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태죄 폐지에 이르기까지, 그리고 그 이후
낙태죄 폐지에 이르기까지, 그리고 그 이후
  • 박수연 기자
  • 승인 2021.03.29 16:3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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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해 4월 11일 낙태죄 헌법불합치 결정 이후, 올해 낙태죄가 폐지됐다. 이에 1953년부터 존재해왔던 낙태죄가 66년 만에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그러나 낙태죄 폐지 관련규정이 명백히 마련되지 않아 지속적인 논의가 필요한 상황이다.
 

낙태죄 폐지 결정, 그 역사는


 형법296조(일명 낙태죄)에 대한 논쟁은 1953년부터 시작됐다. 지난해 4월 11일, 헌법재판소는 긴 논쟁 끝에 낙태죄에 대해 헌법불합치를 결정했다. 이는 1953년 9월 형법에서 낙태죄가 제정된 이후 66년 만에 내려진 위헌 판결이다. 이에 낙태죄 폐지가 이뤄지기까지의 역사와 헌법불합치 결정 배경에 대해 알아봤다.

 낙태죄 폐지, 그 역사를 돌아보다=지난 1953년 낙태죄 처벌 조항이 우리나라 최초의 형법에 담기면서 낙태가 범죄로 규정됐다. 정부는 낙태한 여성을 처벌하는 자기낙태죄와, 임신한 여성의 동의를 받아 수술한 의료진을 처벌하는 동의낙태죄로 구분해 낙태를 엄격히 통제했다. 

 1960년대에 들어 인구의 급격한 증가가 사회적 문제로 대두됐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정부는 인구 성장을 억제하는 ‘가족계획사업’을 실시했다. 이에 낙태죄의 사회적 의미도 변화했다. 당시 정부는 인구억제정책의 일환으로 낙태를 원하는 임산부에게 수술비를 지원하는 정책을 펼치면서 낙태를 사실상 용인했다. 이러한 사회적 분위기 속에서 여성계는 낙태죄 전면 폐지 또는 부분적 낙태합법화를 촉구했다. 이에 정부를 중심으로 낙태 합법화를 위한 입법 논의가 진행됐다. 이후 1973년, 제한적인 낙태를 허용하는 「모자보건법」이 제정되면서, 처음으로 낙태가 법의 보호를 받게 됐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당시 「모자보건법」이 ‘산아제한’이라는 경제성장을 위한 가족계획사업의 일환에 불과했다며 임산부의 자기결정권 등 최근 논의된 사안은 고려되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2000년대 이후 출산율의 감소로 정부의 출산 억제 정책이 출산 장려 정책과 임신중절 예방 정책으로 변화하게 됐다. 또한 2010년에 들어서는 생명 옹호를 가치로 하는 ‘프로라이프의사회’의 고발 활동이 전개되면서 낙태죄가 다시 주목받기 시작했다. 2016년, 낙태죄 폐지를 내세우는 시민단체가 잇따라 증가하며 낙태죄를 폐지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사회전반에서 커졌다. 이에 지난해 4월 11일, 헌법재판소(이하 헌재)가 낙태죄에 대해 헌법불합치 판결을 내리면서 낙태죄 규정이 폐지됐다.

 헌법불합치 결정, 그 내용은=헌법불합치란 해당 법률이 사실상 위헌이지만 즉각적인 무효화에 따른 법의 공백과 사회적 혼란을 피하기 위해, 법 개정 전까지 한시적으로 법을 존속시키는 결정이다. 헌재는 낙태죄가 즉각 폐지돼 법령 미비에 따른 각종 책임을 개인이 짊어지는 것이 가혹하다는 판단 아래 지난해 12월 31일까지 낙태죄 조항을 유지하도록 했다.  

 이번 낙태죄의 헌법불합치 결정은 낙태에 있어 여성의 자기결정권이 우선됐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헌재는 ‘임신 기간 전체를 통틀어 모든 낙태를 전면적·일률적으로 금지하는 것이 임신한 여성의 자기결정권을 제한한다’, ‘태아의 생명 보호라는 공익에 대해 일방적이고 절대적인 우위를 부여함으로써 법익균형성의 원칙과 과잉금지원칙을 위반한다’고 판단해 낙태죄에 대해 헌법불합치 판결을 내렸다.
 

