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잣대, 어디로 향하고 있나요?
당신의 잣대, 어디로 향하고 있나요?
  • 장효주 기자, 곽려원 준기자, 황유빈 준기자
  • 승인 2022.10.04 16:5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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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까 왜 그런 옷을 입었어” 성범죄 피해자에게 아무렇지 않은 듯 던져지는 말들이 더 큰 가해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가? 
본지에서는 2차 피해가 무엇인지 알아보고, 2차 피해가 발생하는 이유와 함께 2차 피해자 보호를 위해 필요한 제도에 대해 살펴봤다.

피해자에게 가해지는 두 번의 폭력

 지난 2017년 ‘한국여성의전화’에 따르면 성폭력 피해 상담 869건 중 2차 피해 경험이 드러난 사례는 총 168건으로, 전체 피해 상담 중 19.3%를 차지했다. 이처럼 피해자는 또 다른 폭력을 마주하기 쉽다.

 증가하는 2차 피해, 부족한 인식=여성폭력방지기본법에 따르면 2차 가해는 ‘성범죄 등의 범죄 피해자에게 피해 사실을 근거로 피해자를 모욕하거나 배척하는 행위’를 의미한다. 인하대 강간살인사건 당시 일부 네티즌들은 피해자의 평소 행실을 지적했다. 이처럼 사건의 발생 원인을 피해자에게서 찾는 등의 행위가 2차 피해에 해당한다. 또한 지난달 21일 서울교통공사는 ‘신당역 스토킹 살인사건’의 피해자를 추모하기 위한 분향소에 유족 동의 없이 피해자 실명 위패를 설치해 2차 피해 논란을 빚었다. 이처럼 2차 피해는 우리 사회 전반에 일어나고 있지만, 2차 피해에 대한 인식은 여전히 부족한 상황이다. 이에 대해 백선행 대구여성회 활동가는 “사회의 고정관념으로 인해 ‘피해자’라는 이미지가 고착화되고, 이와 같은 편견이 언론을 통해 확산되며 광범위한 2차 피해가 발생하게 된다”고 주장했다.

 Focus on 피해자=한국성폭력상담소는 성범죄의 2차 피해가 ▲언론, 사법기관 등의 보도 ▲가해자 ▲피해자에 대한 대중의 무분별한 비난 등으로 인해 나타난다고 밝혔다. 2차 피해에 대한 사회적인 인식 부족 역시 2차 피해의 발생 원인으로 지적된다. 이에 대해 일부 전문가는 성범죄 피해자에게서 범죄의 발생 원인을 찾는 등의 왜곡된 인식이 2차 피해를 발생시킨다고 지적한다. 이정은 한국양성평등교육진흥원 강사는 “사람들은 피해자에게 초점을 맞추면서 자신이 성범죄의 피해자가 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게 된다”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가해자의 시점에서 사건을 바라보며 가해자에게 서사를 부여해 범죄의 무게를 낮추는 등의 현상도 2차 피해의 발생 요인으로 보고 있다. 이에 우리 사회는 지난 2019년 2월 ‘여성폭력방지기본법’을 제정하는 등 2차 피해를 방지하기 위해 움직이고 있다.

 헤어 나오기 힘든 고통=2차 피해는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자살 기도 등의 악영향을 줄 정도로 피해자들에게 정신적인 충격을 가한다. 특히 1차 피해에서 회복하지 못한 피해자가 반복적인 고통을 마주하면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로 이어지기 쉽다. 임낭연 경성대 교수(심리학과)는 “2차 피해에 노출된 피해자는 트라우마로 인한 회복 지연, 자존감 하락 등의 정신적인 피해와 충격을 받을 수 있다”고 전했다.

 연구 사례를 통해 2차 피해는 피해자의 사회생활에 부정적인 영향을 준다고 밝혀졌다. 한국법제연구원이 2011년 발표한 ‘성희롱 관련 법제에 대한 입법평가’에 따르면 2차 피해로 인한 극심한 모욕감은 피해자에게 불면증, 대인관계 기피증세를 발생시켜 사회생활에 부정적인 영향을 주는 것으로 드러났다.

