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회 천마문화상 - 가작(소설)] 사라진 펭귄과 등하원도우미
[51회 천마문화상 - 가작(소설)] 사라진 펭귄과 등하원도우미
  • 안지영(동국대 국어국문문예창작학부4)
  • 승인 2020.11.23 18:3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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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집에 오니 처음 보는 애가 있었다. 거실 한복판을 차지하고 앉아 색종이를 접는 중이었다. 나는 현관문과 거실을 번갈아 쳐다봤다. 현관 안쪽에 달린 철 지난 크리스마스 리스나 거실 베란다에 쪼르르 줄 세운 다육이들, 분명 우리 집이 맞았다. 그렇지만 우리 집에 유치원생으로나 보이는 어린애가 있을 리 없었다. 우리 가족의 마지막 ‘어린애’는 이제 고등학생이 된 사촌 동생이었으니까. 그렇다면 저 애가 누구인지 온갖 추측 가능한 것들을 떠올렸지만 딱히 그럴 듯한 게 없었다. 게다가 그 애는 나보다도 더 집주인다운 눈빛, 그러니까 넌 누구길래 여기에 있냐는 시선을 보내고 있었다. 내가 현관에서 허둥대는 사이 그 애는 아줌마, 하고 외치며 자리에서 일어나 부엌으로 달려갔다. 그 애가 데려온 건 엄마였다.
 엄마는 별다른 설명 없이 한마디로 넘어갔다. 그렇게 됐어. 도저히 뭐가 그렇게 되었다는 건지 알 수 없었다. 그 애는 눈을 굴리며 엄마와 날 번갈아 바라보았다. 엄마는 시선을 느꼈는지 다정하게 말했다. 지우야, 언니한테 인사해야지. 지우는 인사하는 대신 엄마 뒤로 숨었다. 우리 엄마 뒤에 숨은 모르는 애라니, 그걸 바라보는 기분은 이상했다. 웃는 얼굴로 안녕, 인사했지만 그 애는 가만히 날 바라보기만 했다.
 초저녁이 되자 지우는 소파에서 잠들었고 엄마는 그 위에 조심스럽게 담요를 덮었다. 나는 그런 엄마를 보며 농담조로 말했다. 엄마, 무슨 납치라도 했어? 엄마는 나를 흘겼다. 엄마는 본인이 받고 싶은 농담만 받는 사람이었고, 나는 농담에 재능이 없는 사람이었다. 나는 우스갯소리를 포기하고 물었다. 그래서 도대체 뭔데? 엄마는 마치 오늘 저녁 메뉴를 말하듯이 통보했다. 등하원도우미 하기로 했어. 나는 아파트 엘리베이터에서 본 듯한 전단지를 떠올렸다. 등하원도우미 구함, 경력자 우대, 초보 환영, 사랑과 인내로 돌봐주실 분 찾습니다.

 

 지우는 같은 아파트에 사는 여섯 살짜리였다. 근처의 사립 유치원을 다니고 있었고, 유치원의 미니버스가 등하원 시간마다 애들을 날랐다. 엄마가 할 일은 매시간에 맞춰 아파트 정문으로 가는 것, 그리고 부모가 올 때까지 지우를 돌보는 일이었다.. 나는 문득 궁금증이 일어 넌지시 물었다. 그래서 엄마는 경력자라고 했어, 초보라고 했어? 엄마는 뻔뻔하게 답했다. 너랑 네 동생, 둘이나 키웠는데 그게 경력이지 뭐야.
 지우의 엄마는 밤 아홉 시가 넘어 우리 집으로 왔다. 자기 엄마를 보자마자 달려가 안기는 지우의 모습을 보니 어린애다 싶었다. 지우 엄마는 피곤해 보이는 낯으로 지우에게 인사를 시켰다. 안녕히 계세요, 해야지. 엄마는 지우를 향해 내일 보자며 과장되게 손을 흔들었다. 그렇지만 지우는 제 엄마 뒤에 숨어 나오지 않았다.
 우리 집에 너무 오래 있는 거 아냐? 나는 지우 엄마가 찾아온 시간이 꽤 늦은 터라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렇지만 엄마는 혼자서도 얌전히 노는 모습을 보니 되었다는 반응이었다. 암만 부모가 일찍 데리러 와도 정신없이 노는 애보다는 낫다. 엄마는 지우가 돌아가기까지 미뤘던 청소를 하며 말했다. 그리고는 문득 생각났다는 듯이 덧붙였다. 네 동생한테는 말하지 마. 굳이 그럴 필요까지 있나 싶었지만, 어차피 떨어져서 사는 동생과 지우가 만나는 일은 없을 게 분명했기에 굳이 말할 필요도 없을 것 같았다.
 이튿날은 아침부터 소란스러웠다. 엄마와 나 단둘이 있을 때 늘 그렇듯 적막이 감도는 대신 현관문이 열렸다 닫히기를 반복했고, 대화 소리가 들렸다. 침대에서 뒤척이던 나는 시계를 확인했다. 아침 일곱 시였다. 나는 이불을 도로 뒤집어썼다. 동생이 아침부터 막무가내로 찾아왔나, 생각했지만 이내 지우의 존재를 기억해냈다. 이미 잠이 깨버린 나는 침대에서 얼마 버티지 못하고 일어났다. 엄마가 자고 일어난 옆자리에는 이불이 반듯하게 개어져 있었다.
 거실로 나가자마자 만난 건 지우였다. 인사는 없었지만 나를 살피는 눈치였다. 나는 지우를 향해 어색하게 손을 흔들었다. 부엌에 있던 엄마는 평소보다 높은 톤으로 말했다. 내가 웬일로 이렇게 일찍 일어났어? 그리고는 지우를 향해 장난조로 말했다. 지우야, 이 언니는 맨날 늦잠 자는데, 오늘 너 왔다고 일찍 일어났나 보다. 앞으로도 일찍 일어나겠네. 지우는 대답 없이 가방을 끌어안았다. 
