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사회의 문해력을 파헤치다
우리 사회의 문해력을 파헤치다
  • 장효주 기자
  • 승인 2022.03.07 18:0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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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흘 연휴인데 왜 3일만 쉬나요?” 순우리말로 ‘3일’을 뜻하는 사흘을 ‘4일’로 착각해 나온 반응이다. 실제로 지난 2020년 ‘사흘 뜻’은 실시간 검색어에 오르기도 했다. 
이처럼 우리 사회에 ‘문해력 저하 현상’이 화제가 되고 있다. 한편 일각에서는 이와 같은 사례가 문해력 저하 현상이라 보기 어렵다는 주장도 제기된다.


문해력 저하인가 문해 양상의 변화인가

포털 사이트 실시간 검색어에 오른 '사흘’
세 줄 요약에 대한 의견을 표한 게시글


 최근 많은 매체가 우리 사회의 문해력 저하 현상에 집중하고 있다. 일각에서는 우리 사회에 문해력 저하 현상이 나타나기보다 전통적 문해력에서 미디어 문해력으로 문해 양상이 변화한 것이라 말한다.

 문해력 저하 현상, 팽팽한 양론=‘문해력’은 글을 읽고 이해하는 능력이다. 이를 통해 비판적으로 정보를 수용하고 합리적인 의사소통 및 의사결정을 할 수 있다. 그러나 최근 우리 사회에서 문해력의 저하로 보이는 여러 사례가 드러나며 이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

 OECD의 ‘2018년 국제학업성취도 평가’에 따르면 2000년 분석대상국 중 읽기 평가에서 1위였던 한국은 2018년 5개국 중 4위로 떨어졌다. 특히 ‘*축자적 의미 표상’ 정답률은 9년 사이 15% 하락해 5개국 중 낙폭이 가장 컸다. 또한 지난 2020년에는 ‘음성 양성 뜻’과 ‘사흘 뜻’이 실시간 검색어에 오르기도 했다.

 여러 매체에선 이를 ‘문해력 저하 현상’이라 일컬으며, 우리 사회의 문해력 저하를 우려하고 있다. 김기호 교수(국어국문학과)는 “국제학업성취도 평가에 따르면 과거에 비해 오늘날 대중들의 문해력 수준과 의미 구조를 읽어내는 수준은 매우 우려스러운 정도”라는 의견을 밝혔다. 또한 “‘축자적 의미 표상’ 정답률이 현저히 하락했다는 것은 단어 사이의 은유적·환유적 의미 구조를 읽어내는 능력이 약화됐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전했다.

 한편 이와 같은 사례는 문해력 저하로 보기 어렵다는 시각도 있다. 단어 뜻을 모르는 사람들이 증가한 것을 문해력 저하 현상으로 해석하긴 섣부르다는 의견이다. 김현정 한국교육과정평가원 연구원은 “‘축자적 의미 표상’과 같은 가장 기초적인 이해 능력과 관련된 수치가 다른 나라에 비해 낮아졌으나 매우 우려할 수준은 아니라고 판단된다”고 말했다. 또한 국제학업성취도 평가의 수치는 상대적인 수치로 한국은 여전히 참여국 중 상위국에 속한다고 전했다.

 미디어 문해력을 택한 청년들=일각에서는 문해력 저하 현상이 청년들에게서 특히 뚜렷하게 나타나고 있다고 말한다. 실제로 지난해 구인·구직 플랫폼 ‘사람인’이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191개 기업 중 56.5%가 ‘MZ세대 직원의 국어 능력이 이전 세대보다 부족하다’고 답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에 대해 청년세대가 독서보다 영상 매체 시청에 익숙해졌기에 이런 현상이 발생하는 것이라는 주장도 제기됐다. 조병영 한양대 교수(국어교육과)는 “글과 책, 문자에 의존하던 시대에서 다양한 디지털 미디어 및 영상자료를 접하게 되는 시대로 변하며 글을 읽고 쓰는 일에 대한 노출이 줄어들었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이를 두고 청년들의 문해력 양상이 변화한 것이라 말한다. 정래필 교수(국어교육과)는 “많은 이들이 청년들의 문해력이 저하됐다고 말하나 청년들은 전통적 문해력보다 미디어 문해력에 집중하고 있을 뿐”이라 전했다.

