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마로를 거닌 사람] 오랜 기다림을 마치고 새로운 길 위에 선, 고명재
[천마로를 거닌 사람] 오랜 기다림을 마치고 새로운 길 위에 선, 고명재
  • 김민석 기자, 이연주 기자, 조은결 기자
  • 승인 2020.06.08 18:1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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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명재 동문(국어국문06)은 2020 조선일보 신춘문예 시부문에 당선되며 문학의 길을 새롭게 걸어갈 사람이 됐다. 이에 그를 만나 대학 시절과 철학 등 그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봤다.

 학창 시절 본인은 어떤 학생이었는가.

 인문관에서 기타를 치고 노래를 부르면서 노는 것을 좋아하는 학생이었어요. 그래도 국문학이 너무 좋아서 하루에 여덟 시간을 국문학 공부에 쓰기도 했어요. 그러다 4학년부터 본격적으로 시를 쓰기 시작하면서 점차 노는 시간이 줄어들었죠.

 대학 시절 가장 기억에 남는 활동은 무엇인가.

 매일 도서관에 가서 공부하며 친해진 친구들이 있어요. 그 친구들과 함께 도서관에 상주하며 글을 쓰고, 책을 읽고, 좋아하는 시집을 돌려봤던 순간순간이 가장 기억에 남아요.

 우리 대학교에서 강사로 일하고 있다. 강사로 재직하면서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은 무엇인가.

 ‘융복합글쓰기’ 수업을 하면서 학생들의 글을 보는 게 기억에 남아요. 학생들의 글을 본다는 것은 한편으론 양이 많아 고통스럽지만, 학생들의 생각을 알 수 있어 재미있어요. 그래서 학생 이름을 까먹게 되더라도 학생들이 적어준 이야기는 기억 속에 오랫동안 남아 있어요.

좋아하는 시인이 있다면 누구인가.

 악기 전공자에게 가장 존경하는 연주자가 누구냐고 물으면 곡마다 다르다고 얘기해요. 그런 것처럼 저도 좋아하는 시인은 참 많지만 한 시인을 꼽아 가장 사랑스럽다고 대답하기는 힘들어요. 그중 두 사람을 뽑는다면, 사회의 약자와 같은 현실적 문제를 철학적으로 얘기하는 진은영 시인과 시인들의 시인이라고 불리던 故 허수경 시인을 좋아해요.

 본인에게 시는 어떤 의미인가.

 저는 아직 한 번도 제가 쓴 시에 대해 만족스럽게 느낀 적이 없고, 그냥 ‘맘에 든다’ 또는 ‘맘에 조금 덜 든다’ 정도로 생각을 해요. 그래서 항상 더 잘 써보자고 생각하기 때문에 시는 언제든 ‘새롭게 시작할 수 있는 장소’인 것 같아요.

 시의 매력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시는 누군가의 살냄새와 누군가가 통과했던 시간, 누군가가 해보고자 했던 것을 글로 나타낸 것이기에 단번에 이해하기 힘들어요. 하지만 시는 찰나의 기쁨을 마주할 수 있게 해 단순한 문구로써의 깨달음을 넘어 많은 것을 생각해보게 하는 매력이 있어요.

 시인이 되기 위해 어떤 노력을 했나.

 시인 중에는 세상 자체를 다르게 보는 재능이 타고난 사람이 있어요. 반면 저는 시를 쓰면서 ‘난 정말 시 쓰기에 재능이 없는 사람이구나’라고 느꼈고, 이 사실을 인정하는 데에도 시간이 오래 걸렸어요. 재능이 없음을 자각했음에도 시를 쓰고 싶었어요. 그래서 한창 시를 쓸 때는 하루도 빠짐없이 학교에 나와 하루 종일 시를 썼어요.

 시를 쓸 때 영감은 어디서 받는가.

 보통 시인들한테 영감에 대해 물으면 ‘와, 뭐가 왔다’고 얘기하는데 저는 그렇진 않아요. 시를 쓰며 방향이 잡히지 않을 때가 많은데, 실패하는 걸 견디다 보면 어느 순간 내가 생각지 못한 방식으로 언어가 길을 보여줘요. 그래서 거창한 것이 아니라, 이 길을 따라가는 게 영감이라고 생각해요. 