 2차 피해의 또 다른 통로, 언론=2차 피해가 발생하는 주요 통로가 언론이라는 주장도 있다. 법무부 디지털성범죄 등 전문 위원회가 지난 2021년에 발표한 「성폭력·성희롱 간행물 제작 가이드라인 마련」권고안은 가해행위를 미화하거나 모호하게 표현해 가해자의 책임을 가벼워 보이게 하는 용어의 사용을 금지했다. 그러나 지난달 15일 발생한 신당역 스토킹 살인사건에 대해 범죄 도구나 행위를 구체적으로 묘사하는 등 자극적인 보도가 이어졌다.

 백선행 대구여성회 활동가는 “언론사가 조회수를 위해 사건을 자극적으로 보도하는 경향이 심화됐다”며 이 때문에 “사생활 침해나 피해자의 성적 대상화 등의 2차 피해가 발생하게 된다”고 강조했다.

2차 피해, 이제는 그만

 사회에서는 각종 범죄를 예방하기 위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그러나 2차 가해 또한 범죄라는 사실이 정의됐음에도 이를 예방하기 위한 노력은 부족한 상황이다. 이에 본지에서는 2차 피해의 실태와 이를 방지하기 위해 사회와 개인이 각각 어떤 노력을 해야 하는지 알아봤다.

 사라지지 않는 2차 피해, 왜?=“이혼을 여러 번 했는데 어떻게 성폭력 피해자일 수 있습니까? 성 경험이 많아 순수한 피해자라고 보기 힘듭니다” 이는 실제 재판에서 가해자 변호인 측이 피해자 측에게 한 신문으로, 피해자의 과거 행적으로 가해 사실을 정당화하려 한다는 이유로 2차 피해에 해당된다.

 이와 같은 2차 피해를 방지하기 위해 가해자 처벌 규정을 강화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김성미경 한국여성인권플러스 대표는 “피해자를 가둠으로써 보호하는 방식이 아닌 조건부 석방 제도 등 가해자를 제한하는 방식으로 2차 피해 방지책이 이뤄져야 한다”고 전했다.

 한편 일각에서는 현행 성폭력 피해자 보호 법률의 표현이 모호해 우리 사회에서 2차 피해가 발생하기 쉽다고 주장한다. 미국과 영국 법률의 경우 피해자 보호를 위해 ‘과거 성적 행위에 관한 증거’나 ‘임신이나 성병 등 특정 성적 이력’은 법적 증거로 이용될 수 없다고 규정한다. 이에 비해 우리나라에서 시행되고 있는 성폭력 범죄 특례법은 ‘재판 과정에서 피해자의 인격이나 명예가 손상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인격이나 명예 손상에 대한 정확한 기준이 마련돼 있지 않아 재판에서 효율성을 발휘하지 못한다는 비판을 받기도 한다.

 또한 2차 피해의 범위는 여전히 정해진 바가 없다. 2차 피해는 일반적으로 피해자를 비난하고 의심하는 사회·문화적 분위기와 이로 인한 피해를 포괄하는 개념으로 정의되고 있지만, 이와 같은 정의가 적용될 수 있는 범위는 명확하지 않다. 이에 대해 김성미경 대표는 “피해자는 일상으로, 가해자는 감옥으로 갈 수 있도록 제대로 된 제도를 마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피해자는 어떻게 보호받나=우리나라 법률에서는「여성폭력방지기본법」과 형사소송법의 신뢰관계자의 동석, 공판 진행 상황의 통지 항목 등을 통해 피해자의 권리 보호를 위해 힘쓰고 있다. 그러나 해당 법안들에는 2차 피해에 노출된 피해자에 대한 심리지원, 피해자 보호 방안 등 피해자를 직접적으로 지원하고 보호하는 내용은 확인되지 않았다. 이처럼 2차 피해로부터 피해자를 보호하기 위한 직접적인 체계는 부족한 실정이다. 임낭연 교수는 “2차 피해자들의 회복을 위해서 심리치료 또는 상담 전문가의 도움을 제공하도록 법안이 개정돼야할 것”이라고 전했다.

 상처 없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2차 피해에 대한 개인의 부족한 인식 개선 역시 필수적이다. 이를 위해서는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교별로 각 분야별 특성과 눈높이에 맞는 2차 피해 예방 교육이 필요하다.

