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2회 천마문화상] 수상자 인터뷰
[52회 천마문화상] 수상자 인터뷰
  • 영대신문
  • 승인 2021.11.29 18: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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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상]  「여수(시)」 - 조해인作(순천대학교 문예창작학과)

 52회 천마문화상에서 작품이 당선됐습니다. 당선된 소감 한마디 부탁드리겠습니다.
 
기나긴 터널을 혼자 걷고 있는 기분이 들었습니다. 빛도, 사람도, 그곳에는 사랑도 없는 터널 말입니다. 근래 시를 창작하면서 저는 영영 시에 다가가지도, 손을 뻗지도 못하는 사람이 될까 두려웠습니다. 너무나 추웠습니다. 달 밑에서 터덜터덜 자취방으로 돌아오는 동안, 아무렇지 않게 동기와 일상을 공유하는 동안, 목구멍으로 음식물을 삼키는 사소한 일상 동안 소리 없이 울었습니다. 형체도 없는 슬픔은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었습니다. 시를 쓰기가 죽을 만큼 싫어지다 결국, 다시금 시로 돌아오는 기이한 순간을 헤아릴 수 없을 만큼 경험했습니다. 그렇기에 손목에 한 줄을 긋는 마음으로 매일 시를 조금씩 썼습니다. 너덜거리는 손목으로 아파도 해야 할 일이다, 마음먹고 말하면 온 마음을 담아 시를 쓸 수 있었습니다.
 제 손으로 터널의 벽을 짚어가며 출구를 찾는 동안 당선 소식을 들었습니다. 당장 출구를 찾을 수 있다고 말하기는 어렵겠지만, 이제 더는 터널 안이 춥지 않을 것만 같은 예감이 듭니다. 언제나 평탄한 삶을 살아온 저는 ‘사죄하는 마음’으로 시를 씁니다. 시의 곁에 있는 동안 스스로가 한 명의 죄인, 밤새 나약하고 또 나약한 인간이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앞으로도 가장 낮은 자리에서, 낮은 사람으로서, 낮은 문학을 하겠습니다.
 제 시가 누군가의 벅찬 용기가 되었으면, 하고 이 밤에 간절히 바랍니다.

 이 작품을 구상하게 된 계기가 무엇입니까?
 제가 수학하는 학교 건물에는 층마다 테라스가 있습니다. 늦게까지 공부를 해야 할 때나, 시를 쓰고 싶어 학교에 남아있을 때마다 종종 그곳에 나가곤 합니다. 그곳에 있으면 사람들이 산책하면서 대화를 나누는 소리나 종종 뜨는 보름달, 피아노학과 건물에서는 피아노를 연습하는 소리가 들리곤 하지요. 너무나 적막해서 가끔은 바람 소리가 들릴 때도 있습니다. 그러던 와중 건너편 산에서 붉은빛이 번쩍이는 것을 보았습니다. 밤마다 그곳에 나가는 동안, 빛은 꺼질 기미조차 보이지 않았습니다. 한 학기가 지나고 방학이 다가오던 중 저는 그 빛의 근원이 여수 산단의 불빛이라는 것을 듣게 되었습니다. 멀리 여수 산단의 불빛이 제가 있는 곳까지 보이던 것입니다. 한동안 학교에 나오며 그 불빛을 유심히 보았습니다. 마음에 빛을 담아두다가 겨울이 올 때 즈음 테라스에 앉아 시를 쓰게 되었습니다. 고치지 않고 그 자리에서 단숨에 써 내려갔던 것 같습니다.
 낮에는 일하고 저녁에는 잠을 자는 사람과 낮에는 잠을 자고 저녁에는 일하는 사람. 두 사람이 있다는 사실을 분명 알고 있음에도 저는 그 광경이 어찌나 보기에 슬프던지요. 빛이 보이면 언제나 그곳에 사람이 있고, 그 사람은 그곳에서 여전히 노동하고 있고. 문득 이곳에 앉아 아무것도 하지 않고 시만 쓰고 있는 제가 부끄러워졌습니다.
 혹자는 그 야경이 정말 아름답다고 했지만, 저것을 ‘야경’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요. 저 산단에 빛이 나기 위해서는 얼마나 많은 사람이 저곳에 있어야 할까요. 작품 「여수」는 산단의 붉은빛과 제 온전한 부끄러움에서 탄생 된 작품입니다.