 한편 문해력 저하 현상을 다른 시각으로 바라보자는 의견도 있다. 방정원 씨(영어영문3)는 “단문과 영상 매체 위주로 소비하는 시대의 흐름에 따라 언어를 사용하는 방법이 변한 것은 아닌지, 지금 우리가 사용하는 언어가 유효성을 다한 것은 아닌지도 함께 생각해볼 때”라고 전했다.

 *축자적 의미 표상: 필요한 정보를 찾을 수 있게 문장의 의미를 그대로 이해하는 능력


문해력 수준은 곧 ‘사회의 미래’

 우리 사회의 문해력 저하에 관해 전문가들의 의견은 상반돼 나타났다. 그러나 이들은 모두 문해력 증진에 힘써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렇다면 우리 대학교는 학내 구성원들의 문해력 증진을 위해 어떻게 힘쓰고 있을까?

 문해력 저하를 실감하는 청년들=최근 문해력 저하가 사회 문제로 떠오르며 이를 실감하고 있는 청년들도 증가하고 있다. 실제 대학 커뮤니티 ‘에브리타임’을 포함한 다양한 SNS에서는 긴 글의 요지를 파악하지 못해 ‘세 줄 요약’을 요구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한편 이는 우리 대학교 학생 또한 겪고 있는 문제로 나타났다.

 이에 본지에서는 설문조사를 통해 최근 문해력이 저하됐다고 느낀 학우들의 사례를 들어봤다. 조사 결과 문해력 저하를 느낀 학생들은 공통적으로 글의 전체적인 맥락과 주제를 빠른 시간 내 파악하는 것에 어려움을 겪는 것으로 나타났다. 김주영 씨(정치외교4)는 “글을 읽으면 이미지가 연상돼야 하는데 최근에는 음독만 하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고 말했다. 또한 이종화 씨(일어일문2)는 “글을 읽을 때 이해가 안 돼 3~4번 다시 보는 경우가 자주 있다”고 전했다.

 발맞춰 언론사도 변화를 시도하다=최근 젊은 세대는 긴 글을 읽기보다 영상이나 단문 등과 같이 간편하게 볼 수 있는 매체에 이끌리고 있다. 이에 여러 언론사들은 이들을 사로잡기 위해 기사에 새로운 방식을 추가했다. 중앙일보는 ‘바쁜 당신을 위한 세 줄 요약’이란 문구와 함께 기사 하단에 세 줄 요약 공간을 마련했다. 노컷뉴스 또한 기사의 앞머리에 핵심요약 공간을 넣어 기사 내용을 간단하게 나타냈다. 영상 매체에 익숙한 세대들을 위한 움짤, GIF를 첨부하는 기사도 흔히 찾아볼 수 있다. 실제 국민일보, 서울신문, 조선일보, 중앙일보, 한국경제 등의 기성 언론사도 GIF가 포함된 기사를 작성하고 있다.

중앙일보 기사의 하단에 자리한 세 줄 요약

 

 문해력, 이렇게 중요합니다=한편 전문가들은 디지털 미디어 시대에서 문해력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고 말한다. 김현정 연구원은 “문해 환경이 변할수록 독자들은 정보들의 출처가 어디인지, 그 정보가 신뢰할만한지, 글의 관점은 무엇인지 등에 대한 종합적인 판단을 수행할 수 있어야 한다”고 전했다.

 문해력 저하가 많은 문제를 불러일으킨다는 주장도 제기된다. 해당 주장에 따르면 문해력 저하는 ▲공동체적 의사소통 역량 ▲깊이 사고하는 능력 ▲분석적으로 판단하는 능력 ▲정보를 다면적으로 맥락에 맞게 활용하는 능력의 저하를 불러일으킨다. 조병영 교수는 “문해력의 저하는 가짜 정보를 가려내며, 삶에 유용한 정보를 선택하고 생산하는 역량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고 전했다.

 문해력, 놓치지 않으려면=문해력 증진을 위해서는 개인적인 노력과 더불어 사회적 노력도 요구된다. 정래필 교수는 문해력 증진을 위한 개인적 노력으로 ‘기록’의 중요성을 말했다. 또한 “자신의 생각과 느낌을 관념적으로만 갖고 있지 말고 기록을 통해 읽기와 쓰기가 통합되도록 해야 한다”고 전했다.

