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영화, 그들의 발자취
여성영화, 그들의 발자취
  • 이연주 준기자, 조은결 준기자
  • 승인 2019.11.25 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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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 영화성평등소위원회가 지난 10월 5일에 발표한 ‘한국 영화산업 성평등 정책 수립을 위한 연구’에 따르면, 지난 2009년부터 2018년까지 그해 흥행 50위 안에 든 총 468편의 영화 중에서 여성 주연작은 24.4%였으며, 여성감독 수는 6.2%에 그쳤다. 과거에 비해 화면 속 여성 캐릭터는 다양해지고 있지만, 여전히 한국 영화계에서 ‘여성’의 입지는 지극히 좁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에 여성영화의 역사와 의의를 알아보고, 여성영화의 활성화를 위한 국내에서의 노력을 알아봤다.


여성영화의 과거와 현재

 국어사전에 의하면, 여성영화란 여성의 정체성이나 여성 노동, 가사 문제, 성 문제 따위의 여성 문제를 여성의 시각으로 다룬 영화이다. 시대마다 서로 다른 여성상을 보여주는 여성영화에선 당대 여성상의 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며, 당시 사회가 요구하는 여성상에 저항하는 주체적 여성의 모습을 제시하기도 한다. 이에 우리나라 여성영화의 발전 과정을 알아보고, 여성영화가 시사하는 바에 대해 살펴봤다.

 여성영화가 발전하기까지=우리나라 최초 여성감독의 여성영화는 1955년에 개봉한 박남옥 감독의 ‘미망인’이다. ‘미망인’은 한국전쟁 중 남편을 잃고 어린 딸과 살아가는 주인공이 젊은 청년과 사랑에 빠지면서 모정과 사랑 사이에서 고민하는 모습을 여성의 관점에서 사실적으로 그린 작품이다. 당시 상영된 대다수 영화가 여성을 ‘수동적이고 모성애를 가진 캐릭터’로 표현한 것과 달리, ‘미망인’에서는 여성을 ‘자신의 욕망과 사랑을 선택하고 진취적인 모습을 가진 캐릭터’로 표현했다. 그러나 여성감독의 작품이라는 이유로 나흘간만 상영됐다. 이어 1962년에 개봉한 홍은원 감독의 ‘여판사’에서 주인공 진숙은 판사라는 직책을 갖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주변 인물들은 진숙에게 아내와 며느리로서의 의무를 강요한다. 이처럼 당시 가부장 사회가 여성에게 강요하는 의무와 이로부터 탈피하고 싶은 진숙의 가치관이 충돌하는 과정을 보여주며, ‘정해져 있는 여성의 역할’에 대해 사유하게끔 했다.
하지만 이러한 여성영화인들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 영화 제작 시스템은 남성 제작자·투자자·배우 등 남성 주도하에 전개됐기에 남성은 입체적이고 능동적인 모습으로, 여성은 남성의 파트너, 어머니, 창녀 등 평면적으로 그려졌다. 그러다 1990년대 초반, 대기업 자본이 영화계에 유입됨에 따라 능력 있는 프로듀서가 영화 전반을 책임지게 되면서 양질의 영화가 제작되는 등 한국 영화계는 새로운 국면을 맞이한다. 이에 광고, 기획, 마케팅 분야에서 종사하던 여성들이 온전히 실력만으로 영화계에 뛰어들면서 임순례, 변영주, 이정향 등의 능력 있는 여성감독들이 등장했다.

 또한 2000년대에 들어와서는 관객뿐만 아니라 영화 평론가들 사이에서도 이슈가 되며 한국영화사에 길이 남을 특이한 여성 캐릭터들이 많이 등장한다. 특히 ‘친절한 금자씨’(2005)는 누명을 쓰고 감옥에 갇힌 주인공 금자가 13년간의 감옥살이를 끝내고 누명을 씌운 백 선생을 암매장하는 등의 복수를 하는 ‘나쁜 여자’의 모습을 보여준다. 또한 ‘마더’(2009)는 아들이 살인사건에 가담했다는 누명을 쓰게 되자 아들의 억울함을 풀어주기 위해 살인도 저지르는 극단적인 모성애를 보여준다. 이들은 모두 과거에 표현됐던 ‘남성에게 종속된 단순한 나쁜 여자’와 ‘나약한 어머니’의 모습이 아닌, 자신의 이익을 위해 주체적으로 행동하는 ‘이유 있는 나쁜 여자’와 ‘강한 어머니’를 유감없이 드러냈다. 이처럼 갈수록 영화 속 여성 캐릭터는 성격과 역할 분야에서 진화해왔다.  

