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연민과 공포
[사설] 연민과 공포
  • 영대신문
  • 승인 2021.09.27 15: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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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느 날 아리스토텔레스는 비극에 관한 지침서를 만들겠다고 마음먹는다. 아리스토텔레스가 살았던 당시 그리스 사회의 가장 큰 오락거리는 비극이었는데, 대부분의 비극작가가 시나리오를 엉터리로 써 무대에 대충 올리곤 해서 전혀 감동을 주지 못했기 때문이다. 예컨대 무대에서 사건이 진행되다가 갑자기 하늘에서 줄을 타고 신이 나타나 “여러분 이제 연극은 끝났으니 집으로 가세요!”라고 말하는 식이다. 이걸 “신의 기계적 출현 deus ex machina”라고 하는데, 오늘날로 말하면 영화를 보고 있는데 중간에 갑자기 스크린이 꺼지더니 누가 나와서 “영화 끝!” 하고 외치며 영화관을 나가라고 하는 격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생뚱맞고 치밀하지 못한 이야기에 ‘재미와 감동’이 없는 무대를 보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결국 아리스토텔레스는 비극에 관한 일종의 참고서인 <시학 Poetics>을 만들어 당시 작가들로 하여금 제대로 된 드라마를 쓰도록 한다. 여기에서 아리스토텔레스가 요구하는 걸 오늘날 방식으로 바꾸어 단순하게 말하면 소위 ‘재미와 감동을 주는 이야기’인데, 그러한 이야기 창작을 위해서는 ‘연민과 공포를 통해 감정의 정화작용인 카타르시스’를 발생시키는 것이 중요하다. ‘연민과 공포’라는 것은 관객이 무대 위 주인공이 겪는 비극적 운명에 대해 함께 아파하고 두려워하는 감정 상태를 의미한다. 다시 말해 관객이 무대 위 주인공이 겪는 비극적 사건과 운명에 ‘공감’하도록 이야기를 만들어야, 관객은 그 이야기에 몰입하게 되고 결국 ‘재미와 감동’을 느낀다는 것이다. 고대 그리스 사회의 비극이 오락과 더불어 공동체의 교육과 결속을 다지는 기능을 했다는 점을 고려하면, 영향력 있는 철학자가 왜 그렇게 비극에 집착했는지 이해가 간다. 공감을 통한 재미와 감동이 한 공동체의 지속가능성을 위한 중요한 요소였던 것이다.

 우리 학교는 올 해 새로운 총장이 취임하며 여러 분야에서 변화를 모색 중이다. 대학 환경을 둘러 싼 위기 담론 아래 ‘개혁’, ‘혁신’, ‘변화’, ‘구조 조정’ 등과 같은 단어들이 더불어 캠퍼스 도처에서 튀어나온다. 이와 관련하여 단과대학 개편과 정원 조정, 강의 개편과 학과 신설 및 통폐합 등이 구체화되어 곧 진행될 예정이다. 위기의 시대 대학 생존의 문제가 걸려있다며 분야별로 다소간 급격한 변화를 주장하기도 하는 이러한 요구에는 절박함과 필연성이 엿보인다. 하지만 이러한 ‘변화와 개혁의 드라마’는 구호에 그치지 않아야 한다. 무엇보다 그것이 용두사미가 되지 않고 지속가능한 것이 되려면 전체 구성원들의 ‘공감’이 있어야 할 것이다. ‘공감’을 통해 구성원들에게 ‘재미와 감동’을 주는 변화와 개혁이 되어야 할 것이다. 그렇지 못한 변화와 개혁은 공포가 되어 외면을 받을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 대학이 추진하고 요구하는 ‘혁신안(방향)’이 구성원들의 ‘연민과 공포’를 자아낼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PS: 아리스토텔레스는 또 다른 저서 <수사학>을 통해 진정한 의미로서 타인을 설득하여 행동을 바꾸기 위해서는 설득보다는 이해를, 이해보다는 공감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이를 위해 그가 강조하는 3가지는 로고스, 에토스, 파토스다. 로고스는 논리를 뜻하는 말로 그 주장의 근거가 이치에 맞아야 한다는 것이며, 에토스는 도덕적으로 윤리적인 의리를 나타낸다. 파토스는 열정을 의미하는 단어로 본인이 신념을 갖고 열정을 드러내며 말해야 비로소 타인이 공감할 수 있다고 한다. ‘공감’을 하면 ‘재미와 감동’은 자연스럽게 따라온다. ‘공감’을 얻는 변화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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