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회 천마문화상 - 대상(소설)] 욕쟁이 할머니
[51회 천마문화상 - 대상(소설)] 욕쟁이 할머니
  • 최교빈(서울예술대 문예창작과1)
  • 승인 2020.11.23 1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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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말숙이 욕을 시작한 건 2007년 무렵부터다. 이명박 국밥 광고가 선풍적 인기를 끌었던 시절, 종각에서만 삼십 년 넘게 국밥 장사를 한 그녀는 돌연 티브이 프로그램 출연 제안을 받게 된다.
 “할머니, 요즘 티브이에 얼굴 안 비추면 바보예요. 이렇게 훌륭한 국밥을 전국에 홍보 안 하는 건 도리어 직무유기지.”
 단골손님이었던 모 종편채널 PD는 여유로운 척 얘기했지만, 사실 당시 <팔도 맛집 기행>은 시청률 저조로 폐지 위기에 놓여있었다. 예능을 너무 다큐처럼 사실적으로만 연출한 게 권고 사유였다고 한다.
 “서민 음식 파는 사람이 그런 데 나가면 쓰나요.” 조말숙은 정중히 거절했으나 PD는 지칠 줄 모르고 그녀를 설득했다. 
 “할머니는 평소 모습대로만 해줘요. 나머지는 우리한테 맡기면 돼.” 
 그는 앞치마에 명함을 욱여넣으며 말했다. 그래도 조말숙은 인자하게 웃으며 묵례했을 뿐이다.
 그날 가게를 마감한 조말숙은 셔터를 내리다 손가락을 찍히고 말았다. 앞치마가 선홍빛으로 물들 만큼 많은 양의 피가 흘렀는데, 그때 그녀는 멈춰서 오래 생각했다. 육중한 철제 셔터 대신 번호 키가 있으면 어땠을까, 누군가 야밤에 창문을 깨고 침입하더라도 십 분 내로 출동해주는 경비 업체에 가입되어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고.
 굵은 소낙비가 내리쳤다. 십 원짜리 동전만 한 물 자국이 조말숙 몸에 군데군데 번졌다. 그녀는 다친 손가락을 빗물에 씻어내리며 걸었다. 비의 템포가 빨라질수록, 조말숙의 걸음에도 점점 속력이 붙어갔다.

*

 조말숙 할매 국밥은 무허가 함바집에서 시작했다. 당시 여느 장사꾼들이 그랬듯, 그녀 역시 새벽까지 셔터를 내리지 않았지만, 정기 휴일은 있었다. 단체 손님이 아무리 많이 예약한들, 지방에서 오랜 단골이 찾아온다고 한들, 일요일만큼은 결코 예외가 없었다. 그런 그녀에게 종교가 있었냐고 추측할 수 있다. 신은 평범한 조말숙의 삶에 한 줄기 빛 같은 존재 아니었겠냐고, 생각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 조말숙은 평생 무교였으며 엄밀히 말하면 무신론자에 가까웠다.
 그녀는 교회가 아니라 문인협회에 나갔다. 그곳엔 비슷한 연배의 친구들이 있었고 시, 소설, 수필을 합평하며 늦저녁까지 시간을 보내고 돌아왔다. 당시 조말숙은 꼭 일요일만을 위해 사는 사람처럼 보였는데, 평일엔 종이 인형처럼 흐느적거리다가도 토요일 저녁만 되면 얼굴에 혈색이 돌아 활기를 되찾았기 때문이다.
새들도 드문드문 우는 일요일 아침, 내가 막 잠에서 깨어났을 때 조말숙은 늘 외출 준비까지 마친 상태였다. 그녀는 대문을 열기 전 잊지 않고 향수를 뿌렸다. 팔목과 목은 기본이며 겨드랑이와 정수리 심지어 사타구니도 빼먹지 않았다. 굳이 저런 곳까지 뿌릴 필요가 있나, 나는 진지한 표정으로 생각해본 적 있다. 초등학생 입장에선 고개가 갸우뚱해지는 이상한 행동이었지만, 지금에 와서 그녀의 고정대사를 떠올려보니 조금은 이해가 될 법도 하다.
 “아가, 할미한테 아직도 국밥 냄새나니?”
 나는 어린 강아지처럼 조말숙의 주변을 멤돌며 냄새를 맡았다.
 “아니, 유자 향만 나는데.”
 그녀에게 있어 국밥은 애써 드러내기 싫은 치부 같은 게 아니었을까. 나는 그녀의 일기장과 습작 노트 그리고 이화여대 국문과 졸업장을 펼쳐봤다. 조말숙의 속사정을 이해하려 노력했다. 그래 아마, 아마도 그랬을 것이다.
 ‘자네는 역병에 걸려 삼대가 썩어 문드러질 새끼에요.’
 조말숙은 분명 정확한 발음으로 그렇게 얘기했다. 처음엔 내 귀를 의심했다. 늘 단정하고 이지적인 모습만 보여주었던 그녀였기에, 도저히 동일 인물이라고 믿기 힘들었다. 하지만 화면 속 할머니는 분명 조말숙이었으며 목소리도 억양도 모두 오롯이 그녀의 것이었다. 나는 어딘가 조금 잘못됐단 생각을 한 채 영상을 이어 재생했다.
 “할머니 욕이 너무 맛있어요.” 손님들이 배꼽을 잡고 낄낄거렸다. 실제 대사는 ‘국밥이 너무 맛있어요’였던 것 같은데, 이상하게도 자막에 ‘욕’이라고 나오니까 정말 그런 전개로 느껴졌다. 누가 봐도 조말숙이 먼저 욕을 한 상황은 맞았다. 그런데 왜? 나는 영상을 다시 정지했다. 조말숙은 대체 왜 욕을 했는가.