 여성영화계의 한 획을 그은=더불어 현재는 여성인권의 신장, 평등을 추구하는 사회적 분위기에 따라 여성배우들은 장르를 넘나들며 활약하고 있다. 최근 김혜수, 전도연 등 한국의 여성배우들이 과거에 미처 다하지 못했던 역할을 하나씩 수행해나가며 여성영화는 더욱 진보하고 있다. 지난 9월, 감독 겸 배우 문소리는 잡지 ‘마리끌레르’와 함께 여성영화인의 역사에 대해 조명하며 한국 영화사가 다채로워지기 위해서는 여성영화인들의 역할이 중요하다는 목소리를 내기도 했다. 조소연 한국영상자료원 연구담당자는 “여성 감독, 여성 제작자에 의해 만들어지고 여성 캐릭터가 주가 되는 영화일지라도 남성 중심의 시각에서 바라본 가부장적 사회 현실 속 여성의 모습에 불과하다면, 여성영화라고 얘기할 수 없다”며 “여성 서사 영화는 기존과 다른 새로운 시각을 제시하기에 한국 영화 발전을 지속시킬 수 있는 경쟁력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오늘날 우리에게 주는 의미는?=한편 지난 2018년, 미투 운동으로 인해 페미니즘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증가함에 따라, 남성과 여성의 대립 구도가 만들어졌다. 이로 인해 젠더 갈등이 심화되면서 ‘82년생 김지영’, ‘미쓰백’, ‘걸캅스’ 등 여성이 주연인 여성영화들은 개봉 전부터 일부 네티즌들에 의해 일명 ‘평점 테러’를 당하기도 했다. 정민아 영화평론가는 “사회 공동체가 행해왔던 문제를 함께 해결한다는 열린 마음을 가질 필요가 있다”며 “여성영화는 여성 우월주의를 주장하는 것이 아니기에 우리는 평등주의 관점에서 여성영화를 바라봐야 한다”고 전했다.


활약할 무대를 위해
 

 1990년대에 국제적으로 양성평등과 관련한 논의가 수면 위로 떠오름에 따라, 우리나라에도 여성영화인들을 위한 ‘여성영화제’가 출현했다. 또한 여성관객들이 여성영화 소비 운동을 하는 등 여성영화를 활성화하기 위한 움직임이 전개되고 있다. 이에 여성영화의 대중화를 위한 노력에 대해 알아봤다.
 
 작은 목소리를 위한 축제가 탄생하다='여성영화제’란 여성의 인권, 정체성 따위와 관련된 영화를 일정 기간 동안 상영하는 행사이다. 여성영화제는 ‘1995년 북경세계여성대회’, 유네스코의 ‘지속가능한 발전으로서의 양성평등 선언’ 등과 같은 국제적인 여성주의 바람에 영향을 받아 탄생했다. 국내 여성영화제들은 여성주의 영화 상영 페미니즘 강의 영상제작교육 *GV(Guest Visit) 등의 프로그램으로 구성돼 있다. 이를 통해 우리나라의 여성영화인들이 활약할 수 있는 장을 만들어 주고 있다.

 1990년대 후반, 국내에 집중적으로 각종 영화제가 출현한 기조에 따라 국제영화제, 여성영화제 등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지난 1997년, ‘여성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자’라는 슬로건과 함께 국내 최초 여성영화제인 ‘서울국제여성영화제’가 개최됐다. 이후 제주·충주·광주·부산·대구의 여성단체, 미디어 센터 등에서도 여성영화제를 개최했다. 국내의 여성영화제들은 여성감독이 만든 ‘여성주의’ 영화를 상영함으로써, 한국영화계에서 여성영화인의 비중이 커질 수 있도록 힘쓰고 있다. 정민아 영화평론가는 “과거에 비해 여성 감독의 수가 증가한 것은 20년 동안 꾸준히 노력해온 여성영화제의 성과”라고 말했다. 실제로 지난 21일 개최된 청룡영화제에서 청룡영화상 신인감독상 후보의 성비가 이례적으로 여성이 더 높았다.

