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프로크루스테스의 침대
[사설] 프로크루스테스의 침대
  • 영대신문
  • 승인 2021.08.30 19: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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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리스 신화에는 엘레우시스와 아테네를 잇는 길목을 지키는 프로크루스테스라는 역사가 등장한다. 그는 나그네를 자신이 만든 쇠 침대 위에 눕게 하고 그가 만약 침대보다 길면 다리를 잘라서 침대 길이에 맞추고 짧으면 그를 강제로 늘려서 침대 길이에 맞췄다. 이런 어처구니없는 과정에서 사람들이 죽어 나갈 수밖에 없으니 이 길로 다니는 사람들에게 프로크루스테스는 공포의 대상이었다.

 이 신화 덕분에 개인의 특성을 무시한 채 하나의 잣대를 만들어 그 잣대를 강요하는 일에 프로크루스테스의 침대라는 이름이 붙게 되었다. 사실 모두에게 똑같이 적용되는 단 하나의 잣대는 독재자의 공상 속에서나 존재하는 지속 불가능한 관념이다. 그런데 문제는 이 하나의 잣대를 다른 사람들에게 강요할 수 있는 이들은 프로크루스테스처럼 힘이 센 사람들이다. 이들은 권력을 가졌기에 하나의 잣대를 강요하는 행위의 불합리성을 지적하는 사람들을 공동체의 질서를 위협한다며 탄압할 수 있다. 우리는 역사에서 이러한 일들을 반복적으로 봐왔는데, 지금 이러한 일이 아프가니스탄에서 벌어지고 있다.

 탈레반이 아프가니스탄을 점령했다. 외세의 강제 점령에서 조국을 해방했다고 주장하겠지만, 해방과는 거리가 먼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 탈레반 군인들이 여학교를 폐쇄하고 부르카를 입지 않은 여성을 죽였다는 소식이 들린다. 비록 탈레반 지도자들은 여성의 인권을 존중하고 개방적인 정책을 펴겠다고 했지만 180km를 걸어서 아프가니스탄을 탈출하는 사람이 있고, 아프가니스탄을 벗어나기 위해 공항에서 이륙하는 수송기에 타려고 발버둥 치다 떨어져 목숨을 잃는 사람도 있다. 국제적인 통신들은 350만 명이 넘는 아프가니스탄인들이 탈레반의 압제를 피해 고달픈 난민의 삶을 택할 것이라고 전한다. 탈레반이 자신들의 잣대를 프로크루스테스처럼 강요할 것이고 이를 따르지 못하면 죽는다고 믿는 사람들은 공포 속에서 사는 길을 택하거나 난민의 길을 나설 수밖에 없다.

 하나의 기준을 만들어 다른 사람들에게 강요하는 것은 폭력적일 뿐만 아니라 발랄한 개성을 무시해 결국 사회 전체의 자유를 압살하게 된다. 정부의 국가연구개발혁신법에 대한 개정 목소리가 높다. 이공계열의 특성에 맞춰 법안을 만들고 이를 인문사회계열에도 그대로 적용 하려다가 생긴 일이다. 정부는 연구개발 관련 규정을 하나로 통일해 관리 효율성을 높이겠다면서 계열별 차이와 특성을 무시하고 이공계에 어울리는 프로크루스테스의 침대를 만들어 놓고 인문사회계도 이 침대에 맞추라고 강요하고 있다. 연구의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 관리 체계가 복무해야 하는데 주객이 전도돼 관리의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 연구를 희생시키려 한다.

 우리 대학교에는 개성과 차이를 존중받아야 하는 학부(과)가 많다. 그래서 한 계열의 특성에 기반해 만들어진 기준을 다른 특성을 가진 학과에 강요하지 않아야 한다. 서로 다른 학문이 존중받으려면, 각 학과는 전공 특성에 맞게 졸업과 전공개설 학점 수를 정하고 학과 교양필수 교과목도 자율적으로 지정할 수 있어야 한다. 다양한 학과를 하나의 잣대 속에 맞추는 것은 교육과 연구의 효율성과 창의성의 저하를 초래할 수 있다. 나아가 학문과 대학 발전을 해치는 결과도 낳을 것이다. 나 역시 자신의 침대 길이에 강제로 맞춰져 다리와 목이 잘려 죽은 프로크루스테스의 최후를 상기하며 글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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