 그러나 2차 피해를 중점적으로 다루는 교육은 아직까지 부족한 실정이다. 여성가족부 법령에 의거해 구성된 폭력예방교육에서는 성폭력 예방 교육에 2차 피해와 관련된 내용을 포함한다. 그러나 해당 교육에서는 성폭력의 예방에 중점을 둬 2차 피해에 대한 내용은 상대적으로 부실하다. 또한 실제 교육 내용에서는 2차 피해를 준 3가지의 예시만을 제시하고 있다. 이에 대해 이정은 강사는 “피해자의 입장에서 생각하는 공감 능력의 향상에 대한 훈련이 중점적으로 이루어져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앎, 그 너머를 향해

사진 제공 한국성폭력상담소
'보통의 연대' 캠페인에 사용된 피켓
'보통의 연대' 캠페인에 사용된 피켓

 범죄를 예방하기 위한 첫 번째 발걸음은 개인의 인식을 변화시키는 것이다. 그러나 인식이 변화되기까지는 많은 노력과 시간이 필요하다. 이를 바꾸기 위한 방법 역시 어렵기는 마찬가지이다. 그러나 여기, 개인의 인식 변화를 위해 작지만 큰 발자국을 남긴 이들이 있다.

 한국성폭력상담소에 대해 소개 부탁드립니다.
 한국성폭력상담소는 1991년 4월에 개소해 올해 30주년을 맞은 단체입니다. 저희는 성폭력이 발생하는 구조적인 원인을 파악하고 성문화를 변화시키기 위해 활동하고 있어요. 이에 성폭력 피해자들을 보호하고 지원하기 위한 상담 서비스, 쉼터를 운영하며 성범죄 법·제도를 바꾸기 위해서도 노력하고 있어요.

 한국성폭력상담소에서는 지난 2019년부터 ‘보통의 연대’ 캠페인을 진행하신 바 있습니다.
 우리 사회에는 성폭력을 피해자나 가해자만의 문제로 한정하는 인식이 존재한다고 생각해요. 이런 인식을 변화시키고 성폭력 사건에 대한 무관심을 해결하기 위해 ‘보통의 연대’ 캠페인을 진행했죠. 이 캠페인을 통해 사람들이 성폭력의 주변인으로서 어떻게 생각하고 행동하는지를 알아봤어요.

 캠페인 이름을 ‘보통의 연대’라고 짓게 된 계기가 무엇인가요?
 성폭력 피해가 성폭력 피해자 혼자만의 일이 아니라는 의미를 담고 싶었어요. 또한 성폭력이 주변에서도 일어날 수 있는 일이라는 인식을 전하기 위해 ‘보통의 연대’라고 이름 붙였어요.

 성폭력 주변인으로서 성폭력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지에 대한 릴레이 인터뷰를 진행하셨습니다. 
 릴레이 인터뷰는 성별, 나이 등과 관계없이 다양한 사람들을 섭외해 진행했어요. 각자의 경험을 통해 성범죄는 자신과 관계없는 일이라는 인식을 바꾸기 위한 취지로 캠페인을 시작하게 됐어요.

 2차 가해를 방지하기 위한 개인의 실천 방안은 무엇이 있습니까?
 우리는 모두 성폭력 피해자의 주변인이라는 인식이 중요해요. 성범죄 사건을 이야기할 때 부적절한 언행을 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건 아닌 것 같아’라고 말하는 등 동조하지 않는 행동을 보여야 해요. 또한 관련 뉴스의 악성 댓글을 신고하는 등의 사소한 행동도 좋아요. 더불어 관련 집회에 참석하거나 관련 단체에 후원하는 것도 하나의 실천 방안이죠.

 제2의 N번방과 같은 성범죄 사건이 화두 되는 가운데, 이에 대한 2차 피해가 우려되는 상황입니다. 2차 피해를 막기 위해 어떤 노력이 필요하다고 생각하십니까?

 가해자들이 죄질에 맞는 형량을 받도록 제도를 개선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또한 피해자에 대한 관심은 2차 가해로 이어질 수 있으니 피해자에게 관심을 보이려는 행위는 근절돼야 해요. 가장 중요한 것은 성범죄에 대한 개인의 인식 변화라고 생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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