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봉] 변화의 주체는 당신이다
[영봉] 변화의 주체는 당신이다
  • 조현희 편집국장
  • 승인 2021.05.31 18:1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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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간은 쉽게 변하지 않는다. 그러한 특성들의 개인이 모여 사는 세상 역시 마찬가지다. 내가 사는 이 세상에는 여전히 부조리한 일들이 가득하다. 그럼에도 누군가는 희망을 꿈꾼다. 내일은 더 나을 거라고. 이러한 세상도 언젠가는 긍정적으로 바뀔 거라고. 그래서 누군가는 사회 이슈에 관심을 갖고 정치에 참여하기도 한다. 본인의 의견을 잘 대변해줄 사람을 뽑기 위해, 정부의 행보에 불만을 표출하기 위해, 원하는 정책을 지지하기 위해 등 이유는 다양하지만 궁극적인 목적은 모두 같다. 우리가 살 만한 정의로운 세상을 만드는 것. 1987년, 청년들이 캠퍼스와 거리에서 독재 타도를 외친 끝에 민주화를 이뤄낸 것처럼 그렇게 사회는 더 나은 방향으로 진보해 왔다.

 하지만 현재는 청년들의 정치적 무관심이 하나의 사회 현상으로 고착화됐다. 취업은 힘들고 먹고살기 팍팍한 세상에서 20대의 낮은 투표율은 매 선거철마다 거론되며 대학생의 탈정치화는 이미 오래전부터 기정사실화됐다. 결국 이러한 사실에 청년을 위한 정책은 뒷전이 되고야 말았다. 조국 전 법무부 장관 가족을 둘러싼 논란, LH 사태, 부동산 정책 실패 등 젊은 층의 공분을 살 만한 사건들이 최근 더욱 발생하면서 한국 사회는 몸살을 앓기 시작했다. 이는 대표자들이 제 역할을 다하지 못한 결과로 볼 수도 있다. 하지만 그 이전에 우리는 정치에 얼마나 관심을 갖고 목소리를 냈는가.

 독일의 철학자 한나 아렌트는 “악은 무관심 위에서 번창하며 무관심 없이는 존재할 수 없다”고 주장하며 정치 참여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이는 정치적 무관심에 대한 일종의 경고와도 같다. 선거 참여나 사회 이슈에 대한 관심이 우리 삶에 미치는 영향력은 대단하다. 선택의 결과는 반드시 우리의 몫으로 남기 때문이다. 민주화를 위한 평범한 청년들의 헌신은 반세기 동안 독재에 앓던 나라를 타국의 본보기가 되는 민주주의 국가로 만들었다. 100만 명의 국민이 든 촛불은 새로운 정부를 탄생시켰다. 이에 ‘취업이 힘들다’, ‘그 후보가 그 후보’ 등 어떤 이유로든 무관심은 정당화될 수 없다. 삶이 힘들고 지치더라도 이를 정당화하고 우리를 둘러싼 모든 정치를 피한다면 그로 인한 피해는 우리에게 그대로 되돌아온다. 관심을 버린 채 누군가 대신 어떤 문제를 해결해주기까지 기다린다면 아무것도 바뀌지 않는다.

 따라서 우리가 대학생으로서, 청년으로서, 사회의 한 구성원으로서 살면서 마주하는 불편함을 해결해야 한다면 그 주체는 우리가 돼야 한다. 만약 코로나19로 인한 교육권 문제를 누군가 대신 해결해주길 기대한다면 그건 누구일까. 총장? 총학생회? 정부? 기업인? 언론인? 누구를 대입하든 말이 되지 않는다. 이를 누군가에게 떠넘기려는 것 자체가 모순이다. 침묵은 해답이 될 수 없다. 가장 먼저 ‘당신’이, 그리고 ‘우리’가 비판과 함께 행동하고 주장해야 한다. 무엇을 원하는지, 무엇이 잘못됐는지, 무엇이 옳은지. 뉴스를 보고, 목소리를 내고, 선거에 참여하는 것만으로도 세상은 바뀔 수 있다.

 대학의 주체로서, 사회의 주체로서, 또 ‘당신’이라는 주체로서 겪는 어려움이 있다면 당신을 둘러싼 정치에 대해 관심을 가져보는 건 어떨까. 정의로운 세상은 단 한 번도 공짜로 얻어진 적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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