*

 “할머니, 나 물어볼 게 있어.”
 토요일 밤이었고 조말숙은 책상에 앉아 시를 필사하고 있었다. 시집을 독서대에 고정한 채 렌즈 굴곡이 심하게 진 돋보기안경으로 한 글자씩 옮기는 중이었다. 그녀는 내가 방에 들어왔단 걸 뒤늦게 알아차린 듯, 안경을 가슴팍까지 내리고 차분히 물었다.
 “아가, 야밤에 무슨 일이니?”
 “나 할머니 나온 방송 봤어. 욕하는 거.”
 “그러니?”
 예상했던 반응은 아니었다. 나는 조말숙이 어떤 자기변호라도 할 줄 알았다. 가령, ‘아가 너도 알잖니 할머니가 원래 남한테 나쁜 말 하는 사람 아니란 거, 그 부분은 방송국 사람들이 억지로 시킨 거고 편집을 이상하게 해버린 것 같구나’처럼…. 평소의 조말숙이라면 내게 그런 식으로 설명해 주었어야 했다. 긴 침묵 속 누런 스탠드 조명이 조말숙의 얼굴에 드리웠다. 그녀의 주름살이 선명하게 양각되었다.
 차라리 그때 그냥 솔직하게 대답하는 해주는 편이 낫지 않았을까. 네 애비가 하필 촬영 날 가게에 찾아와 다짜고짜 양육권을 달랬다고, 네 애미 두들겨 패놓고 뻔뻔히 돈 얘기하는데 어떻게 참을 수 있겠냐고, 할미는 그래서 욕을 할 수밖에 없던 거라고, 그냥 가감 없이 얘기해주는 게 적절했을 수 있다.
 “잠 안 오면 계피차 좀 끓여주랴?” 
 조말숙은 나를 쳐다보지도 않은 채 시의 남은 부분을 옮겨 적으며 말했다. 처음 본 조말숙의 모습이 낯설게 느껴져 왠지 더는 선을 넘으면 안 될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아냐, 할머니, 잘자.”
 뒷걸음치듯 방을 빠져나왔다. 문틈 사이로 새어 나오던 불빛이 툭, 순식간에 사라졌을 때 이내 거실도 어둠으로 물들었다. 나는 문고리에 손을 올린 채 그 자리에 오랫동안 서 있었다.

*

 한참 망설이다가 조말숙의 방문에 열쇠를 꽂았다. 왼쪽이 맞는 방향이 아니란 걸 깨닫고 다시 반대편으로 돌렸다. 문은 짧고 경쾌한 소리를 내며 열렸다. 오래 방치되어 눅눅한 종이 냄새가 한꺼번에 코를 찔렀는데, 커튼 틈으로 뻗친 빛의 줄기가 먼지들의 이동 경로를 또렷이 보여주는 중이었다. 꼭 옛날 영화관에서 영사기가 돌아가는 장면처럼 보였다. 나는 조말숙의 책상에 앉아서 야릇한 감상에 젖어봤다.
 그때 나는 결심했다. 그녀의 일기와 습작 시들을 참조해 자전 소설을 쓰기로. 원고 청탁을 받고 3주 동안 단 한 글자도 적지 못했는데, 번득 그런 생각이 머리에 스친 것이다. ‘할머니는 죽어서도 손녀를 살뜰히 챙기네’, 나는 중얼거렸다.

 

 그래, 여러분의 예상대로 나는 작가가 되고 말았다. 3년 전, 아슬하게 모 신문사 신춘문예로 등단했으며 운 좋게도 문학 강의 몇 개를 출강하며 간신히 밥벌이를 하는 중이다.
 「욕쟁이 할머니」는 계간 《문학과 정신》 2020년 겨울호에 수록될 예정이며 여러분이 위 작품을 무리 없이 읽고 있다는 건 나 역시 영혼이 탈착되는 듯한 험준한 탈고의 과정을 끝내 인고했다는 걸 방증하리라.
 하지만, 이쯤에서 몇 독자들은 작가로서 ‘나’의 태도를 지적할 수 있겠다. 혈혈단신으로 손녀를 키운 가련한 여성의 죽음을 너무 소비적으로만 사용한 것 아니냐고. 혹은 실제 ‘나’의 할머니가 평생 고생만 하다 비명횡사한 건 아니냐는 둥, 걱정 어린 시선을 내비칠 법도 하다. 
 그렇지 않다. 이건 작가 윤리 따위를 논할 것도 없이 단칼에 잘라 말할 수 있다. 조말숙은 향년 구십 삼 세의 나이로 별세했으며 특별한 지병 없이 낮잠을 자다가 세상을 떴다.
 또, 믿거나 말거나이지만, 조말숙은 ‘나’의 할머니 즉, 故 김점남 씨와는 별개의 인물이다. 여러분이 아무리 ‘나’에게 조말숙에 관한 사적 질문을 던진다고 한들, ‘나’로서는 답해줄 수 있는 데 한계가 있다는 말이다. 재차 확실히 말하자면, 조말숙은 죽었다.
그러니까 다음 나올 플롯에서 내가 갑자기 장례식장에 등장하더라도 부디 어색하게 느끼지 않으시길 간곡히 부탁드린다. 그래, 조말숙은 죽었으니까.