 엄마는 곧 밥을 먹으라며 지우를 불렀다. 지우는 종종걸음으로 부엌에 가 낯선 식탁일 텐데도 자연스럽게 앉았다. 식탁에는 일인분이 차려져 있었다. 나는 식탁을 살피다가 엄마를 바라봤다. 엄마는 내 얼굴을 흘깃 보더니 말했다. 얘도 밥은 먹어야지. 자기 집에서는? 내 물음에 엄마는 당연하다는 듯 말했다. 밥 챙겨줄 시간이 어디 있겠어. 나는 밥을 한 숟갈 푸는 지우를 바라봤다. 엄마는 말을 덧붙였다. 밥값도 챙겨준다고 했어. 지우는 깨작이면서도 열심히 먹는 중이었다.
 이후로도 지우는 평일이면 지우 엄마가 우리 집에 데려다줬다. 아침 일찍부터 와 밥을 먹고, 여덟 시가 되면 엄마 손을 잡고 아파트 정문으로 가 유치원 버스를 탔다. 나는 현관 앞에서 지우에게 잘 다녀오라 인사하는 일을 맡았다. 아침마다 지우가 집을 나설 때 멀뚱멀뚱 뭘 하냐는 엄마의 타박 때문에 시작한 인사였다. 인사에 대답해주는 사람은 없었지만 곧 익숙해졌다. 아르바이트를 다녀오면 지우가 거실에 앉아 놀고 있었다. 그리고 밤이 되면 지우 엄마가 우리 집으로 와 지우를 데려갔다. 매번 늦은 시각이었다.

 

 어느 날 지우 엄마가 고맙다며 동네 닭집에서 프라이드치킨을 포장해왔다. 엄마와 나는 지우에게 내일 보자는 다정한 인사를 건넨 뒤 식탁에서 치킨을 먹었다. 엄마는 기름진 손가락을 빨며 말했다. 지우 걔도 낯을 참 많이 가리더라. 나는 이로 살을 발라내며 엄마를 바라봤다. 못해도 한 달은 본 것 같은데, 아직도 말을 잘 안 하잖아. 나는 뼈를 비닐봉지에 던져 넣으며 건성으로 말했다. 우리가 낯설어서 그럴 수도 있지. 엄마는 고개를 저었다. 암만 그래도 밖에서 그렇게 굴면 나중에 사회생활 할 때 힘들다. 그렇게 말하고는 나를 눈으로 훑었다. 별다른 말은 없었지만 엄마가 하고 싶은 말을 어느 정도 예상할 수 있었다. 널 키운 내가 증인이다, 네가 지금 어떻게 지내는지, 그런 말들이었을 거다. 집은 기름내로 금방 눅눅해져 창문을 열어야 했다.
 지우의 엄마는 가끔 그런 식으로 먹을 것을 포장해왔다. 피자나 아이스크림 같은 것들 말이다. 엄마와 나는 그런 밤마다 포장된 음식들을 모두 해치우고, 집 안을 가득 채운 냄새를 빼기 위해 창문을 열고 밤새 환기해야 했다. 바람이 문틈으로 들어오며 나는 울음소리 같은 소리를 들으며 매번 다짐했다. 내일은 지우에게 좀 더 잘해줘야지. 지우의 엄마가 건네는 야식들을 먹었기에 절로 생기는 머쓱한 마음이었다.
 그렇지만 그 다음날은 전날과 다를 바 없었다. 집에 돌아오면 지우가 늘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고, 이따금 눈이 마주칠 때면 알 수 없는 긴장감이 팽팽하게 흘렀다. 보는 사람 없이 틀어져 있는 만화영화의 소리가 긴장을 끊어내고는 했다. 엄마는 어느 순간부터 지우에게 의미 없이 말 거는 걸 그만두었기에 집은 고여 있는 물처럼 잠잠했다. 함께 있어도 서로를 모르는 척하는 것처럼 각자 할 일을 했다. 엄마는 지우가 떠나고 나면 숨통이 트인다는 듯이 숨을 몰아쉬었다. 그리고 날 향해 물었다. 정말 조용하지. 엄마의 말에는 피로와 동시에 만족감이 묻어났다.
 엄마가 말한 것처럼 지우는 조용했다. 입을 열어 말하기보다는 고개를 흔드는 걸로 모든 의사 표현을 해내는 애였다. 그렇지만 그게 곧 얌전하게 노는 걸로 이어지지는 않았다. 지우는 소리소문 없이 사고를 쳤다. 주로 뭐라 한소리 하기 힘든 것들로, 사소한 물건들을 망가뜨리고는 했다. 있는지도 모르고 지내던 도자기 인형의 다리를 깨거나, 책의 표지를 조금 찢거나, 편지를 몰래 읽거나 하는 행동들. 나는 조금 멍해진 채로 내 방에서 일어나는 그 상황을 목격했다. 인형을 만지작거리던 지우는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모른다는 얼굴로 날 바라보고 있었다. 그리고는 내 옆을 조심스럽게 지나쳐 방을 빠져나갔다.
 그 전날에도 지우 엄마가 사 온 족발을 먹었던 터라, 어떤 태도를 취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심지어 꽤 비싸기로 유명한 가게에서 사 온 것이었다. 우리 가족이라면 엄두도 못 내는 곳의 족발을 먹으며 때아닌 토론을 벌이기도 했다. 지우 엄마가 이 가게에서 족발을 사 온 건 정말 고맙기 때문이다, 그게 아니라 마침 직장 근처에 있는 집이었을 뿐이다, 지금껏 먹은 족발 중 손에 꼽을 정도로 부드럽고 야들야들하지만 그 돈을 내고 먹을 만한 것인가 같은 얘기들을 주고받았다. 이렇게 생각에도 없는 야식을 먹게 되는 날이면 엄마의 마지막 말은 늘 정해져 있었다. 지우한테 잘해줘라. 낮 동안 할 일 없는 지우에게 내 방의 문을 열어준 것도 엄마일 게 분명했다.
 나는 지우가 가지고 놀던 인형을 집어 들었다. 내 방에 있다는 것조차 잊고 지내던 인형이었다. 인형의 바지에서 끝없이 나오는 바스러진 도자기 조각을 털어내며 중얼거렸다. 어린애가 그럴 수도 있지. 그렇지만 내 안에서 무언가 조금씩 부서지는 느낌을 받았다. 누군가 읽은 흔적이 있는 편지를 다른 곳에 숨기거나 점점 너덜거리는 책을 볼 때도 같은 마음이었다.