낙태죄 폐지,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국가인권위원회=낙태를 형사 처벌하는 것은 여성의 자기결정권, 건강권과 생명권, 재생산권을 침해하는 것이다. 이에 개정안에 대한 심의·의결 시 낙태를 비범죄화하는 방향으로 개정안을 마련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형벌로서의 낙태죄는 낙태의 감소라는 목적 달성보다 낙태가 불법이라는 인식을 형성해 여성에게 안전하지 못한 낙태를 선택하게 한다. 이는 여성의 자기결정권 및 건강권을 침해하는 등 부정적 영향이 크다. 이에 국가는 낙태한 여성을 형사 처벌하는 방식이 아닌 원치 않는 임신을 예방하는 방안을 마련하고, 임신한 여성이 출산을 선택할 수 있는 사회적, 경제적 조건 마련 등 근본적인 해결책을 강구하는 방향으로 전환할 필요가 있다.

 낙태에 대한 형사처벌규정 존치는 여성의 기본권 침해 우려뿐만 아니라 유엔 등 국제기구의 낙태 비범죄화 흐름에도 역행하는 것이다. 이에 낙태를 한 여성에 대한 처벌규정을 삭제하는 방향으로 전면 재검토돼야 한다. 또한 낙태에 대한 새로운 장벽을 도입하는 방식이 아닌 여성이 임신·출산 전 과정에서 국가의 의료적, 사회적 지원을 통해 실질적으로 자기 결정권, 건강권 등을 행사할 수 있는 방향으로 전환할 필요가 있다.

박정우 천주교 서울대교구 생명위원회 사무국장=태아는 엄연한 인간 생명이며, 인간 생명을 함부로 빼앗으면 안된다. 모든 인간은 동등한 존재이며, 어떠한 이유에서도 생명을 차별하는 것은 옳지 않다. 인간 생명은 수정된 순간부터 인간의 연장선상에 있는 것이며 이는 죽을 때까지 단절되지 않는다. 이에 모든 인간 생명들이 존중받고 보호 받아야 한다. 이는 생명 존엄성의 가장 기본적인 이유이다. 

 낙태죄는 여성을 처벌하는 것이 첫 번째 목표가 아니며, 태아를 보호하는 것이 가장 주된 목적이다. 태아는 인간이며 태아를 죽이는 것에 대한 벌이 없다면, 인간의 생명을 앗아가는 것을 쉽게 생각하게 될 것이다. 이에 낙태라는 것이 인간 목숨을 빼앗는 행위라는 것을 법에 명시할 필요성이 있다. 

 한편 낙태를 하지 않아도 되는 환경의 조성을 위해 의식 및 제도 등이 개선돼야 할 필요가 있다. 생명이 세상에 태어나 잘 자랄 수 있는 환경과, 생명이 환영받을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 예를 들어 저소득층에게 육아 수당 등을 지원하고, 미혼모의 경우 본인의 신원을 알리지 않더라도 입양할 수 있도록 보장해주는 등의 법을 제정해야 한다. 또한 중·고등학교에서 올바른 성의식을 제고할 수 있는 성교육이 의무화되고 강화돼야 한다. 


낙태죄 폐지 이후의 대한민국, 어떻게 나아가나?


 낙태죄 헌법불합치 결정에 따라, 해당 조항은 지난해 12월 31일까지 개정이 이뤄져야 했다. 이에 따라 「형법 일부개정법률안」이 마련됐으나 일부 조항들이 논란에 둘러쌓였다. 본지에서는 개정안에서 논란되는 사항과 앞으로 마련돼야 할 제도에 대해 알아봤다.

 「형법 일부개정법률안」, 어떤 내용인가=정부는 헌재의 낙태죄 헌법불합치 결정에 따라 위헌적 상태를 제거하기 위해 후속조치로 법률 개정을 추진했다. 이에 지난해 10월 7일, 「형법 일부개정법률안」을 발표했다. 해당 개정안에 따르면 낙태죄를 유지하는 대신 임신 14주까지의 임신중단은 처벌하지 않고, 이후 24주까지는 성범죄나 사회·경제적 사유에만 낙태를 허용한다. 또한 임신 24주 이내 사회적·경제적 사유로 인한 낙태의 경우 상담 및 최소 24시간의 숙려기간을 거칠 것을 명시했다.

