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칼럼니스트] 대한민국에서 초·중·고 12년을 거친 우리의 자화상
[나도 칼럼니스트] 대한민국에서 초·중·고 12년을 거친 우리의 자화상
  • 박나리(경제금융3)
  • 승인 2020.09.14 18: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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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나라 아이들은 초등학교 입학 전부터 경쟁의식을 세뇌받는다. 파릇파릇한 어린이들은 ‘경쟁의식’이란 단어를 알기도 전에 경쟁의식을 펼치게 된다. 남을 제치라는 무조건적인 압박은 집에서 김치찌개를 먹을 때도 가해진다. 학부모 입장에선 내 자식이 뒤처지지 않겠나 하는 불안감에 큰 금액의 사교육비를 지출한다. 심할 경우 생후 28개월밖에 되지 않은 아이가 유모차를 타고 영어 유치원에 다니기도 한다. 하지만 어떤 이는 “뭐 어때, 내 자식 내가 교육하겠다는데”라며 문제의식을 못 느낄 수도 있다. 중요한 건 한국의 모든 학부모가 사교육비를 충당할 여력이 되는가이다.

 필자는 자신의 학벌 혹은 학력을 ‘자신의 능력’과 동일시하며 허황된 우월감과 차별의식을 가진 이들이나, ‘난 뭘 해도 안 될 거야’라며 학습된 비관 의식과 열패감에 둘러싸인 성인들과 마주할 때 불합리함을 느낀다. 우리가 학벌을 ‘자신의 가치’로 치환시키는 건 사회로부터 학습된 경향이 크다. 부의 격차가 해마다 늘어나는 우리 사회에서 개인이 가진 학벌, 돈, 지위가 순전히 그 사람의 노력으로 이루어졌다고 보기 어렵다. 돈도 돈으로 사는 세상이다.

 한국에서 교육의 의미는 ‘지덕체 발전’, ‘더 나은 인간이 되기 위함’이 아니라, 오로지 시험을 잘 치기 위한 것이다. 한 인간의 잠재력을 향상시키는 전인적 교육이 아닌, 경쟁이나 입시만을 향한 교육이다. 시험이란 공부한 것을 점검하는 수준, 딱 그 정도여야 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하지만 한국 사회의 경우 기이할 정도로 필요 이상의 기간 동안 수험생이 된다. 평균 6년 정도 ‘수능’이란 단어를 위해 산다. 이러한 교육 흐름은 그냥 나온 것이 아니다. 이 흐름은 소득, 고용의 불평등, 대학 서열 등 모두가 주지하는 사회 분위기로 형성된 것이다. 입시 선발 과정도 그리 공정하지 못하다. 부모의 소득 수준과 학벌은 비례한다는 사실을 대한민국 사람 중 모르는 이가 있는가? 수능의 경우에도 재수를 할수록, 선행 공부를 할수록 유리하다는 면에서 이미 공정의 힘을 잃었다.

 우리 사회에서는 교육에서부터 누군가를 고의로 ‘배제하는’ 유구한 관행이 포착된다. 미국 내 African-American을 향한 차별을 목격할 때 우리는 분노를 느끼고 안타까워한다. 그런데 정작 교육 안에서 ‘차별 감수성’은 크게 발동하지 않는 것 같다.

 필자가 이 글을 쓰게 된 이유는 특정 직군의 담합에 있다. 최근 의사 담합이다. 그들이 담합할 수 있었던 이유는 교육이 약자를 배제하는 데에 있다. ‘약육강식’, ‘배제 우선’ 등의 원칙이 당대 학생들을 세뇌했다는 것을 보여준다.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의 거의 모든 부분에서, 필자를 포함한 인간들은 선택의 기준을 ‘사익 추구의 가능 여부’로 채택한 지 오래인 것 같다. 이제껏 국민들은 ‘하얀 가운’을 고마워했고 긍정적으로 생각했다. 그런데 과연 이것이 더 이상 유지될 수 있을까? 필자는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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