 집은 이전과 다름없이 고요했지만, 지우가 우리 집에 오기 시작한 뒤로 내 방은 매번 조금씩 변화를 겪고 있었다. 방의 주인인 내가 내 물건을 어디에 뒀는지 기억이 나지 않아 혼란스러울 지경이었다. 일기장이나 편지 같은 것들은 점점 서랍 깊숙한 곳으로 숨겼고 인형이나 스노우볼을 비롯한 장식품들은 책장 위로 올라갔다. 몇몇 개는 지우가 들어가지 않는 안방에 두었다. 엄마는 내 물건이 안방에 쌓이는 건 내켜 하지 않았다. 그렇지만 대개 인식조차 하지 못했기에, 엄마의 화장대 위에 올려둔 내 물건을 일주일이 지나서야 발견하고 투덜대는 식이었다. 늦었지만 도자기 인형도 지우의 손이 닿지 않을 만한 곳에 올려두었다. 그제야 마음이 좀 놓였다. 이미 인형의 다리 한쪽은 산산조각이 났지만 말이다.
 방에서 나가자 식탁 앞에 서 있는 엄마가 보였다. 쉴 때조차 손을 가만히 두지 못하는 엄마는 실리콘 틀에다가 석고를 붓고 있었다. 최근까지 유행하던 석고 방향제를 만드는 모양이었다. 레몬과 라벤더를 섞은 향이 진하게 나고 있었다. 그런데 어디에도 지우는 보이지 않았다. 엄마 옆에도, 심지어 거실 소파에도 없었다. 아직 지우의 엄마가 오려면 세 시간은 더 남았는데도 말이다. 나는 반사적으로 화장실 문을 바라봤다. 지우가 우리 집에서 돌아다니는 곳은 정해져 있었다.

 

 나는 화장실 문을 두드렸다. 지우야? 당연하게도 돌아오는 대답은 없었다. 어느 정도 예상했기에 손잡이를 조심스럽게 돌렸다. 문은 열리지 않았다. 안에서 잠근 탓이었다. 우리 잠깐 얘기할까? 나는 억지로 높은 목소리를 꾸며냈다. 딱히 화가 난 건 아니었지만, 평소 내 목소리가 저음이라 퉁명스럽다고 말한 엄마가 생각난 탓이었다. 여전히 대답은 없었다. 열쇠 줄까? 뒤에서 엄마가 태평하게 말했다. 나는 고개를 저었다. 됐어. 일부러 잠근 문을 밖에서 쉽게 열어버리는 건 생각보다 허탈하고 공포스러운 일이었다.
 다시 목을 가다듬고 최대한 다정한 목소리를 냈다. 나와서 언니 방 구경할래? 언니 화 안 났는데. 잠시 후 문이 철컥이며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문이 열리는 순간 문득 떠오른 건 어릴 적 문틈 사이로 보았던 엄마의 얼굴이었다. 평소보다 배로 상냥한 목소리와 달리 냉정한 얼굴, 그 얼굴을 보자마자 다시 문을 닫고 싶어졌지만 나보다 잽싼 엄마는 문을 세게 잡아당겼다. 손쉽게 주욱 열려버렸던 문. 그렇지만 지금 문틈 사이로 보이는 건 지우의 얼굴이었다. 열심히 나를 살피는 눈을 마주하자 나도 모르게 허탈한 웃음이 나왔다.
지우가 내 방에 들어서자 나는 최대한 부드럽게 물었다. 언니 인형이 마음에 들었어? 지우가 대답을 안 할 걸 알고 있기에 곧장 말을 덧붙였다. 그런데 그건 도자기라 조심스럽게 다뤄야 해. 도자기 알지? 유리처럼 깨지기 쉬운 거. 인형이 마음에 들었냐는 물음에 고개를 끄덕이던 지우는 이어지는 말에 입을 불퉁하게 내밀었다. 나 아니야. 이미 부서져 있었어. 지우가 단호하게 말했다. 주의만 줄 생각이었는데, 내가 생각한 대답은 아니었다. 적당한 사과와 그만한 적당한 용서. 내가 예상한 건 그런 거였다. 나는 부순 적 없어. 원래부터 그랬어. 내가 당황한 틈을 타 지우가 우기기 시작했다. 똑같은 말을 반복하는 것과 달리 지우의 눈빛은 침착했다. 그 괴리감에 할 수 있는 말은 그야말로 알겠다는 말밖에 없었다. 어린아이를 달래듯이 알겠다고 말하는 게 아니라, 더는 이 문제를 크게 만들지 않을 것이며 내 오해가 있었음을 인정하는 의미로 뱉어야 하는 말이었다. 지우는 말하면서 저도 모르게 흥분했는지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그리고 마침 들려오는 엄마의 부름에 머뭇대다가 나가버렸다.
 방에 남겨진 나는 책장 가장 높은 곳에 올린 인형을 바라보았다. 인형의 바지 안에서 두 동강 났을 다리를 상상하다가, 저 인형의 다리가 언제부터 금이 가기 시작했는지에 대해 생각했다. 아마도 내게 주어지기도 전, 엄마의 캐리어에 들어가면서부터일 것이다. 엄마는 섬세하면서도 무신경한 구석이 있었으니까.
 엄마가 아직 직장을 다니던 때였다. 그때 동생과 나는 지우처럼 등하원도우미에게 맡겨지거나 방과 후 프로그램에 참여하기를 반복했다. 엄마는 엄마의 마지막 해외 출장에서 인형을 사왔다. 동생과 내 것으로 각각 하나씩, 전통 옷을 입고 있는 손바닥만 한 도자기 인형이었다. 엄마는 마지막 출장지에서 딸들을 생각하는 섬세함은 보였지만, 그 뒤로는 섬세하지 못했다. 길거리에서 산 인형을 별도의 포장 없이 그대로 캐리어에 넣어 온 것이다. 비행기 수화물 칸을 굴러다녔을 캐리어 안에서 인형이 멀쩡할 리 없었다. 엄마는 넣을 때와 달라진 인형의 모습에 당황한 듯했지만 이내 상황에 수긍했다. 아깝지만 어쩔 수 없지. 냉정하게 덧붙였다. 갖기 싫으면 갖지 마.