 한편 조병영 교수는 문해력 증진을 위해 사회적으로 공교육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주장했다. 이와 함께 문해력의 의미와 중요성에 대한 사회적 각성이 요구되며, 특히 아이들을 교육하는 부모, 교육자 등 어른들의 문해력 이해가 우선적으로 증진돼야 한다고 말했다.

우리 대학교 문해력 교육은=우리 대학교는 학내 구성원들이 소통 능력과 기본 소양을 습득할 수 있도록 교양필수 과목으로 ‘융복합 글쓰기’를 운영하고 있다. 김기호 교수는 “‘융복합 글쓰기’ 강의에서 이뤄지는 사고훈련, 표현훈련, 상호 피드백 등을 통해 학내 구성원들의 문해력이 증진될 수 있다”고 말했다. 더불어 우리 대학교의 ▲영남 라이프 아카데미 ▲위대한 명저 읽기 ▲독서토론 등의 강좌 등이 문해력 향상에 도움이 된다고 전했다.

 학내 구성원들의 문해력 증진을 위해 학교 측에서 다양한 노력을 기울여야 할 필요성도 제기됐다. 김기호 교수는 “▲정규 교과목에서 글쓰기 교육 강화 ▲전공 교과목에서도 독서와 토론 수업 활성화 ▲문해력 교육 시스템 개설 등으로 학생들의 문해력을 증진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다”고 밝혔다.

 

문해력과 독서의 연관성을 알아보다

 많은 전문가들이 독서가 문해력에 도움이 된다고 말한다. 이에 윤희윤 대구대 교수(문헌정보학과)를 만나 문해력과 독서의 관계와 문해력 증진에 도움이 되는 책에 대해 알아봤다.

 문해력 저하 현상이 사회에 미치는 영향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문해력을 향상시키는 정도(正道)는 독서율 제고예요. 독서는 경제의 창의성 및 혁신성을 나타내는 경제지수와 상관관계가 높고 인적 자본의 축적 및 질적 제고에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상당하죠. 연구에 따르면 독서를 사회경제적 가치로 환산할 경우, 독서율이 1% 증가할 때마다 사회문화 역량 강화(혁신성 및 시민의식 제고, 삶의 질 향상)에 따른 요소 생산성은 총 0.046% 상승하고 GDP는 0.2% 증가하는 것으로 나타났어요.

 독서가 문해력 향상에 도움이 된다고 생각하시나요?
 그렇습니다. 독서의 중요성을 알린 독일의 염세주의 철학자 쇼펜하우어는 ‘인간은 음식물로 체력을 배양하고, 독서로 정신력을 배양한다’는 명언을 남겼죠. 이는 독서가 인간의 어휘력, 집중력, 사색과 상상력, 비판적 사유를 함양하는 수단이자 삶의 동반자로 간주해야 한다는 것을 함축해요. 따라서 해득력은 독서를 전제로 해요.

 문해력 향상에 도움이 되는 책을 추천해주실 수 있으신가요?
 제가 2019년 출간해 몇 주간 베스트셀러 1위를 기록하며 호평을 받은 「도서관 지식문화사」(동아시아)를 권해드려요. 이는 신화와 전설에서 문명과 문화, 도서관으로 이어지는 동서양의 도서관 중심 지식문화를 체계화한 자료예요. 학술서와 대중서의 양면을 혼합한 것으로 문헌정보학 비전공자가 더 많이 구입해 읽었죠.

 평소 독서를 자주 하지 않는 사람들이 쉽게 읽을 수 있거나 독서에 흥미를 가질 수 있도록 하는 책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특정 책보다는 신문, 얇은 잡지, 수필 등을 읽기를 권장해요.

 마지막으로 문해력 또는 문해력 관련 도서에 관해 하고 싶은 말씀 있으신가요?
 독서는 첩경이 없어요. 수필이 붓 가는 대로 쓴 것이듯 문해력은 읽기, 쓰기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행간을 간파하는데 방점이 있으며, 이를 내면화시켜야 문해력 제고를 기대할 수 있어요. 따라서 특정 도서보다는 쉽게 접할 수 있고 손에 잡히는 가벼운 책을 생활화하는 것에서 출발해 전문적이거나 난이도가 높은 도서의 독서로 발전시켜야 한다고 생각해요.

 

우리말로 문해력 길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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