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머리와 가슴으로 걸려 넘어지다
[사설] 머리와 가슴으로 걸려 넘어지다
  • 영대신문
  • 승인 2022.11.21 16: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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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5년은 2차 세계대전 종전 70주년을 맞는 해였다. 더불어 전범 국가 독일이 저지른 가장 끔찍한 만행이었던 홀로코스트를 상징하는 아우슈비츠의 해방 70주년이 되는 해이기도 했다. 당시 독일의 총리였던 메르켈은 아우슈비츠 해방 70주년 추모 연설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인류에 대한 범죄는 공소시효가 없습니다. 우리는 당시의 끔찍한 행위에 대한 지식을 전수하고 기억을 생생하게 유지할 항구적 책임을 집니다.”

 전후 독일의 보수 세력은 나치 과거의 역사를 수치의 역사로 여기며 이들의 범죄를 공식적으로 인정하고자 하지 않았다. 또는 자신들로부터 나치 과거의 역사를 분리하고, 전쟁과 그로 인한 참상의 책임을 온전히 나치에게만 돌림으로써 자신들의 불편한 마음을 자위하려고 했다. 따라서 나치에 의해 저질러진 유대인과 같은 학살의 희생자는 국가적 추모의 대상에서 배제됐다. 트라우마와 같은 과거의 불편한 기억을 애써 소환하려 하지 않았다.

 하지만 70-80년대 시민사회 활동을 통해 독일은 보수 세력의 반대를 무릅쓰고 나치의 희생자를 적극적으로 추모하기 시작한다. 국가 주도로 희생자 추모를 비롯한 불편한 과거를 잊지 않도록 하는 다양한 추모 시설과 추모비를 세운다. 통일 후 수도가 된 베를린에 만들어진 ‘홀로코스트 추모 공원’과 ‘나치에 의해 살해당한 유럽의 유대인을 위한 추모비’ 등은 그 대표적인 사례인데, 이러한 것들은 과거에 대한 국가 차원의 공식적인 속죄를 명시적으로 보여준다. 이처럼 독일은 자신들로서는 기억하고 싶지 않은 과거에 대한 기억을 오히려 국가적 과제로 확립하고 이것을 민주주의 문화의 바탕으로 삼는다. 노벨상 수상 작가 귄터 그라스의 말처럼 그렇게 “과거의 기억을 간직하는 자만이 미래에 대한 희망을 품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독일의 기억문화는 90년대 중반 ‘군터 뎀니히’라는 한 예술가에 의해 시작된 <걸림돌 프로젝트>를 통해 새로운 전기를 맞이한다. 그는 1995년부터 과거 나치에 의해 추방되고 배제되고 학살되었던 사람들이 마지막으로 살았던 집을 찾아내, 그 앞에 가로 세로 10cm 크기의 동판을 바닥에 설치하기 시작한다. 이후 이 프로젝트는 시민네트워크 활동으로 이어져 지금은 전 유럽에 6만 7천여개의 걸림돌이 설치되어 있을 정도이다. 이름, 생년월일, 끌려간 날짜, 죽임을 당한 날짜만 기록되어있는 이 동판은 사람들이 지나다니는 거리 바닥보다 위로 살짝 튀어나오도록 설치되어 ‘걸림돌’이라 불린다. 그가 이렇게 설치한 이유는 다음과 같은 새로운 방식의 기억과 추모를 위해서다. 

 첫째, 기억과 추모는 익명성이 아닌 구체성을 띠어야 한다. 희생자는 ‘희생자’라는 추상적인 명사로서가 아니라 명시적인 이름을 통해 구체적으로 기억하고 추모 되어야 한다. 둘째, 기억과 추모는 일상적이어야 한다. 걸림돌은 희생자의 주변 일상의 사람들로 하여금 관심을 환기시키고, 희생자의 이름을 읽으려면 몸을 굽혀야 하므로 순간 희생자에게 절을 할 수 있도록 만든다. 셋째, 걸림돌은 불편한 진실과 대면하도록 만든다. 걸림돌은 사람들이 실제로 걸려 넘어지도록 하는 것이 아니라 머리와 가슴으로 걸려 넘어지도록 한다. 즉 성찰하도록 만든다. 과거의 잘못을 되풀이하지 않도록 불편한 기억을 잊지 않고 고민하도록 만든다. 

 최근 우리에게도 잊고 싶은 불편한 참사가 벌어졌다. 적지 않은 젊은이들이 희생됐다. 죽음은 죽은 자들 만의 문제가 아니다. 죽음은 한편으로 산 자들의 기억 속에 고통스러운 숙제를 남긴다. 그들의 죽음을 어떻게 기억할 것인가 하는 숙제. 정부는 우선 애도하자고 한다. 그리고 그들을 희생자가 아닌 사망자라고 한다. 구체적으로 그들의 이름과 얼굴이 보이는 것에는 반대한다고 한다. 책임은 진다고 한다. 무한책임을 지겠다고 한다. 앞으로 우리 정부가 그리고 우리 사회가 그들을 어떻게 기억하는지 지켜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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