 한편 일각에서는 여성영화제가 남성을 배제하기에 오히려 역차별을 낳는 문화라고 비판하기도 한다. 이에 변재란 서울국제여성영화제 조직위원장은 “여성영화제는 여성과 남성을 이분법적으로 나누는 것이 아니라, 여성의 눈으로 바라본 세상에서 보이는 편협한 일들에 대해 사유하고, 성찰함으로써 삶의 변화를 이끌고자 하는 것”이라고 전했다.
우리 지역인 대구에서도 여성영화 활성화를 위한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다. 올해로 8회를 맞이한 대구여성영화제는 젠더시네마특강 찾아가는 영상제작 교실 주민영상제작교실 등의 프로그램으로 구성돼 있다. 그중 주민영상제작교실은 주민을 대상으로 영상 교육을 하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이들이 만든 영상을 영화제 기간 동안 상영하고 있다. 이에 해당 프로그램은 비전문가인 주민 여성감독을 꾸준히 배출해 우리나라 영화계 여성창작인력의 수를 증가시키는 데 기여하고 있다.

 그녀의 든든한 지원군들=국내에서는 여성영화인들의 활약을 위한 활동과 사회가 정한 젠더로서의 여성 이미지를 거부하는 관객들의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다. 지난 2018년 9월, 영화진흥위원회(이하 영진위)에서는 영화산업 내 성평등 기반 조성 등의 업무를 담당하는 성평등소위원회(이하 성평등소위)를 설립했다. 성평등소위는 지난 2019년 하반기, 영진위에서 진행하는 모든 사업의 심사위원 성비를 여성 50% 이상으로 구성하는 방안을 통과시키기도 했다. 이에 정민아 영화평론가는 “영화제작 지원 사업을 하고 있는 영화진흥위원회가 모범적으로 사업 심사위원의 성비를 5:5로 구성한 것은 각종 지자체의 영화제작지원 사업에도 영향을 준다는 점에서 여성영화의 발전을 기대할 수 있다”고 전했다.

 더불어 여성영화의 든든한 지원군으로서 우리나라 영화의 주 소비층인 ‘젊은 여성’을 꼽지 않을 수 없다. 이들은 주체적이고 당당한 여성 주연 영화를 여러 차례 관람하는 일명 ‘N차 관람’을 통해 여성영화의 ‘자발적 홍보대사’ 역할을 하기도 한다. 지난 8월 개봉한 김보라 감독의 ‘벌새’는 1990년대를 살아가는 중학교 2학년 여학생이 마주한 가부장적 삶을 청소년의 시각으로 풀어냈다. 이에 주인공의 청소년 시절에 많은 공감을 느낀 관객들이 ‘벌새단’을 자청하며, N차 관람 등을 통해 벌새에 대한 애정을 표현했다. 벌새는 영화 비수기에 개봉한 독립영화임에도 13만 관객이 동원되는 결과를 낳았다. 정민아 영화평론가는 “소신 있는 관객들의 소비 운동은 상업 영화 속 여성영화의 힘을 키운다”며 “이는 영화계의 결정권자들이 영화계 내 여성영화의 위치를 생각하고, 그 비중을 더욱 키울 수 있게끔 노력하도록 만든다”고 말했다.

 *GV(Guest Visit): 영화 상영 시, 감독이나 영화 관계자들이 직접 방문해 상영된 영화에 관해 설명하고, 관객들과 질의응답을 주고받는 무대


백델 테스트를 통과한 영화는?
 

 ‘벡델 테스트’란 1985년 미국의 만화가 엘리슨 벡델이 고안한 영화 성평등 테스트이다. 지난 2월 18일 영진위가 발표한 ‘2018 한국영화 산업 결산’에 따르면, 순제작비 30억 원 이상의 실사 한국영화 39편 가운데 벡델 테스트를 통과한 영화는 10편밖에 되지 않았고, 이를 통해 우리는 영화 산업 내 성 불균형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다. 이에 해당 테스트를 통과한 영화 중 ‘370만 관객 동원’, ‘크레디트 여성 배우 첫 등장한 여성 주연 영화’라는 타이틀을 거머쥔 ‘국가부도의 날’의 벡델 테스트를 점검해 봤다.

 Q. 영화 속 이름을 가진 여성이 두 명 이상인가?

 

 



 A. 김혜수(한시현 역), 박진주(강윤주 역), 한지민(이아람 역)

 Q. 영화 속 여성이 서로 대화를 나누는가?






 A. 그렇다.

 Q. 그 대화는 남자와 관련이 없는 내용인가?






 A. 자극적 대화가 아닌, 국가 부도를 막기 위한 대화가 오고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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