 엄마보다 엄마의 선물을 더 기대하던 동생은 울며불며 안 가지겠다고 짜증을 부렸다. 나는 인형 두 개를 양손에 쥐고 방으로 가 책상 위에 올렸다. 비록 각각 팔 한쪽과 다리 한쪽에 금이 간 상태였지만 마음에 들었다. 언젠가 인형 하나는 사라졌고, 동생을 위한 것이었는지 날 위한 것이었는지 알 수 없는 하나만이 남았다. 그렇지만 생각해보면 나한테 그렇게 중요한 건 아니었다. 지우가 아니었다면 내 방에 있다는 것도 몰랐을 테니까. 인형은 대충 옷매무새를 가다듬으니 괜찮아 보였다. 애써 시선을 돌렸다. 엄마의 말대로, 아깝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부엌 식탁에서는 지우가 혼자 밥을 먹는 중이었다. 엄마는 지우 맞은편에 앉아 입맛에 맞냐는 형식적인 질문을 던졌다. 그러나 지우가 대답 없이 고개를 박고 밥을 먹기만 하자 곧 자리에서 일어났다. 우리 가족은 절대 지우와 함께 밥을 먹지 않았는데, 지우가 불편해할 게 분명하다는 이유와 먹다가 체할 것 같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지우는 남의 집에서도 혼자 잘 먹었다. 남기는 일은 종종 있지만 반찬 투정을 하지 않았다. 하다못해 잘 먹었다거나 뭐가 먹고 싶다는 얘기도 없었다.
 지우는 밥을 빨리 먹는 편이었다. 순식간에 밥을 먹고는 조용히 자리에서 일어나 거실 소파에 앉아있고는 했다. 가장자리에 앉아 엄마와 내 행동을 지켜보는 게 다반사였다. 그날도 밥을 다 먹자마자 소파로 향하는 지우를 불렀다. 지우야, 언니랑 놀래? 한 달가량 지우를 보며 그런 말을 꺼낸 건 처음이었고, 충동적이었다. 지우는 방문 앞에 서 있는 나와 소파에 앉아있는 엄마를 번갈아 봤다. 그리고 이내 고개를 젓더니 소파로 가 앉았다. 엄마는 우리의 대화에 그다지 신경 쓰지 않는 듯했지만, 어딘가 모르게 작은 미소를 짓고 있었다. 마침 텔레비전에서 개그 프로그램이 나오던 탓일지도 몰랐다.
 나는 혼자 방으로 들어가는 대신 어색하게 소파로 가 앉았다. 양쪽 끝에 앉아있는 지우와 엄마 탓에 가운데에 앉아야 했다. 내가 앉고 가운데의 쿠션이 꺼지자 지우의 몸이 내 쪽으로 조금 쏠렸다. 그러나 지우는 빠르게 제자리로 돌아갔다. 텔레비전에서는 철 지난 코미디가 나오고 있었다. 여럿이서 품이 큰 바지를 입고 엉거주춤 걷다가 하나가 미끄러지며 전부 죽 미끄러져 버리는 몸개그였다. 텔레비전에서는 웃음소리가 크게 나왔지만, 우리 집에서는 아무도 웃지 않았다. 지금 방송을 보고 있는지조차 확실하지 않았다. 소파의 분위기는 어쩐지 살얼음판 같았다. 각자 다른 이유로 심기가 불편한, 얇은 두께의 얼음을 가진 빙하. 나는 억지로 시선을 텔레비전에 고정했다. 왼편에서 지우의 시선이 느껴졌다.
 지우 엄마는 평소처럼 늦게 왔다. 미안해서 어쩔 줄 몰라 하며 고개를 숙였다. 엄마는 이해한다는 듯 말했다. 일이 원래 마음대로 되나요. 집에 어차피 저랑 딸밖에 없고, 적적하니 지우 있으면 좋죠. 엄마가 가장 다정하게 구는 사람은 지우의 엄마였다. 지우의 엄마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둘의 대화는 이따금 길게 늘어졌다. 나는 엄마의 옆에 멍하니 서 있다가 지우와 눈이 마주쳤다. 지우는 자신의 엄마 뒤에 반쯤 몸을 가린 상태였다. 그에 비해 엄마와 조금 떨어진 자리에 서 있는 나는 지우를 향해 손을 흔들었다. 지우는 처음으로 손을 마주 흔들었다. 인사는 나만 눈치챘을 정도로 작고 빠르게 이루어졌다.
 그날 이후로 지우는 내가 꽤 마음에 든 눈치였다. 소파에 앉는 대신 날 쫓아다니는 일이 잦아졌다. 엄마가 무슨 심경의 변화냐며 신기하다는 듯이 바라볼 정도였다. 지우는 내 방에서 지내는 시간이 좀 더 길어졌다. 뒤져도 딱히 상관이 없는 서랍을 열어 나도 모르는 색종이를 꺼내 접고 놀거나, 작은 스노우볼 같은 것을 꺼내주면 그걸 가지고 노는 식이었다. 지우는 이따금 이런저런 말들을 툭툭 내뱉기도 했다. 언니, 겨울, 집. 그런 단어들은 그다지 대화로는 이어지지 않는 말들이었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지우를 향해 그렇냐며 어색하게 고개를 끄덕여 보이는 것뿐이었다. 지우는 내 반응에 신경을 쓰지는 않았다. 나는 지우에게 천천히 익숙해졌다.

 

 엄마와 내 생체리듬은 지우에게 맞춰졌다. 이른 아침에 저절로 눈이 떠지거나 지우가 집으로 돌아가는 늦은 밤이 되어서야 허기가 몰려오는 식이었다. 주말을 앞둔 금요일 밤에 지우를 데리러 온 지우 엄마는 표정이 좋지 않았다. 그날도 한 손에는 근처 프랜차이즈 가게에서 사 온 피자가 들려있었다. 엄마는 지우 엄마에게 대수롭지 않게 물었다. 무슨 일이라도 있어요? 지우 엄마는 기다렸다는 듯이 정말 죄송하지만, 으로 시작하는 말을 꺼냈다.