 본인의 작품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작품은 무엇인가.

 미발표작인 ‘북’이라는 시예요. 저는 강의를 할 때 가능하면 세월호와 같이 마음이 아픈 사람들과 관련된 얘기를 많이 하려고 노력해요. 특히, ‘북’이라는 시는 마음이 아픈 사람들에게 뭐라도 얘기하고 싶은 심정으로 썼던 시라서 애정이 가요.

 시를 지을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이 있다면 무엇인가. 

 진실에 가까워지려고 노력하는 게 중요한 것 같아요. 단, 리얼리즘처럼 단순히 사실을 나타내는 게 아니라, 나만의 시각으로 진실을 나타내야 한다고 생각해요.

 시를 쓰면서 가장 힘들었던 순간은 언제인가.

 시를 쓰기 시작한 지 7, 8년이 지나면서 ‘언제 등단이 될까?’, ‘내가 쓴 시를 아무도 안 봐주고, 그냥 이렇게 쓰다가 혼자 가버리는 건가?’라는 생각이 들었을 때 힘들었어요. 당시 대학원 공부를 할 때라 강의도 인간관계도 없어 공부만 하니 앞이 캄캄했거든요. 그러다 ‘아무도 내가 쓴 시를 읽어보지 않아도 괜찮아’라고 생각할 즈음 당선이 된 것 같아요.

 2020년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바이킹’이라는 작품으로 등단됐다. 당시 기분은 어땠나.

 정말 행복했던 순간이었어요. 등단 후 꽃을 사서 어머니에게 갔는데, 당시 동지가 얼마 남지 않아 반찬가게를 운영하시는 어머니가 팥죽을 준비하고 계셨어요. 죽 쑤고 있는 뒷모습을 보며 “엄마 나 등단됐어”라는 그 말을 10년 만에 처음 할 수 있었죠.

 ‘바이킹’은 어디서 영감을 받았나.

 수성유원지에 있는 낡은 바이킹을 타고난 후, 시를 쓰게 됐어요. 당시 저는 박사 과정을 밟고 있었고, 늘 시를 쓰다 보니 일상생활이 매우 건조했어요. 또한 10년 동안 낙선되다 보니 마음도 힘든 상태였어요. 그러다 오랜만에 친구와 수성유원지에 가 즉흥적으로 바이킹을 타게 됐어요. 맨날 책만 읽고 공부만 하다가 하늘에 가까이 가니, 숨이 확 트이면서 바이킹으로 시 한 편 써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당선 소감에 시의 화자로 영재라는 분을 언급했는데, 영재는 누구인가.

 영재는 제 동생이에요. 집이 어려워 어릴 적부터 제가 항상 동생을 돌봐야 했어요. 가난이 고통스럽기도 했지만, 동생과 어려운 시간을 함께 통과했기 때문에 어린 시절을 생각하면 영재와 관련한 것들이 많이 떠올라요.

 2020 조선일보 신춘문예 시 부분의 당선 소감으로 김문주 교수님을 언급했다. 김문주 교수님은 본인에게 어떤 사람인가.

 ‘가장 사랑하는 사람’이에요. ‘문예창작론’이라는 수업에서 김문주 교수님을 처음 만났어요. 우리 대학교에 부임한 후 처음 맡으신 수업이셨는데, 그 때 교수님이 “이 수업은 ‘시창작론’입니다”라고 하는 순간, 시와 소설을 배우고 싶었던 저는 두근두근 가슴이 뛰었고 교수님께 계속 배우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시간이 지나면서, 교수님을 알아갈수록 교수님은 제가 죽고 싶을 만큼 힘들거나 무너질 때 나를 잡아 줄 수 있는 분이란 걸 깨달았죠. 그래서 저는 우리 대학교에서 석·박사 학위를 공부하기로 마음먹었어요.

 앞으로 어떤 시를 쓰고 싶은가.

