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봉] 쉽게 쓰인 영봉
[영봉] 쉽게 쓰인 영봉
  • 조현희 편집국장
  • 승인 2021.03.29 19: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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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봉이란 호마다 영대신문 편집국장이 쓰는 칼럼이다. 나는 올해 두 번째 영봉을 쓰고 있다. 이번 호는 무슨 말을 써야 칼럼이 완성될까. 이 생각을 한 지도 어느덧 세 시간이 지났다. 고요한 새벽 편집국에 남아 영봉이란 무엇일까 생각하며 글을 쓴다. 쉽게 쓰이지 않는다. 아무 문장도 없는 빈 문서를 바라본다. 그럴듯한 말을 쓰기 위해 기성신문 사이트의 오피니언 게시판에 접속하는 것을 반복한다. 퇴임한 선배들의 칼럼을 뒤적거린다. 비슷한 모양새를 갖추기 위해 고상해 보이는 단어들을 활용한다. 그들의 칼럼과 느낌은 꽤 비슷해졌지만, 어딘가 엉성하다.

 퇴임한 선배에게 전화를 걸었다. 지금 이 고민을 해결하기 위해 질문을 건넸다. “선배는 영봉이 무엇이라 생각하세요?” 선배는 어렵게 생각할 필요가 없다며 단순히 편집국장의 생각이 담긴 글이라고 했다. 맞는 말이었다. 하지만 질문에 적절한 답을 들었음에도 영봉이 쉽게 쓰이지 않는다. 다시 고민에 빠진다. 마침내 글이 안 써지는 이유를 알게 됐다. 그렇다. 나는 스스로 생각하는 법을 잊어버렸다.

 스물세 살에 무언가를 논한다는 것은 시기상조이긴 하나 나는 사고의 부재를 철저히 알아가고 있다. 글쓰기가 쉬운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작가도, 기성신문의 기자도 아닌 나 또한 마찬가지이다. 보도 기사든, 기획 기사든, 논문이든 모두 어렵다. 하지만 그중에서도 내게 가장 어려운 건 칼럼이다. 사실에 기초한 글을 쓰는 것도 힘들지만 머릿속의 생각이 손에 이르면 다른 몸이 된다. 그렇다면 나는 왜 생각하는 법을 잊어버렸는가.

 학창 시절을 떠올려 보면 나는 종종 주관적인 생각을 나타내는 글쓰기 과제에 어려움을 겪었다. 입시 논술을 준비할 때도 매번 고민하지 않고 모범답안을 확인했다. 그것을 나의 생각인 양 둔갑시키고, 해당 답안과 비슷한 말을 그럴듯하게 적었다. 그렇게 6년이란 시간을 보냈다. 글로 혹은 말로 내 생각을 논하는 것이 어려워 객관적인 답을 요구하는 학문을 배우고자 했다. 그래서 경제학과에 진학했다. 또 한 번 생각하는 것을 미룬 나는 결국 사고의 부재를 겪게 됐다.

 그럼에도 기자라는 꿈을 갖고 있었기에 학보사 활동에 도전했다. 그리고 현재 영대신문의 편집국장이 됐다. 첫 영봉을 쓰게 됐을 때, 오래전 스스로 생각하는 법을 미루고 잊은 나는 동기 기자들을 붙잡고 물었다. 기사 제목이 엉성하진 않을까. 문단을 이렇게 구성해도 괜찮을까. 이 표현은 적절할까. 독자들의 질타를 받진 않을까. 남들의 생각을 묻고 또 물었다. 그렇게 원고 마감을 끝내고 신문이 발행된 후 편집국장 바이라인이 새겨진 첫 영봉을 실물로 보고서야 깨달았다. 이렇게 쓰인 영봉은 나의 ‘진짜’ 영봉이 맞는가.

 원고 마감 몇 시간을 앞두고 ‘1663호 영봉’ 파일의 문서창을 바라본다. 1662호 영봉과 달리 의식의 흐름대로 쉽게 쓰인 이 글은 다소 촌스러운 느낌이 들며 투박스럽기까지 하다. 그러나 오로지 내 생각과 경험을 바탕으로 쓰였으며 타인의 생각이 개입되지 않은 글이다. 비로소 오랜 고민이 해결됐다. 사고하는 법을 되찾게 됐다. 이젠 정보를 객관적으로 전달하는 것뿐만 아니라 스스로 생각하며 숨어있는 문제를 더욱 발굴하겠다. 1664호 여론면도 기대해주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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