 혹시 내일 하루만 더 지우 부탁할 수 있을까요. 급하게 출장이 잡혔는데 맡길 데가 없어요. 이해한다는 표정의 엄마는 선선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요, 그러면. 나는 제 엄마 옆에 서 있는 지우를 바라봤다. 좋다거나 싫다거나 하는 내색 없이 얌전히 서 있었다. 지우가 떠나자 우리는 급하게 피자를 먹기 시작했다. 눅눅해진 피자 위에는 온갖 토핑이 올라가 있었다. 엄마는 피자를 디핑소스에 찍으며 말했다. 지우 엄마도 피곤하겠어. 나는 대꾸 없이 피자를 씹었다. 
 다음날 지우 엄마는 이른 아침에 찾아왔다. 평소보다도 이른 시간이었다. 한눈에 보기에도 바빠 보이는 지우 엄마는 지우를 우리 집에 데려다준 뒤에도 발걸음을 떼지 못했다. 주말에는 일찍 일어나지 못하는 엄마 대신 현관문을 열어준 나를 보며 머뭇거렸다. 나는 알 수 없는 불안감을 느끼며 억지로 물었다. 할 말 있으세요? 지우 엄마는 미안하다는 듯이 말했다. 저기, 제가 오늘 지우랑 동물원에 가기로 했었는데, 정말 죄송하지만……. 나는 당황해서 되물었다. 동물원이요? 지우 엄마는 다급하게 지갑을 꺼냈다. 그리고 내 손에 무언가 쥐여줬다. 얼마 안 되지만, 이걸로 지우 좀 놀아줘요, 네?
 지우 엄마는 빠르게 떠났다. 나는 멍하니 서서 밑으로 내려가는 엘리베이터를 바라보다가, 손에 쥐어진 돈을 바라봤다. 십만 원이었다. 십만 원이면 교통비에 동물원 입장료를 내고도 남았다. 내 옆에선 지우가 날 바라보고 있었다. 이상한 기분이었다. 나는 지우에게 물었다. 동물원, 동물원에 가고 싶어? 어쩐지 목소리가 떨려서 말이 잘 나오지 않았다. 목소리를 겨우 높게 꾸며 물었다. 동물원은 가족끼리 갔던 걸 마지막으로 가지 않은 지 오래되었다. 지우는 고개를 끄덕였다. 가고 싶어.
 뒤늦게 일어난 엄마가 마음대로 하라며 고개를 끄덕였다. 지우와 나보다 신난 엄마가 김밥을 싸겠다며 온갖 재료를 꺼내왔다. 셋이 식탁에 모이는 건 처음인 것 같았다. 지우는 김에 밥을 얹고 단무지나 햄, 시금치나물 같은 걸 올리는 걸 신기하게 바라봤다. 이따금 칼로 김밥을 썰며 도마를 내리치는 소리 외에는 큰 소리가 나지 않았다. 어색한 침묵만이 감돌았지만 엄마는 만족스러운 얼굴로 말했다. 이렇게 있으니까 꼭 가족 같네, 그렇지? 엄마의 말에 지우도 나도 대답하지 않았다.
 손으로는 계속해서 김을 깔고, 위에 밥을 얹어서 펴고, 단무지, 데친 당근, 집에서 먹던 시금치나물, 햄을 올렸지만 내내 혼란스러웠다. 지우를 만난 지 한 달은 더 넘었고 이전보다 함께 있는 게 익숙해졌지만 함께 놀러 가도 괜찮은지 알 수 없었다. 친하다고 하기에는 지우에 대해 잘 아는 게 없었다. 지우는 그다지 말이 많은 아이가 아니었으니까. 그리고 혹여 사람이 많다면 지우를 잃어버릴지도 몰랐다. 게다가 지우가 동물원을 함께 가고 싶은 사람이 가족인지, 내가 맞기는 한 지 알 수 없었다. 그렇지만 우리는 동물원으로 향했다. 
 출발은 오후가 거의 다 되어서야 할 수 있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전철을 타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엄마가 동물원까지 데려다주겠다고 한 탓이었다. 카세트에서는 엄마가 좋아하는 팝가수의 노래가 나오고 있었다. 노래 한 곡이 끝나면 곧이어 다른 노래가, 또 다른 노래가. 우리도 너 어릴 때 동물원 자주 갔었는데. 그렇지? 엄마는 운전석에 앉아 콧노래를 흥얼거렸고, 난 보조석에 앉아 밖을 바라봤다. 도로가 빠르게 스쳐 지나가고, 어느새 동물원에 가까워지고 있었다. 흘깃 바라본 지우는 도시락통을 끌어안은 채로 앉아있었다.
 둘이서도 갈 수 있지? 엄마는 주차장에 차를 주차하며 물었다. 둘이 가라고? 내 물음에도 엄마는 백미러로 밖을 살피느라 정신이 없었다. 곧 시동을 끈 엄마가 말했다. 난 동물원 별로 안 좋아해. 나도 좋아하지 않았다. 좋아하던 건 어릴 때 얘기였다. 게다가 어릴 때 이미 학을 뗐다. 엄마는 아무렇지 않게 덧붙였다. 둘이 다녀오면 되지. 나와 지우는 차에서 내려졌다. 엄마는 근처 카페에 있겠다며 창밖으로 손을 흔들었다. 지우는 엄마를 바라보다가 곧 나를 바라봤다. 나는 한숨이 나오는 걸 참으며 지우가 들고 있던 도시락 가방을 챙겼다.
