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봉] 영대신문의 마침표를 찍으며
[영봉] 영대신문의 마침표를 찍으며
  • 정유진 편집국장
  • 승인 2022.11.21 16:4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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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지막 발행을 앞두고, 영자신문에서 인터뷰 요청이 들어왔다. 바쁜 발행 첫 주에 인터뷰 요청이라 심적 부담은 컸지만, 오롯이 2년 6개월간의 영대신문 활동을 찬찬히 곱씹어 볼 수 있는 시간이었다. 

 올해 영대신문은 여러 가지 변화를 시도했다. 몸부림을 쳤다는 표현이 더 정확하겠다. 격변하는 세상에서 살아남기 위해선 변화를 꾀할 수밖에 없었다. 고질적인 문제점을 해결하기란 쉽지 않았다. 그럼에도 학생기자로서 우리가 할 수 있는 것들을 찾아 나섰다.

 방법을 찾기 전 학보의 존재 이유에 대해 비중을 두고 고민했다. 학보의 시대는 갔다고 한다. 이전처럼 공식 언론기관으로서 학내 소식을 독점 전달하는 시절은 갔다. 학생들은 여러 경로와 매체로 학내 소식은 빠르게 전달받는다. 이러한 면에서 신문 매체는 늘 발목을 잡힌다. 그래서 ‘영대신문’만이 할 수 있는 것들을 고민했다. 

 학생들의 목소리를 전달하기 위해 설문조사의 비중을 늘렸고, 재미와 정보 모두를 잡은 글을 전하기 위해 발품을 팔았다. 또한 ‘객관성’과 ‘신뢰성’을 살리기 위해 기사의 글자 하나, 호흡 하나까지도 고민하고 또 고민했다. 

 다음으로 신문 매체의 ‘기록성’에 집중했다. 올해는 개교 75주년으로 다양한 학내 행사들이 진행됐다. 이에 발맞춰 75주년을 기념하는 학교의 모습을 담기 위해 카메라를 들고 펜을 잡았다. 

 퀄리티를 높이고자 과감하게 발행 횟수도 줄였다. 발행 횟수를 줄인다는 것이 어떤 것을 의미하는지 모르는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채우기 위해선 비우는 것도 중요하다는 마음으로 선택과 집중을 했다.

 이러한 노력에도 영대신문이 단순 학교 홍보지로 오해받는 차가운 시선들은 풀리지 않는 숙제였다. 좋은 기사를 전하기 위해 고군분투하지만 학생기자의 벽에 부딪힐 때가 있다. 학생기자들은 다른 학생들보다 학내 사안에 대해 밝다. 다만 알리고자 하는 바를 모두 기사에 적어낼 순 없었다. 매호 학교와 학생 사이에서 외로운 줄을 탔다. 모두의 입맛에 맞는 기사를 적는 것은 어쩌면 불가능할지 모른다는 결론을 내기도 했었다.

 영대신문을 지키기 위한 사투는 후배들이 이어 나갈 것이다. 외부 압력에 현명하게 맞서고 더 나은 신문을 위해 고민하고 시도하길 바란다.

 마지막으로 학우분들에게 한 가지 부탁을 하고 싶다. 학생기자들은 누구보다 학교를 사랑하고 학생들의 편에서 목소리를 전한다. 영대신문이 더 나은 방향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라면 따끔한 질책도 달게 받겠다. 하지만 학생기자들을 따가운 눈초리보단 따뜻한 시선으로 봐주길 바란다. 

 대학생이 된 첫 해, 코로나19의 대유행으로 선배들보다 조금 늦게 기자생활을 시작했다. 시작이 늦은 만큼 동기들과 곱절로 노력했다. 매 호마다 줄어드는 동기들을 보며, “할 거면 끝까지 같이하고 그만둘 거면 다같이 그만두자”는 약속도 맺었다. 약속의 끝맺음에 다가온 지금, 섭섭한 마음보단 시원한 마음이 크다.

 내게 시간을 돌려 영대신문을 지원하기 전으로 돌아갈 수 있다고 한다면 나는 기꺼이 돌아가지 않을 것이다. 영대신문의 문을 두드리고, 편집국장까지 된 오늘날까지 최선을 다했기에 후회는 없다. 아쉬움이 남는 것들에게도 나름대로 의미는 존재하니까. 깨지고 부서지고 다시 붙는 과정에서 키운 맷집은 영원히 나의 버팀목이 돼 줄 것이다.

 선배님들의 영봉을 보며 비슷한 시기에 같은 생각과 고민을 하는 것에 신기함을 느꼈던 적이 있다. 글쓴이는 달랐지만 선배들의 글에는 모두 영대신문에 대한 진한 애정이 묻어 있었다. 내 마지막 영봉에도 영대신문에 대한 진한 애정이 묻어 있길 바라며 글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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