 작품을 쓰면서 가장 중점을 둔 부분이 있다면 무엇입니까?
 중점을 둔 부분이라고 정확히 말할 수는 없지만, 작품 안에 온 ‘마음’을 담아 솔직하게 쓰고 싶었습니다. 어떤 화려한 수사나 기법 없이 보고 싶은 대로 보는 것이 아니라, 보이는 대로 쓰고 싶었기에 평소 느끼던 생각들로 시를 쓰려고 다짐했습니다. 아름다운 시도 그 자체로서의 매력이 크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제가 쓰는 시는 아프길 바랐습니다. 불편한 글이 되길 바랐습니다. 보이는 그대로의 세상은 여전히 아프고, 불편하고, 괴롭기 때문입니다. 비명을 내지르는 것처럼 「여수」를 썼습니다.

 이 작품을 통해 독자에게 주고자 하는 메시지는 무엇입니까?
 우리가 눈을 감고 눈을 뜨는 그 순간까지도 여전히 잠 못 이루는 사람들이 세상에 많습니다. 빛이 있으면 언제나 그곳에는 사람이 있습니다. 우리가 편하게 ‘야경’이라 금치 않던 빛이, 연인과 때로는 가족, 친구들과 보내는 평범한 일상들이 그곳에서는 그저 붉은빛 너머의 ‘꿈’인 것입니다. 「여수」를 통해 이런 말을 전하고 싶었습니다. 세상이 좋아졌다고들 하지만, 여전히 사람은 죽어가고 광장에 또다시 서는 일을 반복합니다. 아무도 관심을 주지 않아도, 그들은 광장으로 향합니다. 죽어라 말하지 않으면 누군가는 죽어야 아는 현실. 지금까지도 “죽음 같은 건 더는 죽음이 아니게 되는” 사람들이 도처에 있다는 것. 그 시선에 발을 맞추어주시고, 눈길을 돌려주신다면, 광장을 그냥 지나치는 것이 아니라 멈칫, 하고 A씨를 위해 한 번만 뒤돌아 주신다면, 모두가 고개를 돌리고 옳다고 할 때 어쩌면 그것이 옳지 않을 수 있다고 용기를 내어 말해주신다면, 작품 「여수」는 시 자체로서의 몫을 해내는 것이리라, 굳게 믿습니다. 그것 이외에는 바라는 것이 없습니다.

 이 작품이 본인 스스로에게 어떤 의미가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내일 또 누군가는 광장에 설 것입니다. 제 삶이 바쁘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광장에 오르는 누군가를 외면했던 과거들 모두 제게는 깊은 부끄러움입니다. 작품 「여수」는 종교적인 행위, 고해성사와도 같은 존재였습니다. 울면서, 괴로워하면서, 때로는 죽고 싶을 정도로 힘들어하면서, 제 죄를 다 고백하면서 이 시를 완성했습니다. 여태 죽은 자를 비밀로 하고, 죽음은 알고 싶지도 않았고, 제 마음에 여러 겹 쌓인 마음의 무게를 외면하면서 얼마나 부끄러운 시들을 써냈는지요. 누구도 사랑하지 못하고, 사랑할 수 없는 시들이 불쌍하기도 하면서 동시에는 무척 화가 나기도 하였습니다. 그러나 부족한 용기로 그들을 바라보고 시를 쓰는데, 다시 그들 속에서 용기를 얻는다는 모순을 이 시를 통해 비로소 깨달았습니다.
 “내 생의 주도권은 이제 마음에서 육체로 넘어갔으니 지금부터 나는 길고도 오랜 여행을 떠날 것이다.”라는 기형도 시인의 구절을 기억합니다. 이제 여행을 떠날 수 있겠습니다. 앞으로도 오래 A씨와 함께할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있으십니까?
 
질문지에 답을 달아가기 위해 꽤 많은 시간을 소비했습니다. 어떻게 답을 해야 제 진심이 전해질까 오래 고민하였습니다. 그러나 시인은 시를 통해 말하는 것이라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제 시가 인터뷰를 읽어주시는 분들에게 ‘말’이 되었으면 합니다. 앞으로도 더욱더 열심히 세상을 들여다보고 세상을 쓰는 일을 멈추지 말라는 뜻으로 알고, 매사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사랑을 전해야 할 사람이 너무 많아 이 자리를 잠시 빌립니다. 더불어 제 젊음의 기록에 진정 귀 기울여주시고 수상의 영광을 안겨주신 심사위원 교수님분들과 제52회 영남대학교 천마문화상 관계자 선생님들. “모든 결핍과 궁핍들을 사랑할 수 있을 때 사람들이 너의 시를 사랑하게 될 것”이라고 제 시의 지평을 열어주셨던, 저를 지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사람으로 만들어주셨던 곽재구 선생님과 순천대학교 문예창작학과 네 분의 교수님, 오랜 동료이자 정신적 지주였던 M에게 고개 숙여 깊은 감사 인사 올립니다. 또 밤마다 좋은 시를 쓰지 못해서 이부자리에서 울던 저를 그저 모른 채 외면해주셨던, 그것이 저를 이해하는 최고의 방법이라는 것을 아셨던 선지자 제 어머니와 아버지, 세상의 모든 노동자 A씨에게 수상의 영광을 돌립니다. 사랑합니다.

