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마로를 거닌 사람] "관심과 용기를 갖고 세상을 바라보세요"
[천마로를 거닌 사람] "관심과 용기를 갖고 세상을 바라보세요"
  • 조현희 기자, 신가은 준기자
  • 승인 2021.09.27 15: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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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구시민이라면 한 번쯤은 시청했을 대구MBC 방송. 대구MBC에서 30년 가까이 방송기자로 활동한 후 사장까지 맡은 박영석 동문(법학과 78학번)을 빼놓고는 우리 지역의 뉴스 역사를 설명하기 어렵다. 본지에서는 영대신문 기자 활동을 거쳐 수십 년간 언론인으로 활동하고, 지역 문화에 남다른 애정을 갖고 있는 그를 만나 이야기를 나눠봤다.

 우리 대학교 법학과에 진학하게 된 배경이 있나요?
 당시 문과생들에게는 법과대나 상경대 학부(과)들이 인기가 높았어요. 특히 법과대는 청운의 푸른 꿈을 안은 학생들이 도전장을 내보는 학과로 여겨졌고, 시골 출신이라 그런지 그때는 법학과만 눈에 들어왔어요.

 학부 시절 어떤 학생이셨나요?
 법학과의 경우, 고시를 준비하는 학생들은 삼삼오오 고시촌에 들어가는 등 일찍부터 고시를 준비해요. 그래서 그들은 일반 학생들과는 하루하루 생활자체가 다르며, 그런 대학생활을 하지 않으면 당연히 다른 길로 갈 수밖에 없죠. 저는 후자였습니다.

 선배님께 ‘영남대학교’란 어떤 의미인가요?
 언제나 품어주고 안아주는 어머니 같은 존재예요. 늘 찾아가고 싶고, 생각만 해도 마음이 편해지는 고향이기도 하죠. 모교란 이처럼 누구에게나 자신을 지탱해주는 주춧돌인 것 같아요.

 법학을 공부하다 언론인이 되셨습니다. 언론인이 되는 데 도움 되는 학문이 따로 있나요?
 언론인이 되기 위해서는 특정 전공이 유리하고 불리할 게 없다고 생각해요. 중요한 것은 세상을 보는 눈과 의지예요. 뚜렷한 관점과 의지가 있으면 기자로서의 자질은 거의 갖춰졌다 볼 수 있고, 그다음의 것들은 훈련하고 배운 후 익혀나가면 돼요.

 학부 시절 영대신문 15기 기자로 활동하셨습니다. 영대신문에 입사하게 된 계기가 무엇인가요?
 법학과에 입학하자마자 끌린 것은 사법고시 공부 같은 것들이 아니라 기자 활동이었어요. 고등학생 때부터 신문을 매일 빠짐없이 받아봤고, 일간신문 독자란에 투고해 원고료도 받곤 했으니 일찍부터 언론에 대한 관심이 남달랐죠. 그러다 어느 날 ‘영대신문 기자 모집’이라는 공고를 보고 바로 지원서를 제출했어요.

 영대신문에서 작성하신 기사 중 기억에 남는 기사는 어떤 것이 있나요?
 당시 우리 대학교 캠퍼스가 대구에서 경산으로 이전된 지 얼마 안 된 때였어요. 그래서 교통 문제, 대학가의 환경 문제 등이 가장 중요한 과제로 떠오르곤 했는데, 해당 문제들을 집중적으로  취재했던 기억이 나네요.

 영대신문 활동이 선배님의 인생에 어떤 역할을 했나요?
 대학신문 기자 활동을 한 것이 바탕이 돼 언론의 길로 나아가게 됐어요. 그것이 또한 인생이 됐다고도 할 수 있겠네요.


 대구MBC 설립 이래 최초의 대구MBC 기자 출신 사장으로 알고 있습니다. 대구MBC에서 30년 가까이 일하시면서 가장 기억에 남는 방송 활동이 무엇인가요?
 운이 좋아서 사장까지 올라 방송경영을 맡았죠(웃음). 그 많은 순간을 채운 무수한 기억들이 유리알처럼 또렷하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치열했던 순간은 매일 밤 생방송으로 진행한 <뉴스데스크> 앵커 시절이었다고 생각해요. 당시의 생방송 순간들은 지금 생각해도 가슴이 뛰어요. 지금 이 순간도 그때의 방송 현장으로 달려가고 싶을 정도로, 생방송 현장은 뜨거웠고 그 치명적인 매력은 역시 지울 수가 없죠.

