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여기 있습니다’
‘나 여기 있습니다’
  • 조현희 기자
  • 승인 2020.06.08 18: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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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 여기 있습니다.’ 퀴어 인권 운동의 핵심 슬로건이다. 아직 성소수자 인권 운동이 열리는 현상에서 알 수 있듯, 우리 사회에서 ‘퀴어(성소수자를 지칭하는 포괄적인 단어)’에 대한 인식은 낮은 실정이다. 그렇다면 대학에 존재하는 퀴어들의 상황은 어떨까? 이에 퀴어의 대학 생활을 살펴보고, 그들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알아본다.


대학가 퀴어 혐오, 현재 진행 중

 최근 이태원발 코로나 사태로 인해 퀴어에 대한 혐오 표현이 난무하고 있다. 진리의 상아탑이라 불리는 대학에서도 퀴어 혐오는 존재한다. 이에 이태원발 코로나 사태로 인한 퀴어 혐오와 대학 내 퀴어들이 겪는 차별에 대해 알아봤다.

 코로나19가 보여주는 퀴어 혐오=지난달 6일,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진 판정을 받은 ‘용인 66번’ 확진자의 동선이 공개됐다. 세상의 관심은 확진자가 이태원에 위치한 클럽을 방문했다는 부분에 집중됐다. 언론에서는 특히 ‘게이클럽’이라는 점을 부각시켜 기사들을 보도했다. 국민일보는 ‘단독/이태원 게이클럽에 코로나19 확진자 다녀갔다’(국민일보, 5월 7일 자) 기사에서 확진자의 동선을 공개하며 제목에 ‘게이클럽’을 명시했다. 또한 기사 내용에서도 확진자의 연령과 직업, 근무지역 등 신상정보를 노출해 논란의 중심에 섰다. 이후 국민일보는 기사 제목을 ‘이태원 유명 클럽에 코로나19 확진자 다녀갔다’로 수정했지만, 해당 보도가 야기한 문제는 일파만파 퍼져나갔다. 포털사이트에는 ‘게이’, ‘게이 클럽’ 등의 단어가 실시간 검색어 순위에 올랐고, ‘성소수자들의 행태가 차별받을 만하다’ 등의 내용이 담긴 댓글이 이어졌다.

 이러한 상황에 대해 일각에서는 방역과 개인의 성적 지향이 연관 없음에도 불구하고, 확진자의 성적 지향을 부각하며 신상 정보를 공개하는 것은 인권 침해라고 지적했다. 언론이 개인의 성정체성을 특정 질환과 연결하는 것은 아웃팅의 가능성이 있어 성소수자들에게 위험하다는 것이다. 김우주 고려대 교수(감염내과)는 “프라이버시로 개인을 매도하는 것은 모두가 경계해야 할 일인 만큼, 국가인권위원회 등 정부 기관에서 세심하게 지침을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대학에서도 마찬가지=대학 내 퀴어들은 어떤 차별을 받으며 살아갈까? 대학가에 흔한 화장실은 남·여·남녀공용 세 가지로, 트랜스젠더가 사용할 화장실은 없다. 이에 익명을 요구한 우리 대학교 학생 A 씨는 “트랜스젠더로서 어떤 화장실을 사용해야 할지 곤경에 처하는 일이 잦다”며 학내에 성중립화장실이 없어 불편함을 겪고 있다고 전했다.

퀴어 혐오는 화장실 밖에서도 나타난다. 서강대 성소수자 모임이 붙인 현수막은 2년간 훼손됐다. 실제 서강대 커뮤니티에선 ‘성소수자 얘기 좀 그만하자. 더 시급한 현안이 많은데 학내 갈등만 조장한다’, ‘퀴어가 벼슬이냐’와 같은 언급을 쉽게 볼 수 있었다. 강의실에서도 수업 중 ‘동성애 찬반’을 주제로 토론이 진행되기도 했다. 하지만 A 씨는 “개인의 성적 지향인 동성애는 누군가 찬성하고 반대해 결정할 문제가 아닌데 이에 대해 찬반 토론을 하는 것은 인권 침해”라고 말했다. 또한 게이들이 여성적인 말투를 쓰거나 유흥을 즐긴다는 식으로 극단적인 혐오는 아니더라도 퀴어에 대해 고정된 편견을 가진 경우도 있다. 이에 익명을 요구한 우리 대학교 학생 B 씨는 “이러한 분위기로 커밍아웃이 더욱 어려워졌다”고 밝혔다.

