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2회 천마문화상] 심사평(소설)
[52회 천마문화상] 심사평(소설)
  • 노상래 교수(국어국문학과)
  • 승인 2021.11.29 18:2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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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응모작은 17편이었다. 작품들의 수준은 고르고 향상되었다. 하지만 공모전에 맞춘 듯한 루틴한 형식의 글들이 보였다. 자동화시스템에 의한 맞춤형 글쓰기로 찍어낸 듯하여 참신함이 떨어진다는 느낌도 함께 들었다.

 17편의 소재는 다양했다. 가상현실, 뺑소니, 사랑, 아동 유기, 반려동물 유기, 학교 폭력, 학원 로맨스, 바둑기사, 여성, 육아, 사이버 제사 문제 등이 만들어내는 이야기는 다채로웠다. 메타버스가 화두인 요즘 IT 기술로 망자의 기억을 재구성해가며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 가는 「재생」은 리얼리즘 소설이 나아가야할 방향을 제시하고 있다는 점에서 좋았다. 그러나 참신함을 작품의 완성도가 따라가지 못한 점은 아쉽다. 뺑소니사건을 다룬 「사슴」은 문장이 단단하나 플롯은 느슨하다. 17편 중 세 작품을 골라 다시 살펴보았다. 참신함, 플롯의 단단함, 그리고 문장의 완성도 등을 살핀 결과이다.

 「당신의 박음질」은 수선집 ‘경이네’로 생계를 삼고 있는 엄마의 애잔한 사랑을 딸인 ‘나’가 담담히 그려내고 있다. 엄마와 이국사람 마이크의 성사되지 못한 사랑이야기를 통해 사람은 누구나 저마다의 ‘구멍’을 갖고 있으며, 그 구멍이 때로는 운명처럼 고독하지만 질기게 삶에 관여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끝끝내 치유되거나 메울 수 없는 구멍의 존재를 확인하는 과정은 고통이지만, 저마다의 삶이 갖는, 모자이크되어 드러나지 않는 무게감을 슬프도록 아프게 잘 그려주었다. 플롯의 단단함이 서사를 돋보이게 한 작품이다.

 「퍼머넌트 레드」는 ‘어쩔 수 없이 그냥’ 태어난 바디페인터 ‘나’와, 낙태 비용을 마련하지 못하면 아이를 ‘어쩔 수 없이 그냥 낳아야 하는’ 임신부 모델 ‘윤’이 <어쩔 수 없음>이라는 의미를 알아가는 이야기이다. 정신적인 공복과 결핍을 지닌 ‘나’와 ‘윤’이 ‘윤’의 낙태를 통해 일치되어가는 과정은 시리도록 서늘하다. 왜냐하면 남성이 만들어내는 폭력이 ‘윤’의 어쩔 수 없음의 직접적인 원인이기 때문이다. 플롯은 돋보이나 문장의 완성도는 아쉽다.

 「타오르는 바닷가로 향하다」는 이루지 못한 아련한 사랑과 출생의 비밀에 관련된 이야기이다. 주인공 ‘기훈’은 석고상에 자신의 아픔을 녹여내는 소조(塑造)예술가이다. 우연히 그의 작업실로 찾아온 ‘연주’를 통해 고통스러운 임신의 비밀을 알게 된다. ‘연주’의 아이는 ‘새 아빠’의 아이이고, 그 아들은 ‘기훈’이 독일에 정착 후 알게 된 입양아 ‘모나한’이라는 사실이 밝혀지는 과정에서 연민과 동정으로만 치부할 수 없는 기훈의 연주에 대한 사랑의 실체가 폭로된다. 그 사랑은 미완으로 끝나지만 ‘모나한’의 출생 비밀이 더해지면서 서사는 훨씬 단단해졌다. 다만 매끄럽지 못한 문장은 흠결로 깁고 보태는 과정이 더 필요한 것 같다.

 입상한 작품이나 그러지 못한 작품들이 만들어지기까지의 고뇌를 안다. 쉼 없는 정진을 통해 더 큰 울림을 주는 작가로 거듭나기를 바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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