*

 나는 그녀의 영정사진 앞에 서 있다. 향초 몇 개를 꽂고 절을 두 번 했다. 사진 속 조말숙은 웃는 것도 아니고 무표정도 아닌 모호한 얼굴을 띄고 있었다. 나는 침착한 목소리로 그녀에게 물었다.
 “할머니, 처음엔 악마의 편집이었다고 쳐도 이후엔 왜 욕을 한 거야?”
 당연히 대답은 없었다. 나는 어쩌면 이 대목을 쓰려고 일부러 그랬는지 모른다. 사실 그녀가 욕을 했던 이유도 얼추 알고 있었다. 간단하다, 장사가 잘됐기 때문이다. 품위를 지키며 손님들에게 상욕을 하는 욕쟁이 할머니 캐릭터는 대한민국에서 유일무이했으며 이후 수많은 방송사에서 출연 요청이 쇄도했으니까.
 조말숙은 강남에 분점을 냈다. 직원도 스무 명 넘게 채용했는데, 심지어 세상을 뜨기 몇 해 전에는 대구, 부산, 광주, 제주까지 지점을 확장하기에 이르렀다. 그 덕에 부모 없이 자란 나도 풍족한 경제적 여유를 누릴 수 있었다. 어느 순간부터 떨이용 돼지고기가 마블링 선명한 한우로 바뀌었으며 위성도시 변두리 단과 학원에서 강남 유명한 종합 학원에 다니게 된 것도 꼭 수순처럼 진행됐다. 나와 조말숙의 삶은 완전히 다른 층위로 이동한 듯했지만, 변하지 않은 질문은 딱 하나 있었다.
 “아가, 아직 할미한테 국밥 냄새 나지?”
 조말숙은 사타구니에 향수를 뿌리며 물었다. 이전과 문장의 구성은 거의 똑같았지만 어딘가 자신감에 부푼 어조를 띄고 있었다. 마치 국밥 냄새가 훈장이라도 되는 듯, 할머니 삶에 상징적인 거지? 라고 묻는 것 같았다. 지금의 풍족한 생활이 오롯이 국밥에 의해 이루어졌다고 조말숙은 쉽게 말했지만, 나는 조금 다르게 생각했던 것 같다. 애초에 욕이 없었다면 불가능하지 않았을까….

 

 조말숙의 빈소는 심각하다고 느낄 정도로 조문객이 적었다. 첫날 국밥집 직원 몇 명이 들린 것 빼곤 발길이 뜸했다. 직원들은 정직하게 조의금을 내고 식사만 한 뒤 떠났다. 실은 밀폐 용기에 홍어회를 주섬주섬 담는 모습은 그냥 보고도 못 본 척했다. 나와 눈이 마주치고도 당당하게 집어넣던 걸 보면, 아마 작정하고 온 것 같았기 때문이다.
 나는 문득 의문이 들었다. 아무리 친인척들과 연락이 끊기고 남은 가족이 나뿐 없더라도, 장례식에 채 열 명도 안 오는 건 조금 너무한 인생 아닌가. 최소한 단골손님들이나 주변 상인들은 조문을 올 줄 알았는데. 나는 대체 그녀가 어떤 삶을 살았는지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갑자기 장례식장 복도가 시끌벅적해지기 시작했다. 복도에 나가보니 오십 명이 넘는 인파가 한꺼번에 우르르 몰려오는 중이었다. 그들의 걸음은 조말숙의 빈소 앞에 멈췄다. 전부 연배가 지긋한 노인들이었다. 나는 정중한 어투로, 누구를 뵈러 오셨냐고 물었다. 그러자 빨간 머리 여자가 자신을 협회장이라 소개하며, 조말숙 선생님 빈소 아닌가요, 라고 되물었다. 그래, 그것이 나와 문인협회 회원들과의 첫 만남이었다. 조말숙이 매주 일요일, 무려 이십 년 넘게 관계를 맺었던 사람들과 말이다. 나는 침착하게 그들을 빈소로 안내했다.

 

