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을 트로트 열풍으로!
대한민국을 트로트 열풍으로!
  • 이연주 기자, 조은결 기자
  • 승인 2020.06.08 18: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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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찐, 찐, 찐, 찐, 찐이야’, ‘니가 왜 거기서 나와~’, ‘진또배기’ 이는 길거리에서 자주 들을 수 있다. TV조선 ‘미스트롯’이 쏘아 올린 트로트의 인기는 식지 않고 트로트 열풍을 불러왔다. 이에 트로트 열풍이 변화시킨 흐름을 알아봤다.

잠들어있던 우리 안의 ‘흥’을 깨우며

 현재 우리나라는 트로트에 푹 빠져있다. 한 음원 매체는 트로트 차트 신설 후 트로트 음원 스트리밍 수가 전년 대비 4개월간 185% 증가했다고 밝혔다. 더불어 트로트 수요가 증가하면서 트로트를 소재로 한 프로그램도 우후죽순으로 생겨나고 있다. 이에 트로트의 유래와 발전과정을 알아보고, 트로트 열풍이 불러온 영향에 대해 살펴봤다.

 트로트가 변화해온 지난날=‘트로트’의 어원은 서양의 춤곡인 ‘폭스트로트(foxtrot)’에서 왔다. 폭스트로트는 미국과 영국에서 4분의 4박자로 추는 사교댄스의 리듬으로 미국의 해리 폭스가 고안했다. 트로트의 유래에 대해서는 여러 견해가 존재한다. 일부 전문가들은 일제강점기 시절 일본에 유입된 폭스트로트와 일본 민속 음악이 결합한 ‘엔카’가 트로트가 됐다고 주장한다. 반면 일각에서는 트로트의 기원에 대해서 객관적으로 증명된 것이 없어 오히려 한국의 트로트가 ‘엔카’에 영향을 미쳤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초기의 트로트는 정확한 명칭 없이 ‘유행가’로 불렸고, 이후 일제강점기부터 6·25전쟁 시기까지 일본의 억압과 전쟁에 대한 슬픔으로 비극적인 정서를 표현하는 노래가 주를 이뤘다. 특히 1960년대는 ‘유행가’라고 불리던 노래가 ‘트로트’라는 명칭을 얻게 된 시기이다. 당시 트로트는 왜색이라는 이유로 배척하는 분위기가 존재했고, 실제 이미자의 ‘동백 아가씨’가 금지곡에 선정되기도 했다. 1970년대에 들어 트로트는 청년문화의 영향을 받아 포크 및 록 장르 등과 결합했고, 이전에 비해 곡의 리듬이 빨라졌다. 트로트는 이러한 과정을 거쳐 우리가 흔히 아는 남진·나훈아 등의 유명 가수들과 함께 전성기를 맞이했다.

 하지만 트로트는 1990년대를 맞아 서태지와 아이들로 인해 등장한 댄스음악과 발라드, 록에 밀려 암흑기에 접어들었다. 이에 젊은 소비층을 사로잡지 못한 트로트는 중장년층의 전유물로 명맥을 이어왔다. 그러다 2000년대에 접어들어 폴카 리듬을 결합한 장윤정의 ‘어머나’, EDM 요소를 접목한 김연자의 ‘아모르파티’와 같이 트로트는 색다른 요소와 어우러져 인기를 회복할 수 있었다. 이처럼 다른 장르와의 결합을 통해 대중의 취향을 반영하며 끊임없이 발전해온 결과, 2000년대 이후 트로트는 슬픔과 한을 대변하는 분위기에서 사랑을 주제로 한 흥겨운 분위기의 노래로 전환됐다. 그 예로 홍진영의 ‘사랑의 배터리’와 같은 곡이 대중들의 사랑을 받아 애창곡으로 자리 잡기도 했다. 하재근 문화평론가는 “트로트는 시대의 분위기를 반영하는 거울과도 같다”며 “우리나라 경제가 성장하면서 트로트의 분위기도 함께 밝아졌다”고 말했다.

 트로트 바람이 불다=침체기를 극복한 트로트는 지방 행사 등에서 그들만의 입지를 다져왔지만, 대중음악 시장에서 주류가 되지는 못했다. 하지만 이러한 트로트도 제2의 전성기를 맞이했다. 지난해 트로트 열풍의 시발점이 된 트로트 대국민 오디션 프로그램인 ‘미스트롯’은 동시간대 예능 1위를 차지하며 이른바 ‘송가인 열풍’을 불러일으켰다. 또한 지난 3월 종영한 미스트롯의 후속작인 ‘미스터트롯’이 시청률 35.7%라는 전무한 기록을 세우며 유종의 미를 거뒀다. 이러한 트로트 프로그램은 우리 안에 잠들어 있던 ‘흥’을 깨우기에 충분했다. 그렇다면 해당 프로그램들의 어떤 점이 대중의 마음을 사로잡을 수 있었을까? 