퀴어도 존중받는 곳으로=그렇다면 퀴어도 존중받는 대학이 되기 위해서는 어떤 방안이 필요할까? 실제 대부분의 대학에서는 퀴어 관련 강의가 거의 열리지 않기에, 일각에서는 대학에서 퀴어 관련 교육을 진행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안희제 비마이너 칼럼니스트는 “학교에서 퀴어들이 겪는 차별에 관한 교육을 한다면 많은 학생이 퀴어가 겪는 혐오에 대해 인지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또한 학생 스스로의 노력도 필요하다. 그간 대학가에서는 커밍아웃하는 대표자들이 여럿 등장했다. 2015년 김보미 전 서울대 총학생회장을 시작으로 이예원 전 고려대 동아리연합회 부회장 등은 당당히 커밍아웃하고 당선됐다. 그러나 대학가에서 퀴어 혐오는 여전히 존재한다. 성소수자들이 대학에 붙인 대자보는 꾸준히 훼손됐고, 교수들 또한 퀴어에 관한 차별적인 표현을 일삼는다. 이에 안희제 칼럼니스트는 “학생자치기구에서 퀴어 축제를 여는 등의 움직임으로 가시화할 필요가 있다”고 전했다.


무지개 뜨지 않은 곳에도 그들은 있다

 퀴어는 어디서나 존재한다. 아직 무지개가 뜨지 못한 대학에도 그들은 있다. 이에 우리 대학교 퀴어 동아리(YuniQue) 구성원 C, D 씨를 만나 퀴어의 대학 생활 이야기를 들어봤다.

 자신이 퀴어라는 사실을 언제, 어떻게 알게 됐나.

 C 씨: 고등학생 때 여자를 좋아한 후 연애를 하게 되면서 제가 동성애자라는 사실을 알게 됐어요. 또한 제가 머리를 짧게 잘랐을 때 ‘남자가 되고 싶냐’ 혹은 ‘남자냐’는 말을 자주 들었어요. 이에 반발감이 들었고, 여자라고 호명되는 것에도 거부감이 들어 트랜스젠더로 정체화를 하게 됐어요.

 D 씨: 중학생 때 같은 반 친구를 좋아하게 되면서 제가 동성애자인 것을 자연스럽게 알게 된 것 같아요.

 학내에서 퀴어로서 차별을 받은 경험이 있나.

 C 씨: 수업 중에 교수들이 성소수자에 대한 차별적인 발언을 할 때가 많아요. 한 교수는 강의 중 ‘여러분들은 성소수자가 옆에 있으면 불편하지 않겠냐’와 같은 편견이 담긴 말을 하기도 했죠.

 D 씨: 한 동아리원이 동아리 홍보 포스터를 만들어 에브리타임에 올린 적이 있었는데, 성소수자를 혐오하는 댓글이 많이 달렸어요. 이에 제 신상을 공개하면서 직접 말씀하시라고 답글을 달았지만 아무도 연락이 오지 않았던 황당한 경험이 있어요.

 사람들이 퀴어를 보는 인식이 어떠한가.

 C 씨: 성소수자 얘기가 나올 때, 싫다고 겉으로 표현하는 사람이 조금은 줄어들었어요. 하지만 온라인에서는 성소수자에 대한 혐오가 담긴 글들이 난무해요. 또한 상대적으로 덜 알려진 성정체성에 대해서는 온라인, 오프라인 할 것 없이 ‘이상하다’는 반응이 많은 것 같아요. 그렇기에 아직 사회적으로 성소수자에 대한 인식이 개선되지는 않았다고 생각해요.

 D 씨: ‘퀴어’라는 단어가 누군가에겐 아직 보편화되지 않은 용어라고 생각해요. 퀴어에도 다양한 성적 지향성이 존재하지만,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떠올리는 것은 게이, 레즈비언, 트랜스젠더 정도예요. 그래서 대부분의 사람이 퀴어에 대해 얕게 이해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지인들에게 본인의 성적 지향을 알리기 힘든 이유는 무엇인가.