 조문이 끝나고 그들의 술판이 벌어졌다. 이윽고 취한 문인협회 회원들이 하나둘 내게 질문을 건네기 시작했다.
 “손녀 슨상님도 작가라고, 말숙 씨한테 얼추 들은 것 같은디.”
 “예, 선생님. 저는 소설을 써요.”
 “어머, 말숙이 언니도 시 정말 잘 썼는데. 어쩜 좋아, 문인 DHA를 고스란히 물려받았나 보다.”
 DHA라니, 그럼 조말숙과 내가 무슨 어인(魚人)이라도 된다는 말인가. 웃음이 터질뻔한 걸 억지로 참았다. 하지만 정말 위기였던 건, 옆자리 남자의 ‘섹스피어 4대 희곡과 4대 비곡’ 부분에서였다. 4대 희극과 비극을 전부 엉터리로 말한 건 그렇다 쳐도, 마치 일부러 거센소리로 발음한 듯한 ‘쎅스’와 뜻을 알기 힘든 ‘비곡’이 내게는 강렬한 유머 코드로 다가왔기 때문이다. 입천장에 혀를 붙이고 슬픈 생각을 했다. 그래도 장례식장에서 할 수 있는 최고의 비극은 결국 장례뿐이었기에, 나는 어쩔 수 없이 다시 조말숙을 생각해야만 했다.
 “그럼 최 작가님은 등단을 한 것이지요?”
 협회장 여자가 물었다. 나는 신춘문예에 당선된 지 이제 막 3년 됐다고 답했다. 그러자 줄곧 말이 없던 회원들이 너도나도 끼어들기 시작했다. 마치 ‘신춘문예’라는 말이 방아쇠가 된 듯 그들의 잠재된 수다 욕망을 일깨워준 것 같았다.
 “내도 예년에 영북도민일보 본심까지 올랐소.”
 어색한 표준어를 쓰는 남자가 헛기침을 몇 번 하고 얘기했다.
 “지는 화개신문 최종심만 벌써 일곱 번째여유, 아이고 되다 되. 그란데 우째 한 번에 붙노?”
 경상도와 전라도 그리고 충청도 사투리까지 오묘하게 섞인 어투의 여자가 말했다.
 “아직 어리신데 중앙지에 당선되고 대단하네요. 근데 유명 신문사는 늙은 사람들 작품은 보지도 않고 파쇄기에 갈아버린다는데, 진짜입니까?”
 이번엔 약간 이북 억양이 느껴지는 노인 한 명이 물었다.
 하나의 질문에 대답해주려 하면 금세 또 다른 질문들이 쏟아졌다. 오십 명도 넘는 문인협회 회원들은 각자 다른 얘기를 내뱉었고 시선만은 전부 나에게로 고정되어 있었다. 순간 형언할 수 없는 불편함을 느꼈다. 단순히 연배 지긋한 어른들과의 술자리가 어색했기 때문만이 아니라, 그들이 장례식장에 온 목적이 조말숙을 위한 애도가 아닌, 꼭 나를 만나기 위함인 듯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리고 나는 스물아홉이긴 하지만, 빠른년생이라서 실질적으론 서른 살이며 유명 문예지를 포함한 신문사 신춘문예엔 열아홉 살부터 도전해왔다. 본심까지 올라간 횟수를 따지면 아마 그들보다 훨씬 더 많이 미끄러졌을 거라고, 나는 속으로만 생각했다.
 결국 불편한 분위기를 더 참지 못하고 빈소를 빠져나왔다. 화장실에 다녀오겠다고 말한 뒤 식장 뒤편으로 향했다. 돌풍이 불었다. 나뭇잎과 잔가지들이 변곡점을 찍으며 여기저기 왔다 갔다 했다. 폭넓은 치마가 살풀이하듯 풀어졌다. 나는 그 자리에 쪼그려 앉아 담배를 내리 세대 태웠다. 마지막 까치에서는 약간 현기증이 나 남은 부분을 모두 바람에 양보해버리고 말았는데, 재를 검지로 툭, 튀기니 바람의 결을 따라 불꽃이 포물선을 그리며 날아갔다. 나는 그때 이 장면을 소설 속에서 꽤 유려하게 묘사할 수 있을 거로 생각했다.
 빈소에 들어가기 전 찬물로 세수를 했다. 술기운에 홍조가 된 볼이 조금씩 가라앉는 듯했다. 물기를 닦아 내고 화장을 고치려던 때, 쩌렁쩌렁 울리는 함성이 들려왔다. 나는 그것이 조말숙의 빈소에서 나는 소리라는 걸 직감적으로 알아챘다. 벽에 몸을 숨긴 채 훔쳐보았다. 잔을 드높이 올린 채 서 있는 협회장이 보였다.
말숙 씨의 명복을, 그녀가 선창했다. 위하여! 다른 회원들이 후창했다. 축제라도 되는 것마냥, 몹시 즐거워 보였다. 조말숙은 대체 왜 저런 사람들과 어울렸나.


 해가 저물고 문인협회 회원들이 모두 자리에서 일어났다. 한명 한명씩 기계적인 인사를 건네며 배웅했다. 나도 모르게 한숨이 세어 나왔다. 처음 겪는 누군가의 죽음과 혼자 처리하는 장례 절차는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때 나는 무의식적으로 비속어를 내뱉을 뻔도 했는데, 문득 뒤통수가 따가워지는 느낌이 들어 급히 정신을 차렸다. 
칠판을 손톱으로 긁는 듯한 불쾌한 소리가 들려왔다. 뒤를 돌아보니 그곳엔, 말숙이 누나, 하며 엉엉 울었던 중절모 남자가 있었다.
 “선생님, 아직 안 가셨어요?” 
 나는 욕을 하지 않은 게 천만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그때 남자는 다짜고짜 자신의 습작 원고를 읽어달라며 전화번호를 물었고 나는 수첩에 이메일 주소를 적어주었다. 저도 신인인데 괜찮으시다면요, 의례적인 말도 덧붙였다. 남자는 연신 선생님, 거리며 허리를 숙였다. 나는 무릎을 굽혀야 할지 아니면 그냥 선 채로 인사를 해야 할지 진지하게 고민했다. 그러다 결국 어정쩡한 자세로 허리를 숙인 채 묵례했을 뿐이다.
 휠체어 소리가 완전히 사라질 때까지 한참을 지하 통로 어귀에 서 있었다. 그때 나는 분명 긴장해 있었던 것 같다. 남자가 언제라도 다시 돌아와 문학 얘기를 꺼낼 것 같았다.


*


 나는 노신사의 휠체어 바퀴 소리가 꼭, 막 깎은 연필이 공책과 마찰할 때 나는 선율과 닮았다고 느꼈다. 어쩌면 오선지에 세로줄 몇 개를 그어 원고지로 사용하고 있을지 모르겠다. 모르는 일이다. 그는 얼마나 오랜 세월 문학 악사의 꿈을 꾸었을까. 나는 열정이라는 단어를 여러 번 곱씹어 보았다.
 그렇게 한참을 장례식장 지하 통로 어귀에 서 있었다. 그가 언제라도 다시 돌아와 문학 얘기를 꺼내주길 바랐다.


