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칼럼니스트] 실질적 문맹
[나도 칼럼니스트] 실질적 문맹
  • 조정근(경영4)
  • 승인 2020.06.08 18:1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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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방학이면 날마다 동성로 술집 앞 가로등 밑에서 잠들던 못난 아들, 뜻하지 않게 방학은 길어지고 긴긴 방학 동안 어머니께 조금이나마 도움 되는 일을 해 드리자는 결심을 하곤 엄마께 묻는다. “엄마, 도와줄 거 없나?” 그러자 엄마의 대답, “핸드폰이 뭐가 또 말을 안 듣네”. 아무리 낡아도 고장 난 게 아니면 쓰자는 근검절약 정신의 어머니, 낡은 폰은 언제나 트러블을 일으키고 고치는 것은 내 몫이다. 나는 익숙하게 컴퓨터를 켜 해결책을 검색하고, 5분도 채 되지 않는 짧은 시간에 뚝딱 고쳐낸다. 어머니께 어떻게 고쳐야 하는지 컴퓨터 화면을 보여드리자 어머니의 대답, “와 이래 어렵게 말해 쌓노!”

 정상적으로 한국의 초·중등 교육과정을 이수한 성인, 아니 교육을 받지 않은 사람이라도 누구나 ‘한글’을 읽고 쓰는 데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 요즘은 한글을 모니터로만 본 사람들도 한글을 쓰고 읽기에 온갖 매체에서는 연일 한글의 과학성을 칭송한다. 그런데 과연 ‘글자를 안다’가 ‘글을 읽을 수 있다’와 같은 뜻일까? 간단한 예를 들자면, 나는 러시아어를 아주 조금 배웠고, 러시아 글자를 읽고 쓸 수 있다. 러시아어로 쓰인 글이 있다면 소리 내 읽을 수 있고, 내 이름이나 간단한 단어를 쓸 수 있는 정도이다. 즉 나는 러시아 기준으로 ‘비문맹인’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일상생활이 가능하지는 않다.

 2008년 국립국어원에서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한국인의 문맹률은 1.7%이고, 이중 문맹자들은 대부분 제대로 교육을 받지 못한 노인층으로 집계됐다. 그렇지만, 긴 글을 읽거나 고도의 정보가 담긴 글을 이해하는 능력은 높지 않다. 한국교육개발원의 2001년 조사에 따르면, 성인의 약 75%만이 실질적으로 긴 글이나 정보가 담긴 글을 온전히 이해할 수 있다고 집계된 바 있다. 여기에서 사용된 문제지는 캐나다와 OECD가 공동으로 제작한 생활 정보, 수량, 구직원서, 금전 출납 등으로 구성된 글을 보고 답을 하는 유형의 문제지이며, 총 5개 단계의 문제로 구성돼있다.

 그중 실질적으로 글을 읽는 ‘문서문해’ 항목의 구성을 보면 1단계는 간단한 생활 정보, 2단계는 단순한 업무에 대응할 수 있는 수준, 3단계는 일상생활이나 업무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에 대응 가능한 수준, 4, 5단계는 고도의 지식수준을 요하는 업무를 수행할 수 있는 수준이다. 조사 결과에 따르면 이 중 1단계에 해당하는 사람은 무려 38.0%에 달한다. 2단계에 해당하는 사람이 37.8%이니 무려 70%가량의 국민이 일상생활에서 접하는 수준의 문서를 전부 소화하지 못하고 있는 셈이다.

 이 글을 읽을 사람이면 대학 생활을 하는 중일 테니 대학생의 문해 수준에 대해 알아보자면, 문서문해 시험의 총점이 300점일 때 대학교육 이수자의 문해력 점수는 평균 258점으로, 네덜란드의 중졸자 평균인 262점보다 낮게 나타났다. 네덜란드의 중학생은 우리나라의 대학생보다 평균적으로 더 고차원적인 글을 읽고 쓸 수 있다고 볼 수 있겠다.

 몇 년 전부터 유행하는 것 중에 “세 줄 요약”이라는 것이 있다. 긴 글은 읽기가 싫으니 세 줄로 요약해달라는 것이다. 인터넷 등지에서 과거보다 훨씬 더 많은 양의 텍스트를 접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점점 대중들은 텍스트를 읽고 이해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제 와서 스마트폰과 인터넷보다는 전통적인 책 읽기로 돌아가자고 말하는 것이 시대착오적인 것으로 여겨질 수도 있지만, 개인적으로는 우리 대학교 학우들이 조금이라도 더 활자에 가까워지길 바란다. 글을 읽고 이해하며 글로써 표현할 수 있다는 것은 스스로를 훨씬 나은 사람으로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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