 대구MBC 사장으로 재임하던 시절, 유명 뮤지컬 공연과 전시, 이벤트 등 문화 관련 사업을 대폭 확장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지금도 역시 문화가 대세고 문화가 답이라고 말하는 시대예요. 당시에도 문화방송이 가진 힘과 지역의 문화적 특성 등을 봤을 때, 문화가 회사나 지역 성장의 지렛대가 될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특히 지방에서는 처음으로 대구에 뮤지컬 <오페라의 유령> 공연을 기획해 석 달 간이나 공연을 이어갔고, 이것은 전국적으로 큰 뉴스가 됐어요. 이를 계기로 대구는 전국 최고의 문화도시라는 자부심을 느끼게 됐고, 대구에서 각종 축제가 전 국민들의 관심 속에서 개최되기 시작했죠.

 대구MBC 기자로서 개인적으로 이룬 성과도 많습니다. 소개 부탁드립니다.
 방송활동을 오래 하다 보면 운도 따르고 기회가 주어지기도 해요. 이런저런 상도 받았지만, 2009년 제36회 한국방송대상을 받은 것을 큰 행운으로 생각해요. 또한 기자와 앵커, 토론사회자로 많은 활동을 하다 보니 어느 순간에는 공부를 더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이에 오래 걸렸지만, 정치학박사 학위도 수여 받았죠. TV토론을 주제로 한 책을 내야겠다는 마음도 먹게 돼 『선거방송토론』, 『TV토론시대』라는 책을 출간하기도 했습니다.

 오랜 시간 언론인으로 활동하시면서 가장 부끄러웠던 순간 혹은 잊고 싶은 순간도 있었을 것 같습니다.
 대구MBC에 입사한 지 3년쯤 되던 6·10 민주항쟁때가 특히 그랬어요. 1987년에는 매일최루탄이 난무하는 치열한 시위가 펼쳐졌지만 보도는 제대로 되지 않았어요. 30대 초년병 기자로서 경찰서를 출입하던 시절이었는데, 매일 최루탄을 마시며 시위 현장을 쫓아다녔지만, 그저 열심히 취재만 할 뿐이었어요. 기자라고 말할 수도 없는 당시의 자괴감은 어떤 것과도 비교할 수 없었죠. 돌아보면 어디 그것뿐일까요.

 오늘의 언론에 대해 한마디 하신다면 어떤 말씀을 하시겠어요?
 우리나라 언론은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 독재 권력과 싸워온 역사예요. 하지만 현재는 그때와 또 다른 위기의 시대예요. 뉴미디어가 넘쳐나면서 전통미디어와 치열한 다툼을 전개하다 보니 뉴스의 신뢰도와 질이 급락하는 위기를 맞고 있어요. 이렇다 보니 알 권리의 수호자로 통하던 기자가 ‘기레기’로까지 폄하되기도 해요. 그러나 결코 남을 탓할 수도 없어요. 해결자는 역시 언론 스스로예요. 이제는 언론이 먼저 문제의 실상과 위기를 뼈저리게 인식하고 극복하기 위해 노력해야 해요.

 대구MBC 사장을 마치고는 대구문화재단 대표를 맡기도 하셨습니다. 선배님께서 생각하시는 ‘문화’란 무엇인가요?
 문화란 삶을 둘러싼 여러 가치 중 ‘어떤 가치보다도 우선하고 높은 가치’라고 할 수 있어요. 그래서 문화를 음미하고 꽃피게 하는 일은 소중해요. 김구 선생도 “우리의 부력은 우리의 생활을 풍족히 할 만하고, 우리의 강력은 남의 침략을 막을 만하면 족하다. 오직 한없이 가지고 싶은 것은 높은 문화의 힘”이라 하면서 문화강국을 주장하기도 했죠.

