니 더 아껴야겠네요!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있으십니까?
 현비가 천영을 통해 이런저런 추상들을 배웠다면 저는 소설 덕에 익힐 수 있었습니다. 이기적인 데다 공부 말고는 몰랐던 중학생 때 우연한 계기로 소설을 읽기 시작하면서 나만이 서 있을 수 있는 작은 원에서 벗어나 세상을 바라보게 됐습니다. 힘들 때건 슬플 때건 즐거울 때건 이야기를 찾아 버텼습니다.

 가끔 그 원에 들어갈 때도 있지만 오래 머물지는 않습니다. 남들도 궁금하고 세상도 궁금하기 때문입니다. 저는 사람이 바뀔 수 있다는 걸 믿습니다. 천영과 현비처럼 누군가에 의해 바뀔 수도 있고 짧은 소설이나 어느 노래의 가사 한 줄도 크나큰 변화를 일으킬 수 있습니다. 여러분께서도 변화를 끌어내는 이가 되실 수 있을 겁니다. 자신의 변화뿐만 아니라 타인의 변화도 일으키며 서로 잘 살아갑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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