*


 빈소는 다시 고요를 되찾았다. 나는 잠깐 쪽잠을 자야겠다고 생각했다. 내일의 일정은 더욱 바빠질 것이다. 입관, 발인, 화장 그리고 납골당 안치까지, 상주인 내가 모든 절차에 관여해야 할 테니까.
 눈을 감고 억지로 잠을 청하려 했을 때, 휴대폰 벨이 요란하게 울렸다. 저녁 열 한시에 전화를 거는 무뢰한은 대체 누구인가, 나는 짜증과 궁금이 절반쯤 섞인 마음으로 액정을 확인했다. 《문학과 정신》 편집 담당자였다. 나는 그 전화를 일부러 조금 늦게 받았다.
 “최 작가님, 원고 잘 쓰고 계시죠? 조부모님 상 치르고 계시는 거 트위터에서 봤거든요. 혹시나 해서 연락드렸습니다.”
 “아, 예, 안녕하세요. 걱정 안 하셔도 돼요. 초고는 다 써놓은 상태라서요.”
 “아 그러시구나, 답장이 없길래 무슨 일 생기신 줄 알고….” 
 “아, 마감 곧이죠. 정신이 하나도 없었거든요.”
 수화기 너머로 열띤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마 편집 회의 중인 듯했다. 나도 졸업 후 잠깐이지만 출판사에 몸을 담은 적이 있었기에 어느 정도 그들의 생태를 알고 있었다. 박봉, 갑을 관계, 그런 단어들을 떠올리니 왠지 가여운 마음이 들었다. 나 역시 등단을 못 했더라면 지금 저들과 같은 공간에 있었을지 모른다.
 “어떠세요? 이번 자전 소설 기획, 무슨 얘기 쓰시는지 넌지시 여쭤봐도 괜찮을까요?”
 “음….”
 “설마 조부모님 돌아가신 김에 겸사겸사 장례식장에서 벌어진 이야기?”
 편집자는 그것이 본인의 직업에 적절한 농담이라는 되는 듯, 몇 초간 형식적으로 웃어댔다. 나는 약간 정곡을 찔린 기분이 들었지만, 최대한 내색하지 않으며 침착하게 답했다.
 “에이, 설마요.”
 “사실 장례식 소재로 쓰신 분이 있어서 미리 말씀드렸어요.”
 “네, 아녜요.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나의 그렇다는 건지 아니라는 건지 모호한 대답 이후 잠깐의 침묵이 흘렀다. 역시 영정사진을 보며 질문하는 장면만은 빼야겠다고 다짐했다. 
 “네, 그럼 멋진 자전 소설 기대하겠습니다.” 
 내 대답이 돌아오기도 전 편집자는 먼저 전화를 끊었다. 내친김에 조금이라도 쓰고 자야겠다고 생각했다. 초고를 다 썼다는 건 당연히 거짓말이었다. 아마 그 사실은 편집자도 충분히 알고 있었을 것이다.
 노트북을 열자 정리 안 된 초고들이 너저분하게 깔려 있었다. 파일을 찾던 도중, 구석 자리에 놓인 새 폴더 하나가 눈에 띄었다. ‘나무발바리’, 언제 이런 폴더를 만들었지. 나는 문득 그것이 유에스비로 옮겨 놓은 조말숙의 시 원고라는 걸 기억해냈다. 그중 가장 최근 날짜의 파일을 더블 클릭했다.


*


 “정신 나간 양반이네요. 손발이 있다면 물이랑 반찬은 셀프랍니다.”
 젊은 연인이 자지러질 듯 웃기 시작했고 남자는 자꾸 더 심한 욕을 해 달라고 요청했다. 여자는 적당히 하라며 남자를 말리는 척했지만, 실은 함께 포복절도하고 있었다. 조말숙은 테이블 위에 반찬을 내려놓으며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꼭 젊은이들의 객기를 응당 이해한다는 듯, 본인의 욕은 여기까지가 한계선이라는 의지의 표명으로 비쳤다. 
 “할머니 그러지 말고 저한테 미친놈이라고 한마디만 해주세요. 네? 제발요, 소원이에요.”
 남자는 이제 기도하는 손까지 지어 보이며 애원했다. 그러자 여자가 짧게 코웃음을 치며 말했다.
 “할머니, 그것보다 얘 별명 뭔 줄 알아요? 석형고 3분 짜장이었거든요. 왜인지 알려드릴까요?”
 조말숙은 여자의 얼굴을 한번, 남자의 하반신을 한번 번갈아 가며 쳐다보았다. 그러고는 아주 약간의 반동으로 고개를 끄덕거렸는데, 아마 그 부분이 조말숙에게는 젊은 연인과의 타협점을 찾으려는 시도였을 것이다. 그래도 그들은 쉽사리 굴복하지 않았다.
 “야, 그걸 여기서 왜 말해.”
 “뭐, 못 할 말이라도 돼?”
 삼분은 아니지, 남자가 말했다. 오늘 초시계 켜고 재볼래? 여자가 답했다. 남자는 기분이 상했는지 팔을 걷어 색칠이 덜 된 조악한 문신들을 자랑해댔다. 여자는 익숙한 장면을 본다는 듯 화장을 고치기 시작했다. 와중에도 테이블 위 순대국밥 두 그릇은 차분히 식어가고 있었다. 
 나는 뒷자리에서 수육을 먹으며 그 기괴한 장면을 전부 지켜보았다. 꼭 잘못 만든 삼류 드라마 같다고 생각했다. 웃음이 픽, 나오려는 것도 애써 참아냈다. 하지만 그들을 잠시나마 재미있는 인간 군상으로 여긴 건 온전히 나의 실수였다. 이윽고 둘이 사이좋게 담배를 입에 나눠 물었을 때, 나는 조말숙의 얼굴을 먼저 확인했다. 일그러져 있었다. 아니, 극에 달한 듯 보였다.
 “자기야, 이러면 할머니가 상욕해주시겠지?”
 여자가 남자의 담배에 불을 붙이며 물었다.
 “그냥 재떨이 달라고 해볼래? 아니, 우리가 안산에서 서울까지 오느라 얼마나 고생했는데, 욕 한마디도 못 듣고 그냥 가는 법이 어딨어.”
 남자가 한 모금 크게 내뱉은 뒤, 뚝배기에 재를 털며 답했다.
 “그래, 우린 욕 먹으러 온 거잖아. 이딴 쓰레기 국밥 말고.”
 “그렇지.”
 나는 일부러 큰소리로 기침을 했지만, 그녀는 그저 대파를 다듬는 데 열중했을 뿐이었다. 그래, 그날은 토요일 저녁이었으니까. 다음 날 조말숙은 문인협회에 가야 했으니까, 그러려면 월요일 재료들을 미리 소분해 두어야 했기에… 그녀에겐 무엇이 더 중요했나.
 