 걱정하던 것과 달리 동물원은 한적했다. 이따금 마주치는 커플이나 가족 말고는 없다시피 했다. 내 기억 속 주말의 동물원은 이렇지 않았는데. 사육장 근처에서 핫바나 슬러시를 팔던 가게들도 문을 닫은 곳이 더 많았다. 우리 안의 동물들은 등을 돌리고 늘어져 있거나 퀭한 눈빛으로 빙빙 돌고 있었다. 지우는 내 옆을 가만히 따라오고 있었다. 어린아이답게 걸음 폭이 좁았고 주변을 둘러보느라 걷는 데 시간이 오래 걸렸다. 동물원에 가고 싶다던 지우는 어떤 동물이 보고 싶다는 말은 하지 않았다. 그저 입을 꾹 다문 채로 주변을 살필 뿐이었다. 지우가 시선을 주는 건 플라밍고나 기린 같은 동물일 때도 있었고 동물원 도중에 놓인 조각상이나 가게일 때도 있었다.
 나는 내가 지우만 할 때 보고 싶어 했던 것들에 대해 기억을 더듬었다. 캥거루나 코끼리, 사자, 호랑이, 펭귄 같은 것들. 지우와 천천히 걷기 시작했다. 지우는 걸으며 보이는 동물들을 쳐다보기는 했지만 오래 머물지는 않았다. 지우와의 동물원 나들이는 산책에 가까웠다. 구경보다는 한가하게 걷는 데에 집중하고 있었다. 초여름치고 날은 더웠고 사방에서 동물 냄새가 났다. 퀴퀴하고 텁텁한 냄새였다. 너무 덥다 싶으면 실내에서 관람할 수 있는 곳에 가 땀을 식히고 다시 밖으로 나오기를 반복했다. 지우는 걸음이 느렸지만 별다른 투정 없이 걸었다.
 어느 정도 걷다 보니 사자 우리가 나왔다. 삼 분의 일 정도 온 듯했다. 생각보다 많이 걷지 못했는데 시간은 꽤 지나있었다. 지금껏 만난 사람들은 전부 입구를 향해 내려가는 중이었다. 외부 사육장에는 사자가 없었다. 우리 앞에는 날씨로 인해 내부 사육장에서 볼 수 있다는 안내문이 붙어있었다. 나는 나도 모르게 주변을 살피며 풍선을 팔던 가게를 찾았다. 온갖 동물 캐릭터가 그려진 풍선과 갖가지 봉제 인형, 버블 건을 팔던 간이판매대는 없어진 모양인지 보이지 않았다. 나는 근처에 있던 벤치에 주저앉았다. 어딘가 마음이 풀리면서도 허탈했다. 지우는 앞에서 날 바라보고 있었다. 문득 느낀 시선에 어색한 웃음을 지어주었다. 옆자리를 두드리자 지우는 옆으로 와 앉았다. 도시락 뚜껑을 열며 지우에게 물었다. 김밥 좋아해?
 그늘도 없는 벤치에 나란히 앉아 김밥을 씹었다. 이따금 바람이 불면 분뇨 냄새가 났지만 괜찮았다. 예상하지 못한 더위에 김밥이 쉬지 않은 것만으로도 천만다행이었다. 주변에서는 간간이 새나 원숭이 울음소리 같은 것들이 들렸고 맞은편의 사자 우리에는 나무와 나무에 매달린 고무 타이어만 보였다. 김밥을 씹다가 우연히 지우와 눈이 마주쳤다. 그러고 보니 지우와 밥을 같이 먹는 건 처음이었다. 지우는 햇빛 때문에 눈이 부시는지 가끔 얼굴을 찡그렸다.
 우리는 밥을 먹고도 한참을 벤치에 앉아있었다. 말은 안 했지만 우리는 꽤 지친 상태였다. 더는 걸을 기운이 없었다. 손으로 그늘을 만들면서도 일어날 기미는 보이지 않았다. 해가 이전만큼 뜨겁게 느껴지지 않을 즈음에 안내방송이 나왔다. 곧 폐장하니 관람객들은 속히 돌아가 달라는 안내였다. 지우는 여전히 사자 우리를 바라보고 있었다. 보이는 건 아무것도 없었는데. 나는 아직 보지 못한 동물들보다 앞으로 돌아가야 할 길을 바라봤다. 까마득하게 느껴졌다. 우리는 안내방송이 한 번 더 나오고 나서야 자리에서 일어났다. 갈까? 손으로 엉덩이를 터는 나를 따라 지우도 엉덩이를 털었다.
 나는 입구로 향하다 말고 뒤를 돌아봤다. 해양관의 방향 표지판이 보였다. 어릴 적 가족 나들이도 아프리카관에서 끝났었다. 그때는 집에 돌아가기 이른 시간이었다. 동생과의 이유도 기억나지 않는 다툼으로 엄마는 예약했던 외식까지 취소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그날 언니라서 동생보다 먼저 혼나야 했던 나는 화장실로 도망갔다. 도망갔다고 하기에는 금방 끌려 나왔지만. 동물원에 오면 매번 이쯤에서 돌아가는 것 같았다. 이제는 큰 미련 없이 돌아섰다.

 

 둘 다 얼굴이 벌겋게 익었네. 엄마는 같은 자리에 차를 주차하고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엄마는 지우의 얼굴을 살피며 말했다. 이러면 부모들이 안 좋아하는데. 신경 쓰지 그랬어. 나는 대꾸 대신 보조석에서 잠자코 벨트를 맸다. 엄마는 지우가 벨트를 매는 걸 확인한 뒤 출발했다. 도로는 낮보다 조금 막혔다. 엄마는 오는 길에도 콧노래를 불렀고 오랜만의 나들이가 나쁘지 않은 모양이었다. 들어가기 전에 밥이나 먹을까? 익숙한 동네에 들어섰을 때 엄마가 물었다. 지우 너, 뭐 좋아해?
 동네 고깃집은 외식을 나온 사람들로 붐볐다. 사방으로 뛰어다니는 아이들과 술에 취해 목청이 커지는 사람, 주변이 시끄러운 만큼 더 크게 틔워 얘기를 나누는 사람들로 혼잡했다. 그 사이에서 다른 공간이라 해도 믿을 정도로 차분한 건 나와 지우, 그리고 엄마였다. 엄마는 구워진 양념갈비를 잘라 지우의 접시에 덜었다. 지우는 감사하다는 말이나 그런 것 없이 조용히 고기를 먹기 시작했다. 이렇게 있으니까 꼭 가족 같네. 엄마는 물냉면을 자르다 말고 웃었다.