>[우수상]  「당신의 박음질(소설)」 -  김하진作(한신대학교 문예창작과) 

 52회 천마문화상에서 작품이 당선됐습니다. 당선된 소감 한 마디 부탁드리겠습니다.

 1년 전, 「당신의 박음질」초고를 보시고 ‘어디든 내봐.’하셨던 이미선 교수님께, 그때 그 이야기가 지금 여기에 있다고 이 순간의 좌표를 찍어 보내드리고 싶습니다.

 이 작품을 구상하게 된 계기가 무엇입니까?
 겨울옷의 겉감과 안감을 유심히 만져본 어느 날, 이 이야기가 제게 왔습니다. 추위 속에서 내 몸을 덥히기 위해 서로 다른 재질의 원단이 서로를 붙들고 있었습니다. 그 단단한 결합이 무언가 시치미를 떼고 있는 것 같아 슬퍼졌습니다. 
부드럽지만 얇은 것들은 쉬이 차가워지고, 두텁지만 밀도 높은 것들은 금방 열이 올라 괴로운 듯합니다. 그래서 우리가 포개어 사나 봅니다.

 작품을 쓰면서 가장 중점을 둔 부분이 있다면 무엇입니까?
 엄마의 이야기가 깊어가도 경이가 아닌 우리는 엄마의 옆모습만 어스름히 알 수 있기를 바랐습니다. 얼굴 부분이 뚫린 포토부스처럼 나를 외롭게 하며 동시에 저도 외로웠을 이의 얼굴을 끼워 넣고, 불현듯 그들이 그리워진다면 좋겠습니다.

 이 작품을 통해 독자에게 주고자 하는 메시지는 무엇입니까?
 “(…) 사람은 제 등판을 살피지 못하므로 평생 제 구멍이 깊어지는 것을 모를 것이기 때문이야. (…) 사람에겐 서로의 구멍을 찾아줄 사람이 필요하니까 서로 등 뒤를 살펴주며 살아가자”라는 말을 전하고 싶습니다. 당신이 너무 오래 혼자이지 않기를 바랍니다.

 이 작품이 본인 스스로에게 어떤 의미가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눈물 한 방울 흘리지 않고 우는 기분으로 이야기를 썼습니다. 이야기를 끝맺고서야 제 등 뒤에 난 홈이 선명하게 보였습니다. 내가 외로울 적마다 등 뒤를 살펴준 이들도 떠올랐습니다. 지금은 알아도 언젠가는 다시 까맣게 모를 외로움과 위로의 순간을 이 이야기로 하여금 기억하고 싶습니다.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있으십니까?
 기쁜 날 부르고 싶은 이름이 많은 것은 참 행복한 일인 거 같습니다. 좋은 날 가장 좋은 옷을 골라 입듯이 감사한 이름 사이를 오가며 오늘 입고 싶은 한 분의 이름을 신중히 골랐습니다.
홍수경 선생님, 저의 첫 습작을 기꺼이 읽어주시고 누구보다 열병처럼 앓았던 중고등학교 시절에 귀 기울여주셨던 선생님의 성함을 오늘 말할 수 있어서 기쁩니다. 어쩌면 제 구멍의 가장 깊은 곳을 들여다봐주신 분이 선생님일지도 모르겠습니다. 항상 존경하고 사랑합니다. 
감사합니다.

 >[가작]  「퍼머넌트 레드(소설)」 -  신서현作(단국대학교 문예창작과)

 52회 천마문화상에서 ‘퍼머넌트 레드’ 작품이 가작으로 당선됐습니다. 당선된 소감 한 마디 부탁드리겠습니다.

 ‘퍼머넌트 레드’는 제가 가장 오랜 시간 공들여 퇴고한 작품이었습니다. 이렇게 상을 받으니 그 시간을 보상받은 것 같아 기쁩니다.

 이 작품을 구상하게 된 계기가 무엇입니까?
 
낙태에 관련 기사를 읽다가 이것과 관련해 써보고 싶다고 생각했습니다. 원하지 않지만 아이를 낳는 인물과 낙태를 결심하는 인물 중에 어느 인물을 소설에 작성할지 꽤 오랜 시간 고민했습니다. 그러다가 두 인물 모두 제 소설 속에서 각자의 아픔을 풀어나가고, 서로를 통해 위로받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이 작품을 구상하게 되었습니다.

