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회 천마문화상 - 가작(시)] 국지성 소나기
[50회 천마문화상 - 가작(시)] 국지성 소나기
  • 전명환(중앙대 국어국문학과4)
  • 승인 2019.11.18 16:37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1

 옆집 고물상 아저씨가 도망친 다음 날 자전거 뒷바퀴가 녹슬었다는 걸 알았다 동네 사람들이 다 출근한 아침이면 커다란 대문 사이로 드나드는 사 톤 트럭에는 내가 초등학교 때 갖고 놀던 팽이도 담겨 있었다 한 번 돌기 시작한 팽이가 멈추기 위해서는 부딪혀야만 한다 지나치게 더운 여름 고물상은 가장 빛났고 아저씨는 세상에 돈이 넘쳐흐른다면서 아이스크림을 쥐어주었다 팽이는 치면 칠수록 더 세게 돌아간다는데 언제부턴가 자전거가 약간 찌그러져 있었다 트럭에는 졸업한 초등학교 의자들이 있고 태성이 아버지가 집어던진 전자렌지가 있고 몇 년째 완성되지 않는 아파트 한가운데 밤이면 무인등대처럼 빛나는 건설현장에서 들고 온 철근들이 있었다 비 오는 날이면 자전거를 타지 않았으니까 몰랐지 팽이가 한참을 돌면 길바닥도 뚫는다는 사실을 그해에는 우리 동네만 지나치게 비가 많이 내렸다 멀리 떠나야 하는 배들이 여기서 머물고만 있어서라고 했다 아저씨 가족들은 우리집에 개를 데리고 왔다 그들은 유일하게 남은 재산을 넘기고 비가 오지 않는 곳으로 떠난다고 했다 개가 마당에서 사라질 때마다 고물상 대문을 쾅쾅 두드리면 담장 개구멍으로 개의 콧잔등이 보이곤 했다 끝내 나는 개에게 이름을 붙여주지 않았다
 

2

 한때 털이 부드럽고 하얀 개는 민들레 씨를 닮아 내가 돌리던 팽이를 물고 바람처럼 달아나곤 했다 그 개가 어느새 누런 물이 들어 비 오는 날이면 고물상을 들락거렸다 이 동네를 떠나기 이 년 전 고물상이 헐리는 모습을 개와 함께 지켜보았다 개구멍이 있던 자리로 시뻘건 녹물이 줄줄 새다 마른 자국들이 남아 있었다 나는 명백히 팽이를 돌리지 않는 나이가 되어 그 구멍 아래로 팽이를 던져 넣으며 아저씨가 넘쳐흐르다 못해 주워 담지 못한 것들을 떠올렸다 개는 긴 꿈에 취해 더 이상 팽이를 물고 달아나지 않았으며 나는 그게 퍽 섭섭한 일이라고 다른 도시에서 내리는 소나기를 볼 때마다 생각하곤 한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