 나는 기진맥진한 얼굴로 고기를 씹었다. 양념갈비는 특유의 단맛이 진했고 육즙이 흘렀지만 평소보다 무디게 느껴졌다. 더위라도 먹은 모양이었다. 살얼음이 떠 있는 냉면 육수만 겨우 들어갔다. 옆을 바라보니 지우 역시 눈을 굴리며 냉면 육수를 벌컥이고 있었다. 식당에서 밥을 먹은 지 한 시간이 지나자 지우는 졸기 시작했다. 말은 안 했지만 많이 피곤한 듯했다. 곧 점점 몸이 기울더니 내 다리를 베고 거의 눕다시피 했다. 다리에 느껴지는 가벼운 머리의 무게가 당황스러웠다. 지우는 가끔 알 수 없는 방식으로 거리를 좁혀왔다. 엄마는 잠든 지우를 한번 흘깃 바라볼 뿐 별다른 말은 하지 않았다.
 발이 저려올 때쯤 식당으로 지우 아빠가 찾아왔다. 지우 아빠는 회사에서 바로 온 참인지 얇은 정장을 입고 있었다. 지우의 아빠는 감사하다는 말만 여러 번 하더니 지우를 업고 집으로 갔다. 쥐가 나는 발을 문지르며 지우가 가는 길을 바라봤다. 엄마는 날 보더니 한마디 했다. 애 키우는 게 쉬운 일이 아니다. 남은 고기를 집어 쌈을 싸는 엄마는 아까만큼 기분이 좋아 보이지 않았다. 나는 발을 문지르다 말고 물었다. 엄마는 왜 그만뒀어? 엄마는 나를 가만히 바라보다 쌈을 한입에 넣더니 씹기 시작했다. 그리고 삼키고 나서야 툭 말했다. 너, 다니지 말라고 생떼부릴 때는 언제고. 엄마가 뭘 잘못 기억하는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그런 말을 한 기억이 없었다.

 

 지우의 부모는 그 뒤로도 간간이 사소한 부탁을 했다. 유치원에 이따금 있는 부모와 함께하는 숙제를 대신해 준다거나, 아침에 지우의 머리를 빗겨주거나 하는 것들. 엄마와 나는 큰 불평 없이 해냈다. 그렇게 어려운 일은 아니었으니까. 물론 지우의 부모 대신 알림장 같은 걸 확인하고 있자면 그런 생각이 들 때도 있었다. 내가 왜 이걸 하고 있지. 그렇지만 엄마에게 얘기하지는 않았다. 문득 지우의 부모가 할 일들을 돕다가 엄마와 눈이 마주칠 때가 있었다. 무언가 열심히 하는 지우의 머리 위로 눈이 마주쳤다. 그러나 그게 다였다. 곧 다시 고개를 숙이고 색종이를 접거나 그림을 그리는 것을 도왔다. 엄마도 나에게 그런 얘기는 하지 않았다. 우리가 등하원도우미 이상의 일을 하고 있는 게 아닐까, 하는 것들.
 주말을 앞둔 금요일 밤이었다. 우리는 나란히 소파에 앉아 텔레비전을 보고 있었다. 정확히는 텔레비전을 보는 척하며 각자의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지우는 저녁도 먹었고, 간단한 숙제도 끝낸 참이었다. 지우의 부모가 데리러 오기만 하면 됐다. 그때 나에게 전화가 왔다. 지우의 엄마였다. 내 번호까지 받아 간 지우의 엄마는 종종 나에게 연락해 무언가 부탁하고는 했다. 실질적인 도우미는 엄마였지만, 이따금 나한테 연락을 했다. 대개 좋은 일로 오는 건 아니었기에, 불안한 기분으로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지우와 엄마가 날 쳐다보는 게 느껴졌다. 저기, 지우 엄마에요.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다.
 저, 정말 죄송해요. 오늘 평소보다 더 늦을 것 같아서. 지우 엄마의 말에 난 떨떠름하게 대답했다. 아, 네. 지우의 부모는 평소에도 늦었고, 최근 들어 천천히 더 늦어지고 있었다. 엄마는 내가 지우 부모의 야근에 불만이라도 내비친다 싶으면 고개를 저었다. 사회생활이 그렇게 쉬운 게 아니야. 오늘은 자정이 되어서야 올 수 있을 것 같다는 연락이었다. 나는 지우 엄마와의 전화를 끝낸 뒤 엄마를 불렀다. 엄마. 날 바라보고 있던 엄마는 무슨 얘기가 오갔는지 궁금한 표정이었다. 나는 지우를 몰래 흘끔거리며 말했다. 지우 엄마가, 지우 좀 씻겨달라는데. 샤워. 내 말에 엄마는 입매가 일자가 되도록 꾹 다물었다. 그리고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나는 어린애를 씻기는 건 처음이었고, 엄마는 오랜만이었다. 엄마가 화장실로 가 온도를 맞추는 사이 나는 지우가 옷 벗는 걸 도왔다. 지우야, 할 수 있어? 지우는 고개를 끄덕이고 알아서 옷을 벗었다. 나에게는 천만다행의 일이었다. 대체 뭘 어떻게 해야 할지 알 수 없었으니까. 지우에게 적당히 수건을 두른 뒤 화장실로 데려갔다. 또래 아이들에 비해 점잖은 편인 지우는, 씻을 때만은 예외였다. 욕탕까지는 조용하게 들어간 지우는 머리를 감기기 시작하자 소리를 지르며 울기 시작했다. 지우가 소리를 그렇게 크게 지를 수 있다는 건 그날 처음 알았다.