 논란되는 항목은=「형법 일부개정법률안」에서 가장 논란이 됐던 항목은 임신 주기에 따라 낙태 허용 여부를 나눈 것이다. 해당 개정안에 따르면, 임신기간을 3기로 나눠 초반인 1기(1~14주)의 경우에만 조건 없이 낙태가 허용된다. 일각에서는 해당 기준으로는 임신 시작 일을 판단하기 어려워 낙태죄의 법적 판단이 어려울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김재연 대한산부인과의사회장은 “법령은 모든 사람들에게 똑같이 적용될 수 있도록 명확해야 한다”며 “임신주기는 측정방법에 따라 개인마다 오차가 있을 수 있어 임신주차에 따른 기준을 세운다는 것은 명확성의 원칙에 위반될 우려가 있다”고 전했다. 의료계에서는 ‘선별적 낙태 거부’를 선언하며 조건 없는 낙태는 10주 미만에만 시행할 것, 태아가 22주 이상일 경우 낙태 허용 불응 등 자체적인 지침을 마련했다.

 한편 국회입법조사처는 「형법 일부개정법률안」에 명시된 ‘상담절차와 숙려기간’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문제에 대해 지적했다. 이들은 해당 기간에 낙태 지연 비용 증가 원치 않은 출산 강요 등 위험성과 부작용 발생 가능성에 대한 문제를 제기했다. 이에 법무부 측은 “숙려기간 중 전문가의 상담으로 충분한 정보 제공을 통해 태아 생명 보호에 실질적인 도움을 줄 것”이라고 설명했다.

 또한 일각에서는 임신 24주 이내에 낙태를 허용하도록 하는 ‘사회적·경제적 사유’ 항목이 추상적인 용어로, 법률에 요구되는 ‘명확성의 원칙’에 반한다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법무부 측은 사회 경제적 이유를 예시로 규정하되, ‘심각한 곤경’에 처할 것을 추가 요건으로 허용사유를 보다 구체화했음을 밝혔다.

 앞으로 나아가야 할 길은=일각에서는 안전한 임신중지를 보장할 수 있는 보건의료 전달체계 정비 및 지역 간 인프라 격차 해소 등의 사회적 체제 구축이 필요하다고 외쳤다. 지난 8일, ‘모두를위한낙태죄폐지공동행동’은 기자회견을 통해 임신중지 관련 의료인 인식 제고와 관련 교육 및 지원 체계를 마련 안전한 임신중지를 보장할 수 있는 보건의료 전달 체계 정비 지역 간 인프라 격차 해소를 위한 노력 등을 체계적으로 기울여야 하며, 이를 위한 법안이 마련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세계 낙태법 현황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세계 각국에서 낙태를 둘러싼 논의가 활발히 이뤄지고 있다. 현재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6개 회원국 중 31개국에서 사회·경제적 이유에 따라 낙태를 허용하고 있다. 이에 그리스 독일 미국 아일랜드 영국 일본 중국의 낙태법 현황에 대해 알아봤다.

 그리스=성폭행이나 근친상간으로 임신한 경우 임신 19주 이내, 유전 질환이 우려되는 경우는 24주 이내에 제한적으로 낙태가 가능하다.

 독일=임신 12주 이내의 낙태는 합법이다. 낙태 시술을 위해 병원에 가기 전 상담사를 만나 상담 증명서를 받아야 하며 3일 정도 숙고 기간을 거쳐야 한다.

 미국=임신 12주 이내 낙태는 합법이며, 그 이후 3개월까지는 제한적으로 가능하다.

 아일랜드=지난 2018년 국민투표를 통해 헌법상 임신 12주 이내의 임신중절 수술에 대해서는 그 이유에 제한을 두지 않기로 결정했다.

 영국=임신부가 원할 경우 2명의 의사 의견이 있다면 24주까지 낙태가 가능하다. 낙태 허용 사유로는 모체 생명 보호를 비롯해 모체 신체·정신적 건강 경제·사회적 사유 본인 요청 등으로 폭이 넓다.

 일본=임신 22주까지 사회, 경제적 사유에 따른 시술이 합법화돼있다. 낙태 시술 지정병원에서 시술받아야 하며, 임신 중절을 위해 전문가 2명의 승인 및 배우자 동의가 필요하다.

 중국=임신 12주 내 본인 요청에 따른 시술은 허용한다. 그 이후로는 사회·경제적 사유를 포함해 폭넓게 임신중절을 허용하고 있다. 산아제한 정책으로 낙태가 자유롭지만 성별에 따른 선택적 낙태는 금지돼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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