 “할머니 존나게 잘 먹었어요!”
 젊은 연인이 떠나고 가게엔 조말숙과 나만 남았다. 그들이 어지럽혀 놓은 테이블에는 온통 담배 재와 묽은 침 자국이 가득했다. 어느 틈에 그랬는지 벽에는 립스틱으로 끼적인 낙서도 있었는데, 지민♥민호 2010.01.01.~ 악필은 동굴 속 벽화처럼 선명했다. 조말숙은 락스 물을 묻힌 걸레로 벽을 벅벅 문질러댔다. 상하좌우 사정없이 손을 움직이며 그 흔적을 지우려 애썼다. 하지만 그런 조말숙을 조롱이라도 하듯 붉은 낙서는 더욱 범위를 넓히며 번져갔을 뿐이다. 
 “할머니, 나도 도와줄게. 락스 더 풀어올까?”
 나는 뭐라도 해야 할 것 같은 기분이었기에 세숫대야를 들고 부엌으로 향했다. 그러자 조말숙이 내 손을 강하게 잡아 끌어당겼다. 순간 락스 물이 사방으로 튀어 내 교복을 온통 적시고 말았다. 그녀는 미안하다는 말 하나 없이 다시 벽을 닦는 데 집중했다. 마치 낙서가 도로 위 로드킬당한 짐승의 변사체라도 되는 듯, 손녀에게 보여주지 않으려고 필사의 노력을 다하는 것 같았다.
 “아가, 괜찮아. 먼저 들어가렴.”
 나는 괜찮다는 조말숙의 말이 정말 괜찮게 들리지 않았다. 도망가듯 부엌으로 뒷걸음질 쳤다. 고무장갑을 낀 뒤 수도꼭지를 돌렸다. 수세미에 세제를 묻혀 젖은 그릇을 가장자리부터 닦으려던 순간, 그래 그건 순간이었다. 
 나는 마침내 조말숙의 욕을 듣고야 말았다. 
 듣고 싶었을까. 그래야 속이 후련해질 거로 생각했나. 개수대 앞에서 멍하니 서 있는 나와 부엌 바깥에 짙은 음영으로 드리운 조말숙, 우리 사이에 끔찍한 침묵이 흘렀다. 욕은 순식간에 휘발되었지만, 수도꼭지의 물은 한참 동안 성이 난 듯 쏟아지고 있었다.


*

 젊은 커플은 연신 허리를 굽히며 예의 바르게 인사했다. 할머니는 그들의 셔츠에 사인해주었다. 나는 그때 꼭 그녀가 연예인처럼 보였다. 여느 배우, 아이돌 못지않은 인기라고 생각했다.
 가게를 마감하고 할머니와 나는 나란히 식탁에 앉았다. 우리는 막 삶은 수육을 서로의 입에 물려주었다. 
 ‘아가, 사람이 사람을 사랑하는 일은 히치하이킹 같은 거란다.’ 
 할머니는 내 뒤통수를 쓰다듬으며 세상 다정하게 말했다.
 늦은 식사를 마친 뒤, 나는 조금이나마 그녀의 짐을 덜어주고자 설거지를 시작했다. 그러자 할머니는, 우리 아가 손에 습진 생긴다고, 할미 손가락이 몇 개 잘려도 아가는 궂은일 안 시킨다고, 조금 무서운 표정으로 얘기했다. 처음 보는 할머니의 낯선 얼굴에 와락 눈물이 터지고 말았다. 그리고 그녀는 나를 포옥 껴안아 주었다. 할미가 미안해, 아냐 내가 미안해, 우린 부둥켜안고 한참을 엉엉 울었다. 
 부엌에서 콸콸 쏟아지는 수도꼭지 물소리만 선명했다.