 C 씨: 사람들이 성소수자를 생각할 때 떠올리는 편견들로 인해 커밍아웃이 꺼려질 때가 있어요. 예컨대 트랜스젠더인 것을 밝히면 ‘여자가 되고 싶은 거예요, 남자가 되고 싶은 거예요?’와 같은 질문들이 날아오는 게 두려워 커밍아웃이 힘든 것 같아요.

 D 씨: 제가 믿고 신뢰하는 사람에게 커밍아웃하면 그걸로 인해 그 사람과의 관계가 단절될 수 있다는 두려움이 있어요. 주변에서 아웃팅으로 인해 우울증을 앓거나 자살을 선택한 성소수자들을 봤기에 아웃팅에 대한 두려움이 가장 커요.

 대학에서 퀴어들의 인권을 보호하기 위해 어떠한 노력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나.

 C 씨: 가장 심각한 문제는 교수들이 혐오 발언을 하는 것에 대해 아무도 문제 삼지 않고, 문제로 삼더라도 학교 측에서 조치를 취하지 않는 것이에요. 그래서 교수들의 혐오 발언을 제지하는 게 우선이라고 생각해요.

 D 씨: 성소수자뿐만 아니라, 여러 약자의 인권에 관한 감수성을 기를 수 있는 교양 강좌가 개설됐으면 좋겠어요. 실제로 사회적 약자의 인권에 관한 강의들이 존재해요. 우리 대학교 교수들의 역량도 충분하기에 그런 강의가 개설되면 좋을 것 같아요.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무엇인가.

 C 씨: 성소수자는 어디에나 존재하고 그들도 사회의 한 구성원인데, 아직까지 성소수자 혐오 발언을 하는 사람이 많아 안타까워요. 그렇기에 이제는 시대의 흐름에 맞춰 사람들이 성소수자를 우리 사회의 구성원으로 받아들이고 이들과 교류하며 지냈으면 좋겠어요.

 D 씨: 아직 학내에서 성소수자에 대한 인식이 좋지 않아 성소수자들이 커밍아웃하기 어려운 분위기인 것 같아요. 하지만 그들을 위해 언제나 투쟁하는 사람들이 있고, 도움이 필요할 때 손만 뻗으면 잡아줄 사람들이 있으니 성소수자들이 너무 두려워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QUV에 대해 알아보자!

"엄마와 함께 왔어요"...광장으로 나온 성소수자들 (이데일리,2018년 7월 14일 자)
"엄마와 함께 왔어요"...광장으로 나온 성소수자들 (이데일리,2018년 7월 14일 자)

 ‘QUV’란 무엇일까? Solidarity of University and Youth Queer Societies in Korea의 약자로, 대학·청년성소수자모임연대이다. QUV는 2013년 20여 개의 대학 성소수자 단체에서 차별금지법에 성적 정체성 포함을 요구하면서 설립됐다. 여기에는 우리 대학교 퀴어 동아리(YuniQue)를 포함한 전국 대학 내 71개 성소수자 단체가 가입돼 있다. QUV는 청년 및 대학생 성소수자들이 자발적으로 결성한 의제를 찾아 연대하고 행동을 취한다는 점에서 퀴어에게 의미가 있다. 성소수자가 겪는 부당한 일을 SNS나 서명 운동으로 대중에게 알리며, 집회 시위 현장에 참석해 목소리를 내는 역할을 한다. 최근에는 여러 단체와 코로나19 성소수자 긴급대책본부를 만들어 코로나19 사태 속에서 일어나는 성소수자 혐오와 차별 대응 인권침해 상담 방역당국과의 소통 등의 활동을 하고 있다. 또한 지난달 22일에 실시한 ‘코로나19로 인한 성소수자 인권침해’ 설문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보고서를 작성해 언론에 알리는 대응을 진행할 예정이다. QUV는 앞으로도 대학 및 청년 사회 내에 실재하는 다양한 의제들에 연대하고, 성소수자에 대한 혐오 문제 해결을 도모하겠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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