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자] 무뎌짐과 극복
[그림자] 무뎌짐과 극복
  • 김은택 대학·사회부장
  • 승인 2021.03.15 21:0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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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람들은 흔히 인간을 적응의 동물이라고 부른다. 이는 인간이 지난 수백만 년간 추위와 각종 자연환경의 변화에서 살아남았던 종(種)의 우월함을 과시할 때 종종 사용되곤 한다. 적응할 줄 아는 동물인 인간은 변화무쌍한 대자연에서 살아남았다. 

 하지만 적응이라는 이 우월한 종의 특성은 때때로 인간을 나락으로 떨어뜨릴 때가 많다. 연인 혹은 친구 관계가 오랫동안 이어지면서 서로에 대한 배려에 적응하게 돼 인간관계를 망친 경험이 있는가? 어느 과업을 시작할 때의 당찬 포부가 시간이 지남에 따라 무뎌지고 그 환경에 적응하면서 서서히 과업의 동력을 잃게 된 적 있는가? 인간관계, 떨어진 과업의 추진력은 회복 가능성이 재한다. 하지만 지금 우리를 둘러싼 바이러스로 잃어버린 일상의 회복 가능성은 적다. 

 어느덧 코로나19가 우리의 일상을 파괴한 지 1년이 넘었다. 야구장을 꽉 채웠던 관중의 함성도, 강의실을 꽉 채웠던 대학생의 학구열도 푸념하듯이 회고할 수밖에 없는 과거의 이야기가 됐다. 코로나19 발생 초기, 시민들은 매일 발표되는 정부의 코로나19 관련 브리핑을 듣고 정부의 방역 수칙을 따르는 것이 일상이었다. 하지만 이런 일상에 적응하게 된 몇몇 시민은 매일 발표되는 정부의 브리핑을 귀 기울여 듣지 않고 정부의 방역 수칙을 어기곤 한다. 이 같은 환경에 무뎌지면서 자신의 일상이 회복되지 못하게 만들었다. 이런 일상에 적응한 일부 시민들 사이에서 대규모 집단감염 사태가 이어졌다. 무뎌짐으로 몇몇 시민은 일자리를 잃고, 생활고에 시달려 삶을 포기하기도 한다.

 자연환경으로부터 완벽한 적응을 할 수 있다고 자부하던 인간이 변화된 환경에 맞서지 않고 적응해버려 살아남지 못하고 있다. 이렇게 자연 앞에 무릎을 꿇은 인간은 비참한 최후와 마주할 뻔했다. 하지만 비참한 최후를 맞지 않은 이유는 인간은 환경에 적응하는 동물임과 동시에 환경을 극복할 줄 아는 동물이기 때문이다. 적응보다 극복을 선택한 인간은 개인위생을 한층 철저하게 관리했다. 마스크를 쓰고, 불필요한 만남은 온라인에서 이뤄졌다. 그런 노력이 마스크를 끼고 야구장에 갈 수 있게 했으며, 소규모의 강의를 들을 수 있게 했다. 또한 백신이라는 강력한 무기가 코로나19라는 먹구름을 거두고 있다. 

 예전의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는 가능성은 무한하다. 하지만 그만큼 돌아가지 못할 가능성도 높다. 코로나19에 익숙해져 많은 것을 잃어서는 안 되겠다. 이제 이 상황에 적응하려고 발버둥 치기보단 극복하는 데 힘을 쏟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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