 작품을 쓰면서 가장 중점을 둔 부분이 있다면 무엇입니까?
 인물의 관계성에 가장 중점을 두었습니다. ‘윤’과 ‘나’라는 인물은 비슷한 점이 거의 없는 인물입니다. 하지만 사랑하면 닮는다는 말처럼 점점 자연스럽게 닮아가는 모습을 그려내고 싶었습니다. 닮아가는 것이 조금 낯설어하지만, 천천히 받아들이는 과정을 통해 이들의 관계성을 부각하려고 했습니다. 

 이 작품을 통해 독자에게 주고자 하는 메시지는 무엇입니까?
 
표면적으로는 준비되지 않은 채 임신한 여성이 갖게 되는, 갖게 될 책임감 혹은 그 이상의 것들에 대해서 메시지를 남기려 했습니다. 낳는 것과 없애는 것 중 맞는 선택지가 있을까라고 누군가 고민을 하기를 바랬습니다. 그렇지만 제가 가장 주고자 했던 메시지는 이런 거창해 보이는 메시지는 아니었습니다. 그저 가끔씩 ‘내가 태어나지 않았다면 우리 부모님은 더 행복하지 않았을까’라고 생각하는 누군가에게 그럴 수도 있지만, 꼭 그렇지 않을 수도 있음을 말해주고 싶었습니다.

 이 작품이 본인 스스로에게 어떤 의미가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대학에 와서 처음으로 쓰고 싶은 걸 쓴 작품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항상 쓰고 싶은 글이 없어서 다른 친구들이 자신이 쓰고 싶은 글을 이야기할 때마다 부러워했습니다. 그래서인지 이번 글에는 제가 하고 싶은 말과 이야기가 잔뜩 들어갔습니다. 이 글을 통해서 전 소설 속 ’나‘의 ’엄마‘같은 존재에게 제 마음을 전했습니다. 제 글을 손에 쥐어줘도 끝까지 않던 사람이 처음으로 제 소설을 끝까지 읽었습니다. 마음이 전해졌나, 전해지지 않았나는 모르겠지만, 그래도 마음에 진 응어리는 풀렸습니다. 그렇기에 저에게 조금은 나아갈 수 있는 용기를 준 작품입니다.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있으십니까?
 최근에 가장 인상 깊게 들었던 말이 있는데, 그건 칭찬을 원동력 삼아서 글을 쓰지 말라는 말이었습니다. 저에게 칭찬과 상만이 글의 원동력이 되었는데, 최근에서야 쓰고 싶은 마음이 어떤 것인지 알게 되었습니다. 상이나 누군가의 칭찬이 뒤따라오지 않았다고 자꾸만 제 글과 글을 쓰는 스스로를 의심하게 되는 나날입니다. 그렇지만, 보상이 뒤따르지 않아도 글을 쓰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가작]  「사람을 사랑하는 방법(수필)」 -  전현수作(건국대학교 사학과)
 

 52회 천마문화상에서 ‘사람을 사랑하는 방법’ 작품이 가작으로 당선됐습니다. 당선된 소감 한 마디 부탁드리겠습니다.
 전혀 기대하지 않고 있던 상인지라 상당히 놀랐습니다. 아직 너무나도 부족한 저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의 글을 보시고 좋게 평가해주신 모든 여러분들께 진심으로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돈을 위해서나 명예를 위해서가 아니라 그저 저의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글을 쓰는 것이 좋았던 저에게 이 상은 너무나 큰 영광이었습니다. 다시 한 번 감사드립니다.

 이 작품을 구상하게 된 계기가 무엇입니까? 
 누구나 마음속에 상처를 안고 살아갑니다. 그리고 제가 겪은, 또한 제가 목격한 바에 의하면 우리가 경험하는 대부분의 상처들은 인간관계에서 비롯되는 것이었습니다. 저 역시 많은 사람들이 겪고, 또 가슴 속에 묻고 살아가는 상처를 겪었습니다. 장애에서 비롯된 상처와 고통, 학교폭력으로 인한 상처를 말입니다. 저는 그 상처를, 상처받은 제 자신을 이겨내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저는 수많은 도움 덕에 저의 상처를 딛고 다시 세상으로 나올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 세상에는 자신의 상처를 직시하고, 자신에 맞서 싸워 이겨내지 못하고 정처 없이 방황하고 있는 수많은 사람들이 있기에 저는 그 사람들을 위해 이 글을 쓰게 되었습니다.