 대구와 문화에 대한 애정이 남다르신데, 대구문화예술이 한 단계 더 발전하기 위해선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생각하시나요?
 대구는 이미 다른 어떤 도시보다도 문화적 뿌리나 전통, 인프라나 인식이 높은 지역이에요. 하지만 그것들을 어떻게 더 특화하고 승화시켜 나가느냐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대구문화재단 대표이사로 부임하면서 슬로건을 “문화예술로 웃는 대구”로 만들었어요. 문화예술로 웃는 도시가 되는 것이 지역의 진정한 성공이라고 생각해요.

 현재 계명대 언론광고학부 언론영상학전공 특임교수로 재직 중이십니다. 교수로서 학생들에게 강조하는 것이 있나요?
 관심과 용기를 늘 강조해요. 우선 적극적인 관심을 가져야 용기와 실천도 나올 수 있어요. 결국 인생은 관심 가는 대로 가게 되죠. 언론계에 진입하고 싶다면 뉴스를 열심히 보며 세상사에 관심부터 가져야 한다고 잔소리를 자주 해요(웃음).

 경북일보에 <박영석의 말과 삶>이라는 칼럼을 연재 중입니다. 칼럼을 연재하게 된 계기에 대해 말씀 부탁드립니다.
 방송기자로서 30년을 보내며 많은 사람을 만났고 많은 말들을 쏟아냈어요. 그래서 저 자신의 말부터 돌아보고 사람과의 관계를 잇는 말과 삶을 차분히 음미해보고 싶었어요. 말의 중요성과 힘을 재발견하면서 그것을 독자들과 공감하고 싶었고, 나아가 더 많은 사람과 공유하고자 했죠.

 앞으로의 목표가 있다면 무엇인가요?
 언론이 국민에게 더 많은 신뢰를 받게 되고, 대구가 문화예술로 웃는 도시로 거듭나도록 하는 데 일조하고 싶습니다.

 마지막으로 언론인을 꿈꾸는 학생들에게 조언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늘 스스로 질문하고 자신을 향해 관심의 문을 두드리세요. 세상일에 더 가까이 다가가서 바라보고 나름의 대안도 생각해보세요. 모르는 것이 있지만 아직도 관심이 없다면 깨어있는 것이 아닙니다(웃음).

인터뷰를 마친 기자들의 이야기

 선선한 가을바람이 불어오던 9월의 어느 날, 대구MBC 방송기자로서 30년간 대구시민들에게 누구보다도 발 빠르게 소식을 전해준 박영석 선배님을 만났다. 재치 있는 입담과 유익한 말씀들, 인자하신 성품까지 그는 언론인을 꿈꾸는 내게 ‘우상’과 같은 존재로 다가왔다. 역사책에서나 들어볼 법한 1980년의 우리 대학교 이야기로 인터뷰를 시작한 그의 이야기에 나는 어느샌가 빠져들게 됐다.

 “세상은 관심 갖는 만큼 보인다”는 그의 말처럼, 모두가 나와 같다고 해서 현실에 안주해서는 안 되며 끝없이 자신을 향해 질문하는 자세만이 스스로를 발전시키는 일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오로지 한 우물만 파다 보면 분명 성공하게 될 것이라 응원해주는 선배님의 말씀은 진로에 대해 확신이 없던 내게 큰 힘이 됐다.

 선배님은 끝없는 노력으로 이뤄낸 높은 자리에서 ‘문화도시 대구’를 위해서도 힘쓰며 그야말로 선한 영향력을 펼치고 계신다. 그의 확고한 목표 의식과 그에 걸맞은 노력을 보며 “운이 좋아서 사장까지 올라 방송경영을 맡기도 했다”는 선배님의 말씀에서 겸손의 자세도 배울 수 있었다. 박영석 선배님과의 인터뷰 이후, 목표와 의지, 관심을 갖고 노력하는 것만이 나를 바꿀 수 있다는 것을 깨닫고 한층 더 성장해나가기 위해 앞으로 조금씩이나마 움직여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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