*


 납골당에 유골함을 안치한 뒤 묘원을 걸어 내려갔다. 대리석 계단을 따라 비가 폭포처럼 쏟아 내리고 있었다. 조심스레 한발 한발 내디뎠다. 하마터면 뒤로 고꾸라져 위험할 뻔도 했는데, 이곳에서 뇌진탕으로 죽으면 코미디인가 트레지디인가,라고 혼자 생각해봤다. 설령 당장 죽더라도 쓰던 건 마저 쓰고 죽어야겠지.
 능선을 깎아 나무들을 빼곡 채워놓은 수목장은 얼핏 잘 조성된 동산처럼도 보였다. 어림잡아 보아도 유골함보다 수목의 개수가 훨씬 많은 듯 보였다. 
 ‘역시 수목장이 더 경제적인가, 다수가 택한 방식이니까.’ 
 나는 신중하게 가격 대비를 하지 못한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그보다 더 중요한 건, 납골당의 위치가 너무 멀었다는 점이다. 한참을 내려가는 중임에도 끝이 보이지 않았다. 나는 괜히 묘원에서 멋들어진 구상이라도 해보겠답시고 귀가 서비스를 신청하지 않은 걸 후회하기 시작했다. 매년 이 가파른 길목을 등산해야 할 것이다. 조말숙, 아니 대부분 불로 그을렸지만 남은 부분은 믹서기로 갈린, 삼중 진공 유골함을 보기 위해서. 사진과 도자기를 번갈아 쳐다보며, 할머니 잘 계시죠 저는 별 탈 없이 잘 지내고 있어요, 같은 상투적인 말이나 하려고, 꼬박 하루를 전부 투자하면서, 나는 진심으로 후회하기 시작했다.
 빗물은 묘원 정상에서부터 산등성이를 타고 쓰나미처럼 밀려왔다. 배수로는 이미 물을 빨아들이지 못해 흙탕물이 역류하는 중이었다. 쿨럭거리는 그 혼탁한 개구호흡에 왠지 내 호흡도 함께 빨라지는 기분이 들었다. 나는 서둘러 묘원을 빠져나가고만 싶었다.

*

 나는 엉엉 울며 할머니의 이름을 한 글자씩 발음했다. 서둘러 묘원을 빠져나왔다.

*

 “최 작가님, 통화 괜찮으세요? 원고 잘 읽었어요.”
 “아, 안녕하세요. 회의 다 하신 건가요?”
 “네네. 최종 회의까지 다 마쳤고 별 수정 없이 간다는 게 저희 의견입니다.”
 “아, 감사합니다.”
 “그런데요…, 조금 이해가 안 되는 부분이 있어서요.”
 “네? 어떤….”
 “저희는 괜찮은데, 편집장님이 여쭤보라고 하셨거든요. 아시잖아요, 그분 소설 쓸 때도 엄격하신 거, 자기 검열 같은 부분에서요. 어쨌든 그리 문제 될 게 없어 보이긴 하지만….”
 “…?”
 “결말 부분에 아빠가 다시 나오잖아요.”
 “네.”
 “그러니까, 소설 속 작가가 아빠를 이해한 듯 보이는 태도가…, 편집장님은 이해가 안 된다고….”
 “네?”
 “말씀하셨거든요? 회의 때 이렇게 똑같이 말씀하셔서요.”
 “아, 네, 이해…”
 나는 내가 정말 아빠를 이해한 듯 썼는지 헷갈렸다. 몇 초 동안의 침묵이 이어지자 편집자는, 그럼 추후 다시 연락 주실래요? 라고 물었다. 나는 그러겠다고 답한 뒤 서둘러 전화를 끊었다. 이번에는 편집자의 대답이 돌아오기 전 내가 선수를 쳤다.
 한글 파일을 열었다.
 <욕쟁이 할머니 진짜 진짜 진짜 최종본.hwp>
 마지막 챕터로 스크롤을 내린다. 

*

 아빠가 돌아왔다. 조말숙의 장례를 마치고 며칠 지나지 않아서였다. 우리는 종각역 근처 카페에서 만났다. 테라스 맞은편 조말숙 할매국밥 본점이 보였다. 나는 일부러 이 장소를 선택했는지 모른다.
 아빠는 주문한 에스프레소를 보며 의아한 표정을 지었고 나는 시럽을 열 스푼이나 짠 아메리카노를 한 모금 홀짝였다. 사실 나는 그의 목적을 알고 있었다. 조말숙의 유산, 그는 그것에 대해 세상 가장 어려운 말을 꺼내는 사람처럼 얘기할 것이고 대화의 주도권은 나에게 있음이 분명했다. 돈 문제로 지독하게 괴롭힐 게 뻔한 사람에게 몇 푼 쥐여주고 마음의 평화를 찾을 것인가, 아니면 그 심적 스트레스들을 견디며 나의 재산을 오롯이 지켜낼 것인가, 그것이 문제였다. *나는 햄릿을 쓰던 쎅스피어, 아니 셰익스피어의 얼굴로 진지하게 고민했다. 격노한 운명의 화살을 마음속으로 견뎌낼 것인가 아니면 곤경의 바다에 맞설 것인가 그건 오직 나의 판단에 달려있었다.
 결국, 아빠가 입술을 꾸물거리며 ‘딸, 다름 아니라’, 라고 얘기하자마자, 나는 국밥집 분점 한 개의 소유권을 넘겨주는 것으로 그의 말을 가로막았다. 미안, 고마워, 아빠가 말했다. 그래, 아니야, 내가 답했다.
 딱 거기까지가 내가 소설 속에서 인용한 장면이다.