 진땀을 빼며 지우를 씻겨야 했다. 말로는 도저히 달랠 수가 없었다. 그나마 몸을 씻길 때는 울음이 잦아들었다. 나는 타월에 거품을 내서 지우의 몸을 문지르는 엄마를 바라봤다. 습기가 찬 화장실 때문인지, 지우와 씨름을 한 탓인지 얼굴이 벌게져 있었다. 내 얼굴도 엄마와 별반 다를 게 없었다. 화장실 문을 열자마자 발가벗은 지우가 뛰쳐나갔다. 거실의 서늘한 공기가 얼굴에 닿았다. 지우야, 몸 닦아야지. 엄마가 기진맥진한 얼굴로 수건을 들고 지우를 좇았다. 나는 화장실을 나가려다 말고 안을 바라봤다. 물이 사방으로 튀어 바닥이 흥건했다. 수증기가 꽉 찬 안을 바라보자니 문득 어릴 때가 생각났다. 엄마를 피한답시고 화장실로 도망가던 때 말이다. 화장실에 도망을 가면 결국은 더 크게 혼났다.
 그렇지만 매번 화장실로 도망갔고, 결국은 엄마에게 문을 열어줬다. 나는 화장실 문을 닫고 나왔다. 거실에서는 선풍기 앞에 앉아 지우의 머리를 말려주는 엄마가 보였다.
 자정이 다 되어 도착한 지우 엄마는 연신 고맙다고 인사를 하다가 빠르게 사라졌다. 지우는 평소보다 더 엄마에게 매달려 집으로 돌아갔다. 엄마와 나는 피곤한 얼굴로 지우를 배웅했다. 나는 지우 엄마가 근처에서 사 왔다는 치킨을 식탁 위에 올렸다. 아직 따뜻한 치킨에서는 고소한 튀김 냄새가 났지만, 입맛이 돌지 않았다. 엄마는 소파에 드러누워 있었다. 엄마는 목소리가 가라앉아있었다. 더는 못 하겠다. 못 한다고 말해야겠어. 반쯤 쉰 목소리를 들으며 팔을 문질렀다. 씻기며 나도 모르게 팔에 힘이 들어갔는지 팔이 저렸다.
내 방에 들어가자 지우가 만졌던 것들이 눈에 들어왔다. 모서리가 우그러진 책이나 다리가 부러진 도자기 인형, 접어놓고 간 종이배, 유치원 가방에 달려있던 열쇠고리, 큰 방울이 달린 머리끈……. 내가 가지고 있다는 걸 자주 잊게 되는 물건들이었다. 그러니까 나한테 그렇게 중요한 건 아니었다. 다음에 오면 챙겨주기 위해 열쇠고리와 머리끈을 책상 위에 올려놓았다. 지우가 오면 잊지 않고 가방에 챙겨줄 수 있도록 말이다.

 

 지우가 우리 집에 다시 오는 일은 없었다. 엄마가 그만두기도 전에 지우 엄마에게서 연락이 왔기 때문이다. 지우 엄마는 평소와 달리 조금 화난 듯했다. 전화를 받은 엄마는 당황스러운 얼굴로 네, 네, 죄송해요 만을 반복했다. 나는 소파의 끝에 앉아 다른 쪽의 끝에 앉은 엄마를 바라봤다. 잠시 후 전화를 끊은 엄마는 허탈한 얼굴로 말했다. 살다 살다 이렇게 잘리기는 또 처음이네. 지우가 그날 돌아간 후 감기에 걸린 모양이었다. 지우의 부모는 이렇게 부주의한 사람에게 지우를 맡길 수 없다고 했다 한다. 게다가 우리가 동물원에 다녀온 날, 지우의 얼굴이 벌겋게 익은 것 역시 불만이었는데 참았다는 말까지 전했다.
 엄마는 지우 부모의 말을 전한 것을 끝으로 입을 닫았다. 나 역시 할 말이 없었다. 농담도 건넬 게 없었다. 어쩐지 피곤이 몰려오는 것 같았다. 지우가 없는 소파에서 엄마와 나는 양 끝에 앉았고, 아슬아슬한 균형이 지켜지고 있었다. 물 위에 뜬 얇은 얼음처럼 말이다. 잠시 후 엄마가 밝은 목소리로 말했다. 역시 내 자식 키우는 거랑 남의 자식 키우는 건 하늘과 땅 차이네. 그렇게 말하는 엄마의 얼굴은 서운하면서도 속 시원하다는 얼굴이었다. 엄마가 내 농담을 싫어하는 만큼 나도 엄마의 농담을 받아치지 않았다. 대답하고 싶지 않았다.
 지우가 우리 집에서 사라진 뒤로도 이따금 생각났다. 아파트 단지에 있는 유치원 통학버스를 보면 문득 떠올랐다. 지우는 누구의 손을 잡고 배웅을 받았을까, 하는 것들이었다.
 지우가 사라진 뒤 굳이 텔레비전을 켜지 않아도 되게 된 엄마는 전에 그랬던 것처럼 클래식을 틀어놓고 취미생활을 했다. 분갈이를 하거나 새로운 식물을 가져오거나, 석고 방향제를 대량으로 만들거나 하는 것들. 엄마는 정신없이 움직이다가도 문득문득 멍해졌다. 특히 밤이 가까워지면 더욱 그랬다. 몇 달 만에 찾아온 동생이 내 옆구리를 찌르며 엄마는 왜 저러냐며 눈짓을 했다. 나는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그저 지우 엄마가 야근을 마치고 데리러 올 시간쯤일 뿐이었다. 오랜만에 집에 온 동생은 끝까지 모를 일이었다.
 나는 엄마가 자고 있는 침대의 빈자리에 누웠다. 무게가 쏠리자 엄마가 잠꼬대라도 하는지 작게 웅얼거렸다. 나는 엄마의 옆에서 동물원 팸플릿을 펼쳤다. 지우와 동물원에 갔을 때 챙겨온 거였다. 지도라는 점에서 크게 달라진 건 없지만, 전보다 세련된 지도가 그려져 있었고, 밑에는 체험프로그램의 시간이 적혀있었다. 아무 생각 없이 지도를 바라보다 달라진 걸 발견했다. 해양관에 펭귄이 빠져있었다. 두꺼운 빙하 대신 동물원의 푸른 페인트를 칠한 바닥을 딛고 여름을 견디는 펭귄들은 어디로 갔을까. 나는 결국은 볼 수 없었던 펭귄들을 생각했다. 문득 엄마와 함께 잠겨 드는 기분이었다. 녹아드는 빙하가 바다에 잠기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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