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회 천마문화상] 심사평(시)
[51회 천마문화상] 심사평(시)
  • 김문주 교수(국어국문학과)
  • 승인 2020.11.23 18:3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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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적잖은 작품이 투고되었다. 양(量)에서는 예년과 비슷한 수준이지만 질적인 점에서는 전체적으로 우수한 작품이 많았다. 예년에 비해 창작 연습을 한 적이 없는 작품의 수는 줄어들었고 상당한 수준의 습작기를 통과하고 있는 작품들이 많았다. 작품들을 살펴보면서 대학의 문예창작 관련 학과에 재학하고 있는 학생들의 투고작이 많다는 판단을 쉽게 할 수 있었다. 이 대목은 꽤 중요한데, 일정한 방식의 쓰기 훈련의 흔적들이 작품에서 드러난다는 점이다. 문학이 일정한 방식의 쓰기 기술의 습득으로서 충분히 가능하다면, 문학은 기술의 일종이 되는 것이다. 문학이 언어에 대한 고도의 운용 능력의 일환이라고 하더라도, 그 능력은 단순히 언어를 다루는 기술만을 가리키는 것은 아닐 것이다. 언어는 인간의 정념(情念)을 펼치고 포착하고 형상하는 정신/의식의 장(場)이다. 언어 능력이란 단순한 쓰기의 기술을 넘어 인간을 둘러싼 현실-세계를 감수(感受)하고 그것에 응전(應戰)하는 정신 작용의 현실태라고 할 수 있다. 물론 창작 능력이란 부단한 수련 과정을 통해 얻어지는 것이지만, 그 과정은 단순한 기술의 습득만을 뜻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투고된 시 중에서 일차적으로 걸러진 많은 작품들은 시-만들기를 연습하는 과정의 것들이었고, 기성 시단의 어떤 시들의 어법을 흉내 내는 수준의 것들이었다. 그래서 어떤 점에서는 서로 닮아 있는 작품들도 꽤 있었다. 그러한 점에서 본심에 오른 「식탁」, 「소풍」 등을 보낸 투고자의 작품들은 자신의 어법과 세계-현실에 대한 개성적인 시각을 보여주고 있다는 점에서 우선 신뢰할 만했다. 이들 작품에서 형상화된 세계-현실과 그것을 말하는 방식은 상당한 높이의 자기 어법에 기초한 것이어서 모조(模造)의 흔적을 덜어내지 못한 다른 작품들과는 뚜렷하게 변별되는 시적 성취를 보여주었다. 자신의 언어로 말한다는 것은 다른 이들이 보지 못한 것들을 보거나 각별한 사유의 폭과 깊이를 개진(開陳)할 수 있는 역량을 갖추고 있음을 뜻하는 것이리라. 나는 「식탁」의 투고자가 더 멀리 가기를, 그래서 한국시단의 주목할 만한 개성이 되기를 진심으로 바라고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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