 나는 테이크아웃 커피를 들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떨떠름한 표정으로 에스프레소를 홀짝거리던 아빠가 순간 엉덩이를 들썩였다. 이후 일은 변호사 통해 연락하세요, 내 말에 그는 입꼬리만 히죽이며 묵례했다. 
 문득 나는 십 년의 부재 동안 아빠가 어디에서 무얼 하고 살았는지 상상해보았다. 그의 정수리가 휑했다. 삿된 동정? 작업화에 페인트가 군데군데 묻어 있었다. 모르는 영역…. 그는 단종된 폴더 폰을 쓰고 있었다. 나와 무관한…. 
 나는 그를 그만 생각하기로 결심했다.
 “딸, 조심히 가…요.” 
 풀에 죽은 목소리가 내 등 뒤에 꽂혔고 나는 그때 그가 약간 가엽다는 마음이 든 것 같다. 그래, 그 감정도 소설에 묘사했기 때문 아닐까. 편집장이 ‘이해’라고 말한 이유 말이다. 
나는 도대체 무엇을 얼마만큼 이해했나.

*

 종각을 걸었다. 우산을 쓰기 애매한 양의 비가 내리고 있었다. 술집과 유흥시설이 어지러이 뒤섞인 번화가를 빠져나오면 멀리 탑골 공원이 잔상처럼 보일 것이다. 그곳엔 다양한 사연을 가진 노인들이 있다고 풍문으로 들은 적 있는데, 글쎄다, 그저 잔상처럼 보일지도 모른다.
 나는 지하철에 오른다. 여덟 개의 역을 지나 여의나루역에 내리면 이명박이 소생시킨 한강이 보이겠지. 그리고 나의 타워팰리스에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비 온 뒤 지하철 냄새가 그리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던 때, 누군가 나의 허리춤을 손가락으로 콕콕 찔러댔다. 거의 엉치뼈와 가까운 부분이었기에 순간 복합적인 생각이 들었다. 치한인가 외판원인가. 아니 그건 중요한 게 아니고, 나는 나를 자극하는 근원지를 바라보지 않은 채 꽃게처럼 옆으로 걸었다. 어찌 됐건, 일단 피해야 했다.
 “혹시, 최 선생님 아니십니까?”
 “예?”
 나는 나를 최 선생님이라 부르는 노년의 남자를 곧바로 기억해내지 못했다. 하지만 그는 정말이지 반가운 얼굴로 악수를 청해왔다. 그는 휠체어에 타고 있었기에 나는 어쩔 수 없이 내려다볼 수밖에 없었다. 이윽고 악수를 응했다. 그의 손은 생각보다 깔끔했으며 비싼 향수를 쓰는지 산뜻한 과일 향을 풍겼다. 아마 오래 달인 유자 향과 엇비슷했던 것 같다.
 “이렇게도 뵙네요. 저 기억하십니까? 조말숙 씨 장례식 때 뵀었잖아요. 선생님 메일로 제 소설 보냈었는데, 답장이 없으시더군요.”
 나는 그제야 그를 떠올릴 수 있었다. 그래, 나는 분명 그의 메일을 받았다. 그렇지만 첨부파일을 열어보진 않았다. 아마 제목은 「쇠비름 처녀」 정도였던 것 같은데, 「욕쟁이 할머니」 이후 한동안 청탁이 들어오지 않았지만, 굳이 읽고 싶은 마음은 들지 않았다. 나는 머쓱해져 관자놀이만 긁어댔다.
 “읽음 표시로 뜨던데, 제 소설 어떠셨나요? 실은 조말숙 씨는 극찬하셨습니다.”
 나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출입문 앞에서 그의 말을 듣기만 했다. 이윽고 열차가 여의나루역에 도착한다는 안내 방송이 흘러나왔다. 나는 살짝 무릎을 굽혀 그와 시선을 맞췄다. 최대한 무례하지 않게 보여야 한다, 젊은 작가로서 어른에게 내비칠 수 있는 적절한 태도를 생각해야 한다, 나는 어렵사리 말문을 열었다.
 “선생님, 너무 좋던데요? 서정적인 서사가 제 마음을 송두리째 뒤흔들어 놨습니다. 신춘문예에 내보셔도 충분히 가능성 있어 보여요.”
 그런가요? 그는 입을 가리며 진심으로 수줍어했다. 나는 뒷걸음질 치듯 고개를 숙이며 스크린도어를 빠져나왔다. 성에가 잔뜩 껴 희붐한 유리창으로 남자의 모습이 드리웠다. 그때, 그는 중절모를 사뿐히 벗고는, 꼭 연극배우라도 된 것처럼 인사했다. 허공에 그리는 모자의 각도가 부드러운 곡선을 그렸다. 나는 잠깐 무의식적으로 박수를 칠 뻔 한 것 같다. 그래도 손뼉은 울리지 않은 채 가만히 모여있었다. 마치, 기도하는 모양으로.

 

 승강장의 서린 공기에 몸에 한기가 시렸다. 비는 잠깐 계절감을 잃게 만들어 나처럼 우산이 없는 사람들에게 혹독한 여름 감기를 선사할지 모른다. 며칠 끙끙 신열을 앓다 일어나면 다시 무언가 간절히 하고 싶어지겠지, 나는 이윽고 새로운 소설을 쓸 수 있을 거란 기대감에 부풀어 올랐다. 
 계단을 올려 본다. 한 걸음 당 수명이 무려 2분이나 는다는 문구를 읽으며, 나는 걷는다. 그래야만 한다.

* 셰익스피어 햄릿, 햄릿과 오필리아가 만나는 장면 중 햄릿이 자신의 고뇌를 토로하는 내용. “사느냐 죽느냐, 그것이 문제로다. 격노한 운명의 화살과 물맷돌을 마음속으로 견뎌내는 것이 더 고귀한가, 아니면 무기를 들고 곤경의 바다에 맞서, 끝을 내는 것이 더 고귀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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