 오디션 프로그램 형식은 가요, K-pop, 힙합 장르와 주로 결합해 왔다. 하지만 미스트롯과 미스터트롯은 ‘트로트 오디션 프로그램’이라는 전례 없는 조합을 선보였다. 또한 해당 프로그램은 SNS와 유튜브를 통해 시청자와 적극적으로 소통하며 시청자가 원하는 미방영분을 제공하는 등 시청자 중심의 방송을 만들어갔다. 더불어 미스터트롯에서는 태권트로트, 마술트로트와 같이 트로트에 이색 장르를 접목해 끊임없는 볼거리를 제공했다. 마지막으로 이번 열풍을 통해 송가인, 임영웅 등 무명의 인물을 대거 등장시킴으로써 장윤정, 박현빈, 홍진영을 끝으로 끊겼던 트로트 가수 계보를 이어갔다. 이에 서정민갑 대중음악의견가는 “이러한 요소들로 인해 해당 프로그램은 선풍적 인기를 끌었으며, 기존의 트로트 소비층이었던 중장년층을 넘어 젊은층의 관심까지 사로잡을 수 있었다”고 말했다.

 한편 해당 프로그램으로 트로트의 영향력이 입증되자, 방송사들은 앞다퉈 트로트 프로그램을 기획했다. 하반기에는 KBS ‘트롯전국체전’ MBC ‘트로트의 민족’ MBN ‘보이스트롯’ 등 다수의 트로트 오디션 프로그램이 송출을 앞두고 있어 방송국들의 트로트 출하는 당분간 계속될 예정이다. 이에 김헌식 문화평론가는 “예전에 비해 다양한 트로트 프로그램이 제작되고 있다”며 “이는 트로트에 대한 여러 실험 및 시도가 가능해지기 때문에 트로트에 긍정적 자극을 줄 것”이라고 전했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이러한 트로트의 ‘유행쏠림현상’에 대해 우려의 목소리를 내기도 한다. 뚜렷한 정체성을 확보해 많은 관심을 받은 프로그램이 있는 반면, 기존과 별다를 바 없는 뻔한 형식을 선보여 한 자릿수의 시청률을 기록한 프로그램도 있기 때문이다. 이에 김헌식 문화평론가는 “유사한 트로트 프로그램들이 쏟아져 나온다면 시청자들이 트로트에 피로감을 느낄 수도 있다”며 “기존의 프로그램과 차별화될 수 있는 컨셉의 트로트 콘텐츠를 기획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전했다.

대구의 트로트 가수 최병윤, 인사드립니다!
 

 안녕하세요? 저는 대구의 트로트 가수 최병윤입니다. 저의 파란만장한 트로트 인생에 대해 얘기해 보려고 하는데, 잠깐 들어보시겠어요?

 중학교 시절, 저는 노래 실력이 좋아 음악 선생님들의 눈에 띄었어요. 그래서 합창부에 들라며 선생님들께 시달리곤 했죠. 아마 제가 노래에 대한 열망을 가진 것도 그때부터였던 것 같아요! 대회에 나가 입상한 경력도 있답니다. (하하) 하지만 제가 음악 하는 것을 지원해줄 만큼 집안 형편이 넉넉하지 않았기에 저는 자연스레 음악에 대한 열망을 접고 기계과로 진학했죠. 그렇게 대학 생활을 하던 중 군대에 갔고, 헌병중사로 2028년도까지 복무할 계획이었어요. 안정적인 길을 선택한 거죠. 그런데 군 복무 당시, 제가 노래를 부를 기회가 많았어요. 그러다 보니 노래에 대한 꿈을 접었는데도, 종착지는 결국 노래일 거라는 느낌이 계속 들었어요! 그래서 바로 전역 지원서를 제출하고 군대를 나와버렸어요. 그후 군대에서 번 돈을 불리고 싶어 투자를 했는데, 다 잃게 됐어요. 새로운 목표를 향해 나아가고 싶어 용기를 냈는데, 결과가 좋지 않아 망연자실했죠.

