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커리어 그리고 가정
[사설] 커리어 그리고 가정
  • 영대신문
  • 승인 2021.11.15 18: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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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확의 계절이다. 평소 즐겨 보는 “유 퀴즈 온 더 블록”이라는 프로그램에서도 가을을 맞아 ‘수확의 계절’을 주제로 그에 걸맞은 게스트를 초대했다. 그 가운데 눈길을 끈 게스트는 우리나라 1세대 여성학자인 박혜란 작가였다. 박혜란 작가는 우리에게 ‘이적 엄마’로 더 유명하다. 실제로 대부분의 매체에서는 ‘이적 엄마’를 기사의 타이틀로 잡아 나를 포함한 독자들의 관심을 수확했다. 대중의 관심을 모으는데 우리나라 1세대 여성학자라는 타이틀보다 이적의 엄마라는 타이틀이 더 적절했으리라 짐작해본다.

 우리나라에서 여성이 양육하는 책임을 온전히 혼자 짊어지게 된 순간 ‘누군가의 엄마’로 더 많이 불린다. 이쯤에서 눈치를 챘겠지만, 나는 여성이 일과 가정을 양립하는 문제에 대해 생각을 정리해보고자 한다. 혼자서는 정리하기 힘든 문제였는데 다행히 도움을 받은 책이 있었다. 클라우디아 골딘(Claudia Goldin)의 ‘커리어 그리고 가정’이라는 책이다. 여러 면에서 공감이 가는 부분이 많아 나의 생각인 척 정리해보고자 한다.

 이를 위해 지금부터 민감한 문제를 짚고 넘어가야 한다. 바로 성차별에 대한 것이다. 구체적으로는 성별에 따른 소득 격차에 대한 문제이다. 이를 확인하기 위해서는 실제 자료를 바탕으로 한 과학적인 검증이 필요한데 회귀분석이라는 통계 도구를 사용해 성차별을 조사한 실증연구가 존재한다. 이들 연구에서는 시카고 대학 비즈니스스쿨에서 MBA를 받은 남녀 2,500명을 표본으로 해 임금 변화 궤적을 조사하였다. 졸업 후 초봉은 남성과 여성이 매우 비슷했으나 10년 후에는 남녀 간 임금 격차가 크게 벌어진 것으로 나타났다. 이러한 임금 격차가 성차별에 의한 것인지를 분석한 결과 결론적으로는 대부분의 임금 격차는 성차별에 의해 설명되지 않았다. 성별에 따른 소득 격차가 증가하는 주요 원인은 MBA 재학 중 받은 교육의 차이, 커리어 단절, 주당 근무 시간 차이에 의한 것으로 나타났다.

 우리는 한 가지 사실에 관심을 기울일 필요가 있다. 남성과 여성의 소득수준은 동일한 출발선에서 시작하지만, 졸업 후 10년 정도가 지나 상당한 수준의 소득 격차가 발생하는 이유가 경력단절과 연관돼 있다는 것이다. 여성이 커리어와 가정의 두 영역 모두에서 성공하고 싶다면 수없이 어려운 선택들에서 결정을 내려야만 한다. 적어도 부부 중 한 명은 집에 무슨 일이 생기면 회사에 있다가도 집으로 달려올 수 있어야 한다. 지금까지 여성이 대부분 이 역할을 맡아왔기 때문에 경력단절로 인한 소득 격차를 감수할 수밖에 없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우리 사회는 어떻게 더 높은 수준의 성 평등을 이룰 수 있을까? 혹은 여성은 커리어와 가정의 두 영역 모두에서 성공할 수 있을까? 골딘 교수는 이 질문에 대해 탐욕스러운 일을 유연한 일자리로 변화시켜야 한다고 답한다. 더 이상 출산 후 육아의 부담을 개인에게만 부담시킬 수는 없다. 노동이 구조화되어 있는 방식을 변화시키지 않는다면 현재 우리 사회가 직면하고 있는 노령화 문제, 출산율 저하 문제를 해결할 수 없을 것이다.

 오늘 아침에도 젖은 머리를 휘날리며 아이를 어린이집에 맡기고 연구실 문을 힘차게 열고 들어오는 나의 제자 ‘아진이 엄마’가 ‘혜진’으로 우뚝 설 수 있길 바라며 이글을 마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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