 작품을 쓰면서 가장 중점을 둔 부분이 있다면 무엇입니까?
 저는 제가 겪은 일들을 있는 그대로 말했습니다. 제가 가장 중점을 둔 부분은 저도 잘 알지 못했거나, 미처 기억하지 못하고 있었던 제 자신을 다시 탐구하고 성찰하는 것이었습니다. 이 글을 쓰기 위해 저는 저 자신게 더 솔직해지고, 제가 살아온 길을 다시금 되돌아보았습니다. 이 글은 제가 살아왔고, ‘싸워왔던’ 지난날들을 되돌아본 결과입니다.

 이 작품을 통해 독자에게 주고자 하는 메시지는 무엇입니까?
 저는 장애를 가지고 태어났고, 장애로 인해 학교폭력을 겪었으며, 그 상처를 세상에게, 그리고 제 자신에게 돌리고, 마음의 문을 닫아걸었습니다. 다시는 나오지 않을 줄로만 알았던 세상으로 나오는 과정에서 저에게는 엄청난 용기와 노력이 필요했지만 그 용기와 노력은 저를 배신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여러분이 다시 세상으로 나왔을 때, 여러분은 생각보다 세상이 따뜻하기도 한 곳이라는 것을 알고 놀라워할 것입니다. 제가 그렇게나 두려워하던 대안학교를 입학했을 때, 시행착오도 있었지만 그들이 저를 사랑으로 품었을 때, 저는 마침내 제 상처를 조금씩 내려놓을 수 있었으니까요. 도전하기를 두려워하지 마세요. 다시 사랑하기를 두려워하지 마세요.

 이 작품이 본인 스스로에게 어떤 의미가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저에게 이 작품은 거울과도 같은 의미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상술했듯 이 글을 쓰기 위해 저는 수차례 저 자신을 다시 되돌아보고, 성찰했습니다. 그리고 그 성찰의 결과 저는 제 자신을 더욱 사랑하게 되었고, 자존감이 높아지는 계기가 되기도 했습니다. 유명한 곤충학자이신 최재천 교수님이 그런 말씀을 하셨지요. ‘알면 사랑한다.’ 사랑이라는 말의 의미가 무엇이던, 저는 제 자신을 더 잘 알게 됨으로서 더 많이 사랑하게 되었습니다.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있으십니까?
 강철의 연금술사라는 유명 만화에는 이런 말이 나옵니다. ‘고통을 수반하지 않는 교훈에는 아무 의미가 없다. 그러나 마침내 그 고통을 이겨냈을 때, 우리는 그 어떤 것과도 비교되지 않는 강철 같은 마음을 얻게 된다.’ 그 강철 같은 마음을 얻기 위해서는 등가교환이 필요합니다. 계속 도전하고, 계속 실패하고, 또 계속 도전하는 것이지요. 아마 제가 공모전에서 수상한 글들보다 탈락한 글이 10배는 더 많을 것입니다. 계속 도전하고 또 도전하는 것 그 자체에 의미를 둬보세요. 언젠가 뒤를 돌아봤을 때, 여러분을 진정으로 받아들이고 사랑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것이 도전의 가치입니다.
 어쩌면 제가 진정으로 싫어하던 것은 세상도, 사람도 아닌 제 자신이었을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제가 배운 것은 ‘다른 사람을 사랑하는 방법’이전에 ‘나 자신을 사랑하는 방법’이었을지도 모릅니다. 아이러니한 일이지요. 남을 사랑하기 전에 나를 사랑해야 하고, 남을 더 잘 사랑하려면 나를 사랑해야 한다는 것이 말입니다. 우리는 남의 사랑을 통해 나 자신을 사랑할 원동력을 얻는다고 배웠으니까요. 우리가 선후가 뒤바뀐 이야기를 듣는 이유는 역설적으로 나를 먼저 사랑하는 것이 그만큼 어렵기 때문입니다. 나 자신을 사랑하기 위해서는 어떤 대가도, 흥정도 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또 나 자신은 절대 속일 수 없기 때문이기도 하지요. 그 말은 상술했듯이 정면으로 도전하는 것 말고는 없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그저 나 자신을 직시하고 받아들이는 것, 그러나 멈추지 않고 계속 도전하고 나 자신을 위해 투자하고 앞으로 나아가는 것. 그것이 나 자신을 사랑하는 방법입니다.
 그리고 저는 지금도 이 어려운 가르침을 배우고, 실천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여러분들도 한 번쯤은 다시 뒤를 돌아보고 나를 꼭 끌어 안아줄 기회를 가지셨으면 좋겠습니다. 다시 한 번 진심으로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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