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봉] 기회는 평등하게, 과정은 공정하게
[영봉] 기회는 평등하게, 과정은 공정하게
  • 조현희 편집국장
  • 승인 2021.05.10 21:0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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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키 160 이상, 몸무게 50kg 이하, 안경 착용 불가.” 1994년 대기업 70곳이 직원을 채용하는 과정에서 여학생을 추천해 달라고 보낸 모집공고 내용이다. 여기서 제시한 신체 기준과 용모는 업무 수행에 있어 불필요한 요소였으며, 헌법상 평등권과 직업선택의 자유를 제한하고 남녀고용평등법을 위반한 사례로 논란을 빚었다.

 그로부터 27년이 지난 지금, 한국 사회는 얼마나 변화했는가. 변화하는 21세기에는 성별에 따라 차별받지 않는 세상이 도래했는가. ‘여성 상위시대’라는 말까지 언급되는데 과연 그러한가. 많은 이들이 이 질문들에 대한 정답을 예시할 수 있는 사건이 얼마 전 있었다. 지난 3월 한 제약회사가 면접 과정에서 여성 지원자에게 성차별적 질문을 한 사실이 드러났다. 그러나 이는 비단 한 회사만의 문제가 아니다. 채용과정에서의 성차별은 ‘결남출’(결혼, 남자친구, 출산의 줄임말)이라는 신조어가 등장했을 만큼 만연해있다. 한 공공기관에서는 출산과 육아휴직을 이유로 합격권에 들었던 여성 7명의 점수를 조작해 고의로 탈락시켰다. 공정하고 투명한 채용 절차가 생명인 공기업마저 특정 성별을 고의로 배제한 것을 통해 기업들의 참담한 성 평등 수준을 가늠할 수 있다.

 채용과정에서의 성차별 문제에 관한 이슈들을 두고 세상이 떠들썩하다. 1994년 이후 많은 시간이 흘렀고 정권 또한 바뀌었지만 아직 제도적인 정비는 미흡하며 문제를 문제로 인지하지 못하는 이들도 적지 않은 듯하다. 하지만 이 문제는 오랜 시간 고착화됐으며 단순히 ‘논란을 샀으니 다음엔 발생하지 않겠지’ 생각하고 넘어갈 문제가 아니다.

 정부는 공공기관을 대상으로 ‘권고’하는 성 평등 채용 가이드라인을 ‘의무’ 방식으로 전달하고 이를 민간기업까지 확대해야 한다. 2018년 금융권 성차별 사건 이후 많은 곳에서 해당 가이드라인을 도입했지만, 이는 의무 사항이 아니기에 채용과정에서 성별로 인한 불이익이 여전히 발생하고 있다. 대학을 다니고 취업을 준비하는 우리에게 성차별 채용 문제는 차별 그 이상의 의미로 다가온다. 국민의 촛불로 탄생한 정부는 ‘기회는 평등하게, 과정은 공정하게’라는 슬로건을 걸고 출범했지 않은가. 정치의 문제를 논하는 것이 아니다. 정권이 바뀌어도 변하지 않는 차별의 문제를 꼬집는 것이다. 평등한 채용은 노력에 상응하는 보상이 있는 사회, 상식이 통하는 국가에 대한 희망이다.

 더불어 대학은 성 평등에 관한 교육을 필수적으로 진행하라. 이러한 문제가 과연 정부와 기업만의 문제겠는가. 대학은 국가와 인류 사회 발전에 필요한 교육을 연구하며 학생들의 지도적 인격을 도와야 한다. 하지만 국내 대학 교육의 성 평등 교육은 갈수록 축소되고 있다. 따라서 대학은 사회에 나가 직장을 구하고 언젠가는 채용 과정에 참여하게 될 학생들이 성에 대한 올바른 가치관을 형성할 수 있도록 성 평등 교육을 확대해야 할 것이다. 성에 관한 여러 이론과 관점을 교육해 특정 성별에 대한 차별적 인식이 사라질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남녀고용평등법 제1조에 따르면 헌법의 평등이념에 따라 고용에서 남녀의 평등한 기회와 대우가 보장돼야 한다. 꿈을 꾸며 살아가는 청년들에게 평등한 기회와 공정한 과정이 통하는 세상이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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