 일상 속에서 소중하고 사랑스럽게 여기는 것들을 언어로 표현하고 싶어요. 어머니가 손톱을 깎는 모습, 동생이 나물을 편식하는 모습과 같은 것들이 별 게 아닌 것 같지만, 가장 궁극적이고 죽을 때 나를 이루는 가장 큰 것이기에 그런 것들을 담고 싶어요.
또한 타인의 아픔에 대해 많이 고민하고 시를 쓰고 싶어요. 강의를 하며 우리 사회에는 생각보다 아프고 상처받은 사람이 정말 많다는 것을 느꼈어요. 이에 이들을 위한 시를 쓰고 싶어요.

 시인을 꿈꾸고 있는 후배들에게 해주고 싶은 조언이 있다면 무엇인가.

 보통 목표를 이루려면 단기적인 계획을 수립해야 하는데, 글 쓰는 일은 단기적으로 뭔가를 이뤄낼 수는 없는 것 같아요. 그래서 시를 계속 쓰려는 마음을 지니는 것이 중요한 것 같아요.

 또한 해주고 싶은 이야기는 바로 이거예요. 저는 지금도 경제적으로 어렵고 미래가 불투명한 상태지만, 확실한 건 이렇게 살아도 실패했다고 느끼지 않아요. 어른들은 “현실적으로 생각해”라고 얘기하는데, 물론 그것도 도움되는 말이에요. 그런데 제가 그렇게 안 살았잖아요. 이렇게 살아본 바에 의하면 남들이 실패했다고 손가락질해도 스스로가 행복하면 그만이고, 그 덕에 사랑하는 사람과 더 많은 시간을 보낼 수 있었기에 스스로 실패했다고 생각하지도 않아요.

 앞으로 이루고 싶은 목표가 있다면 무엇인가.

 글을 쓰는 활동을 할 수 있는 공간은 주로 수도권에 몰려있어요. 그래서 글을 쓰고자 하는 친구들은 대부분 수도권으로 올라가요. 하지만 지방에서도 글을 쓰고 싶어 하는 친구들이 분명 있을 거예요. 그래서 우리 대학교 근처에 작게 글 쓰는 공간을 만들고 싶어요. 이를 통해 여기도 실력 있는 사람들이 있다는 걸 알리고 싶어요. 글 쓰는 친구들에게 제가 당장 무언가 해주겠다고 말은 못하지만 “우리도 흔들리지 않고 열심히 하고 있다”, “다들 잘하고 있지?” 이런 얘기를 해주고 싶어요.

인터뷰를 마친 기자들의 이야기

 아직 겨울의 추위가 다 가시지 않은 쌀쌀한 2월에 봄 햇살과도 같은 고명재 시인을 만났다. 고명재 동문은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충분히 즐길 줄 아는 사람이었다. 인터뷰를 하는 동안 고명재 동문이 사랑하는 것과 추구하는 것들이 확고하다는 것을 느꼈으며 그것이 필자에게도 고스란히 전해졌다.

 인터뷰 당시 고명재 동문은 세상이 자신을 인정해 줄 즈음인 10년이라는 시간 가까이, 시에 대한 자신만의 열정을 불태웠다. 이를 통해 노력은 배신하지 않는다는 것을 다시 한번 느낄 수 있었다. 10년이 결코 적은 시간이 아님에도 사회적 성공에 연연하지 않고 자신이 원하고 좋아하는 것을 포기하지 않을 수 있다는 점이 놀라웠다. 그를 보며 필자도 진심을 다해 열정을 바쳐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일까 다시 생각하게 됐다.

 덧붙여 시인 고명재는 ‘시’란 늘 새롭게 시작할 수 있는 장소라고 말했다. 어떤 시든 만족하지 않고, 새롭고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것들을 갈망하는 그가 멋있었다. 주변의 사랑에 감사하고, 아름다움을 아름답게 느낄 줄 알고 슬픔을 위로할 줄 알았다. 사소한 일상과 시를 멀리하지 않는 그는 어쩌면 그의 인생과 시 사이에 간극이 없을지도 모른다. 사랑하는 모든 것은 사라지지만 이야기는 남는다는 삶의 지혜와도 같은 그의 당선 소감을 떠올리며 인터뷰를 마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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