 그래서 한동안 우울하게 지내다가, 우연히 대구 백화점 앞 무대에서 재능 기부를 하고 계신 분을 보게 됐어요. 그분께 “저도 무대에서 노래를 불러 재능기부에 참여하고 싶은데 가능할까요?”라고 물어봤더니, 흔쾌히 승낙해 주셨어요. 그래서 이 일을 계기로 노래를 다시 시작하게 됐고, 무대에서 노래하는 영상이 방송국까지 닿아 여러 곳에서 섭외 요청이 왔죠. 이후 대구에서 살고 있는 작곡가를 만나면서 갑작스레 트로트를 하게 됐어요. 처음에는 트로트에 별로 흥미가 없었는데, 힘든 일을 겪어보니 저의 굴곡진 인생과 트로트가 닮았다는 게 느껴져 그때부터 본격적으로 트로트에 빠졌어요!

 ‘인생길’이라는 앨범을 내고 일 년이 채 되지 않은 상태였는데, 씨엔비 방송국에서 진행하는 ‘전화노래방’의 MC 제안이 왔어요. 그래서 대본도 직접 만들어 가며 1년 정도 전화노래방 MC를 맡았죠. 신인에게 생방송 MC란 로또 당첨과도 같은 기회였기에 최선을 다했어요. 하지만 군대에서 나온 후 신중하지 못했던 투자로 여윳돈을 다 날린 상태라 가족들의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어요. 그래서 결국엔 그만두고 다른 직장의 면접을 보게 됐죠. 3차 면접을 앞두고 있었는데 형수님이 제가 살고 있는 곳에서 전국노래자랑이 열린다고 말해줬어요. 도전하고 싶었지만, 입상의 경험이 있는 제가 전국노래자랑에서 아무 성과도 거두지 못할 수도 있다는 두려움에 너무 망설여졌어요. 그러다 모집 마지막 날, 지원 마감 1분을 남기고 동사무소에 가서 지원서를 제출했어요. 진짜 마지막이라 생각하고 예선을 치렀는데 덜컥 합격을 해버렸죠. 이후 본선에서는 박훈의 ‘나무꾼’이라는 노래를 불렀는데, 제가 그만 1등을 해버렸지 뭐예요? 그래서 또다시 노래를 시작하게 됐습니다!

 앞으로의 음악 인생에서 또 어떤 우여곡절을 맞닥뜨릴지 모르지만, 포기하지 않고 열심히 노래해보려고요. 김칫국부터 마시긴 이르지만, 저도 한류열풍을 일으켜 많은 사람이 알아봐 주는 트로트 가수가 되고 싶어요. 그게 곧 저 자신이 최선을 다하고 있다는 증거이기도 하니까요. 앞으로 트로트 가수 ‘최병윤’을 지켜봐 주세요. 좋은 음악으로 다시 만나요!
 

취재를 마친 기자들의 이야기

 기자는 이번 트로트 열풍을 통해 트로트가 가진 매력에 한 발짝 더 다가갈 수 있었다. 트로트가 ‘중장년층의 전유물’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았지만, 댄스, 발라드곡 위주로 들은 건 사실이다. 트로트에 대한 관심이 크지 않았고 주변에서도 트로트를 즐겨듣는 또래를 찾아볼 수도 없었다. 하지만 이번 트로트 열풍은 기존 소비층이었던 중장년층에서 더 나아가 젊은층의 관심까지 확보하며 트로트의 신드롬을 일으켰다.

 트로트의 유래나 발전과정에 대한 배경지식이 전혀 없었지만, 이번 문화기획을 준비하며 트로트가 걸어온 길을 확인하기에 충분한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트로트는 많은 우여곡절을 겪으며 발전했고, 시대적 상황에 따라 유동적인 모습을 보이며 대중에게 다가갔다. 트로트는 왜색풍이라는 비난을 받으면서도 한국적으로 변화했고 대중의 욕구에 맞게 여러 장르와 결합하는 등의 노력을 해온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렇기에 고정 관념처럼 갖고 있던 ‘트로트는 촌스럽다’는 생각을 반성하는 시간을 가질 수 있게 됐다.

 더불어 트로트를 접할 수 있는 콘텐츠가 늘어남에 따라 더 이상 텔레비전이나 음원 매체에서 보는 것이 어색하지 않게 됐다. 트로트도 음악적 장르로서의 빛나는 가능성을 보여준 것이다.

 트로트 열풍에 한몫한 유산슬의 ‘사랑의 재개발’은 트로트에 무관심했던 기자의 내재된 ‘흥’을 깨우기에 충분했다. 또한 이번 열풍을 통해 젊은층이 트로트는 우리 세대와 맞지 않는다는 등의 편향된 시각에서 벗어나, 트로트가 대중을 위해 변화해온 것처럼 우리도 그에 발맞춰 관심을 가져보는 것은 어떨까. 앞으로 트로트가 젊은층의 호응을 이끌어내 장기적으로 전 세대의 사랑을 받는 장르로 자리매김하길 바라며 글을 맺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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