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2회 천마문화상-시(대상)] 여수
[52회 천마문화상-시(대상)] 여수
  • 조해인(국립순천대 문예창작학과)
  • 승인 2021.11.29 18:2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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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산단의 불빛은 꺼지지 않았다

 바퀴벌레처럼 몰리는 사람들

 옆집의 노동자 A씨는 쥐도 새도 모르게 죽었고

 나는 그걸 어제야 알았다

 주인은 골몰히 머리를 굴리며

 이제 이 방에는 아무도 들어오지 않겠죠,

 내게 물었고 나는 콧구멍에 손가락을 가져다 댔고

 쉿, 우리끼리의 비밀로 해요

 저 끝의 방파제 너머로

 파도치는 폴리스 라인 너머로

 살려달라는 소리는 없었는데 죽음의 냄새도 없었는데

 A씨의 죽음은 알고 싶지도 않았다

 붉은빛이 고개 너머로 보였고

 나는 그것을 거대한 산의 비명이라고 생각했다

 오래 죽음을 생각하는 자에게

 죽음 같은 건 더는 죽음이 아니게 되는 것이다 그것은 가소로운 일이었는데

 우연히라도 벽에 손가락을 가져다 대면

 어떤 짐승의 비명, 산단의 여러 겹 쌓인 무덤

 그 전율이 온몸을 타고 흐르는데

 생존 확인차 들른 엄마가 벽에 몸을 기대고

 나를 보고 물었다

 너도 죽고 싶던 적이 있었어,

 엄마, 죽기 위해서 시를 써요

 말하려다 다시 엄마를 보고 웃는다

 죽기 위해서 살기 위해서

 울지 않으면 어떻게 시를 써요,

 내 마음에 여러 겹 쌓인 무덤의 무게를 생각한다

 A씨를 생각하지 않고선 더는 시를 쓸 수 없는 것인데

 커졌다 작아졌다 바람이 불었고 바람이 조용히 A씨의 장례를 치러주었고 구름은 일렁거렸고

 오래 시를 쓰는 자에게

 시 같은 건 죽은 자의 말을 빌려 쓰는 일이나 마찬가지였다 이것은 꽤 흥미로운 일이었는데

 꺼지지 않은 불빛이 있다 그것이 내 책상 위에도 있다

 눈을 감으면 부스럭, 소리가 났다

 아직도 산이 비명을 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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